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조선전쟁에서 거듭되는 참패로 하여 미제는 심각한 정치군사적위기를 겪게 되였다. 그리하여 놈들은 하는수없이 1951년 6월 하순 우리측에 정전담판을 제의하여왔다.

미제침략자들은 정전담판을 제의함으로써 저들의 조선침략을 규탄하는 세계여론을 무마하고 날로 심각해지는 정치군사적위기에서 벗어나며 정전담판의 막뒤에서 숨을 돌려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는 한편 전선에서 이루지 못한 침략목적을 담판장에서 달성해보려고 꾀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정전담판을 통해 노리는 미제의 음흉한 목적을 꿰뚫어보시고 주체40(1951)년 6월 30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미제가 정전담판을 제의해온것은 그자체가 우리에게 굴복한것이며 저들의 패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정전을 해도 좋고 전쟁을 계속해도 좋다는 립장에서 미국과 정전담판을 진행하는데 동의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조선군사정전담판 조선인민군대표단을 조직하도록 하시고 담판장소를 우리측 군사통제지역인 개성으로 정해주시였다. 그리고 주체40(1951)년 7월 6일에는 정전담판에 파견되는 우리측 대표단성원들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표단성원들을 미더운 눈길로 둘러보시며 정전담판은 오랜 침략력사를 가지고있으며 우리와 총부리를 맞대고 결사전을 벌리고있는 음흉하고 교활하기 그지없는 미제침략자들과 직접 마주앉아 대결하게 되는 총소리없는 치렬한 전투라고 하시면서 그런것만큼 정전담판투쟁은 몹시 어려울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대표단성원들이 대적투쟁에서 견지하여야 할 립장과 자세, 투쟁방침과 행동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드디여 1951년 7월 10일부터 개성시 고려동 래봉장에서 담판이 시작되였다.

회의장에 나타난 첫 순간부터 적측은 우리측의 위풍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태도앞에 얼이 나가 중심을 잃고 허둥지둥하였다.

우리측 대표단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방향에 따라 조선에서의 평화와 조선인민의 의사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가장 정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적측은 부당한 주장을 고집하면서 고의적인 지연책동을 썼다. 하여 담판은 쌍방이 서로 격렬한 론쟁을 벌리는 속에 여러날동안 계속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쌍방 련락군관회의들과 첫 정전담판진행정형을 상세히 료해하시고 담판장에서 미제의 침략적본성을 폭로할데 대한 성명을 발표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성명에 담아야 할 구체적인 내용까지 상세히 밝혀주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에 따라 곧 우리측 성명이 발표되였다.

성명이 발표되자 조선에서의 전선정황과 정전담판을 주시하고있던 전세계 진보적인류는 미제의 강도적인 주장에 격분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놈들에게 저주와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였다.

우리측은 련속 불같은 공격을 들이댔다. 미제는 우리가 내놓은 제안에 당치않은 구실을 붙여 완강히 고집하였으나 나중에는 우리의 원칙적인 요구앞에 굴복하고야말았다. 그리하여 7월 26일 적측이 우리측의 의정안을 접수함으로써 의정안토의는 락착짓게 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담판에서 얻어보려던 제놈들의 시도가 실패하게 되자 그 앙갚음을 할 심산으로 체면도 그 무엇도 가리지 않고 정전담판회의장과 우리측 대표단숙소에 폭탄을 퍼부음으로써 정전담판을 파괴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미제의 야수적본성을 만천하에 다시한번 그대로 드러내놓은것이였다.

미제의 만행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개성에 있는 정전담판 우리측 수석대표를 찾으시여 사건현장에 대한 공동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강경히 항의할데 대하여서와 일체 회의를 중단한다는것을 선포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미제가 계획적인 도발행위를 감행하면서 오만무례하게 나오는것은 놈들이 감히 우리를 위협함으로써 담판에서 한몫 보자는 수작이라고 하시면서 보다 견결한 립장을 취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우리측 대표들은 침략자이며 평화의 교살자인 미제의 진면모를 만천하에 폭로규탄하였다. 그리하여 적들의 모략적인 정치외교공세는 좌절되였으며 정전담판은 무기한 휴회로 들어갔다.

담판에서 저들의 목적을 달성할수 없게 된 미제침략자들은 새로운 공세준비에 더욱 열을 올리였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미 예견하시였던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가 정전담판을 제기하여왔을 때 벌써 적들이 반드시 새로운 대규모적인 군사공세에로 나오리라는것을 간파하시고 놈들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주시하고계시였다.

사실 미제는 정전담판의 막뒤에서 새로운 군사적모험을 꾀하면서 전선에 방대한 무력을 집결시키고있었다. 《유엔군》사령관 릿치웨이는 정전담판을 벌려놓은 후 황급히 전선을 시찰하면서 《회담기간중 전선을 강화하고 부대들의 인원손실을 보충하며 광범한 공격을 전개할 때 필요한 무기, 탄약을 제1선부대들의 관할하에 넣을것》을 명령하였으며 미8군사령관 밴 플리트도 이에 장단을 맞추어 《정전담판의 합의의 길은 <유엔군>이 군사적으로 승리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고 지껄이면서 병력과 전투기술기재를 전선에 대대적으로 밀어넣었다. 그러면서 적들은 전선서부가 주공방향인듯이 가장하면서 은밀히 전선동부에 대병력을 집중하고있었다.

전선정세는 나날이 긴장되여갔다. 조성된 전선정황에 대처하기 위한 문제를 두고 진지한 토의들이 진행되였다.

여기에서 초점으로 된것은 미제가 노리는 주타격방향이 어디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많은 사람들이 미제가 감행하고있는 모든 군사행동으로 보아 주타격방향이 서부전선일것이라고 단정하고있었다. 그것은 우선 적들이 전선서부에 대병력을 들이밀고있으며 서해해상에 수많은 함선들을 집결시키고있는 엄연한 현실이였다. 전쟁 제1계단과 제2계단때에도 적들은 주되는 공격을 전선서부에 돌리고 주타격방향을 개성-금천-사리원방향에 지향하였었다. 전선서부는 동부와 중부의 산악지대에 비해 평원지대가 많으며 따라서 도로가 발달되여 기동하기 유리한 곳이였다. 그리고 서부지대는 주요알곡생산지였으므로 적들이 이 지대를 호시탐탐 노리고있다는것이였다. 이런 론거로 하여 백이면 백사람이 조만간에 전선서부에서 전쟁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격전이 벌어지게 될것이라고 예측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순간의 휴식도 없이 군사정세에 깊은 주의를 돌리시면서 예리한 통찰력으로 미제침략자들의 음흉한 기도를 발가내시였다.

전선정황이 나날이 긴장되여가고있던 어느날이였다.

한 일군이 군사정세자료를 가지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집무실에 들어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전도를 마주하시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그에게 적들의 군사행동성격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시고나서 《동무생각에는 적들이 이번 <하기공세>에서 노리는쪽이 어디라고 보오?》라고 물으시였다.

그이의 물으심에 일군은 잠시 생각하다가 솔직한 심정그대로 《적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아무래도 적들은 전선서부를 노릴것 같습니다.》라고 말씀올리였다.

《그럼 동무도 역시 전선서부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동무가 그렇게 생각하는것도 일리가 있소. 그러나 우리는 이 점에서 더 심중히 생각해봐야 할것 같소.》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되뇌이시며 고개를 가볍게 저으시였다.

(그럼 어느쪽일가?!)

그는 서둘러 생각을 몰아갔으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전선서부로만 생각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 작전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작전회의에서는 미제침략자들의 새로운 공세준비에 대처할 작전문제가 중요하게 토의되였다.

적들이 지금 어디를 노리고있는가, 전선동부인가, 아니면 중부나 서부인가, 우리는 방어에서 주요방향을 어디에 두겠는가, 작전회의에 참가한 군사지휘관들은 이런 중대한 문제를 놓고 론의를 거듭하였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엄하신 눈길로 작전대앞에 빙 둘러선 장령들을 둘러보시며 동무들의 생각에는 미제침략자들이 어느쪽을 노릴것 같은가고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작전대앞에 둘러서있던 장령들은 한결같이 적들의 주타격방향이 서부지대일것 같다고 대답올리였다.

아무 말씀없이 그들의 대답을 듣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시봉을 불쑥 앞으로 가져다가 지도우의 한 지점을 짚으시며 확신에 넘치신 음성으로 《적들은 바로 여기를 노리고있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천만뜻밖이였다. 그곳은 전선서부가 아니라 해발 1 200여m의 높이를 헤아리는 산악지대인 전선동부였던것이다.

작전일군들의 놀라운 눈길이 서로 마주쳤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전일군들의 심중을 헤아리신듯 그들을 둘러보시며 적의 총적기도와 적집단들의 배치상태, 전선동부의 지리적특성과 그것이 군사행동에 주는 영향에 대하여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이어 수령님께서는 놈들이 그토록 극비에 붙이고있던 주타격방향을 낱낱이 발가놓으시며 지금 미제침략자들이 전선서부와 중부에서 준동하고있는것은 어디까지나 잔꾀에 지나지 않는다, 놈들의 진짜목적은 동해안의 원산, 통천지역으로 제놈들의 부대를 상륙시켜 지상전선에서 공격하는 부대들과 배합하여 전선동부와 중부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산악지대를 점령함으로써 차후 공화국북반부의 전지역을 강점하고 전쟁을 계속하려는데 있다, 따라서 우리의 방어의 중요방향을 전선서부가 아니라 전선동부에 두어야 한다고 확신성있게 말씀하시였다.

작전일군들은 비범한 예지와 예리한 통찰력으로 적의 기도를 속속들이 꿰뚫어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명철한 판단에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사실 미제침략자들은 전선동부에서 인민군대의 방어진을 뚫고 중요고지들을 장악하고 다른 병력집단을 통천 또는 원산에 상륙시켜 그들의 협동으로 전선을 북으로 올리밀면 개성, 금천, 이천, 원산을 련결하는 계선까지 차지할수 있다고 타산하였다. 그런 다음 서해안의 남포, 한천일대에 상륙시킨 새로운 타격집단과 서로 마주 진격하여 이른바 조선의 《좁은 허리》를 장악함으로써 전쟁의 패배를 만회할것을 꾀하였던것이다. 놈들은 이런 계획밑에 동부전선에 무려 13만여명의 대병력과 1 000여대의 비행기, 수많은 땅크와 포, 함선을 끌어들이였다. 미합동참모본부에서는 제놈들의 주타격방향을 극비에 붙여오면서 공격개시직전에 전선의 사단장들에게 알려줄데 대하여 엄격히 지시하였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감탄을 금치 못해하는 작전일군들을 정겨운 시선으로 둘러보시며 지휘관들이 작전계획을 세우며 적에 대한 판단과 결심을 채택하는데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문제들에 대하여 상세히 가르쳐주시였다.

비범한 통찰력으로 적들의 주공방향을 간파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전반에서 적의 공세에 대처할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게 하시면서 전선동부의 방어를 강화하는데 특별한 힘을 넣으시였다.

전선동부의 방어밀도를 강화하기 위하여서는 이곳 방어계선의 부대들을 빠른 시일안에 새로운 력량으로 증강하여야 하였다.  

어느 부대를 여기에 보낼것인가?

작전일군들은 이 문제를 놓고 론의를 거듭해보았으나 해결책을 찾을수 없었다. 그곳으로 보낼 예비력량이 매우 부족했던것이다.

일군들이 동부에 보낼 예비대를 마련하지 못해 안타까와하고있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서부에서 방어임무를 수행하고있는 일부 인민군련합부대들을 은밀하고도 신속히 기동시켜 전선동부의 방어력량을 증원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전선서부로부터 동부에로 기동하는 대련합부대의 로정도 거리를 훨씬 단축할수 있도록 정해주시였다.

일군들은 다시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적들이 전선서부와 중부지역에 대부대들을 들이밀어 매일과 같이 발광적인 공세를 감행하고있던 때에 그곳에서 한두개 련대도 아닌 대련합부대를 전선동부에 단꺼번에 기동시키는것과 같은 대담한 조치는 누구도 할수 있는 일이 아니였던것이다.

이것은 오직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대담한 작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구상에 따라 적들의 대집단이 집결되여있는 불과 수십㎞ 앞에서 전선과 평행선을 그으며 여러개의 련합부대가 서부에서 동부로 증원해가는 전례없는 대기동작전이 벌어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인민군장병들은 이해따라 많이 내린 장마비를 무릅쓰고 길 아닌 길을 헤치며 세계전쟁사상 그 류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 대기동작전을 짧은 기일안에 어김없이 수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적들이 오래전부터 준비해오던 《하기공세》를 8월 중순경에 감행할것이라는것을 명철하게 꿰뚫어보시고 장마철과 관련한 대책을 세워주시였으며 전선동부의 방어를 더욱 강화하도록 하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통찰력과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전선동부의 아군방어는 철벽으로 다져졌으며 적들의 《하기공세》를 격파분쇄할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담판의 막뒤에서 새로운 침략공세를 다그쳐오던 미제는 마침내 전선의 여러 방향에서 포성을 울렸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하기공세》의 전주곡이였다.

《만단의 준비》를 갖춘 미제침략자들은 1951년 8월 중순 오래동안 면밀하게 준비해온 대규모적인 《하기공세》를 감행하였다.

적들은 983.1고지와 1211고지를 비롯한 전선동부의 중요방향에 방대한 병력과 수많은 비행기, 땅크, 포들을 들이밀어 발악적으로 공격해왔다.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조치에 따라 비상히 강화된 인민군련합부대들은 강력한 포화력과 명중탄으로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기였다.   

치렬한 공방전은 983. 1고지에서 벌어졌다. 적들은 걸음마다 무리죽음을 당하면서도 공격기도를 조금도 버리지 않고 더욱 악착스럽게 달려들었다. 놈들은 인민군방어진을 돌파하려고 하루에도 수만발의 폭탄과 포탄을 퍼부었다. 바위가 부서져 모래가 되고 푸르던 나무가 불타서 선자리에서 숯이 되였다.

인민군용사들은 조국의 한치의 땅, 하나의 고지라도 적에게 내여주지 말고 놈들을 끝까지 소탕하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원쑤의 가슴팍에 복수의 총탄을 퍼부어 놈들의 주검으로 골짜기를 메웠다.

적측의 한 기자가 저들의 시체로 뒤덮인 983. 1고지를 가리켜 《피로 물든 봉우리》라고 쓴것도 바로 이때였다.

적들은 이 기간 수많은 병력을 내몰아 1211고지에 대한 공격도 감행하였으나 갱도에 의거한 인민군대의 강력한 방어에 부딪쳐 모두 격파분쇄되고말았다.

미제가 그렇게도 오랜 기간 준비하고 그렇게도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던 적들의 《하기공세》는 위대한 수령님의 빛나는 예지와 탁월한 령군술에 의하여 불과 800여시간사이에 풍지박산이 났으며 죽음의 공세, 절망의 공세로 되고말았다.

《하기공세》의 참패는 적들로 하여금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지르게 하였다. 미합동참모본부 의장 브래들리까지도 《밴 플리트의 <하기공세>는 잘못 고른 시간에 잘못 고른 장소에서 잘못 고른 적에 대한 잘못한 전쟁이였다.》고 개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