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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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의정

주체35(1946)년 2월 20일 평양에서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1차회의가 소집되였다.

근 반세기에 달하는 일제식민지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해방된 조국땅에 인민의 손으로 세운 첫 중앙정권기관이 자기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력사적인 회의였다.

회의참가자들은 흥분된 심정을 누르지 못했다.

당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시였던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개회를 선언하시고 회의의정을 발표하시였다.

그런데 회의의정을 받아적던 참가자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손을 멈추고 놀라운 눈빛으로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보았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1차회의 의정으로 연필생산문제가 상정되였던것이다.

연필생산문제,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인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회의를 앞두고 제기되였던 많은 문제들가운데 연필생산문제는 없었다. 식량문제, 토지개혁문제, 산업부흥문제 등 긴급한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가.

연필생산문제는 전혀 뜻밖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장분위기를 일별하시고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에로 인민대중을 힘있게 불러일으키기 위하여서는 그들의 정치적각성과 문화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오늘 북조선에만 하여도 문맹자가 230여만명이나 된다, 문맹을 퇴치하지 않고서는 인민대중의 정치적각성과 문화수준을 높일수 없으며 건국사업을 성과적으로 진행할수 없다, 그리고 수백만에 달하는 어린이들도 모두 공부할수 있게 해야 한다, 모든 어린이들을 공부시키며 성인들의 문맹을 퇴치하는데서 걸린 문제의 하나는 연필문제이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에 연필공장을 건설하지 않고 우리 나라의 원료를 략탈하여 자기 나라에서 연필을 만들어가지고 조선에 가져다 비싸게 팔아먹었다, 일제가 패망하고 조국이 해방된 오늘 연필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필문제를 해결하는것은 단순한 실무적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후대들을 훌륭한 인재로 육성하며 우리 인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간직되여있는 소원을 풀어주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문제이라고 말씀하시였다.

회의참가자들은 그이의 말씀을 듣고서야 연필생산문제가 새 조국건설에서 나서는 가장 중요하고도 출발적인 문제이라는것을 깊이 깨닫게 되였다.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자체의 힘과 기술, 자체의 원료에 의거하여 연필을 생산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당장 국영연필공장을 건설할수 없는 조건에서 국가에서는 연필을 생산하는 민간기업체들에 적극적인 방조를 주며 2∼3년후에 원료채취조건이 유리한 강계지방에 큰 연필공장을 하나 건설하는것이 좋겠다고 그 방도에 대하여서도 환히 밝혀주시였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1차회의의 첫 의정,

그것은 인민이 주인된 새 나라를 세상에 보란듯이 일떠세우자면 무엇보다 그 인민을 높은 정신문명의 소유자로, 후대들을 부강조국건설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키워야한다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확고한 결심, 배움에 대한 인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시려는 그이의 지극한 사랑의 결정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