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과 반일민족해방투쟁사』 중에서 

제  3  장

1930년대 반일민족해방투쟁

8. 당창건을 위하여

항일혁명의 주력을 담당했던 조선인민혁명군은 당창건의 조직사상적준비를 책임진 당건설의 주도적력량으로 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의 령도적기능과 역할이 높아지는 가운데 활발히 조직전개된 당건설사업은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전반적반일민족해방투쟁을 정치적으로 강력히 뒤받침하는 한편 항일혁명에 대한 당적령도와 대중적지반을 강화하고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전반적항일혁명을 일대 앙양기에로 떠미는 강력한 추동력으로 되였다.

항일무장투쟁에 직접적으로 참가하고있는 공산주의적전위투사들에 의해 추진된 당조직건설사업은 193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조선공산주의운동의 당당한 주류를 이루었으며 확고한 정통성을 대표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1930년대 중반 조선국내의 현실에 대하여 공산당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 당을 재건하려는 모든 시도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거기에 바쳐진 투사들의 눈물겨운 로고와 열정이 철창속의 서글픈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나라, 이미 오래전에 결사의 자유가 법으로 금지되여있는 나라라고 특징지으시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당조직을 국내깊이에까지 확대하여 당창건사업을 전국적판도에로 확대할 결정을 짓게 되는것은 1936년 5월의 동강회의에서였다. 회의에서는 국내에 당창건의 조직사상적기틀을 본격적으로 마련하기 위한 과제가 상정되고 그 대책으로 국내당공작위원회를 조직하고 혁명운동의 골간들로 전위적인 당조직을 확대할데 대한 문제가 협의되였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1930년대 후반기 당창건을 위한 사업은 선행시기의 당재건운동과 어떤 관계에 놓이는가?

이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이것은 조선공산당이 해산된 후에 여러 갈래로 진행되였던 당재건운동의 단순한 연장이나 반복이 아니였다. 국내당공작위원회의 지도밑에 전개된 국내에서의 당조직건설사업이야말로 국제당이 직접 주관한 당재건운동이나 또 국제적색로동조합(프로핀테른)이 적색로조운동을 통하여 이룩해보려고 시도한 당재건운동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철두철미 자주적인 당재건운동, 당조직건설투쟁이였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305페지)

당재건문제를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자주권에 속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철두철미 자주적인 립장에서 진행한 당조직건설투쟁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선행시기의 모든 당재건운동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것이다. 그것은 자주적립장에서 진행되는 당재건운동이기때문에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의 주도하에 진행되게 되였다. 또한 독자적판단에 의해 창설된 국내당공작위원회에 의해 추진되는 당창건준비사업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이에 대하여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국내의 당조직들은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에 소속되고 또 그 위원회의 지도를 받게 될것입니다. 조선에 공산당이 없는 현재의 특수한 상황에서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는 조선혁명전반에 대한 령도적기능을 담당한 참모부의 역할을 하고있습니다. 우리 당위원회의 활동은 무력에 의해 튼튼히 보호되고있습니다. 일제의 야만적인 헌병경찰통치는 조선에서 당재건의 모든 가능성을 박탈해버리였습니다. 당재건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투사들의 대부분이 지금 철창속에 갇혀있습니다. 적들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은것은 오직 무력의 담보를 받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뿐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가 조선혁명전반에 대한 령도적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리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가 조선혁명의 참모부적역할을 감당하게 된것은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발전의 필연적귀결입니다. 력사가 우리로 하여금 그런 사명을 수행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앞으로 조직되게 될 국내당공작위원회는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적보호를 받게 될것입니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298∼299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의 주도하에 조선혁명이 진행되는것은 조선공산주의운동발전의 필연적귀결이라는것을 당재건운동에 대한 력사적개괄을 통한 분석으로 론증하시기 위해 선행시기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평가를 여러모로 주시였다.

일제의 극악한 식민지통치가 계속되고 혁명운동에 대한 탄압이 우심해지는 가운데서도 국내의 공산주의자들은 이러저러한 형태로 당재건운동을 면밀히 벌려나갔다. 함남, 함북에서의 공산당사건, 조선공산주의자동맹조직사건, 조선공산당재건코민테른로선레포트사건,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사건 등은 이 시기 국내 여러 지방에서 있었던 당재건운동의 일부였다.

중국을 근거지로 하는 당재건운동도 있었다. 엠엘파와 서상파는 중국 길림일대를 중심으로 당재건준비위원회, 당재조직중앙간부회, 당재건동맹, 당재건정리위원회 등을 조직하고 당재건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에서도 동경을 거점으로 당재건운동이 있었다.

1920년대말부터 1930년대중기까지 전국적판도에서 전개된 적색로동조합, 적색농민조합운동도 당재건운동의 일환이였다. 초기의 합법적인 형태로부터 지하운동형태의 비합법적형태로 전환된 적색로조와 적색농조의 기본적인 투쟁목적은 공산당재건에 있었다.

국내와 해외에서 전개된 당재건운동은 대부분 기성의 낡은 운동형식과 사대주의적경향, 파벌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층운동에 머물러있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이러한 실태를 분석하시고 새로운 당건설사업을 당재건운동의 연장선에서가 아니라 새롭게 출발해야 함을 밝히시였고 동시에 제한성을 가지기는 하나 기존재건운동이 거둔 성과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다시말하여 지난 시기의 적색로조, 농조의 선들을 찾아 거기에 우리의 당세포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또한 새로운 당건설사업은 코민테른의 도움에 대해서도 주체적으로 대하고 자주적립장에 서서 당창건방침을 관철해나가야 한다는데 대해서도 가르치시였다.

코민테른은 1930년대에 들어와 우리 나라에서의 민족해방투쟁 특히는 당재건운동에 대해 일정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유럽에서의 파시즘에 못지 않게 일본군국주의가 극동에서 날로 위험한 세력으로 되고있는것과 관련되여있었다.

코민테른에서는 조선에서의 공산당재건문제를 두고 꾸우씨넨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제나름의 견해를 내놓았다. 그 대표적인것이 코민테른 제7차대회이후시기에 론의되였던 조선민족혁명당조직에 관한 제안이였다. 그에 대한 코민테른의 의사를 상세히 밝힌것이 코민테른기관지 《공산주의인터내슈널》에 만주에서의 반제통일전선에 대하여 쓴 양송의 글이였다.

그는 간도에 있어서의 현 국면은 중국공산당조직을 확대하기 위하여 혁명적인 중조 로동자, 농민을 더 많이 당내에 흡수하는것과 함께 조선혁명당을 수립할것을 요구하고있다고 하였다. 그 당은 성격상 반일통일전선적당으로 되여야 할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코민테른의 견해와 코민테른에 가있던 중국당대표의 견해를 대변하는것이였다.

그러나 김일성주석께서는 우리 나라에서의 당조직건설문제와 통일전선결성문제를 독자적인 판단과 결심에 따라 해결하시였다. 주석께서는 당조직건설문제와 통일전선결성문제를 함께 추진시켜나가면서도 그것을 서로 뒤섞지 않으시였다. 그것은 결코 당이 통일전선을 대표하거나 통일전선체조직이 곧 당으로 될수 없기때문이였다.

그 당시 일부 독립운동자들가운데는 민족유일당이라는 명목으로 좌우의 모든 정치적력량을 포섭하는 중국의 국민당과 같은 정치조직을 내올것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주석께서는 국내당공작위원회를 조직하여 당조직건설을 추진시키는 한편 반일민족통일전선체로서의 조국광복회를 결성하는 방법으로 민족대단결을 실현하시였다.

물론 코민테른은 그 이전시기에도 우리 나라에서의 당재건을 여러 방면으로 시도하였다.

코민테른의 지도하에 있던 국제적색로동조합집행국이 1930년 9월에 발표한 《조선의 혁명적로동조합운동의 임무에 관한 테제》(세칭 9월테제)는 주로 공산당을 재건하는데서 혁명적로동조합의 조직을 필수조건으로 내놓고있었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은 바로 이 9월테제에 의거하여 혁명적로동조합(적색로동조합)조직에 힘쓰고 그것을 대중적지반으로 하여 공산당의 재건을 추진시키였다.

그 다음해 10월에 국제적색로동조합산하조직으로 상해에 있는 범태평양로동조합 비서부도 《태로 10월서신》으로 알려져있는 《조선의 범태평양로동조합 비서부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긴급격문》에서 혁명적로동조합을 조직하고 그것을 대중적기반으로 하여 공산당을 재건할것을 촉구하였다.

국제적색로조계통의 이러한 문건들은 1931년 5월에 발표된 코민테른집행위원회의 꾸우씨넨의 의견서로 알려져있는 《조선의 공산주의운동에 관한 의견서》와 더불어 내용상으로는 조선에서의 공산당재건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있는것들이였다.

1934년 6월 모스크바에서는 조선공산당발기자그룹의 명의로 《조선공산당 행동강령》이 발표되였는데 이것도 역시 조선에서의 공산당을 재건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였다.

코민테른의 이상과 같은 시도들은 이렇다할 열매를 맺지 못한채 좌절을 경험하고있었다. 이와 같은 현실은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의 지도밑에 당창건준비사업을 새롭게 진행할것을 요구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에서는 1936년 12월에 위대한 수령님을 책임자로 하는 국내당공작위원회를 내오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국내당공작위원회의 지위와 임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 국내당공작위원회는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고 국내당조직건설을 맡아보게 될 지역적지도기관이다. 통일적령도기능을 수행하는 참모부가 없는것으로 하여 국내운동은 지금 분산성과 자연발생성이라는 두가지의 치명적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있다. 국내에서 분산적으로 활동하는 애국지사들과 공산주의자들을 하나의 력량으로 결속하며 그들사이에 직접적인 련계를 이루게 하기 위하여서는 그것을 맡아 수행할만 한 지도기관이 있어야 한다. 그런 지도기관이 바로 국내당공작위원회다.》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301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국내당공작사업을 방조할 사명을 지닌 정치공작대를 파견하시는 조치를 취하시였다. 1937년 여름과 가을에 조선인민혁명군의 우수한 지휘성원들이 겸한 여러명의 국내당공작위원회 위원들이 망라된 정치공작대가 조선북부의 여러 지역들에 파견되여 당조직건설사업과 군중과의 사업을 진행하였다. 이 공작대를 북선정치공작대라고 불렀다.

국내에 파견된 정치공작원들은 로조, 농조를 비롯한 기성의 조직들과 개별적인 공산주의조직에 깊이 침투하면서 당조직건설사업과 조국광복회조직망을 확대하는 사업을 적극 전개하였다. 그들의 정력적활동에 의해 국내의 광범한 대중속에는 《백두산바람》이 억제할수 없는 힘으로 강하게 스며들어가게 되였다.

그리하여 국내의 광활한 지역에 당조직이 급속히 확대되게 되였다. 갑산, 신파, 풍산을 비롯한 함경남북도와 양덕지방 그리고 평양, 벽성 등 서선일대의 여러 광산, 탄광, 공장, 농촌, 어촌, 도시들에 혁명조직들이 속속 건설되였다. 적색로조나 적색농조운동으로 들끓다가 잠잠해진 지역들에서 다시금 혁명적인 로조, 농조운동이 전개되였다. 어제날의 로조, 농조들이 재조직, 재편성되는 과정은 곧 당조직들이 생겨나는 과정과 일치하였다.

당조직망과 조국광복회망은 조선반도 북부일대의 령역을 멀리 벗어나 서울을 비롯한 중부일대와 경상도와 전라도경계에까지 이르렀으며 제주도와 현해탄을 넘어 일본땅에까지 확대되였다.

국내에서의 당조직건설사업은 장백과 림강일대에서의 당조직건설사업과 긴밀한 련계속에서 추진되였다. 장백, 무송, 림강일대의 동포거주지역들에도 당조직이 뿌리를 박았다. 동만과 남만일대에도 당조직들이 확대되였다.

전국적판도와 전민족적범위에서 당조직건설사업이 강력히 추진되는 과정을 통하여 분산적으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결속되고 전반적반일민족해방투쟁에 대한 당의 령도가 보다 강화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이에 대하여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이것은 항일혁명투쟁에서 우리가 이룩한 또 하나의 크나큰 전취물로서 우리가 백두산을 타고앉은 후 압록강과 두만강연안지구에서 얻은 군사작전들에서의 승리에 못지 않은 정치적승리였다. 당조직건설을 위한 우리의 피어린 투쟁은 조국해방을 앞당겨오는 힘있는 추진력으로 되였을뿐아니라 자주적인 당창건위업을 빛나게 완성할수 있는 강유력한 기초로 되였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320페지)

모든 당조직들이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의 통일적인 지도밑에 움직이는 전국적범위의 강력한 당조직체계가 수립되였다. 최고지도기관인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로부터 기층조직인 세포에 이르기까지 당조직지도체계가 정연하게 세워짐에 따라 당창건의 조직사상적기초축성사업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