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우리 나라에서 국가부담에 의한 전반적무료교육제도는 후대교육과 민족간부양성을 위하여 모든것을 아끼지 않는 우리 당과 국가의 인민적시책과 날로 더욱 튼튼하여지는 나라의 자립적민족경제에 의하여 확고히 담보되고있다.》

김 일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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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면비교육

중국 동북지방의 장춘으로부터 서남쪽으로 200여리 떨어진 외진 곳에 오가자라는 마을이 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19(1930)년 10월 항일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꾸리시기 위하여 이곳으로 오시였다.

처음 다섯집이 모여서 살았다는데로부터 오가자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고장은 민족주의자들이 《리상촌》을 건설한다는 소문을 내면서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300여호의 주민지로 되였다. 당시 완고한 민족주의자들이였던 이 마을의 유지들은 《리상촌》을 건설한다고 하면서 외부와 담을 쌓고 이 고장에 저들의 주장과 맞지 않는 그 어떤 사상조류도 침습하는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을의 이러한 실정을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변대우로인을 비롯한 이 마을 유지들과의 사업을 진행하시였다. 그이의 높으신 인품과 겸손하고 소탈한 품성, 사리정연한 론리와 해박한 지식앞에 마을의 유지들은 머리를 숙이게 되였으며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 《리상촌》건설이란 한갖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이렇게 오가자를 혁명촌으로 꾸리기 위한 돌파구를 열어놓으신데 기초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의 대중단체들과 지방자치행정기관을 혁명적으로 개편하도록 하시는 한편 오가자인민들을 계몽하고 교양하는데 많은 힘을 넣으시였는데 그중에서도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신것은 교육사업이였다.

오가자에는 이미 민족주의자들이 세운 6년제학교가 있었는데 그 학교를 처음에 오영학교, 삼중학교로 부르다가 그후 삼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고루한 민족주의사상을 가르치고있었으며 학과목도 낡은 봉건제도와 봉건도덕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수신》, 《대동력사》 등이였다.

그나마 월사금을 바쳐야 했기때문에 돈이 없고 가난한 집의 자식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있었다.

마을의 이러한 교육실태에 대하여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삼성학교를 혁명적으로 개편하여야 하겠다는 결심을 내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군 대원들과 지하조직성원들가운데서 유능한 청년들을 선발하여 삼성학교 교원으로 배치하시였다. 그리고 가난한 농민들의 자녀들을 새로 받아들이도록 하시였으며 월사금제를 페지하고 면비교육을 실시하도록 하시였다. 또한 학교의 교육내용을 혁명적으로 개편하도록 하시였다.

이에 따라 민족주의사상, 봉건유교사상을 설교하는 낡은 학과목대신 일반과목과 정치과목들이 새롭게 선정되였다. 일반과목에서는 국어, 산수, 조선력사, 지리를 가르쳤고 정치과목에서는 《사회진화론》, 《레닌주의제문제》 등을 수준에 맞게 취급하였다. 학교에서는 군사교육도 하였는데 학생들은 소년탐험대와 소년선봉대에 망라되여 조직생활을 하였으며 수업후이면 웅변대회, 토론회, 선전사업, 연예대활동, 체육활동, 군사훈련, 밀정감시, 통신련락, 부락경비사업 등에 참가하여 자신들을 혁명가로 준비해나갔다. 학교의 유지비는 마을의 자치위원회에서 대주었다.

그리하여 그해 겨울부터 취학년령에 해당하는 오가자의 모든 아이들이 월사금을 내지 않고 학교에 다닐수 있게 되였다.

돈이 없어도 글공부하는 세상, 그것만으로도 오가자는 마을사람들에게 있어서 리상촌이였다. 좋아라고 학교로 뛰여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오가자의 인민들은 세상에 없는 면비교육을 실시하도록 하시여 자식들을 마음껏 배우게 하려는 자기들의 평생소원을 풀어주시였을뿐아니라 그들모두를 혁명가로 키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또 올리였다.

그때를 회고하시여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우리가 후날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 의무적인 면비교육에 대한 조항을 하나 넣기는 하였지만 사실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무료교육을 처음으로 시도하고 실천에 옮긴것은 고유수, 카륜, 오가자에서였다. 오가자의 삼성학교는 카륜의 진명학교, 고유수의 삼광학교와 더불어 우리 나라 교육력사에서 첫 면비교육이 실시된 의의깊은 교육기관이였다.》

참으로 항일혁명투쟁의 개척기에 오가자의 삼성학교에서 실시된 첫 면비교육, 그것은 전반적인 무료의무교육을 중요내용으로 하는 사회주의교육제도의 뿌리로서 후대교육사업을 나라와 민족의 전도를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로 보시고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인민사랑의 결정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