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3)중에서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어렵고 힘든 초소마다에서 돌파구를 열어제끼는 투쟁의 앞장에는 언제나 조국보위의 제일선에 서있던 제대군인들도 있었다. 어제날 혁명의 총대를 잡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보람찬 군사복무의 나날을 위훈으로 새겨온 제대군인들이 색날은 군복을 그대로 입고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에서도 창조와 혁신으로 삶의 자욱을 빛내인것이다.

이들의 자랑찬 모습은 제대군인들을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초소에서 모범이 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탁월한 선군혁명령도를 떠나 생각할수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앞장에 인민군대를 내세워주시는것과 함께 이 장엄한 투쟁에서 제대군인들이 언제나 핵심이 되고 모범이 되도록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3년간의 전쟁으로 재더미밖에 남지 않은 빈터우에서 조선인민은 복구건설을 진행하고 사회주의기초건설을 해야 하는 초행길에 들어섰다. 자기 수령, 자기 당의 사상과 로선을 받들어나가는 투쟁대오의 기수, 핵심으로 누구를 내세우는가에 따라 이 력사적진군길에서의 승패가 결정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에서 투쟁의 기수, 핵심의 하나로 바로 제대군인들을 내세워주시였다.

인민군대는 하나의 혁명대학과 같다. 인민군대에서는 당과 수령을 결사옹위하려는 사상정신적각오를 체득하게 되고 최고사령관의 명령지시에 절대복종하고 그것을 결사관철하려는 난관극복의 정신을 배우게 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혁명대학과정을 통해 사상정신적으로, 기술육체적으로 단련된 제대군인들이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에서도 마땅히 투쟁대오의 기수가 되고 핵심으로서의 역할을 원만히 수행할것이라고 보시였다. 여기에 제대군인들을 단순히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로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이 력사적진군길의 앞장에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선군혁명령도의 현명성이 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에 따라 전후 수많은 제대군인들이 금속, 전력, 채취, 림업, 농업, 수산업, 철도운수를 비롯한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들에 배치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8월에 진행된 내각 제18차전원회의를 비롯하여 여러 기회에 제대군인들의 배치를 중요한 토의문제의 하나로 제기하시고 그 해결대책을 세워주시였다.

전후 인민경제의 주공전선마다에 제대군인들을 파견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5(1956)년에는 대담하게 인민군대병력을 8만명 축소하여 평화적건설에 돌릴데 대한 적극적이며 주동적인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당시 일부 사람들은 미제의 무력증강책동이 날로 우심해지고있는 긴장한 때에 8만명이나 되는 많은 군대를 우리만 일방적으로 한꺼번에 축소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위구심을 가지고있었다.

이러한 속에 주체45(1956)년 5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만명의 군대를 제대시켜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배치하는 사업을 잘하도록 하기 위하여 협의회를 마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미제국주의자들의 부추김을 받으며 남조선괴뢰도당이 괴뢰군증강소동을 미친듯이 벌리고있는 때에 우리 당이 대담하게 인민군대병력을 8만명 축소하는것은 정치군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지는 거대한 사변으로 된다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이리하여 1956년 5월 공화국정부는 그해 8월말까지 인민군대병력중에서 8만명을 축소할데 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공화국정부의 이 조치에 따라 조선인민군 륙해공군 각 병종부대들에서 병력축소사업은 그해 6월 하순부터 시작하여 제정된 기일을 훨씬 앞당겨 끝내게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제대군인들을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배치하는 조치를 취해주시는 한편 그들이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에서 모범이 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8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제대군인들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미제침략자들과 피흘리며 용감히 싸운 우리 당의 귀중한 보배들이라고 하시면서 각급 당단체들은 조국보위초소에서 돌아오는 제대군인들을 따뜻이 맞이하고 제때에 직장에 배치하며 그들이 안착되여 일하고 생활할수 있도록 일상적으로 돌봐주어야 한다고, 제대군인들이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잘 싸운것처럼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에서도 로력적위훈을 세우도록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리고 주체44(1955)년 11월 강선제강소(당시)를 찾으시여서는 제대군인들을 비롯한 로동자들의 살림집문제를 빨리 해결해줄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또한 주체48(1959)년 9월 황해제철소(당시) 당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제대군인동무들이 지난날에는 전선에서 적을 때려부시기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목숨도 아끼지 않고 싸우는것이 가장 영예로운 일이였다면 오늘에 와서는 제철, 제강부문에서 일하며 선철과 강철생산을 높이기 위하여 투쟁하는것이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큰 복무이며 가장 영예로운 일이라고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제대군인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세심한 보살피심은 그대로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전투장마다에서 기적을 창조하는 열정이 되고 위훈을 낳는 원천이 되였다.

여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대군인들에게 베풀어주신 가슴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전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주체46(1957)년 2월 어느날 이른새벽 황해남도 신천군 새날농업협동조합(당시)을 찾아오시여 조합형편을 료해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의 한 집에서 잔치를 한다는것을 아시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그 집 살림을 구경하고 가자고, 경사날에 왔다가 그냥 가겠는가고 하시며 잔치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이날 잔치를 하게 되는 신랑은 인민군대에서 복무하다가 제대된 제대군인이였다.

잔치집의 살림살이도 알아보시고 신랑신부의 결혼도 축하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량옆에 세우고 신랑에게 물으시였다.

《군대에서 언제 제대됐소?》

《1956년 8월에 제대됐습니다.》

《잘 싸웠군. 훈장도 타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랑의 가슴에 달려있는 훈장들에 시선을 돌리시며 싸움을 많이 했는가, 어느 전투에 참가했는가고 물으시였다.

1211고지에서도 싸웠다는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수고했다고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시며 부상당한데가 없는가도 알아보시였다.

동무들이 그렇게 전선에서 원쑤들과 잘 싸웠기때문에 오늘과 같은 행복이 돌아온것이요. 자, 얼마나 좋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신랑신부를 량옆에 꽉 껴안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받치는 감격에 목이 메여 들먹이는 그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시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전선에서 적과 용감히 싸운것처럼 사회주의건설에서도 모범이 되여야 합니다.》

이름없는 농촌마을에 찾아오시여 제대군인의 결혼을 축하해주시고 그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

미제와 싸워이긴 그 정신, 그 기백으로 사회주의건설에서도 모범이 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그대로 온 나라 제대군인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이였고 믿음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을 심장에 새겨안은 제대군인들은 사회주의건설장마다에서 언제나 핵심이 되고 돌격대가 되여 세상을 놀래우는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펴주신 천리마대고조의 봉화를 높이 추켜들고 6만t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편을 밀어낸 강선제강소(당시) 로동계급의 앞장에도, 살림집건설에서 14분에 1세대 조립이라는 《평양속도》를 창조한 수도건설자들의 앞장에도 언제나 제대군인들이 서있었다.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힘찬 진군길에서 수많은 제대군인들이 로력혁신자로, 영웅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되였다.

이 자랑찬 현실은 언제나 투쟁대오의 기수가 되고 핵심이 되며 모범이 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로 마련된 빛나는 결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