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시생산을 보장함에 있어서 농업생산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이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당시 농사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전쟁으로 인하여 로력사정이 긴장한데다가 미제의 야수적인 폭격으로 비료공장과 관개시설들이 파괴되였다. 뿐만아니라 적들의 파괴략탈행위로 말미암아 식량은 물론 축력과 농기구, 심지어 종곡까지도 매우 부족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에 식량을 보장하며 인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농촌에 힘을 집중하여 농업생산을 늘여야 한다고 보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농촌에 힘을 집중하는데서 농촌진지를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의 우수한 력량을 농촌에로!》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우수한 일군들을 농촌에 수많이 파견하시였다. 그리고 농촌에 유급민주선전실장들을 배치하고 민주선전실운영사업을 결정적으로 개선하도록 하시였으며 특히 전사자가족, 피살자가족, 인민군후방가족들로 농촌핵심진지를 튼튼히 꾸리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전사자가족, 피살자가족들과 인민군후방가족들은 원쑤에 대한 적개심이 남달리 강했으며 공화국을 지켜싸우려는 애국적열의가 높았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남편에게 의지하여 살던 그들은 배운것도 많지 못하고 정치적단련도 부족하지만 옳게 이끌어주고 도와준다면 모두가 당의 핵심력량으로서 남편과 아들들을 대신하여 후방을 떠메고나갈 믿음직한 역군으로 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마을에 가시든 피살자가족, 전사자가족, 인민군후방가족들을 친히 만나주시고 그들을 후방을 지켜선 어엿한 주인으로 내세워주시였다.

주체41(1952)년 6월 어느날 서해안의 어느 한 농촌마을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의 당단체사업이며 농사형편에 대하여 자세히 료해하시고나서 렬사가족, 후방가족들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자나깨나 그립던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게 된 유가족들은 인사의 말씀도 변변히 올리지 못한채 눈물만 흘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보시며 그렇게 울지만 말고 이야기나 나누자고 달래시였다.

그럴수록 녀인들은 더 목놓아울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녀인의 등에 업힌 어린것의 손을 잡으시고 혼자몸으로 자식들을 키우자면 고생이 많겠지만 아이들을 나라의 기둥으로 잘 키워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고나서 유가족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의논해주시였다.

이윽고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신문철을 가져오라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문철을 한장한장 펼치시며 신문공부를 잘하지 않는것 같은데 신문을 잘 읽어야 한다고, 당중앙은 새 소식과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일들을 신문에 날마다 소개하며 나아갈 길을 가리켜준다고 하시면서 신문을 되는대로 보관해서는 안되며 그것을 빠짐없이 읽어보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과거에 배우지 못했기때문에 더 많이 배워야 하며 그래야 우리가 더 잘 싸워 승리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렬사가족들과 후방가족들모두가 정치적으로 더 잘 준비되고 그들이 당정책관철에서 누구보다 앞장서나가는 믿음직한 기둥이 되여주기를 바라시는 그이의 말씀에 유가족들은 모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렇듯 렬사가족들과 후방가족들을 믿어주고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속에서 그들은 나라의 억센 기둥으로, 혁명의 핵심력량으로 억세게 자라났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한편 전시식량생산을 위한  투쟁에 인민들을 적극 조직동원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족되는 로력과 축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품앗이반, 소겨리반을 널리 조직하며 로동자, 사무원, 학생 그리고 후방에 있는 군인들로 로력협조대를 무어 영농사업을 도와주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주체40(1951)년 3월 가렬한 전시환경속에서도 몸소 평안남도안의 여러 농촌들을 찾으시여 농민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전시농업생산에서 나서는 제반 문제들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며 전선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이다》, 《한치의 땅도 묵이지 말며 한알의 낟알이라도 더 많이 내자!》, 《파종도 전선이다!》라는 전투적구호를 제시하시여 농민들을 전시식량증산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주체41(1952)년 1월 전국다수확농민열성자대회와 축산일군열성자대회를 소집하시여 1951년도 농업증산투쟁과 축산업발전에서 거둔 성과를 총화하시고 그 경험을 일반화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령도와 뜨거운 사랑에 고무된 농민들은 전시식량증산을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농민들은 적기의 폭격과 함포사격이 계속되는 속에서도 논밭머리에 대피호를 파고 소잔등에 위장을 해가면서 낮에 밤을 이어 영농작업을 다그쳤다.

녀성들은 녀성보잡이운동을 발기하고 이 운동을 힘있게 벌렸다. 이 운동의 앞장에는 렬사가족, 인민군후방가족녀성들이 서있었다. 그들은 《전선에 나간 남편과 아들과 오빠를 대신하여 식량증산으로 원쑤들에게 복수의 죽음을 주자!》라는 구호를 들고 지난날에는 남자들만이 할수 있다던 논밭갈이를 제힘으로 해제끼였다. 로인들도 떨쳐나서 씨를 뿌리고 김을 맸다. 그리하여 농민들은 전시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알곡생산계획을 빛나게 수행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혹심하게 파괴된 농촌경리를 빨리 복구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협동화의 길로 나가야 한다는것을 내다보시고 협동화의 구상을 무르익히시였으며 그 준비를 예견성있게 갖추어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농업부문에서 대규모적인 국영농목장들과 농기계임경소들을 더 많이 내오게 하시는 한편 소겨리반, 품앗이반 등 협동적로동형태를 널리 보급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사회주의적협동경리의 싹을 키워나가시였다.

주체41(1952)년 5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안남도 대동군 원화리(당시)를 찾으시였다.

수령님께서 이 마을에 도착하신것은 농민들이 아직 잠에서 깨여나기 전인 이른새벽이였다.

일군들이 그이께서 들어가실 방을 마련하려고 급히 한 농가로 들어가려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인을 찾으려는 일군들을 불러세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집주인을 깨우지 마오. 단잠을 자는 사람을 깨우면 얼마나 곤해하겠소. 이제 얼마후이면 날이 밝겠으니 주인이 일어날 때까지 우리는 마당에 앉아쉬기요!》

《여기서야 어떻게…》

《괜찮소. 마당에 앉아 이렇게 아침공기를 마시는것이 더욱 좋소. …짚단이나 얻어오오.》

이렇게 농민들의 단잠을 깨울세라 벼짚단우에 앉으시여 아침을 맞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농민들과 풀밭에 허물없이 앉으시고 밭갈이형편은 어떠하며 씨뿌리기는 얼마나 했는가, 씨앗은 어떤것을 준비했으며 부족한 로력과 축력은 어떻게 해결하고있는가 하는것을 일일이 료해하시였다.

마을형편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도 오늘은 농민들을 도와 파종을 하자고 하시면서 손수 씨앗도 뿌리시고 거름도 나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민들과 어울려 일을 같이하시며 농사를 잘 지을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오늘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하는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식량이 많아야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으며 령락된 인민생활을 안정시킬수 있습니다.

농사를 잘 지어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하는것은 농민들의 본분이며 조국해방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하는데 직접 기여하는 영예롭고 보람찬 일입니다.

여러분은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농민의 본분을 깊이 자각하고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시여 알곡생산을 높이기 위하여 농사일을 제철에 잘하며 좋은 종자를 선택해서 심고 봄파종면적을 계획대로 확보하며 땅을 묵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쉴참에도 밭머리에서 농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농사일을 의논하시였다.

농민들은 로인들에게 담배도 권하시며 허물없이 대해주시는 수령님의 소탈하신 품성에 끌려 어느덧 어려움도 잊고 자기들의 농사형편을 털어놓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윽고 농민들에게 품앗이반을 무었는가를 알아보시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원화리에서 소겨리반과 품앗이반을 뭇고 서로 도우면서 농사를 짓고있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품앗이와 소겨리를 하여 서로 힘을 합치고 도우면서 농사일을 하는것은 우리 농민들의 전통적인 미풍입니다. 품앗이반과 소겨리반을 무어 여러 집이 서로 힘을 합치면 일하기도 헐하고 소와 농기구도 합리적으로 리용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겨리반과 품앗이반을 무어 힘을 합쳐서 서로 도우며 일해야 하겠습니다.》

그러시면서 이것은 앞으로 농촌경리를 협동화하는데도 아주 필요한 일이라고 하시며 농업협동화의 휘황한 전망을 밝혀주시였다.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알곡증산을 위하여 마을사람들과 하루해를 보내신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농민들은 마음속깊이 깨달았으며 적들이 제아무리 발악한다 해도 한치의 땅도 묵이지 않고 씨를 뿌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해내리라 마음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협동경리의 새싹을 적극 키워주시면서 농촌경리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여 농업의 빠른 발전을 이룩하실 원대한 구상을 실현해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0(1951)년 6월 14일 내각결정으로 《도, 시, 군 영목장설치에 관하여》를 채택하게 하신데 뒤이어 주체41(1952)년 7월 30일에는 내각결정 《국영 제5호농장설치에 관하여》를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이에 따라 전쟁기간에 국영 및 도, 시, 군 영목장이 200여개소나 신설되였으며 북부고원지대에는 5호농장을 비롯하여 포태, 황수원, 양평 등지에 대규모적인 농목장건설사업이 힘있게 추진되였다. 그리고 황해도 연안, 청단, 안악 등지에는 벼재배농장들이 설치되였으며 각지 야산들에는 평양과수농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과수농장들이 생겨나 멀지 않은 앞날에 청춘과원으로 자라날 애어린 과일나무모들이 뿌리를 내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영농기계임경소망을 더욱 늘이고 그의 기술장비를 개선강화하도록 여러가지 대책도 세워주시였다.

전쟁시기 대대적으로 설치된 국영농목장과 농기계임경소는 전쟁의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농업생산을 늘이고 인민생활을 안정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농민들에게 사회주의적협동경리와 선진적기계기술의 우월성을 보여주고 전시 로농동맹을 더욱 강화하며 전후 농촌경리의 사회주의적개조를 촉진시킬수 있는 믿음직한 담보로 되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농촌진지는 더욱 강화되였으며 준엄한 전시에도 농업생산을 늘일수 있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