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전쟁은 인류가 쌓아올린 고귀한 창조물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하였으며 사람들은 그때마다 파괴된 터전우에 새것을 일떠세우는데 세월을 바쳤다. 전쟁에서 파괴는 불가피한것만큼 설계와 건설은 언제나 전후에, 그것도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에야 시작되는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였다.

그런데 조선전쟁에서는 세계건설력사에 일찌기 없었고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새 전설이 창조되고있었다. 조국강산이 불구름에 휩싸인 그 엄혹한 시각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벌써 전쟁의 승리를 확고히 내다보시고 전후복구건설을 구상하고계신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원쑤들과 맞서 판가리싸움을 하던 준엄한 전화의 나날에 벌써 승리한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시고 전후복구건설의 웅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였으며 그 준비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습니다.》

《세계적강국》인 미제는 청소한 공화국을 집어삼키려고 크지도 않은 이 땅에 제2차 세계대전때 출동시켰던 저들의 거의 모든 륙해공군무력과 수많은 추종국가군대들을 끌어들였으며 초토화작전, 무차별폭격, 대량살륙만행, 세균전, 원자탄위협 등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참으로 전쟁은 조선인민에게 있어서 힘에 겨운 시련이였다. 군인들과 인민들의 생각은 오직 전쟁에만 쏠렸고 모든것을 전쟁승리를 위하여 바치고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 어떤 엄혹한 역경속에서도 혁명의 전도를 락관하시며 전후복구건설준비를 예견성있게 추진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초기라고 할수 있는 주체39(1950)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에서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원대한 구상을 제시하시고 그 준비사업을 다그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에 많은 일군들, 특히 기술일군들이 요구되리라는것을 예견하시고 인민경제 여러 부문의 기술자, 전문가들을 키우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사람의 전투원이 귀중한 때인 주체40(1951)년 8월 《대학졸업생 및 대학생소환에 관하여》라는 군사위원회 지시를 내리도록 하시였으며 주체41(1952)년 1월 23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군사부사령관에게 《전선에서 전투원들을 소환하여 대학에 보낼데 대하여》라는 지시를 하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시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인민군대에 입대한 군인들을 소환하여 대학에서 공부시켜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전쟁은 반드시 우리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면 파괴된 도시와 농촌, 인민경제를 복구하여야 하며 이를 위하여서는 많은 과학기술간부가 요구됩니다. 전후복구건설과업과 나라의 장래발전문제를 놓고볼 때 우리는 전시의 곤난한 조건이지만 간부양성사업을 조금도 중단할수 없습니다.》

이 소식에 접한 인민군군인들과 후방의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전승의 광장에 모실 승리의 날이 멀지 않았다는것을 굳게 믿으며 용기백배하여 원쑤들을 무찌르는 싸움에로 나아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에서 싸우던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여러 대학들을 찾으시고 전후복구건설의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주시였다.

주체41(1952)년 4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면 백송리(당시)에 나가있던 김일성종합대학을 찾아주시였다.

전쟁이 한창이던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송리가 평양과 거리도 가깝고 반항공조건도 좋으며 군대들이 지어놓은 집도 있고 또 좋은 논과 밭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식량이나 부식물도 자체로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종합대학을 그곳에 소개시켜주시였던것이다.

대학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직원, 학생들앞에서 《조국해방전쟁의 전망과 종합대학의 과업》이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종합대학 교직원, 학생들앞에 나선 중요한 과업의 하나는 전쟁이 끝난 다음 파괴된 인민경제를 복구건설하는데 필요한 연구사업을 잘하는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전쟁행정에서 나타난 인민경제의 우결함들을 정확히 분석정리하는 문제, 나라의 자연부원을 조사장악하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리용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잘하는 문제, 나라의 공업화와 전기화를 실현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잘하는 문제 그리고 수송문제의 해결, 새땅을 얻어내는 문제, 축산업과 수산업의 발전문제를 비롯하여 전후복구건설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깊이 연구할데 대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력사자료와 문화유산을 발굴정리하며 우수한 민족간부들을 많이 양성할데 대하여 상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하루밤 묵으시면서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때임에도 학생들의 옷차림과 식생활에 이르기까지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시고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김책공업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들을 찾으시여 유능한 기술인재를 더 많이 양성하도록 하시고 교수교양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주체41(1952)년 4월에 있은 과학자대회에서 인민경제복구발전의 기본방향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먼저 미제국주의자들의 야수적만행에 의하여 전반적으로 파괴된 인민경제와 문화시설들을 중점적으로 빨리 복구하며 공화국의 국방력과 경제토대를 더욱 강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인민경제를 복구발전시키는데서 전쟁의 경험을 참작하여 군수공업을 계통적으로 발전시키며 이와 병행하여 기초적공업부문을 복구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식민지통치의 후과인 인민경제의 기형성과 전쟁에 의하여 이루어진 불균형을 없애고 나라의 장래 공업화에 필요한 조건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금속, 기계, 화학 및 건재공업부문들을 복구확장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전쟁에 의하여 심히 령락된 인민생활을 빨리 안정시키며 인민경제 모든 부문의 전반적복구사업을 다그치기 위하여 짧은 시일에 효과를 나타내여 국방력강화와 인민생활안정에 이바지할수 있는 시설들을 중점적으로 복구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히신 인민경제를 복구발전시킬데 대한 기본방향은 나라의 국방력과 경제토대를 더욱 강화하며 장래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축성을 위한 일정한 물질기술적조건을 마련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주체42(1953)년 6월 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하신 결론 《전후 경제복구건설방향에 대하여》에서 다시금 전후 인민경제복구건설방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과학자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제시하신 인민경제복구건설의 기본방향은 복구건설의 선후차를 옳게 설정하고 중심고리에 력량을 집중함으로써 전반적인민경제의 복구발전을 다그칠수 있게 하는 강령적지침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복구건설의 웅대한 구상을 펼치시면서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밀고나가시였다.

그이께서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신것은 평양시를 비롯한 온 나라의 복구건설계획도를 인민의 지향과 영웅적기상을 반영하여 대담하고 통이 크게 작성하는 사업이였다.

평양에 대한 미제의 야만적인 대폭격이 있은 주체40(1951)년 1월초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소한의 맵짠 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이른새벽 무참히 파괴된 평양시내를 돌아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나마 무너진 인민들의 살림집에도 들어가보시고 공공건물의 파괴정형도 살피시며 칠성문고개를 지나 장대재언덕우에 오르시였다. 그러시고는 상처입은 평양의 거리들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밝은 창문에 행복의 웃음꽃이 피여나던 아담한 살림집들, 아이들의 글읽는 소리 랑랑하던 학교들, 창조의 노래 하늘가에 드높고 그 어디에서나 새 생활의 맥박이 세차게 약동하던 거리…

해방후 5년동안 이룩해놓은 귀중한 모든것이 미제침략자들에 의하여 무참히 파괴되여 재가루만이 흩날리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며 일군들에게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 전후복구건설을 준비해가지고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지금부터 평양시를 일으켜세울 준비를 잘해야 하겠다고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1월 21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설계일군들을 최고사령부로 부르시였다.

설계가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를 작성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미제침략자들이 하나를 마스면 열, 백, 천을 일떠세워야 하며 파괴된 도시와 농촌, 공장과 기업소들을 그전보다 더 아름답고 웅장하게 현대적으로 건설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전후복구건설에서도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수도 평양을 전쟁전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현대적으로 복구건설하며 평양시뿐아니라 도소재지들과 전국의 모든 도시들을 복구건설하기 위한 준비를 미리부터 할데 대하여 말씀하시는 그이의 숭엄한 모습을 우러르며 설계일군들은 형언할수 없는 감동에 휩싸였다.

그이의 말씀을 받들고 설계가들은 곧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를 작성하는데 달라붙었다.

그러던 주체40(1951)년 5월 중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 초안을 친히 보아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지금 전쟁을 하고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눈에 보이는것이 파괴된것뿐이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설계를 너무 소극적으로 하였다고 하시면서 설계일군들에게 전쟁의 불길속에서 자라나고있는 우리 인민의 힘을 볼줄 알아야 하며 우리는 이겼다는 립장, 승리자의 립장에 튼튼히 서야 대담하고 통이 큰 설계, 인민을 위한 좋은 설계를 할수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작전지도우에 화살표를 그으시던 붉은색연필을 드시고 몸소 설계도면을 짚어가시며 설계를 보다 완성할 방도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평양시뿐아니라 각 도소재지 복구건설계획도 작성하도록 이르시고 가로수로 심을 나무모를 미리 준비할 대책도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가 완성되고 뒤이어 각 도소재지들과 도시들의 복구건설설계도들도 만들어졌다.

주체41(1952)년 5월 평양모란봉지하극장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 따라 수도의 복구건설전망을 보여주는 전람회가 성황리에 열리였다.

웅장하게 일떠설 평양시의 전경, 아름답게 꾸려질 대동강유보도, 도시중심부의 형성과 도로배치를 보여주는 산뜻한 모형들, 아담한 살림집과 현대적공공건물의 설계도안들을 보며 사람들은 모두가 기쁨과 희망으로 가슴부풀어올랐고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였다.

한 외국인은 전람회장을 돌아보고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평양은 살고있다. 평양은 미제침략군대와 그 고용병들을 타승하고 결정적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날마다 더욱 튼튼하여간다. 평양은 전설에 있는 금새처럼 페허속에서 부활할것이며 더 아름다와지며 더 훌륭하게, 더 밝게 빛나면서 전보다 더 훌륭하게, 더 장엄하게 광채를 뿌리면서 재생할것이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나라의 복구건설계획도를 완성하도록 하시는 한편 앞으로 파괴된 경제를 빨리 복구하고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나가도록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전쟁승리를 위하여 인적, 물적자원을 다 동원해야 하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기초를 쌓기 위하여 막대한 자재와 자금을 돌려주시였으며 전선의 군인들까지 소환하시여 기계공업부문에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전시조건에서도 과학연구사업을 계속할수 있도록 온갖 과학연구조건들을 보장하여주시였으며 과학자, 기술자들의 역할을 높이기 위하여 과학자대회를 소집하시고 과학자들에게 전후 인민경제를 급속히 발전시키기 위한 과학연구사업방향과 임무를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주체41(1952)년 12월에는 과학원을 창설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과 따뜻한 배려에 의하여 과학자, 기술자들은 준엄한 전쟁이 진행되고있던 그 간고한 시기에도 아무런 불편없이 충분한 실험조건까지 보장받으면서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과학연구사업에 열중할수 있었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전쟁의 포화속에서 전후복구건설의 웅대한 설계도가 작성되고 물질적토대와 기술력량이 마련되였으며 전후복구건설의 거대한 잠재력이 준비되였다.

참으로 온 나라가 전쟁의 불바다속에 잠긴 엄혹한 시련의 시기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펼쳐주신 전후복구건설의 원대한 설계도는 싸우는 군대와 인민들에게 승리에 대한 무한한 신심과 용기를 주는 고무적기치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