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정의의 수호자』중에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자면 북과 남이 대화와 협상, 접촉과 래왕을 더욱 활성화해나가는것과 함께 다방면적이고 다양한 체육, 문화교류사업도 다같이 밀고나가야 한다.

남조선의 각계 인사들과 남녘동포들의 활기띤 평양방문은 6.15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주체89(2000)년 8월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의 평양방문은 남조선의 언론인들에게 6.15북남공동선언을 리행하는데서 언론인들의 임무와 역할을 높이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깊이 심어주었다.

8월 12일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을 만나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들과 무려 3시간이상 자리를 같이하시고 우리 민족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으며 정의와 량심의 대변자인 언론인들이 조국통일운동에서 선구자적역할을 해야 한다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어서 주체89(2000)년 10월 경애하는 장군님의 발기에 의하여 조선로동당창건 55돐경축행사에 남조선의 정당, 단체대표들과 각계 인사들이 초대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통일의지와 동포애적인 조치에 의하여 남조선의 각당, 각파, 각계 인사들을 태울 비행기가 분렬의 장벽을 넘어 남쪽으로 날아갔으며 78명의 인사들이 평양으로 오게 되였다.

평양행에 오른 남녘의 동포들은 이들뿐이 아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민족애, 동포애에 매혹된 수많은 남녘의 동포들이 평양을 찾아왔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니였다.

그들중에는 남조선의 유명한 재력가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였던 정주영과 《현대아산》 회장 정몽헌도 있었고 제2차 북남상급회담 남측수석대표인 전 《통일부 장관》 박재규, 남측특사들인 림동원, 정동영을 비롯한 정치가들도 있었으며 김련자와 같은 이름있는 녀가수도 있었다.

특히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주체89(2000)년 9월 남조선에 있던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분렬의 장벽을 넘어 공화국의 품에 안길수 있은것은 6.15가 가져다준 세계사적대사변이였다.

이 경이적인 사변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자기의 한몸을 다 바친 정의의 애국투사들을 제일로 사랑하시고 귀중히 여기시는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도덕의리와 뜨거운 사랑의 정치에 의해 마련된 민족공동의 대경사였다.

주체94(2005)년 9월부터 10월사이에 수많은 남녘동포들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기 위해 평양을 다녀갔다.

6.15공동선언은 북과 남사이에 다양한 체육 및 문화교류의 큰길을 열어놓았다.

주체91(2002)년 9월 29일부터 10월 14일까지 부산에서 진행된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는 북과 남사이의 체육 및 문화교류가 민족의 단합을 실현하는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제14차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내주시여 대회가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데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뚜렷한 계기가 되도록 하여주시였다. 아시아경기대회의 나날 북과 남의 선수들은 언제나 하나가 되여 경기장을 달리고 하나가 되여 응원을 하였다.

남조선의 《중앙일보》, 《부산일보》, 《일간스포츠》, 《한겨레》, 《녀성문화》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들은 북의 응원단에 대하여 《미녀응원단》, 《꽃응원단》으로 찬미하는 기사로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하나의 겨레임을 보여주고 동족의 정을 나누려고 찾아온 통일의 천사들, 평양의 응원단에 의해 부산은 《통일도시》로 변했다.

부산에서 타오른 통일의 성화는 그후 주체92(2003)년 여름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를 계기로 보수의 땅이라고 불리워오던 대구를 비롯한 온 남녘땅에 번져갔으며 그해 10월에 제주도에서 열린 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에로 이어져갔다. 그리고 주체94(2005)년 9월말 금강산에서는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과 남의 강원도인민들사이에 민속문화축전이 진행되였다.

이 모든것들은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피줄과 언어, 력사와 문화도 하나이며 통일애국의 마음과 뜻도 하나임을 다시금 절감하게 하였으며 민족공조로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민족의 힘찬 대진군을 가로막을 힘은 이 세상에 없다는것을 뚜렷이 과시하였다.

그뿐만아니라 주체89(2000)년 8월에 진행된 우리 국립교향악단의 서울에서의 공연 그리고 주체91(2002)년 9월 남조선《KBS》교향악단과 남조선《MBC》공연단, 주체94 (2005)년 서울《오페라》가극단의 평양방문공연을 비롯하여 북남예술인들의 합동공연, 합동연주회들은 6.15공동선언이 열어놓은 길을 통해 이루어진것들이였다.

남녘겨레를 한품에 안아 민족대단결과 통일위업실현에로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사로운 손길은 남조선의 한 민족옷전문가의 소망을 헤아리시고 주체90(2001)년 6월 두차례에 걸쳐 평양에서 민족옷전시회를 성황리에 진행하도록 해주신 조치에도 어리여있었고 주체91(2002)년에 진행된 북남태권도시범단의 출연과 그후에 진행된 북남력사학자들의 평양과 서울, 금강산토론회와 공동자료전시회, 유적공동발굴, 고구려벽화무덤사진자료전시회에도 잇닿아있었다.

이처럼 북과 남사이의 다양한 체육, 문화, 학술교류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기운을 한층 높이게 함으로써 6.15시대를 우리 민족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민족화해와 단합의 새로운 장으로 아로새겼다.

6.15북남공동선언은 우리 나라를 북과 남으로 두동강낸 분렬의 장벽을 뚫고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잇는 경이적인 사변도 가져왔다.

온 겨레가 당하는 민족분렬의 고통과 아픔을 가셔주기 위하여 그 누구보다도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마련하시여 나라의 지맥을 다시 이으려는 민족의 숙원을 풀어주시였다.

철도와 도로는 나라의 동맥으로서 두동강난 조국강토를 하나로 이어주고 우리 민족을 하나로 합치게 하는 생명선과 같다. 때문에 철도와 도로는 한피줄을 이은 겨레들사이에 동포의 정을 두터이 하고 민족의 뉴대를 공고히 이어주는데서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주체91(2002)년 9월 18일 내외의 관심속에 착공식을 가진 동해선과 서해선 철도 및 도로련결공사는 그사이 북과 남의 공동의 노력으로 적극 진척되여 주체92(2003)년 6월 14일 력사적인 6.15공동선언발표 3돐을 계기로 동서해선 철도를 련결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이와 함께 북과 남은 하루빨리 철도와 도로련결을 바라는 온 겨레의 의사에 따라 주체92(2003)년 2월 5일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련결사업의 일환으로 군사분계선 10m 폭 2.4km 구간에 걸쳐 동해선 림시도로를, 2월 21일에는 서해선 림시도로를 완공함으로써 금강산륙로관광의 시험답사, 개성공업지구건설을 위한 현지답사를 실현하였다.

북과 남이 함께 한 철도련결행사, 이 벅찬 현실은 온 겨레의 마음과 민족의 동맥이 또다시 이어지는 력사적사변이였으며 6.15시대에 펼쳐진 또 하나의 감동적인 화폭이였다.

민족의 혈맥과 나라의 지맥을 하나로 잇는 이 경사를 두고 온 겨레는 《대립과 갈등, 분렬의 세기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 통일의 시대를 여는 의미있는 일》, 《분렬의 철조망과 지뢰밭을 뚫고 통일의 길을 열어놓는 력사적쾌거》라고 하면서 흥분과 격정을 터치였다.

외세의 방해책동속에서도 북남사이에 개성공업지구건설이 다그쳐져 주체93(2004)년 12월 15일에 개성공업지구 현지에서는 《개성공업지구 첫 제품생산기념식》이 진행되였다. 이것은 북과 남이 개성공업지구건설문제를 공동으로 합의한 주체89(2000)년 8월부터 4년 4개월만에 이룩한 성과였다.

또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어린 조치에 의하여 열려진 배길과 땅길로 100여만명의 남녘동포들이 조선의 명산 금강산을 관광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강산관광사업에서 애로를 느끼고있을 때에는 우리측 군사지역까지 열어주시면서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여기에는 금강산이 단순히 관광을 위한 금강산이 아니라 북과 남, 해외를 잇는 무지개다리로, 온 민족이 만나는 통일오작교로 되게 하여 민족의 명산, 세계의 명산으로서의 명성을 높이 떨치여 통일의 길을 더욱 넓혀나가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 깃들어있다.

주체92(2003)년 10월 6일에는 북과 남의 수많은 대표들의 참가밑에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이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류경정주영체육관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민족의 화해와 협력사업에 헌신한 정주영명예회장의 이름을 달아 명명하여주신 북남경제협력의 상징이다.

여러차례에 걸쳐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뵈온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은 북과 남의 경제협력과 교류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계시는 장군님의 깊은 뜻과 그이의 위인적풍모에 크게 감동되여 이 사업에 자기들의 적은 힘이나마 바칠것을 굳게 결심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과 남의 경제협력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여 몸소 체육관터전도 잡아주시고 체육관건설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였으며 체육관이 완공되였을 때에는 민족의 화해와 북남경제협력사업에 헌신한 선생의 이름을 붙여 류경정주영체육관으로 부르도록 하여주시였다.

이렇듯 북과 남의 수많은 사람들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놓아주신 통일오작교를 오가며 협력, 교류사업을 진행하여왔으며 이 과정에 오래동안 지속되여온 북남사이의 첨예한 대결의 얼음장이 녹아내리였다.

하기에 남조선잡지 《통일한국》(2003년 1월)은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남쪽의 소떼가 무리지어 북으로 가고 남북의 연예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노래와 춤을 추며 민족의 온 정을 나누고있다. 북에서 남쪽에서 진행하는 국제경기대회에 응원단을 파견하여 수많은 군중들앞에서 남북의 체육선수단을 함께 응원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남북민간단체대표단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대회와 문화교류, 단군릉행사 등 다양한 행사를 펼쳐오고있다. 통일의 보물이 터진것이다.》라고 지적하였던것이다.

현실은 6.15북남공동선언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뚜렷이 보여주고있으며 6.15의 기치,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아가는 길에 자주와 평화도, 통일과 번영도, 민족적정의도 있다는것을 힘있게 확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