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 통일일화』 중에서 

 

  

주체83(1994)년 7월 민족의 어버이이신 김일성주석께서 뜻밖에 서거하신것으로 하여 온 강토가 비애에 잠기고있을 때였다.

조의대표단 성원으로 평양에 온 최정렬교포는 어버이수령님의 서거에 애도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조의식장으로 갔다.

비통한 마음을 안고 조의를 표시하는 그를 만나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아주시며 위로의 말씀을 해주시였다.

자신의 슬픔은 묻어두시고 오히려 해외교포들의 슬픈 마음을 먼저 생각하시는 그이앞에서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추모하는 중앙추모대회가 진행된 그날 저녁에도 해외동포조객들을 위한 위로연을 마련해주시고 최정렬교포를 불러주시였다.

목란관에서 진행되는 위로연에 참석한 그의 마음은 뜨거움으로 달아올랐다.

위로를 받으셔야 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히려 조객들을 위로해주신 이런 이야기를 그는 아직껏 알지 못했던것이다.

음식상을 마주한 최정렬교포의 머리속에서는 그이를 처음 만나뵙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최정렬교포가 그토록 그리던 조국을 방문하여 경애하는 장군님을 처음 뵈온것은 주체81(1992)년 4월 탄생 80돐을 맞으시는 어버이수령님께 축하의 인사를 올리러 갔을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인사말을 올리자 《고맙습니다.》라고 하시며 미소어린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순간 그는 그리워 마지않던 친어버이앞에 서있는듯 한감을 느꼈다.

(어쩌면 김일성주석과 그리도 꼭같으실가.)

그는 한순간에 그이의 위인상에 매혹되였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크고작은것이 따로 없으며 누구에게나 정에 정을 더해주는것이 그이의 천품이다.

한없이 인자하신 그이를 만나뵙고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고있던 그에게 또다시 격동의 순간이 차례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의 80돐생일상을 보내주신것이였다.

관계부문 일군들과 해외교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축하를 받으며 생일상앞에 마주앉은 그는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인생의 첫발을 잘못 디딘탓에 수십년세월 노없는 쪽배처럼 방황하였고 애국의 길에 들어서서도 민족을 위해 떳떳이 자부할만 한 일을 해놓은것이 없다고 생각한 그였다.

이런 그였기에 생일상을 마주하고 오래동안 눈물을 거둘줄 몰랐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야 눈물을 거둔 그는 갖가지 진귀한 음식들이 가득 놓인 생일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자기앞에 놓인 생일상이 단순한 생일상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는 한 인간의 재생을 축하해주시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여생을 계속 꽃피워나가기를 바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뜻한 사랑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였다.

최정렬교포는 끓어오르는 격정을 가까스로 누르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뇌이였다.

(령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이제 남은 여생을 조국과 민족을 위해 깡그리 다 바치겠습니다.)

이렇게 그는 참인생의 자양분을 부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 마음속결의를 다지였다.

최정렬교포는 그때 일을 회고하며 자신보다먼저 해외교포들을 생각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하해같은 은정을 다시금 느끼게 되였다.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뜻깊은 위로연앞에서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김정일장군님을 모시여 우리 민족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래일도 빛을 뿌릴것이라는 자부심으로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었다.

그후 그는 년로한 몸으로 거리를 행진하면서 《조국통일》, 《조선은 하나다!》라는 구호를 웨치며 조국통일을 위해 힘찬 투쟁을 벌리였다.

최정렬교포가 인생의 황혼기에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게 된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부어주신 삶의 자양분에 원천을 두고있기때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