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3)중에서 


 

  

  주체42(1953)년 가을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복구중에 있는 고급군사학교에 나오시였다.

전쟁에 의하여 재더미로 된 인민경제를 복구하고 어려운 형편에 처해있는 인민생활을 안정시켜야 할 바쁘신 가운데서도 어찌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고급군사학교에 나오시였는지 아직 그 깊은 뜻을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문밖에 나와서 기다리고있던 학교일군들과 인사를 나누신 후 그들의 안내를 받으시며 한창 복구중에 있는 청사건물앞에 이르시였다.

청사는 본래 3층으로 된 건물과 2층으로 된 건물이 산기슭을 따라 나란히 서있었는데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에 의하여 무참히 폭격을 당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복구중에 있는 청사건물을 빨리 복구할수 있는 방도도 밝혀주시고 학교복구건설에 필요한 로력과 자재를 우선적으로 충분히 보장해줄데 대한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학교책임일군으로부터 학교실태를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학교를 갓 이동하다보니 애로가 많았겠는데 그것을 극복하면서 복구건설도 하고 늘어난 교육강령에 근거하여 교수준비도 하느라고 정말 수고가 많았겠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우리는 애로와 난관을 극복하고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앞으로 고급군사학교를 군사대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그러자면 지금부터 군사대학으로 발전할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장으로 꾸린 식당에 림시로 만든 주석단에 앉으시여 학생들의 사업과 생활에서 제기되고있는 애로조건부터 하나하나 물어주시였다.

학생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소탈한 품성과 인품에 끌려 학과학습에서뿐아니라 생활에서 제기되고있던 모든 문제들을 스스럼없이 말씀올리였다. 수령님께서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들어주시고 그 해결대책도 세워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연탁앞으로 나오시여 오늘 학교에 온 기회를 리용하여 동무들에게 몇가지 문제를 이야기하겠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고급군사학교는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지휘관들의 군사리론수준을 높이며 우리 나라 실정에 맞는 군사과학을 발전시켜야 할 사명을 지니고있다고, 우리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고귀한 경험을 쌓았기때문에 고급군사학교를 창설할수 있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우리는 3년간의 전쟁경험을 가지고있으나 준비된 군사리론간부가 부족하고 간부들의 현대적군사리론수준이 낮기때문에 그 경험을 리론적으로 체계화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앞에는 고귀한 전쟁경험을 선진국가들의 전쟁경험과 결부하여 깊이 연구일반화하며 보다 훌륭한 군사과학을 창조하여야 할 과업이 절실하게 나서고있습니다.

고급군사학교는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창설된것입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고급군사학교는 지휘관들이 부대지휘와 관리를 능숙하게 할수 있도록 그들을 교육하여야 할 중요한 사명도 지니고있다고, 당과 정부는 고급군사학교에 큰 기대를 가지고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군대는 현대전을 능숙히 치를수 있게 최신군사과학과 기술을 부단히 창조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더우기 인민군대앞에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군사사상과 군사전법대로 싸워이긴 풍부한 전쟁경험에 기초하여 우리의 군사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야 할 문제가 중요하게 나서고있었다.

이미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이 한창 가렬하게 진행되고있던 주체41(1952)년 10월말 인민군대에 고급군사학교를 내오도록 하시고 거기에 전선에서 싸우고있던 우수한 군관들을 선발하여 교직원으로 파견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전쟁을 하고있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학생들이 불편없이 최신군사과학과 기술을 마음껏 배울수 있도록 교육기간도 충분히 정해주시고 생활조건도 다 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의 나날 고급군사학교사업에 이렇듯 커다란 관심을 돌려주시고도 전후복구건설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 몸소 학교에 나오시여 건설정형을 료해하시고 필요한 대책도 세워주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교직원, 학생들에게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나타난 결함들과 그를 극복할수 있는 방도적문제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밝혀주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동무들이 피로써 쟁취한 정전기간에 공부한다는것을 명심하고 시간을 아껴가며 선진군사과학과 군사리론을 습득하기 위하여 더욱 힘쓸것을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가슴깊이 새겨안는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해방직후 석달만에 새 조국건설과 혁명적정규무력건설에 이바지할 핵심골간육성을 위하여 잡초무성한 산언덕을 오르내리시며 평양학원의 터전을 잡아주시던 그 모습으로 정전이 된지 석달도 못되여 흙먼지길을 헤치시고 고급군사학교를 찾아오시여 학교가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는 수령님의 선군령도의 로고와 심혈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면서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전쟁의 상처를 가시기 위한 복구건설이 세차게 벌어지고있던 그때 어찌하여 수령님께서 고급군사학교를 찾으시였는가를 비로소 알게 되였다. 그것은 학교가 현대군사과학의 최고전당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해나갈수 있게 하는데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인 지침을 안겨주시기 위해서였다.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강령적과업을 철저히 관철할 자신들의 불같은 맹세를 담아 모두 일어나 열광적인 박수를 치면서 만세를 불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5월에도 고급군사학교를 또다시 찾아주시고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준비된 군사지휘관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들을 밝혀주시였다.

군사교육기관들을 신설, 확장, 보강하기 위해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조치에 따라 고급군사학교는 그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고급군사학교에 대한 현지지도는 각급 군사학교교육의 질적수준을 한계단 높이도록 하여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전후 군건설의 전략적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