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 통일일화』 중에서 

 

 

 주체94(2005)년 가을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 정순택이 사망하였을 때였다.

이미 남조선에 있는 정순택에게 조국의 품에 안긴 비전향장기수들과 꼭같이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여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가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못내 애석해하시였다.

한두해가 아니고 수십년세월 신념을 굽히지 않고 조국통일을 위해 싸워온 그가 조국의 품에 안기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에 너무도 가슴이 아프시였던것이다.

정순택은 감옥에 있을 때도 석방된 이후에도 신념을 지켜 굴함없이 투쟁하였다.

그는 동해안에서 서해안까지, 제주도아래 제일 남쪽에 있는 섬인 마라도에 이르기까지 남조선의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광범한 대중을 반미자주와 통일운동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고무된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미군철수, 남조선미국《행정협정》철페, 전쟁반대, 《보안법》페지 등을 요구하여 더욱 힘찬 투쟁을 벌렸다.

이렇게 애국의 의지를 가다듬으며 힘찬 투쟁을 벌리던 정순택이 애석하게 사망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유해를 북에 들여다 장의를 사회장으로 하며 신미리애국렬사릉에 안장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그는 생전에 그토록 열망하던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을 받아안은 비전향장기수가 어찌 정순택뿐이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3(2004)년 4월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 정순덕녀성이 사망하였을 때에도 조의를 표시하고 추도모임을 진행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에 따라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조의문을 보냈으며 4월 6일에는 비전향장기수구원대책조선위원회의 명의로 평양시안의 근로자들 400여명과 비전향장기수들의 참가하에 윤이상음악당에서 정순덕녀성의 추도모임을 진행하였다.

이처럼 그들은 몸은 비록 갔지만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에 의하여 오늘도 영생하는 삶을 누리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