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과 반일민족해방투쟁사』 중에서 

제  3  장

1930년대 반일민족해방투쟁

13.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
항일무장투쟁사에 남기신 력사적업적

 

1930년대이후의 반일민족해방투쟁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을 기본으로 하여 전개된 력사이며 따라서 그것은 주석의 빛나는 력사인 동시에 김일성주석의 가장 친근한 전우로서, 항일무장투쟁의 녀장군으로서 혁명활동을 전개하신 김정숙녀사의 항일무장투쟁사로 된다.

우리 인민은 김정숙녀사를 김일성주석, 김정일장군과 더불어 백두산3대장군이라고 우러르고있다. 이것은 민족사에 남기신 력사적업적의 위대성으로 하여 김정숙녀사께서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항일무장투쟁이 배출한 3대위인중의 한분으로 추앙되고있음을 의미하는것이며 그만큼 녀사께서 이룩하신 력사적업적이 위대함을 말해주는것이다.

항일무장투쟁은 민족사의 새 장을 열어놓았으며 민족사의 전성기와 이어지게 된다.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은  민족사적 및 현대사적의의를 가지는 위대한 전통으로 되며 김정숙녀사께서 이룩하신 력사적업적 역시 민족사적 및 현대사적의의를 가진다.

백두에서 창조된 혁명정신에서 핵을 이루는것은 혁명의 수령에 대한 절대적숭배심, 수령을 결사옹위하는 정신, 수령에 의해 제시된 로선과 방침관철에서 무조건 결사관철하는 정신 등으로 요약되는데 이 정신적유산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시고 그 숭고한 모범을 창조하신분이 바로 김정숙녀사이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김정숙녀사의 숭고한 정신적풍모를 여러모로 분석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정신적풍모에서 특출한것은 자기 수령에 대한 신념화된 충성심, 수령에 대한 절대적숭배심으로 표현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이와 관련하여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는 사령부의 로선이나 작전적방침과 어긋나는 그릇된 사상에 대해서는 추호의 타협도 하지 않고 견결하게 투쟁하였습니다. 그는 철저한 사상론자였습니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7권, 191페지〕

김정숙녀사께서는 자기 수령의 사상에 의해서만 혁명이 개척되고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신념화한 사상론자이시였으며 수령의 사상이 가지는 정당성과 진리성을 드팀없는 신념으로 간직하고 그 사상에서 흘러나온 로선이나 방침에 어긋나는 그릇된 현상에 대해서는 추호의 타협없이 견결히 투쟁하며 그 옹호관철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하는 혁명가의 최고귀감이시였다.

주석께서는 녀사의 이러한 사상적풍모를 1938년 청봉밀영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실례로 하여 지적하시였다.

고난의 행군시기 서간도의 청봉밀영에서는 밀영책임자인 엄광호와 김정숙녀사를 위시한 녀대원들사이에 남패자회의방침과 관련하여 심각한 의견상이가 있었다. 회고록에는 김정숙녀사의 사상적원칙성을 보여주는 내용들이 수록되여있다.

분파적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엄광호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발언하였다. …어떤 혁명에나 고조기가 있고 저조기가 있기마련이다, 고조기에는 고조기에 알맞는 전략을 세워야 하고 저조기에는 저조기에 알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러자면 정세의 변화를 보고 진단을 정확히 내려야 한다, 그리고 저조기의 징조가 보이면 저조기가 도래하였다는것을 솔직하게 인정할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혁명은 지금 어떤 단계에 있는가, 저조기에 있다, 보라, 열하원정도 실패하고 《혜산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혁명조직들도 죄다 망가지지 않았는가, 이것이 그래 저조기가 아니란 말인가, 이런 형편에서는 《일보전진 이보퇴각》의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말하자면 공세와 정면대결은 피하고 유리한 기회가 조성될 때까지 퇴각해야 한다, 이것이 혁명을 구원하는 길이다.…

엄광호는 이런 주장을 밀영안의 모든 성원들에게 내리먹이려 하였다. 그러나 김정숙녀사께서는 엄가의 소리가   사령부의 목소리와 다르다는것을 간파하시고 그의 주장을 론박하시였는데 그 요지는 아래와 같다.

객관적정세가 혁명투쟁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것은 물론 우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혁명가들은 정세가 불리하면 할수록 그에 반작용을 해서 화를 복으로 만들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 이것은 사령관동지의 뜻이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정세가 유리할 때에도 투쟁을 해왔고 정세가 불리할 때에도 투쟁을 계속해왔다, 만일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정세가 불리할 때에는 숨어서 지내고 정세가 유리할 때에만 활동했더라면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상비적인 무장대오를 가질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총검의 숲을 뚫고 국내에 나가서 보천보를 치는것과 같은 대담한 군사작전을 할수 있었겠는가, 맑스-레닌주의가 공산주의학설인것만큼 혁명활동과 실천에서 그것을 지침으로 삼는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가 늘  강조하는바와 같이 맑스-레닌주의도 조선혁명의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해야지 덮어놓고 적용해서는 안된다, 동무는 《일보전진 이보퇴각》의 내용도 잘못 리해하고있는것 같은데 그래 조선혁명이 중중첩첩한 난관속에서 발전해왔다는것을 모른단 말인가, 동무는 지금과 같은 정세하에서는 퇴각하는것만이 상책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우리에게 퇴각할 후방이나 있는가, 우리가 퇴각하면 혁명의 고조기는 누가 마련해주는가, 남패자회의에서 사령관동지가 선언한것처럼 우리는 어려운 때일수록 난관을 맞받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역경을 순경으로 만들어야 한다.

녀사께서 엄광호에 대하여 하신 이와 같은 신랄한 비판이 가장 원칙적인 비판으로 되는것은 수령의 사상과 로선을 철저히 지키는 그길에서만 혁명이 구원된다는것을 확신하는 투철한 자각에서 흘러나온것이였기에 그것은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의미를 가지는 비판으로 되는것이다.

수령의 사상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 수령의 사상을 지키는데서 자그마한 양보도 모르는 철저한 비타협성은 김정숙녀사의 체질화된 사상적특질의 하나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정신적풍모에서 특출한것은 또한 수령을 결사옹위하는 혁명정신에서 표현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녀사의 수령결사옹위정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숙은 여러번 나를 위기에서 구원해주었습니다. 그는 내 신변안전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육탄이 될 준비가 되여있었습니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165페지〕

그러시면서 주석께서는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보여주는 하많은 실례중에서 대사하치기전투와 무송현성전투때에 있은 두 사실만을 상기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소할바령으로 이동하면서 1939년 8월 대사하치기에서 전투를 벌렸을 때 위대한 수령님의 주변에서는 아슬아슬한 정황이 조성되고있었다. 한무리의 적들이 그이에게로 은밀히 접근하고있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전투를 지휘하시느라고 그런 정황이 생긴줄을 모르시고있었다. 위험이 닥쳐온 순간 녀사께서는 자기 몸으로   수령님을 막아서며 달려드는 적들을 쏴갈겨 수령님께서는 기적적으로 건재할수 있게 되시였다.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혁명의 수뇌부를 보위한것이다.

김정숙녀사의 육탄정신, 결사옹위정신앞에서 모든 유격대원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내가 무송현성전투에서 살아난것도 김정숙의 덕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160페지〕

1936년에 있은 무송현성전투는 매우 심각한 전투였다. 녀사께서는 전투장에서 좀 떨어져있는 잘루목에서 7∼8명의 녀대원들을 데리고 아침식사준비를 하고계시였다. 그 잘루목에 밥을 지을만 한 집이 한채 있었는데 연기가 나도 다른데서 보이지 않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적들이 갑자기 녀대원들만 있는 잘루목에 달려드는 돌발적정황이 조성되였다. 이 잘루목을 빼앗기게 되면 부대가 앞뒤에서 공격을 받게 되고 사령부의 안전도 기약할수 없게 된다.

정황이 몹시 위급함을 간파하신 녀사께서는 싸창을 뽑아들고 전우들과 함께 맹렬한 총격전으로 대응해나서시였다. 녀대원들의 드센 반격에 부딪친 적들은 숱한 주검을 남기고 도주하게 되였다.

전투의 위급한 순간을 한몸으로 막아나선 녀전사로서의 녀사의 놀라운 담력과 지략은 사령부의 안전을 목숨바쳐 보위하려는 숭고한 결사옹위정신에서 흘러나온 담력이고 지략이였다.

이 담력과 지략은 혁명의 심장, 혁명의 운명, 단결의 중심으로서의 혁명에서의 수령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값높은 자각과 신념에 기초한것이였으며 그러한 자각과 신념을 깊이 간직한것으로 하여 수령옹위에 한목숨 바치는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혁명전사로서의 본분으로 여기는 숭고한 사상감정의 발현이였다. 이 숭고한 혁명정신이 뿌리가 되여 력사속에 면면히 이어짐으로써 주체혁명은 수령을 높이 모시고 수령을 단결의 중심으로 하여 전진하는 불패의 힘, 막강한 위력을 가진 혁명으로 전세계의 찬탄을 받게 되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정신적풍모에서 특출한것은 또한 수령에 의해 제시된 로선과 방침을 무조건 결사관철하는 정신으로 표현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와 김정숙과의 관계는 수령과 전사와의 관계, 동지와 동지사이의 관계였습니다.

김정숙은 자기를 늘 수령의 전사라고 하였습니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175페지〕

언제나 자신을 수령의 전사로 여기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수령을 결사옹위하는것을 스스로의 본분으로 여기시였을뿐아니라 삶의 순간순간을 수령의 로선과 방침을 관철하며  수령께서 주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무조건적으로 완벽하게 완성하는것을 삶의 전부로 여기시였다.

녀사께서는 김일성주석께서 제시하신 로선과 방침을 관철하는데서는 무한한 헌신성과 높은 책임감을 가지고 무조건 완수하는것을 철칙으로 삼으시였다.

녀사께서는 크고작은 일, 조건이 유리한것과 불리한것을 가리지 않으시였으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야마는 견인불발의 의지를 발휘하시였다. 이와 관련한 하많은 혁명일화들이 전해지고있지만 여기서는 혁명가로서의 중대한 정치적과제로 받아안게 된 조국광복회조직건설과 당조직건설에서 유감없이 발휘된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녀사께서 조국광복회조직건설을 위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정치공작원, 국내당공작위원회 성원의 중임을 맡으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통일전선로선과 당건설로선을 관철하기 위해 발휘하신 결사관철의 정신은 모든 유격대정치공작원들이 따라배워야 할 불후의 귀감으로 되였다.

녀사께서 조국광복회조직확대를 위해서 처음으로 파견된 곳은 도천리와 신파지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숙은 도천리와 신파일대에서 많은 일을 해놓았습니다. 내가 그에게서 혁명가로서의 만만치 않은 수완과 능력을 발견한것이 바로 그때입니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161페지〕

도천리는 장백현 하강구지역의 중심위치에 있었다. 도천리와 대안의 신파를 련결하는 지하조직선은 함경남도 서부 및 남부지역과 국내의 내륙지대로 유격대의 조직망을 확대하기 위한 중요한 통로였다. 또한 도천리는 하강구지구는 물론이고 림강현을 포함한 남만의 광활한 지역에 조국광복회망을 늘이는데서나 그 망들과의 련계를 짓는데서 중심거점이 되였다.

도천리대안의 신파는 조선로동계급이 집결되여있는 흥남공업지대와 련계를 맺는데 유리한 위치에 놓여있는 곳으로서 동해안 남부지역과 내륙깊이에로 유격대의 지하조직망을 확대하는데서 아주 좋은 발판으로 삼을수 있는 지점이였다.

사령부로부터 받은 정치공작임무의 중요성과 도천리-신파지구의 지대적중요성으로 하여 녀사께서는 이 지대를 조국광복회조직건설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하여 한몸바쳐 투쟁하시였다.

1930년초까지만 해도 독립군의 세력권안에 있던 도천리가 193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그 주변의 하강구일대  거의 모든 마을들에 조국광복회조직들이 꾸려지고 철저히 혁명화되게 되였다.

도천리-신파일대에서의 조직망건설과 혁명화가 이처럼 성공적으로 진행되여나갈수 있었던것은 녀사께서 수령님의 의도대로 인민들에게 의거하고 인민들을 각성시켜나가는 과정속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한데 있었다.

녀사께서는 지나는 길에 잠간 들렸던 집에서도 그냥 앉았다가 일어서는 법이 없이 나무도 패주고 물도 길어주고 방아도 찧어주시였다. 한번은 어느 부락 지주가 열병에 걸린 부엌데기소녀를 산중초막에 내버린 일이 있었는데 아무도 전염병이라는것을 알고서는 그 불쌍한 소녀를 돌봐줄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런 사연을 알게 된 녀사께서는 꺼리낌없이 초막에 찾아가서 소녀와 침식을 같이하며 병구완을 하여 끝내 그 소녀의 건강을 회복시키시였다.

녀사께서 얼마나 인민적성품을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고계셨는가를 말하여주는 500명의 량민보증서에 관한 일화가 오늘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에게는 군중을 감화시키고 각성시키고 동원시킬줄 아는 비상한 솜씨가 있었습니다. 그가 정안군놈들에게 체포되였을 때 도천리와 그 주변 인민들이 경찰에 제출했다는 수백명의 련명으로 된 <량민보증서>는 김정숙에 대한 군중의 평정서와도 같은것이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되여 인민들한테서 그런 신임을 받을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김정숙이 한몸을 내대고 일한 결과였습니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161페지〕

그때에 구장이였던 공작원이 13도구 경찰서장을 상대로 석방운동을 조직했을 때 서장은 500명분의 량민보증서를 작성해오면 녀사를 《량민》으로 인정하고 석방시키겠다고 약속하였었다. 서장이 그와 같은 엄청난 량의 보증서를 요구한것은 그것이 절대로 실행될수 없는것으로 믿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500명의 도장과 지장이 주런이 찍혀있는 량민보증서가 서장의 눈앞에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였다.

200여호밖에 안되는 도천리마을에 그렇게 많은 지하조직원들이 있을수 없었다. 아무리 조직이 발동되였다 해도 조직원보다 몇배나 더 많은 그 숱한 비조직원들이 모두 남의 풍에 떠서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보증서에 함부로 도장을 누를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 뭇사람들로 하여금 량민보증서에 서슴없이 도장을 누르게 할수 있은것은 녀사에 대한 인민들의 다함없는 사랑이였고 지지였다. 달리 말하여 인민의 절대적신뢰와 지지가 그런 기적을 낳게 한것이였다.

녀사께서 도천리와 신파일대에서 하신 혁명활동은 조직건설의 첫걸음이였다. 그후 녀사께서는 풍산일대에서의 조국광복회조직확대를 위한 정치공작을 진행하시였다.

풍산지구 역시 전략적으로 중요시된 곳이였다. 풍산지구를 조국광복회망으로 뒤덮으면 백두산근거지를 개마고원일대에로 확대할수 있었으며 후치령동쪽의 여러 지방들에 조국광복회조직을 내올수 있는 도약대를 마련할수 있었다. 개마고원일대를 타고앉아야 그곳을 도약대로 하여 반일통일전선운동을 국내깊이에로 확대할수 있었던것이다.

녀사께서는 도천리와 신파지구공작을 하시면서 거기에서 육성하신 조국광복회 회원을 풍산지구에 파견하시였으며 그의 공작결과로 1937년 여름에 조국광복회 배상개덕지회가 나오게 되였다.

녀사께서는 1937년 7월 중순과 1938년 9월 하순경에 두차례에 걸쳐 몸소 풍산지구로 나가시여 그곳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하는 사업을 조직지도하시였다. 풍산에서 조직하신 공작선에 의해 조국광복회에 기초한 조직확대로선은 서울 콩그뤂의 김삼룡에게도 전달되였고 일본의 동경에까지 공작선이 미치게 되였다.

풍산지구에서의 공작을 마치신 녀사께서는 동해안일대를 따라 조국광복회조직을 건설하는 사업을 지도하시였다. 단천지구에 나가시여 단천농민폭동관계자인 리주연을 만나시였고 리원에 이르시여서는 리조말기 헤그밀사로서 이름났던 리준의 아들인 리용을 만나시여 농조운동에 참가하였던 농민들을 광범히 묶어세울데 대해서와 후치령이남일대의 농민들을 전민항쟁에로 준비시키는 사업을 적극 벌리도록 지도를 주시였다.

녀사께서는 그후 다시 함경북도 연사지구에 나가시였다. 연사지구 역시 조직확대를 위해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지대였다. 그것은 1930년대 후반기 유격대가 서간도를 떠난후 연사와 무산대안인 올기강류역에서 주로 정치군사활동을 하게 되였고 국경지대의 해방운동에 활력을 주기 위하여 이 지구에 유격대의 소부대와 소조들이 자주 파견되였던 사정과 관련되여있었다.

녀사께서 연사지구에 진출하시여 조국광복회 연사지구위원회를 조직하시고 조직의 건설과 활동을 조직지도하신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의 백두산동북부일대에서의 정치군사활동을 돕는데 있어서도 큰 의의를 가지였다.

녀사께서는 또한 도천리에서의 공작시기부터 로동자가 집결되여있는 지대에서의 조직건설에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다. 녀사께서는 흥남지구에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하기 위하여 도천리에서 육성하신 조국광복회 회원을 정치공작원으로 파견하시였다. 1937년 봄에 본궁화학공장 건설로동자들속에 침투한 정치공작원은 흥남지역에서 지하조직을 개척해나갔으며 그 지하조직원들이 그해 가을 신흥지구에 진출하신 수령님으로부터 지하조직건설사업을 확대할데 대한 과업을 받게 되고 이 지대에 조국광복회의 견고한 조직망이 형성되게 되였다.

북부국경지대로부터 동해안의 중요 지대들에 이르기까지의 넓은 지역에서 김정숙녀사께서 진행하신 조국광복회건설과 당조직건설을 위한 혁명활동과 거기에서 쌓으신 커다란 업적은 주석께서 주신 로선과 방침관철에서 녀사께서 간직하고계시는 결사관철의 혁명정신이 얼마나 투철하고 숭고한 높이에 이르고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것이며 우리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으로 되는 민족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민족통일전선사업을 성과적으로 추진시키는데서 길이 빛날 공적임을 보여주는것이다. 수령을 높이 추앙하고 수령을 결사옹위하며 수령의 위업을 몸바쳐 실현해나가는것은 민족의 위업을 완성하는 정신적추동력으로 되는것이며 이 정신적추동력을 마련하고 구현하는 혁명가의 영상, 원형, 전형, 귀감을 창조한 여기에 김정숙녀사께서 민족사에 남기신 가장 큰 력사적업적의 하나가 있는것이다.

김정숙녀사께서 민족사에 남기신 력사적업적의 또 하나는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백두광명성을 안아올리심으로써 혁명의 광명한 앞날과 민족의 창창한 미래가 열리게 하신것이다.

김일성주석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김정일장군님을 미래의 령도자로 키워낸것이 김정숙녀사께서 력사에 남기신 가장 큰 공적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숙동무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김정일동무를 미래의 령도자로 키워 당과 조국앞에 내세워준것입니다. 동무들은 내가 김정일동무를 후계자로 키워냈다고 하지만 사실 그 기초는 김정숙이 쌓아놓은것입니다. 그가 혁명앞에 남긴 가장 큰 공로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권, 178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회고하고계시는바와 같이 김정일장군님을 수령의 후계자로 조국앞에 내세울수 있는 기초는 김정숙녀사께서 마련하신것이다.

김정숙녀사의 한생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을 충성으로 받들어온 한생인 동시에 김정일장군님을 주석의 후계자로, 미래의 령도자로 키우기 위해 바치신 한생이였다. 녀사께서는 세상을 떠나시는 마지막날에도 어리신 김정일장군님을 불러앉히시고 아버님을 잘 받들라는것과 아버님의 위업을 계승, 완성해야 한다는것을 당부하시였다. 그 유훈을 남기신 후 3시간이 지나 녀사께서는 눈을 감으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백두산시절부터 그러한 숭고한 뜻으로 어리신 장군님을 키우시였다.

녀사께서는 장군님의 탄생을 백두광명성의 탄생으로 우러러받든 항일혁명전우들의 뜨거운 소망과 2천만동포의 념원을 심장으로 느끼시면서 전우들과 겨레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장군님의 성장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어리신 백두산위인에게서 그 시절부터 3천리를 굽어보시는 원대한 포부, 사물현상을 정확히 관찰하는데서의 비범성, 장군다운 호탕한 기상, 담대한 성품, 대바르고 억센 의지, 미래의 령도자로서의 기초가 일찍부터 튼튼히 쌓아지게 된것은 녀사의 숨은 노력이 깃든 열매가 아닐수 없었다.

녀사께서는 밀영에서 첫걸음마를 떼시는 아드님을 굳센 의지와 크나큰 담력을 지니도록 키우시였으며 혁명의 성산 백두산의 위용을 그대로 닮도록 하기에 전력하시였다. 또한 녀사께서는 어리신 아드님께서 어린시절부터 명장의 슬기와 지략을 지니도록 하시기에 마음쓰시였다.

녀사께서는 아드님이 지니신 비범한 천품과 기질을 귀중히 여기시고 그것을 더욱 훌륭히 키워주고 빛내여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커다란 노력을 기울이시였다. 녀사께서는 어리신 아드님의 남달리 비범한 사고력과 뛰여난 관찰력, 분석력을 깊이 헤아리시고 그것을 계발시키기 위해, 그리고 관찰력과 탐구심을 보다 조장시키기 위해 힘쓰시였으며 아드님이 백절불굴의 혁명정신, 무비의 담력과 강철의 의지를 지니도록 하기에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녀사께서는 아드님에 대한 교육교양에서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을 키우는데 총적목적을 두시였다.

녀사께서는 아드님께서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깊이 간직하여 수령님의 위업을 높이 받들고 수령님의 대를 꿋꿋이 이어나가도록 훌륭히 준비시킴으로써 민족의 운명개척에서 령도의 계승문제를 빛나게 해결할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시였다.

이것은 녀사께서 조국과 민족앞에 영원불후할 공적을 쌓아올리신 력사적업적으로 된다.

참으로 김정숙녀사께서는 민족의 륭성번영을 위한 만년초석을 다지는데서 불멸의 업적을 남기신 탁월한 정치활동가, 교육가, 혁명가이시며 조국의 창창한 미래를 기약하는 향도성을 받들어올리신 혁명의 위대한 어머니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