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과 반일민족해방투쟁사』 중에서 

제  3  장

1930년대 반일민족해방투쟁

9. 조선근대사가 낳은 진보적문학예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동강회의를 마치고 백두산으로 행군하여 가실 때 백두산의 서쪽 위성구역인 무송현 남단의 산골마을인 만강에서 여러날 묵어가시게 된 일이 있었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만강체류기간에 주석께서 희곡도 쓰시고 연극대본도 만드시여 공연하게 한 불후의 고전적명작인 연극 《피바다》가 세상에 나오게 된것은 항일무장투쟁사와 조선현대의 문학예술사에서 특기할만 한 사변으로 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피바다》공연을 하게 된 동기와 혁명에서 문학예술이 노는 커다란 인식교양적역할에 대하여 강조하시고 이와 관련하여 반일민족해방투쟁이 낳은 진보적문학예술의 성장과정을 력사적으로 개괄하시였다.

이 력사적개괄은 이 시기 조선현대문학예술사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데 있어서나 혁명적문학예술의 력사적성장과정의 틀거리를 과학적으로 밝히고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또한 조선현대사의 중요 구성부분을 이루는 현대조선문학예술사연구에서의 지도적지침이 마련되였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연극 <피바다>를 창작하게 된 기본연원은 <간도토벌가>에 있었다고 말할수 있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43페지)

주석께서는 어린시절에 아버님으로부터 《간도토벌가》를 배우시기도 하고 《간도토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으시였다. 그런데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한 다음 부대를 이끌고 동만에 가시니 그 지방 사람들은 일본군경들의 《토벌》로 하여 형언할수 없는 시련을 겪고있었다. 《토벌대》의 군도와 총창끝에서 하루에도 수십명 심지어는 수백명씩 무리죽음을 당하는 대살륙의 참사가 빚어지는 간도땅은 문자그대로 피바다였다.

주석께서는 그 피바다를 볼 때마다 아버님께서 배워준 《간도토벌가》를 상기하셨으며 《간도토벌가》를 상기할 때마다 조선민족이 당하는 고초와 수난을 두고 울분을 금치 못하시였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간도에 살고있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참혹한 운명앞에서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총대와 곤봉을 틀어잡고 분연히 일어나 항쟁으로 맞서고있는 사실이였다. 이 거족적인 항쟁에는 삼강오륜과 삼종지도에 구속당하던 녀인들과 그 녀인들의 치마폭에 싸여 밥투정질을 하던 아이들까지 다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크게 감동을 받으신것이 바로 그들의 모습이였다. 하여 수령님께서는 그 혁명의 주인공들에 다함없는 존경과 사랑을 느끼시였으며 그들을 지지하고 동정하는 과정에 머리속에서는 희생된 남편의 뒤를 이어 투쟁의 길에 나선 한 녀인과 그의 자녀들의 형상을 무르익히시였으며 녀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작품을 만들어보고싶은 충격을 느끼시게 되였다. 이 충격을 붓끝으로 옮기게 되는 직접적계기는 동강회의가 끝난 뒤 한 대원이 어느 마을에서 신간문예잡지 한권을 가지고온 사연과 관련되여있었다.

그 잡지에는 감옥살이를 하는 한 사회운동가의 안해를 취급한 소설이 실려있었다. 남편이 감옥에 들어간 다음 그 안해가 어린아이를 남에게 주고 다른 남자에게 재가해간것을 줄거리로 엮은 소설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그런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형상은 진실일수 없으며 자신께서 아시는 우리 녀성들은 절대다수가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나라에도 충실한 녀성이였음을 절감하시게 된다, 만일 진면모를 보지 못하고 리광수와 같이 혁명가의 안해들을 모독한다면 진실을 반영하는 문학의 본도를 배반하는것이라고 주석께서는 절감하시였다. 진실을 반영하여 독자대중을 아름답고 숭고한 세계에로 인도하는것이 바로 문학과 예술의 사명이 된다는것이 그이의 드팀없는 미학관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자신께서 형상하신 혁명가로 성장하는 주인공의 매력적인 형상을 생각하시며 몹시 흥분하시게 되였으며 서푼짜리 소설을 써내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라도 작품을 써야겠다는 충동을 느끼시고 종이장에 펜을 달리기 시작하시였다.

주석께서 연극공연을 위한 창작에 심혈을 기울이신 리유가 대중의 혁명화를 위해 그것이 커다란 역할을 논다는 그 점에 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이에 대하여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렇다면 백두산을 향해 남하행군을 하는 그 어려운 로정에서 우리는 왜 한사코 연극창조를 일정에 올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던가.

우리는 대중을 의식화하는데서 연극예술이 노는 비상한 견인력과 효과성에 큰 기대를 걸고있었다. 당시로서는 연극만큼 대중의 심장을 잡아흔드는 예술이 별로 없었다. 무성영화가 유성영화로 발전되고 그것이 한나라의 범위를 벗어나 세계적판도에서 보급되기 전까지 연극은 예술계에서 그 어느것에도 비교할수 없는 위력한 감화력을 가지고있었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47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입수한 신간문예잡지를 통하여 국내문학예술계의 실태를 분석하시고나서 당시 조선에서 성장하고있던 문학예술운동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시의 진보적인 문학예술운동은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대체로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부터 민족적인것을 옹호고수하고 발전시키려는 애국애족적인것으로 일관되여있었다.

일제통치시기 우리 나라의 진보적문학은 애국애족정신과 자주독립사상으로 인민들을 계몽하며 연극, 영화, 음악, 미술, 무용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예술들의 발전방향을 유도하고 거기에 담겨져야 할 내용들을 제시해주는데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52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가르치신바와 같이 식민지하의 문학예술은 식민지현실의 비리를 무자비하게 폭로하며 제국주의지배에 대한 저항정신에서 출발한 자주독립적, 애국애족적사상으로 대중을 선도하는 민족의 문학예술로, 투쟁의 무기로 되여야 한다.

문학예술이 그러한것을 지향하는 속에서 《신경향파》문학이라고 불리운 진보적작가들의 문학운동이 생기게 되였고 그것은 1925년에 이르러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카프》)을 낳게 되였다.

《카프》가 창립된 때로부터 조선의 진보적문학은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의 리해관계를 대변하고 옹호하는 프로레타리아문학예술발전에 이바지하게 되였다. 리기영, 한설야, 송영, 박세영, 조명희를 비롯한 우수한 《카프》작가들에 의하여 우리 나라 문단에서 《고향》, 《황혼》, 《일체 면회를 거절하라》, 《산제비》, 《락동강》 등 인민대중의 사랑을 받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였다.

일제는 식민지통치를 위협하는 진보적문학예술의 발전을 막기 위해 가혹한 탄압을 가해나섰으며 두차례에 걸치는 검거선풍으로 하여 《카프》는 창립 10주년이 되던 1935년에 자기 존재를 끝마치게 되였다.

일제가 강요하는 《국민문학》(전향문학)을 하느냐, 붓을 아주 꺾어버리고 마느냐 하는 기로에서도 대부분의 《카프》출신작가들은 진보적문인으로서의 량심을 지키였다. 리기영은 내금강의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 부대기농사를 지으면서도 조국과 민족을 끝없이 사랑하는 량심적인 지성인, 애국적인 작가로서의 체모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한설야나 송영도 역시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일제는 《카프》를 해산시킬수 있었지만 조선문학의 시종일관한 저항정신과 애국애족의 터전에서 싹트고 자라온 그 문학의 명맥을 끊어버리지 못하였다.

《카프》출신의 문인들이 감옥에 끌려가거나 산간벽지로 쫓겨가고있을 때 항일혁명대오안의 지식인들과 함께 북부국경지대의 작가들과 중국본토의 적색구역, 사회주의쏘련에서 활동하던 조선의 망명작가들은 조선공산주의운동과 민족해방위업에 적극 기여하는 전투적인 혁명문학을 창조하였다.

그들은 백두의 험산준령과 만주광야에서 혈전에 혈전을 거듭하고있는 항일투사들을 민족의 총아로 높이 내세우고 찬양하면서 그들에 대한 사랑과 동정을 아낌없이 표시하였다. 후날 《인간문제》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녀류소설가 강경애는 룡정에서 간도인민들의 원군운동을 형상한 《소금》이라는 중편소설을 썼다.

시인 리찬과 김람인이 국경지대에서 벌린 창작활동은 유격대의 주목을 끌었다. 리찬은 조선인민혁명군이 서간도에 나온 후 압록강대안인 삼수와 혜산진에서 유격대에 대한 끝없는 동경심을 담아 《눈내리는 보성의 밤》과 같은 훌륭한 서정시들을 써냈다.

김람인은 조국광복회가 창립된 그해 11월 림강대안의 중강진에서 표지에 붉은 기발을 그려넣은 동인문예잡지 《시건설》을 창간하였으며 항일무장투쟁을 동경하고 민족의 독립을 기원하는 혁명적인 시들을 창작발표하였다. 그는 자기가 경영하는 인쇄소에서 비밀리에 조국광복회10대강령도 2천부나 찍어 유격대에 보냈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전투성과에 고무되여 입대를 시도한 작가들도 있었다. 소설가 김사량은 입대를 결심하고 만주광야를 헤매다가 유격대를 종시 찾아내지 못하고 연안에 가서 장편기행문 《노마만리》를 썼다.

조선의 애국적예술인들과 선각자들은 일본도 영화업을 발전시키고있는데 조선사람이라고 해서 영화를 못 만들것이 무엇이냐, 우리도 선진국들처럼 영화를 꽝꽝 만들어서 인민을 위해 봉사하자, 그리고 영화예술에서도 자립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있다는것을 만방에 시위하자는 배심을 가지고 영화예술건설의 간고한 초행길을 개척해나갔다. 라운규를 비롯한 량심적인 예술인들은 《아리랑》을 비롯한 민족적향취가 강한 영화들을 제작하여 조선예술인들의 실력을 과시하였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왜색왜풍의 탁류속에서 시들어가는 민족성을 고수하고 민족적인것을 발전시키려는 강렬한 모대김이 문학예술의 여러 령역에서 분수처럼 솟구쳐오르던 때였다.

바로 이 시기에 최승희는 조선민족무용을 현대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민간무용, 승무, 무당춤, 궁중무용, 기생무 등의 무용들을 깊이 파고들어 거기에서 민족적정서가 강하고, 우아한 춤가락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여 현대조선민족무용발전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기여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서간도로 진출하고있을무렵에 국내에서는 일장기말소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 그 소식이 백두산밑에까지 날아왔다. 이 사건의 발단으로 된것은 신문 《동아일보》가 1936년 8월에 베를린에서 있은 여름철올림픽경기대회 마라손종목의 1등수상자인 손기정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면서 그의 앞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지워버린것이다. 노발대발한 총독부당국은 《동아일보》에 정간처분을 내리고 그 관계자들을 구금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유격대원들은 《동아일보》편집집단이 취한 애국애족적인 립장과 용단에 열렬한 지지와 련대성을 보내였었다.

항일혁명투쟁의 불길속에서 창조된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조선현대의 진보적문학예술발전에서의 가장 높은 단계, 혁명문학예술의 최고봉으로 된다.

고전적명작들인 《사향가》, 《반일전가》를 비롯한 혁명가요, 《꽃파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비롯한 항일혁명연극 등을 중심으로 한 항일문학예술은 주체사상의 체현자, 자주적인 참다운 인간들로서의 서정적주인공들을 빛나게 형상한 높은 사상예술성과 전투적사명으로 하여 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주체적이며 혁명적인 문학예술의 본보기를 창조하는 그런 높이에로 현대조선의 진보적문학예술을 발전시켰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실천을 통해서 대중을 혁명과 투쟁의 길로 인도하는데서 얼마나 위력한 무기로 되는가를 뚜렷이 실증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실로 한편의 훌륭한 시나 연극이나 소설이 천만사람의 가슴을 격동시키며 혁명적인 노래는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적의 심장을 꿰뚫을수 있다는것은 항일혁명시기의 문학예술활동을 통하여 우리가 도달한 진리이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60∼61페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창조된 항일혁명문학예술을 조선문학예술의 혁명전통으로, 혁명연극, 혁명가극의 시조, 시원으로 정립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일조직비서는 우리가 항일혁명시기에 창작한 극작품들을 우리 나라 혁명연극과 혁명가극의 시조로, 시원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영화와 소설, 가극과 연극으로 옮기는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였다. 그 과정에 우리가 만들어낸 원작들에 기초하여 혁명영화, 혁명소설, <피바다>식가극, <성황당>식연극이 창조되고 항일유격대식예술활동방식이 새롭게 수립되였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62페지)

항일혁명시기에 창작된 혁명적문학예술의 성공작들이 우리 시대의 현대적미감에 맞는 명작들로 20세기 문예부흥의 포성을 올린 대작들로 완성된것은 민족공동의 경사로, 자랑으로, 영광으로 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