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정의의 수호자』중에서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은 이 땅에 거족적인 자주통일의 열풍을 안아왔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국통일은 우리 민족자신의 문제이며 민족의 자주권에 관한 문제인것만큼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여 민족의 자주적의사와 요구에 따라 민족자체의 힘으로 이룩해나가야 한다.》

6.15공동선언의 채택으로 이 땅우에 자주통일의 열풍을 안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 대회를 소집하도록 하시고 주체90(2001)년을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해로 빛내이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이에 따라 진행된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 대회에서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평화통일의 획기적국면을 열어나갈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고 주체90(2001)년 8월 15일을 전민족적인 통일대축전으로 빛나게 장식할것을 내외에 호소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북남로동자 5.1절통일대회와 북남농민통일대회를 비롯한 북과 남의 각 계층별통일대회들을 진행하도록 하시여 자주통일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에 계층별통일대회의 새 력사가 펼쳐지고 북과 남의 계층별 련대련합을 강화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15공동선언발표 1돐을 맞으며 여러가지 통일행사들을 짜고들어 민족의 대단결과 조국통일운동을 더한층 고조시켜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공화국에서는 공동선언발표 1돐을 기념하여 정당, 단체합동회의, 북남공동사진전시회, 평양시보고회 등 여러가지 다양한 통일행사들이 진행되였으며 남조선과 해외에서도 6.15남북공동선언실천을 위한 2001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와 《6.15남북공동선언실현과 한반도평화를 위한 통일련대》(《통일련대》) 등 통일단체들이 발족하여 각종 행사들을 벌렸다.

북과 남, 해외에서 벌어지는 통일행사들로 겨레의 통일열기가 급격히 고조되여가고있는 때에 민족통일대토론회 준비사업이 적극 추진되여 6월 15일 금강산에서는 6.15공동선언발표 1돐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여기에는 북측의 각 정당, 단체대표들과 함께 남조선의 《새 천년민주당》, 《민주로동당》, 범민련 남측본부 등 200여명의 대표들, 20여명의 해외동포대표들이 참가하여  21세기에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방도들을 토론하였다.

회의에 참가한 대표들은 외세를 반대하고 북과 남이 손을 잡고 힘을 모으는데 조국통일이 있다고 하면서 6.15의 자주선풍에 겨레모두가 가슴과 가슴을 이어 돛을 올릴 때 통일의 배는 그 어떤 외세의 암초도 물거품처럼 깨치며 앞으로 힘차게 전진할것이라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다.

민족통일대토론회참가자들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나가는것은 자주통일의 근본담보로 되며 조국통일의 조속한 실현을 위해서는 온 겨레가 민족자주의식을 지니고 민족적존엄과 민족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고 사상과 리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굳게 단결해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2001년을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의 문을 여는 해》로 빛내이는데 적극 기여할 결의를 굳게 표명하였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하여주신 민족통일대토론회는 그 규모와 내용으로 보나, 이룩된 성과로 보나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으로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을 마련하는 통일운동사에 특기할 력사적회합이였다.

남조선의 신문, 통신들이 6.15공동선언발표 1돐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를 가리켜 《50여년만에 열린 남북련석회의》, 《남북련석회의이후 가장 큰 규모의 회합》이였다고 평한것은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통일대토론회를 계기로 급격히 앙양된 겨레의 자주통일열풍을 계속 고조시키기 위하여 조국해방의 날인 8.15에 또다시 북과 남, 해외의 각계층 대표들이 참가하는 민족통일대축전을 성사시키시여 자주통일운동을 고조시키는 전환적계기를 마련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8.15민족통일대축전을 전민족적인 통일대축전으로 진행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번 통일행사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통일을 이룩하려는 민족의 통일의지를 내외에 과시하며 온 겨레의 통일열기를 한층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데 중심을 두고 특색있게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구상에 의하여 새로 준공한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앞에서 개막된 민족통일대축전에는 북측대표 300여명, 남조선의 220여개 정당, 단체대표 339명, 해외대표 65명과 해외동포 300여명을 포함한 수만명이 참가함으로써 민족의 통일열기를 한층 돋구고 민족의 단합된 힘을 세상에 과시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대성황리에 진행된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은 전례없이 많은 남조선의 각계 대표들이 합법적으로 참가한 력사적인 대축전으로 통일운동사에 아로새겨졌다.

민족통일행사는 6.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되기 이전까지 10차에 걸쳐 진행되였지만 남조선당국의 악랄한 반북대결책동으로 하여 응당한 결과를 보지 못하였으며 대회장소도 판문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21세기 첫해에 열린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은 220여개에 달하는 남조선의 많은 정당, 단체대표들이 합법적으로, 폭넓게 참가한 그야말로 전례없는 통일대행사였다.

새 세기 첫 8.15를 맞으며 진행된 통일대축전은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의 기치따라 자주통일의 원칙에서 우리 민족끼리 가까운 앞날에 통일강국을 반드시 일떠세우려는 7천만겨레의 한결같은 열망을 뜨겁게 분출시킨 전민족적인 행사였으며 조국통일운동을 전민족적운동으로 확대발전시키는데서 전환적계기를 마련한 민족대단합의 마당이였다.

지난 6년간 6.15와 8.15, 3.1 등 중요계기들에 북과 남, 해외의 각계각층 단체와 인사들이 평양과 금강산, 서울과 인천, 광주에서 진행한 민족통일행사는 10여차에 달하였다.

특히 조국해방 60돐,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발표  5돐이 되는 주체94(2005)년에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용기백배 신심드높이 자주통일의 대행진을 힘있게 다그쳤다.

주체94(2005)년 3월 4일 분렬사상 처음으로 북과 남, 해외의 각계층 정당, 단체인사들을 폭넓게 망라한 전민족적통일운동기구인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6.15공동위원회》)가 결성되였다.

전민족적인 공동행사준비위원회가 결성됨으로써 우리 겨레는 민족의 통일지향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갈수 있는 민족대단결의 모체, 강력한 추동력을 가지게 되였으며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자주통일의 새 력사를 창조하기 위한 투쟁에 더욱 힘차게 떨쳐나설수 있게 되였다.

이런 준비밑에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의 탄생지인 평양에서 진행된 《6.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는 남조선의 민간대표단과 함께 당국대표단도 참가하였다.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는 물론 진보와 보수, 당국과 민간을 초월하여 해내외의 광범한 각계층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은 통일행사에 전, 현직 고위인물들을 포함한 당국대표단이 참가한것은 겨레의 자주통일열풍이 막을수 없는 시대적흐름으로 되고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6.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은 주체94(2005)년 6월 17일 숭고한 민족애와 한없이 넓은 도량을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축전에 참가한 남측의 인사들을 접견해주신것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 찬연히 아로새겨졌다.

북과 남사이에 진행된 통일행사는 이밖에도 북남로동자들의 통일대회, 북남농민통일대회, 북남청년학생통일대회, 북남녀성통일대회, 북남민족작가대회, 민족문화축전 등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녀성, 작가, 학자, 언론인, 예술인, 체육인, 종교인을 비롯한 북과 남의 각계층별로도 광범히 벌어졌다.

이 모든 통일행사들에서는 한결같이 6.15공동선언을 지지하고 실천하며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나라의 통일을 앞당겨나갈 결의들이 표명되였으며 그것을 반영하여 선언문, 호소문, 성명 등 공동문건들이 만장일치로 채택발표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민족의 자주통일운동은 지난 시기의 지역적분산성을 극복하고 북과 남, 해외를 포괄하는 거족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일부 계층의 범위를 벗어나 각계각층을 망라한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대강화되였다.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지난 6년간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의 력사를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바꿔온 력사적대전환의 시대였다.

6.15공동선언은 북, 남사이에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따라 전진하는 통일대화의 새 력사를 열어놓았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북과 남의 대화는 민족공동의 리익을 앞세우고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상태를 해소하며 모든것을 조국통일에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진행하여야 합니다.》

조국통일의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대화와 협상을 발전시키는것은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기 위한 중요한 방도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면 북과 남사이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기때문이다.

오늘 북과 남사이의 관계를 불신과 대결의 관계로부터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전환시키는것은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절실한 요구로 나선다.

우리 민족내부에 비록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에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이 서로 속을 터놓고 마주앉아 대화와 협상을 해나가면 서로의 리해와 신뢰를 두터이 하고 민족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뜻과 힘을 합칠수 있다.

지난 시기 북과 남은 여러차례의 북남고위급회담을 진행하였지만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반통일책동으로 말미암아 나라의 통일문제해결에서 응당한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상태에 있던 북남사이의 대화와 협상은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때부터 새로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15북남공동선언발표후 첫 조치로써 북남상급회담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회담을 가질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앞으로 열리게 될 회담들이 신뢰와 협력의 정신에서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실리있는 회담으로 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남대화는 민족대단합을 위한 대화로 되여야 하며 그 누구도 불순한 정치적목적을 추구하면서 분렬을 추구하는데 대화마당을 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소수 당국자들과 특정한 계급, 계층의 독점물이 아니라 각당, 각파, 각계각층의 의사를 모을수 있는 폭넓은 대화로, 전민족적인 대화로 되여야 하며 여러가지 형태의 쌍무적, 다무적인 대화와 협상을 적극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원칙적인 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주체89(2000)년 7월 30일 서울에서 북남사이의 첫 상급회담이 개최되였으며 련이어 당국과 민간급에서 여러 갈래의 대화와 접촉들이 벌어졌다.

주체95(2006)년 7월까지 지난 6년간 북남당국사이에는 19차의 상급회담과 12차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그리고 4차에 달하는 북남장령급군사회담을 비롯하여 무려 100여차의 회담과 접촉이 진행되였다. 이것은 북남대화력사에서 전례없는 기적이다.

대화와 접촉들에서 북과 남은 나라와 민족의 지맥과 혈맥을 다시 잇는 문제, 북남사이의 긴장과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문제,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문제, 비전향장기수송환문제, 림진강수해방지문제, 일제에 의해 외곡된 민족사를 바로잡기 위한 문제, 민족문화재반환문제 등을 비롯하여 북과 남의 우리 겨레모두가 오랜 세월을 내려오며 애타게 바라던 문제들을 상정하고 토의하였다.

또한 체육,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의 공동행사와 협력사업을 위한 회담과 접촉들도 폭넓게 진행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탁월한 협상방침과 세심한 령도로 북남사이의 대화와 접촉을 활발히 벌려나가도록 이끌어주시는 한편 대화와 접촉을 위한 사업에서 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그것을 주동적으로 풀어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미국의 반공화국소동으로 조선반도에 대결과 긴장이 격화되고있던 때인 2002년 4월 남측《대통령》 특사의 평양방문을 수락하도록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특사일행을 접견하시여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성된 난국을 타개해나갈데 대하여 진지하게 말씀하시였으며 동결되였던 북남관계가 원상회복될수 있게 성의있는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북남대화와 접촉들은 미국을 비롯한 내외반통일세력들의 방해와 도전으로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이 가져다준 생명력에 의해 그 명맥을 이어나갔으며 그 과정에 적지 않은 합의들을 이룩하였다.

이것은 북남대화와 접촉이 대결의 한 공간으로 리용되고 북남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던 지난날의 불미스러운 대화들과는 구별되는것이였다.

1990년대초에 있은 북남고위급회담이 8차에 걸쳐 본회담과 수십차례의 분과회의와 실무접촉을 거쳐 겨우 한개의 합의문건을 이루어냈다면 6.15이후의 북남상급회담은 미국의 악랄한 방해책동으로 진통을 겪긴 하였으나 거의 매번 합의문건을 채택하였다.

6.15이전에는 단 한차례의 북남적십자예술단 및 고향방문단교환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무려 14년이라는 세월과 25차의 적십자예비회담, 10차의 본 회담, 3차의 실무대표접촉을 비롯하여 수십차의 회담과 접촉을 하였다면 6.15이후부터 주체95(2006)년 6월말까지 7차례의 적십자회담을 통하여 14차에 걸치는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성사시킬수 있었다. 이것은 6.15통일시대에 와서 북남대화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기초하여 결실있는 대화로 되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

특히 민간급대화가 활발해진것은 6.15이전에 남조선당국의 《창구일원화》책동에 의해 민간대화와 교류가 크게 억제당한데 비하면 커다란 전진으로 된다.

이렇듯 북과 남은 다방면적인 대화와 접촉을 통하여 6.15공동선언을 관철하기 위한 공동의 방도들을 진지하게 협의할수 있었으며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서로의 리해와 인식을 깊이함으로써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촉진시키고 협력사업을 성과적으로 진척시킬수 있게 되였다.

6.15공동선언은 북남사이에 각계각층 인사들이 서로 오고 가는 큰길을 열어놓았다.

이전에는 남조선청년학생조직인 《전대협》의 나어린 녀학생대표가 사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한것이 《죄》가 되여 철창속에 들어갔다면 오늘은 6.15가 열어준 길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북과 남으로 오가면서 화해와 협력, 단합을 도모하고 통일의지를 굳게 다지고있다.

북과 남사이의 래왕과 접촉이 전민족적범위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그것이 사회전반분야에로 널리 확대됨으로써 민족내부에는 서로 리해하고 신뢰하는 분위기가 서서히 자라나게 되였고 우리 민족끼리 공조를 이룩하기 위한 투쟁이 보다 활력있게 진척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