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선군정치문답』중에서
 



 

무릇 정치는 리념의 구현, 사상의 구현이다. 어떤 정치를 막론하고 리념적기초가 있어 그 실체가 있게 되는것이다. 해당 정치의 과학성, 진보성, 정당성, 위력 등은 그가 어떠한 사상을 구현하고있는가에 좌우되게 된다. 선군정치의 정립도 이러한 합법칙성의 견지에서 설명된다.

남조선의 통일운동단체들에서 운영하는 인터네트홈페지들에 실린 선군정치관련 글들에서는 《선군정치는 선군사상으로도 불리운다.》고 전제하고 선군정치에 대한 해석을 하고있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선군사상이자 선군정치라는 뜻으로서 옳은 지적이라 할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류의해야 할것은 선군정치=선군사상이라는 절대성을 가지는 수학적도식이 성립되는것은 아니라는것이다.

선군정치와 선군사상의 출현배경을 1990년대 중반기로 일치시키고있는 사실에 문제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반통일론자들은 《최근 선군사상출현이후 선군정치가 이데올로기화》되였다고 선군정치정립이후 선군사상이 출현하여 비로소 리론화(이데올로기화)된것처럼 선군정치정립의 합법칙적과정을 외곡하고있다.

이것은 선군정치의 과학성에 대한 훼손인 동시에 력사와 전통, 현실에 대한 유린이다.

선군사상과 선군정치의 창시 또는 출현의 력사적배경(시기)은 엄연히 다르다. 또한 선군정치가 1990년대 중반기의 변화된 정세를 배경으로 하여 시작된것도 아니다.

선군사상이 1930년대초 항일무장투쟁개시를 앞둔 력사적배경속에서 창시되였다면 선군정치는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1960년대말~1970년대초의 격렬한 조미대결의 력사적배경속에서 시작되였다. 그리고 선군정치가 완성된 정치리론, 정치방식으로 전면적으로 정립체계화된 1990년대 중반기이후의 격변하는 정세속에서 보다 높은 단계에서 실현되기에 이른다.

이것은 선군사상이 수십년에 걸치는 구현과정을 통하여 마침내 인류정치사에 없는 새로운 정치방식을 탄생시키였으며 이후의 오랜 실천속에서 그 정당성이 검증된데 따라 전면적인 실현단계, 다시말하여 공식적인 선포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것이다.

그러면 선군사상이 어떠한 력사적과정을 거쳐 창시되였는가에 대하여 보기로 하자.

선군사상의 창시는 주체사상의 창시와 그 력사적시점을 같이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이시야말로 선군사상의 창시자이시고 선군혁명의 위대한 령도자이십니다.》

선군사상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1930년대초에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실태와 교훈을 심오히 연구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창시하시였다. 하지만 선군사상의 력사적뿌리는 그 퍽 이전에 형성되였다.

선군사상의 시원에 관한 문제는 한마디로 말하여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을 창시하실수 있은 력사적시원에 관한 문제이다.

선군사상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지도자로 활약하신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으신 두자루의 권총과 그이께서 조직하신 첫 혁명조직인 타도제국주의동맹(《ㅌ. ㄷ》)의 강령에 그 시원을 두고있다.

주체15(1926)년 6월 5일,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이역땅에서 망국의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시면서 강반석녀사에게 자제분께서 투쟁의 길에 나설 때 주라고 하시며 두자루의 권총을 넘겨주시였다. 그리고 위대한 김일성주석에게 《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다. 그러나 너희들을 믿는다. 너희들은 언제든지 나라와 민족의 몸이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뼈가 부서지고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당부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비장한 유언과 함께 물려주신 두자루의 권총에는 당시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총화가 집대성되여있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한생의 좌우명으로 《지원》의 사상과 정신을 간직하고계시였고 세상을 떠나시는 날까지 언제나 가슴에 총을 품고다니시며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시였다.

민중의 힘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으로 그들을 묶어세워 거족적인 반일항전을 벌려 국권을 회복하고 진정한 민중의 나라를 일떠세우자는것이 《지원》의 사상의 근본핵이였다. 《지원》의 사상에서 기본으로 되고있는 자력독립, 무산혁명에 관한 사상은 철두철미 무장을 중시하고 전체 인민이 손에 총을 잡아야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있다는것이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모색하신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새로운 길이란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민중이 손에 총을 잡고 싸워야 한다는것이였다.

김형직선생님의 총적지향은 무장투쟁을 벌리자는것이였고 그래서 항상 몸에 총을 지니고다니시였던것이다.

무장한 적과는 무장을 들고 싸워야 한다는것이 김형직선생님께서 오랜 기간 반일민족해방운동을 지도하시면서 얻으신 결론이였고 칼든 놈하고는 칼을 들고 싸워야 하고 총을 가진 놈하고는 총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는것이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피어린 총화가 남긴 교훈이였다.

위대한 주석께서는 이렇듯 아버님으로부터 그 어떤 재물을 유산으로 물려받으신것이 아니라 총대를 틀어잡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어이 빼앗긴 조국을 찾아야 한다는 투철한 혁명사상, 투쟁방도를 밝힌 총대중시사상을 물려받으신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아버님의 체취가 슴배인 권총을 어머님으로부터 넘겨받으시던 때를 회억하시면서 이렇게 언급하시였다.

《나는 이 두자루의 권총을 물려받을 때 아버지가 지향했던것을 내가 대신하여 실현시키고야말리라는 결심을 굳게 다지였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 263페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 있어서 아버님의 체취가 슴배이고 아버님의 독립의지가 담긴 두자루의 권총은 그대로 수백수천자루의 총이였고 대포였고 비행기였으며 위대한 선군혁명사상을 내놓으실수 있게 한 전제로 되였다.

이렇게 두자루의 권총유산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선군의 의지를 새기고 선군사상을 창시하실수 있게 한 사상정신적원천이 되였다.

선군사상은 또한 《ㅌ. ㄷ》의 강령에 그 시원을 두고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15(1926)년 10월 반제, 독립, 자주의 리념밑에 민족해방, 계급해방을 위한 혁명의 전위조직인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고 그 투쟁강령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주석께서는 제국주의자들과 식민지나라 인민들사이에는 화해할수 없는 불상용적인 모순이 존재하며 이 모순은 적대적인것만큼 《타협》의 방법으로는 해결할수 없으며 오직 제국주의를 때려부셔야만 해결될수 있다고 천명하시였다. 주석께서는 제국주의자들과 식민지나라 인민들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적대적관계에 대한 과학적분석에 기초하여 《ㅌ. ㄷ》의 강령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의 당면과업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는것이며 최종목적은 조선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며 나아가서는 모든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세계에 공산주의를 건설하자는것이였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1권 166페지)

일제의 조선강점이후 국권회복을 위해 애국인사들과 인민들은 대국들에 청원도 해보고 독립시위와 눈물겨운 국채보상운동도 벌렸으며 피를 뿌리며 의병투쟁과 독립군투쟁도 해보았다. 그러나 차례진것은 시체와 피바다뿐이였다.

위대한 주석께서는 이로부터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전체 인민이 손에 무장을 들고 조직적인 혁명투쟁을 벌려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바로 이것이 《ㅌ. ㄷ》결성의 기본취지가 되였고 조직의 강령으로 내세워지게 된것이다.

철저한 반제사상으로 일관된 강령에 천명된 제국주의를 타도할데 대한 사상에는 혁명적폭력에 의거한 투쟁방법 즉 무장투쟁에 관한 사상이 전제되여있었다. 이 혁명적무장의 중요성, 제국주의와의 비타협적투쟁에 관한 사상이 그후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창시하신 선군사상의 핵으로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이처럼 두자루의 권총과 《ㅌ. ㄷ》의 강령을 시원으로 하여 마침내 선군사상을 창시하시였다. 선군사상은 《ㅌ. ㄷ》의 강령으로 내세웠던 제국주의를 타도할데 대한 사상의 완성이였으며 일제를 타도하고 민족적해방을 가져올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무장을 들고 싸우는 길이라는 신념의 발현이였다.

선군사상의 창시는 김일성주석에 의해 항일무장투쟁이 개척되고있던 시기인 주체19(1930)년 6월말~7월초에 열린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회의(카륜회의)에서 선포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카륜회의에서 하신 력사적인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는 주체사상의 창시와 함께 선군사상의 창시를 선포하는 력사적사변이였다.

위대한 주석께서는 카륜회의에서 세가지 로선과 방침을 제시하시였는데 그 첫번째가 선군사상이 구현된 항일무장투쟁로선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시였다.

《우리는 보고에서 무장으로 전면적인 항일전쟁을 벌릴데 대한 문제를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기본로선으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첫째가는 과업으로 제기하였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 41페지)

카륜회의에서 제시된 무장투쟁로선은 총대로 혁명을 개척하고 전진시켜나갈것을 명시한 위대한 로선으로서 선군사상의 창시를 알리는 장엄한 선언으로 되였다.

그러면 카륜회의에서 제시된 무장투쟁로선의 제시가 왜 선군사상의 창시로 되는가.

일반적으로 새로운 혁명사상은 그 진수가 규정되고 해당한 력사적단계에서 혁명실천의 요구에 해답을 주게 되면 그것이 곧 혁명사상의 창시를 선포하는것으로 된다.

맑스주의창시가 정식으로 선포된 력사적과정이 바로 그러하였다. 맑스와 엥겔스는 1840년대 전반기와 후반기에 걸쳐 《헤겔법철학비판》, 《공산주의원리》를 비롯한 초기저작들에서 과학적공산주의사상으로서의 맑스주의의 철학적기초와 일련의 혁명원리를 밝혔다. 그리고 1847년 《공산주의자동맹》 제2차대회의 위임에 의해 《공산당선언》을 작성하여 1848년 2월 이 동맹의 강령으로 선포하였다. 《공산당선언》은 당시까지의 맑스주의의 기본사상과 원리들을 집대성한것들이였다. 이것은 《공산당선언》의 발표로 맑스주의의 창시가 정식 세상에 선포되였다는것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혁명사상은 그 진수가 규정되고 해당한 혁명실천의 요구에 해답을 주게 되면 정식 선포된것으로 볼수 있다.

카륜회의에서 제시된 무장투쟁로선은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투쟁에서 무엇보다 총대를 중시하고 그것을 기본으로 틀어쥐고나갈데 대한 혁명전략이다.

이 로선에는 선군사상의 진수를 이루는 총대의 지위와 역할이 전면적으로 밝혀져있다.

선군사상은 혁명과 건설에서 총대가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에 대한 과학적이며 독창적인 리해에 기초하여 전개되고 체계화된 사상이다.

항일무장투쟁로선은 혁명의 총대우에 나라와 민족의 자주독립과 부강번영이 있으며 따라서 혁명투쟁의 어느 시기에나 총대를 중시하고 앞세워야 한다는 혁명원리를 명시한 위대한 선군로선이다. 위대한 주석께서 무장투쟁로선을 제시하신것은 곧 선군사상의 탄생을 알리는 장엄한 선언으로 되는것이다.

이렇게 창시된 선군사상은 그후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선군령도가 시작되고 실현되여나가는 력사를 안아왔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의해 선군의 력사와 전통이 빛나게 계승되여나가는 선군정치의 시대, 위대한 선군시대를 펼쳐놓았다.

이렇듯 선군정치가 선군사상, 선군혁명리론을 구현한 정치방식이기에 선군사상이자 선군정치이라는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기는 하지만 거기에 선군사상의 창시가 곧 선군정치의 시작으로 된다는 의미가 내재되여있지는 않는것이다.

보다 중요하게는 반통일론자들의 선선군정치 후선군사상 주장은 선군사상, 선군정치의 창시와 정립과정을 외곡한 그릇된 견해로서 선군정치의 과학성에 대한 훼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