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과 반일민족해방투쟁사』 중에서 

제 4 장

김일성주석과 1940년대 전반기 반일민족해방투쟁

 8. 최후결전작전과 항일무장투쟁의 위대한 승리,
김일성주석의 조국개선

1945년 2월에 쏘, 미, 영 3국수뇌의 얄따회담이 진행되였다. 1945년 2월이면 쏘련군이 마쟈르의 수도 부다뻬슈뜨를 해방했을 때이며 베를린에 대한 총공격전을 준비하던 때였다. 도이췰란드의 패망은 시간문제로 되고있었다.

얄따회담에서 론의된 중심의제의 하나는 도이췰란드패망후 쏘련의 대일참전문제였다. 회담에서 쏘련은 도이췰란드패망후 2∼3개월이 지나 대일전쟁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회담에서 쏘련의 대일참전문제가 확정된것은 일제의 지배하에 있던 동방피압박민족들과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고무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쏘련은 독일이 괴멸된 후에 대일작전계획을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작전방향과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그것은 쏘련군대와의 련합을 전제로 하는 계획이였습니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446페지〕

대도전승을 축하하는 모임이 있은 후 조선인지휘성원들은 한데 모여 조국해방과 관련된 작전문제를 가지고 장시간 토론하였다. 론의의 초점은 조국의 해방과 전민항쟁에 대한 문제였다. 주석께서는 이때 누구나 자체의 힘으로 조국을 해방한다는 확고한 주체적립장을 튼튼히 견지해야 하며 자체의 힘으로 조국을 해방하자면 조선인민혁명군의 정치군사적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고 국내의 항쟁조직들을 잘 준비시켜 조선인민혁명군이 조국해방작전을 벌릴 때 그에 합세해서 전인민적인 항쟁을 벌려야 하며 나아가서 쏘련, 중국의 무장력과의 군사적련계를 강화하고 쏘련의 전반적인 대일작전과의 깊은 련관속에서 협동작전준비를 잘해나가야 한다는것을 강조하시였다.

세워진 작전계획은 1945년 5월에 간백산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성원들에게 전달되였고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그 계획에 따라 맹렬한 군사정치훈련을 힘있게 벌리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작전계획은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작성되였다.

첫째, 간백산일대에 집결된 부대들은 각 도를 차례로 해방하는 작전에 진입한다.

둘째, 원동훈련기지에 집결된 부대들은 평양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항공편으로 신속히 진출하여 비밀근거지들을 장악하고 전과를 확대하며

셋째, 국내에서 활동하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와 정치공작원들은 항쟁조직을 대대적으로 늘이고 인민들을 전민항쟁에로 불러일으킨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쏘련의 전반적작전준비와 조선인민혁명군의 작전계획을 일치시키기 위한 사업에 많은 시간을 바치시였다. 쏘련에서는 1945년 여름에 이르러 와씰렙스끼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원동쏘련군총사령부를 조직하고 거기에 3개의 큰 전선군을 배속시키게 되였다. 자바이깔전선군은 말리놉스끼가 담당했고 제1원동전선군은 메레쯔꼬브가 담당했으며 제2원동전선군은 뿌르까예브가 담당하게 되였다. 제1원동전선군의 기본작전지역은 할빈 이남의 중국 동북의 일부 지역과 조선이였고 제2원동전선군의 작전지역은 하바롭스크 서쪽에 있는 동북지역이였다. 원래 국제련합군은 제2원동전선군에 배속되여 군사작전을 하게 되여있었으나 주석께서는 개전과 함께 조선으로 진출하게 되여있는 제1원동전선군과의 련계를 긴밀히 하시게 되였다. 이무렵에 국제련합군의 련합작전을 위한 회의가 자주 진행되였는데 대일작전을 앞둔 어느날 모스크바에 있는 쏘련군총참모부에서는 국제련합군과의 공동작전을 위한 마지막회의가 진행되였다.

회의에는 와씰렙스끼총사령관과 그 휘하의 각 전선군사령관들과 국제련합군 지휘성원들이 함께 참가하였다. 회의에서는 항공륙전대전법에 기초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조국해방작전계획이 훌륭한 군사전략이라는데 대하여 일치한 지지를 표시하였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447페지 참고〕

김일성주석께서는 대일작전과 관련한 회의가 끝난 며칠후에 쏘련공산당의 제2인자인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비서인 아. 아 쥬다노브와 회견하시게 되였다. 회견에서 쥬다노브는 쓰딸린의 위임에 의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업적과 활동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다.

회견에서는 주로 련합작전과 해방후의 새 조국건설문제가 중점적으로 론의되였다.

여기에서 주석께서 조선에서는 쏘련식으로가 아니라 조선식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한 말씀이 대방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게 되였다.

모스크바에서 돌아오신 주석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을 모여놓고 그간의 활동정형에 대해 통보하시였다.

1945년 8월 9일 쏘련이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일본과 교전상태에 들어가는것과 때를 같이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게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을 개시할데 대한 명령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그때 최후공격작전에 앞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로 하여금 웅기군 토리와 훈춘현 남별리, 동흥진을 비롯한 적의 국경요새구역의 여러 군사요충지들을 불의에 습격하여 적들의 방어체계에 혼란을 조성하고 요새구역안에 배치된 적유생력량과 화력기재에 타격을 가하게 하시였다. 토리는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결전에서 인민혁명군부대에 의해 첫번째로 해방된 마을이다.

개전과 함께 간백산밀영을 최후공격작전의 출발진지로 차지하고있던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대오를 늘이면서 작전계획에 따라 진격하였으며 두만강연안에 집결된 부대들은 일시에 적의 국경요새들을 돌파하고 경원, 경흥일대를 해방하였으며 웅기-라진방향으로 계속 전과를 확대하면서 국내의 넓은 지역을 해방하였다. 그리고 해안상륙부대의 선견대로 활동하던 일부 부대들은 지상부대와의 긴밀한 협동작전으로 웅기-라진에 상륙하였으며 전투성과를 확대하면서 청진일대에로 진격하였다. 다른 부대들은 금창, 동녕, 목단강을 해방하고 적들을 격멸하기 위한 추격전을 벌리면서 관동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두만강일대에로 진출하였다.

이미 국내에 파견되여 활동하던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은 인민무장대들과 무장봉기조직들, 광범한 인민들을 무장폭동에로 조직동원하였다.

라진을 해방시킨것은 라진인민무장대였다. 쏘련태평양함대는 그곳이 강력한 요새지대였기때문에 어려운 전투가 진행될것으로 예상했었다.

함대가 출현하자 일본군은 그것이 장고봉사건과 같은 충돌사건으로 끝나리라고 타산한것만큼 자신의 무장력을 과시하고있었다. 그럴 때에 인민무장대의 한 소부대가 밤중에 시내에 은밀히 돌입하여 요새사령부와 헌병대, 경찰서에 총격을 가하고 군수창고에 방화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대기하고있던 인민무장대의 기본대오가 시내에 쳐들어가서 적들을 안팎에서 타격하였다.

인민무장대는 전국도처에서 각이한 명칭을 가지고 일제를 격멸하는 전투에 참가하였다. 각 도의 거의 모든 지역들에서 인민무장대가 활동하였다.

평안남도와 평양지구에는 조국해방단을 중심으로 무어진 큰 항쟁대오가 병기창을 습격하고 도청과 부청을 점거하였으며 적패잔무력을 제압하였다.

황해도의 항쟁조직들도 일제가 항복하기 전에 여러 지역의 적들을 습격제압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최후결전의 시기를 회상할 때마다 아쉽게 생각되는것은  쏘련의 훈련기지에서 여러해동안이나 조국해방작전준비를 해온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력량이 본래의 계획대로 전투작전을   전개하지 못한것입니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463페지〕

그러시면서 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교시를 계속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북부국경지대에서 일본군과의 교전상태에 있을 때 주석께서는 전선부대들의 작전을 지휘하시는 한편 항공륙전대를 인솔하고 조선으로 출격할 준비를 최종적으로 끝내고계시였다.

그런데 주력부대의 륙전대는 자동차를 타고 비행장에 나갔다가 되돌아오지 않을수 없었다. 일이 그렇게 번져진것은 일본놈들이 너무 급작스럽게 항복한데 있었다.

일본제국주의는 드디여 패망하고 항일무장투쟁은 위대한 력사적승리를 이룩하게 되였다. 일제의 패망으로 인한 조국의 해방은 련합국에 의한 해방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니였고 항일무장투쟁의 력사적승리에 의한 자력해방의 실현이였다.

여기에서 명백한것의 하나는 일제의 급속한 패망이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작전과 전민항쟁투쟁이 배합됨으로써 이루어진 결과라는것이다.

이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이렇게 우리 나라의 해방은 15성상이나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강력한 군사적타격을 안겨 그것을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은 조선인민혁명군과 각계각층을 망라한 전민항쟁력량의 총동원으로 이룩되였습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의 장기간에 걸치는 항전이 선행되였기에 쏘련의 대일작전은 그처럼 짧은 기간에 결속될수 있었던것입니다.

조선의 해방은 쏘련군이 일본관동군을 격멸하는 유리한 환경에서 우리 인민과 인민혁명군자체의 력량에 의해 마련된 위대한 결실입니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전반기에 우리가 조직한 국내의 항쟁조직들과 무장대들이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작전계획에 따라 국내도처에 웅거하고있는 일제의 침략무력과 식민지통치기구들을 제압소탕하고 나라를 해방하였습니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466페지)

조선에 대한 근 반세기에 걸친 일제의 식민지통치가 대일참전과 함께 그렇게 짧은 기간에 무너져나간것은 쏘련군의 대일참전이라는 유리한 환경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과 전민항쟁에 의한 타격이 있었음으로써만 가능한것이였다. 이것은 조선에서의 해방이 자력해방의 과정으로서 진행되였다는것을 말하여주는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련합국에 의한 해방이라는 원리에 기초하여 문제를 고찰하는 조선근대사학계의 시각이 재정립되여야 함을 보여주는것이다.

조국해방과정에서 명백히 된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일제를 패망시키기 위한 전민항쟁과정에서 표현된 민족대단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것인가 하는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결전을 준비할 때 우리 민족내부의 힘이 다 발동되였습니다.

민족내부의 애국력량이 최대한으로 단결되고 발동된 거족적인 반일항전, 이것이야말로 1940년대 전반기 우리 혁명발전의 새로운 모습인 동시에 특출한 성과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로 대치되여있던 두 세력이 이 시기에 와서는 리념의 차이를 뛰여넘어 다시 합작을 했다고도 볼수 있습니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362페지〕

조국해방을 위한 전민항쟁의 준비와 진행과정은 종래의 민족해방운동선상에서의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의 모든 애국력량이 최대한으로 단합되고 발동되여나간 시기로 되는데 이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제시하신 전민항쟁전략의 정당성을 립증하는것이며 민족공동의 목적을 앞세우고 나가면 리념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의 애국력량을 최대한으로 동원하며 민족공동의 지향을 능히 성취할수 있는 위대한 힘으로 전환되여 민족대단합을 달성할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된다는것을 실증하였다. 전민항쟁을 위한 민족의 대단합은 1940년대 전반기 반일민족해방투쟁의 특색있는 모습이였다.

항일무장투쟁의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신 주석께서는 훈련기지에서 8월 20일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의 회의를 소집하시고 승리한 대일전의 작전총화를 하시는것과 함께 조선혁명의 주체적력량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과업으로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제를 제시하시고 조국땅에서의 사업을 위한 군사정치간부들의 활동대상지를 각각 분담하시였다.

그날 이후 조국땅에서의 사업을 위한 강습이 여러날에 걸쳐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9월에야 배편으로 쏘련을 떠나시게 되였고 9월 19일 원산항에 개선하시였으며 9월 22일 오전에는 평양에 도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개선으로 민족사의 새 장이 열리게 되였다.

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는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가 성대히 열리게 되였다.

대회장은 사람바다를 이루었다. 운동장밖의 나무꼭대기에도 사람들이 올라가있었고 모란봉의 최승대와 을밀대에도 사람들이 하얗게 덮여있었다. 10여만 군중의 뜨거운 열기와 환호를 한몸에 받으며 단상에 오르신 김일성주석께서는 첫 조국개선연설에서 민족대단결에 기초한 새 조국건설에 대하여 호소하시였다.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애국위업에 이바지하자고, 온 민족이 하나로 굳게 단결하여 이 땅에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애국적호소가 연설의 기본내용이였다. 군중은 하늘땅을 진감하는 박수와 환호로써 지지를 표시하였다.

군중의 열광적환호는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신 김일성주석께 드리는 전인민적감사의 표시였다. 이 감격적인 순간을 체험하시면서 주석께서는 감개가 무량하시였다.

이때를 회고하시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어느때였는가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순간이였다고 대답할것입니다. 민중의 아들로서 민중을 위해 싸웠다는 행복감, 민중이 나를 사랑하고 신임한다는것을 느끼는데서 오는 행복감, 그 민중의 품에 안긴 행복감이였을것입니다.

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폭발한 민중의 환호성은 조국과 겨레를 위해 우리가 겪어온 반생의 간난신고에 대한 표창이고 답례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나는 그 답례를 나에 대한 인민의 사랑과 신뢰로 받아들이였습니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484페지〕

이날의 군중대회는 반일민족해방투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신 절세의 애국자에 대한 전인민적감사의 폭발이였고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혈전만리에서 만고의 간난신고를 겪으신 인민의 위대한 아들을 해방조국의 수령으로 모시게 된 영광과 환희, 행운과 행복이 넘쳐흐르는 전인민적격정의 장엄한 분출이였다.

 

맺  는  말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최후승리는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김일성주석의 존함과 불가분리적으로 련결되여있다. 그 승리는 전적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현명한 령도로 이룩되고 빛나는것이기때문이다.

반일민족해방투쟁의 력사적총화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사상과 리론, 전략과 전술, 령도예술과 령도방법이 민족해방투쟁과 혁명운동에서 승리의 결정적요인으로 된다는것을 증시하고있다.

항일무장투쟁의 전 로정에는 그 걸음마다에 그리고 그 갈피마다에 김일성주석의 위인상이 그대로 비껴있다. 온 민족이 김일성주석을 우러러 해방의 은인, 민족의 구세주, 만고의 영웅으로 높이 칭송하고있는것은 바로 거기에 기인하는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승리가 가지는 리론실천적의의를 총화할 때 그것은 무엇보다도 주석께서 창시하신 위대한 주체사상의 진리성과 생활력이 혁명전쟁의 불길속에서 남김없이 증시된데 있다.

주체사상과 주체로선이 관철되는 길에서 항일무장투쟁과 같은 거창한 혁명실천이 생겨날수 있었고 겹쌓이는 난관과 시련속에서 승리의 길을 가장 성공적으로 개척해나갈수 있었으며 해방된 후에는 나라가 자주적발전의 길에 들어서고 인민들은 자주성이 실현된 사회에서 행복을 누릴수 있게 되였다.

리론실천적의의의 총화에서 중요한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항일무장투쟁을 령도하시면서 선군의 시원을 열어놓으시고 선군혁명의 고귀한 전통을 마련하신 업적이다.

혁명에서 무장력의 지위와 역할에 대하여 외곡평가한 온갖 편향을 바로잡고 선군의 위력으로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혁명전반을 추동해나간 항일무장투쟁의 경험은 식민지예속국가인민들이 반제혁명의 앞길을 성과적으로 해결해나갈수 있는 가장 정당한 혁명수행방식이라는것을 실증하여주고있으며 이 혁명수행방식은 그 의의로 하여 오늘의 사회주의선군정치의 력사적뿌리를 이루게 되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력사상 처음으로 선군정치를 사회주의정치의 기본방식으로 규정하시고 선군으로 혁명을 보위하고 총대로 강성대국건설의 앞길을 담보하고있는 오늘의 위대한 현실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이룩된 혁명전통의 계승발전으로 되는것이며 거기에 력사적근원을 두고있는것이다.

리론실천적의의의 총화에서 지적하여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반일민족해방투쟁에서의 승리가 가지는 세계사적의의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령도하에 조선인민이 반일민족해방투쟁에서 승리를 이룩한것은 자주, 독립, 사회주의를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에서 새 장을 열어놓은 민족사적의의를 가질뿐아니라 세계자주화위업을 전진시키는데서도 획기적리정표로, 사변으로 되였다.

인류의 력사는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력사이며 오늘의 시대는 전세계적규모에서 자주위업이 승리하고있는 시대이다.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에서의 승리는 세계적으로 자주위업이 승리해나가는데서 돌파구로 되고 그 과정을 고무하는 기치로 되였으며 자주위업승리의 불가피성을 확증해준 세계사적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사변으로 되였다.

조선민족의 영원한 수령이신 김일성주석께서는 반일민족해방투쟁의 력사적경험을 총화하시면서 투쟁에서 승리하자면 민족대단결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된다고 거듭거듭 강조하시였다. 이 말씀은 수령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남기신 위대한 유훈으로 된다.

조선인민은 수령님의 이 유훈을 지켜 지난날 조국해방의 리념밑에 민족대단결을 실현하여 항일대전에서 승리하였던것처럼 오늘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으로 민족대단결을 실현하여 자주통일의 위업을 완성해나가야만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