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3)중에서 


 

  

 

 전후 조성된 정세는 인민군대와 인민들로 하여금 적들의 전쟁기도를 제때에 때려부실수 있도록 항상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견지하며 국방력을 강화하는데 계속 힘을 넣으면서 전후복구건설사업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여기에다 전후복구건설의 앞길에는 헤아릴수 없이 많은 난관과 시련이 가로놓여있었다.

전쟁피해정형을 종합한 자료만 보아도 공화국에 대한 미제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의한 인민경제의 피해액은 당시 화페로 약 4 200억원에 이르렀다. 미제의 야만적폭격으로 말미암아 8 700여개의 공장과 기업소가 재더미로 되고 37만정보의 농토가 피해를 입었으며 농경지가 9만정보나 줄어들었다. 그리고 60여만채의 살림집과 5 000여개의 학교, 1 000여개의 병원과 진료소, 260여개의 극장과 영화관을 비롯한 수많은 시설들이 파괴되였다.

이러한 형편을 두고 미제는 조선은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서지 못할것이라고 뇌까렸고 세계 진보적인류는 조선에서의 전후복구건설전망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군대와 인민이 있고 령토가 있으며 당이 있고 인민정권이 있는 한 또다시 새 생활을 건설할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밑에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장엄한 투쟁에로 전체 군대와 인민을 불러일으키시였다.

당시 전후복구건설에 떨쳐나선 인민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높았지만 복구건설을 무엇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때문에 복구건설의 선후차를 어떻게 정하며 어느 고리를 틀어쥐고 어디에 력량을 집중하는가 하는것은 재더미우에서 제힘으로 빨리 일떠서는가 못 서는가 하는것을 좌우하는 근본문제로, 조국의 장래운명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이러한 요구를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엄혹한 전쟁의 나날 포화속에서 구상하시고 준비하신 전후복구건설의 설계도를 완성하시기 위하여 쉬임없는 현지지도의 자욱을 새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7월 28일 전쟁승리를 경축하는 평양시군중대회의 주석단을 내리시는 길로 강남요업공장(당시)을 찾으시는것으로부터 시작하시여 평양방직공장과 황해제철소(당시) 등 여러 공장과 농촌, 건설장들을 끊임없이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8월초 강선제강소(당시)를 찾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참히 파괴된 제강소구내를 돌아보신 다음 제강소마당에 서있는 백양나무아래 무너진 벽체우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로동자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동자들에게 《나는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문제를 토의할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를 준비하다가 강선의 로동계급과 복구건설문제를 의논해보려고 오늘 이곳에 찾아왔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방향에 대하여 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전후 인민경제를 복구건설하는데서 공업화의 기초로 되는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복구발전시켜야 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강철공업을 복구발전시키는데 힘을 넣어야 한다고, 그리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경공업과 농업도 동시에 복구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전후복구건설에 필요한 강철문제를 해결하는데서 강선제강소 로동계급은 매우 무겁고도 영예로운 임무를 맡고있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혹심하게 파괴된 강선제강소를 기어이 자체의 힘으로 훌륭히 복구건설함으로써 조선은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서지 못할것이라고 떠벌이는 원쑤들의 궤변을 짓부시고 전후복구건설에서도 영웅적인 조선로동계급의 위력을 다시한번 온 세상에 시위하여야 한다고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신 끝없는 기쁨과 함께 강선로동계급을 복구건설의 앞장에 세워주시는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에 감격을 금치 못해하며 로동자들은 제강소복구를 다그쳐 강철생산을 획기적으로 늘일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고 로동자들을 둘러보시며 엊그제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토론한 전후복구건설의 총적방향이 전적으로 옳았다, 그 로선에 대하여 누가 뭐라고 하든지 우리의 로동계급과 인민들은 추호의 동요없이 그 정당성을 믿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에 한결같이 떨쳐나설것이라고 열정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전후의 현실과 인민대중의 지향, 각오를 통하여 자신께서 이미 구상하신 전후경제건설의 방향이 정당하다는것을 확신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42(1953)년 8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회의에서 《모든것을 전후인민경제복구발전을 위하여》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전후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전후경제건설에서 중공업의 선차적복구발전을 보장하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나라의 경제토대를 튼튼히 할수 있고 인민생활을 빨리 개선할수 있습니다.》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킬데 대한 전후경제건설로선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총대로 시작되고 총대로 전진하여온 조선혁명의 요구와 미제와 직접 맞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진행해야 하는 우리 나라의 구체적현실로부터 출발하시여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을 굳게 믿으시고 내놓으신 혁명적이며 독창적인 로선이였다.

그때까지 경제건설력사에는 자본주의나라들에서와 같이 경공업을 먼저 건설하여 자금을 확보해가지고 중공업을 건설하는 길과 이전 쏘련에서와 같이 일정한 기간 경공업과 농업의 발전을 뒤로 미루고 중공업을 강행적으로 건설하는 두 길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경제건설리론과 경험들은 우리 인민의 요구와 우리 나라의 구체적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인정하시였다.

중공업건설을 앞세우는것은 사회주의확대재생산의 근본요구이며 자립적민족경제건설의 기본요구이기도 하지만 중공업에만 치우치면서 경공업과 농업의 발전을 뒤로 미룬다면 전쟁으로 령락된 인민생활을 빨리 안정향상시킬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로부터 우리 나라에서 자립적인 경제토대를 쌓는 문제와 인민생활을 추켜세우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수 있는 방향에서 전후경제건설로선을 규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경제건설로선은 특히 미제와 직접 맞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진행해야 하는 조건에서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국방공업의 발전을 확고히 담보할수 있게 하는 독창적인 로선이였다.

자립적인 경제토대를 쌓기 위하여서도 그렇고 인민생활을 추켜세우기 위하여서도 군력이 강해야 하는데 이 군력강화의 기본요인의 하나인 국방공업의 발전은 중공업의 발전을 전제로 하고있다. 결국 중공업을 빨리 추켜세우고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국방공업의 발전을 확고히 보장할수 있으며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고 인민생활도 높일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로선은 비단 전후복구건설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주의건설 전기간에 걸쳐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로선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사업을 3개의 기본단계로 구분하여 첫 단계에서는 반년 내지 1년동안 파괴된 경제를 전반적으로 복구할수 있는 준비사업과 정리사업을 하며 둘째 단계에서는 3개년계획을 수행하여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전쟁전 수준을 회복하며 셋째 단계에서는 5개년계획을 수행하여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를 쌓을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인민경제부문별 복구건설방향과 로력, 기술, 자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방도들도 밝혀주시면서 기계제작공업의 발전은 우리 나라의 장래공업화를 위한 기본조건으로 되며 국방상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기계제작공업의 발전에 특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국방공업의 발전을 담보하는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은 전체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이 인민경제복구발전을 위한 투쟁에 뚜렷한 전망과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나설수 있게 힘있게 추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