이북도서『민족이 사는 길』중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나라와 민족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고 운명개척의 기본단위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르치신바와 같이 나라와 민족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고 운명개척의 기본단위이다.

민족을 떠나서는 그 어떤 사람도 살아나갈수 없다. 사람은 민족의 품에서 태여나고 민족과 함께 살아나가기때문에 언제나 민족을 생각하게 되는것이다.

민족의 한 성원으로 살고있는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고국땅을 떠나 이국땅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나도 미국땅에 살고있는 사람으로서 민족에 대하여, 분렬된 민족의 아픔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은적이 없다.

먼 이국땅에서 살면서도 언제나 가보고싶고 그리워지는 곳이 겨레가 살고있는 민족의 품, 조국이다. 그래서 나는 해마다 조국땅을 찾군 한다.

예로부터 인간의 4대죄악은 노예적착취, 인종 및 민족차별 그리고 전쟁이라고 하였다. 조선반도에서는 하나의 민족이 둘로 갈라지고 민족의 한 부분이 외세에 의하여 자주권을 유린당하는 참상이 빚어지고있다. 그래서 가슴아픔을 금치 못한다.

단군민족의 피와 얼이 온몸에 잠적해있고 그래서 어디에 가서나 내 나라 땅이 그리워지고 《아리랑》과 《노들강변》을 부르고싶어지는것이라고 생각된다.

민족은 사람들의 생의 본태이고 품이다. 민족에 대한 론의는 많았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음미해보면 민족은 사회력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사회적집단이고 운명공동체이다. 그리고 민족을 특징짓는 기본징표는 피줄과 언어의 공통성이다.

민족은 나의 출생이전에 벌써 나의 민족이다. 사람이 부모를 선택하여 태여날수 없듯이 민족을 선택하여 태여날수 없다. 그래서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자기 민족을 생각하고 민족의 운명에 대하여 걱정하게 되는것이다.

인간의 생은 민족과 함께 시작되고 민족과 함께 끝나게 된다. 민족의 품은 그리운 고향집뜨락과 정갈한 물이 돌돌 흐르는 동구밖 내가이고 황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푸른 들이다. 소꿉시절 동심의 세계가 펼쳐지던 정다운 땅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에 가든 민족이 사는 그 땅을 잊지 않고 그것을 귀중히 여기는것이다.

그처럼 귀중한 우리 민족이 둘로 갈라졌다. 일제식민지하에서 41년간 수난을 당하던 우리 민족이 저 남녘땅에서 또다시 60여년을 살아오면서 분렬의 아픔을 당하고있다. 우리 세대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끝장내야 할 사명을 안고있다.

그러나 민족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홉스는 《민족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인간개체가 더 중요하다.》고 했고 스미스는 《상인은 특정한 나라의 시민일 필요가 없다고 하는것은 매우 지당한 일》이라고 했다. 나라와 민족이 귀중한것이 아니라 개인의 영달과 리해관계가 더 귀중하다는것이다. 개인의 리익을 위하여서는 민족을 부정하거나 버려도 된다는 그릇된 견해를 따라서는 안된다.

민족인이라면 그가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조국에서 살든 이국에서 살든 민족을 버릴수 없으며 또 버려서는 안된다. 민족우에 개인의 리익을 내세워서는 안된다.

분렬된 민족으로 살아가는 민족의 아픔을 더는 지속시켜서는 안되며 개인의 영달과 리익을 위하여 외세를 따르고 외세와 《공조》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된다.

민족인들은 그 누구도 민족을 잊어서는 안되며 나라가 분렬되여 겪는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여서는 안된다.

짓밟힌 민족적자주권은 말로써는 찾을수 없다. 저 남녘땅에서 수난을 당하고있는 겨레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서 온 민족이 일떠나서야 한다. 온몸을 내대는 의로운 투쟁만이 분렬된 민족의 아픔을 가실수 있다.

아, 우리 민족, 그 이름만 불러도 가슴아픈 오늘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7천만겨레는 민족자주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6.15통일시대를 더욱 활짝 꽃피워 조국통일의 새 아침을 앞당겨나가야 한다. 바로 그 길에 우리 민족이 살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