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정의의 수호자』중에서


 

  

주체82(1993)년 3월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기전파방지조약탈퇴선언이 발표된 후 미제는 조선을 《압력》이나 《제재》의 방법으로 굴복시킬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정부급회담을 제기해왔다.

그렇다고 하여 조선에 대한 압살기도를 버린것은 아니였다. 외교적방법으로 그것을 기어이 실현해보려는것이였다.

조미회담의 개최는 그자체가 미국이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반증으로 되였다. 그리하여 사회주의붉은기를 지키고 정의를 지키기 위한 총포성없는 조미대결전은 외교무대를 통해서도 치렬하게 벌어지게 되였다.

세계는 조미회담을 조선과 미국간의 외교전에서의 제3회전이라고 하면서 이미 1953년과 1968년에 조선에 항복서를 바치였던 미국이 1990년대에 들어와 조미외교전을 어떻게 치를것인가를 지켜보고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비범한 예지와 령활한 외교적지략, 무비의 담력으로 3단계에 걸쳐 진행된 조미회담을 진두지휘하시여 미국을 수세에 몰아넣고 조미핵대결에서 승리를 이룩하시였다.

이 회담에서 공화국이 달성하려고 한 목적은 한마디로 말하여 미국으로부터 공화국에 대한 적대시정책과 핵위협을 중지하며 압살책동을 포기한다는 정치적공약을 받아내는것이였으며 반면에 미국이 노린 목적은 공화국을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복귀시키고 무장해제시키려는것이였다.

이러한 상반되는 목적을 내건 적대쌍방이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는 이 협상은 치렬한 공방전으로 일관되였다. 누가 누구를 하는 의지와 담력, 지략을 겨누는 이 회담은 처음부터 말그대로 《외교백열전》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적들의 진의도와 약점을 정확히 포착한데 기초하여 원칙적립장을 견지하면서 다양한 전술로 우리의 의도를 관철할데 대한 방향과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도에 이르기까지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막강한 군력에 토대하여 적들의 약점을 잡아쥐고 강경대응으로 적들을 다불리도록 하시였다.

외교에서도 마지막주패장은 군력이다. 제국주의가 《힘의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있는 조건에서 힘의 뒤받침이 없는 정의는 통하지 않는다. 위력한 군력을 가지고 혁명적원칙을 지키는 자주적인 나라에 대해서는 제국주의자들도 싫건좋건 존엄있게 대하지 않을수 없다.

막강한 군력, 이것이 뉴욕조미회담에서 미국의 거만한 코대를 꺾어놓은 중요한 요인의 하나였다.

적들의 약점은 그토록 《애용》하는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의 붕괴였다. 미국이 자기의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들에 대한 압력과 위협, 군사적개입의 중요한 구실로 삼고있는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조선의 탈퇴는 미국의 세계제패실현의 위력한 수단인 《핵우산》에 파렬구를 낼수 있었다.

조선의 위력앞에 굴복하여 회담장에 나온 미국은 회담 첫날에 무례하게도 조선에 오만한 협박을 들이대였다. 조선측 단장은 《우리는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할 때 미국의 미싸일이 날아올것도 각오했다.》고 엄숙히 대답하여 적들의 기를 꺾고 유엔을 통한 그 어떤 《제재》가 가해진다면 조선정전협정파기로 나갈 강경한 립장을 취하였다.

조선측은 미국의 전통적인 협박외교와 상업거래방식을 짓부시고 미국외교의 《무조건항복》을 받아내였다.

6월 2일과 4일, 10일, 11일에 걸쳐 전원회담 4차, 단장회담 2차, 단원접촉 3차 그리고 실무오찬 3차 등 50시간 가까이 진행된 뉴욕조미회담에서는 치렬한 공방전끝에 공화국의 주장과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사이의 공동성명이 발표되였다.

이 회담을 통하여 조선은 옹근 하나의 전쟁을 치르고도 얻기 힘든 혁혁한 대승리를 이룩하였다.

조미공동성명에는 미국이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이러한 무력으로 위협도 하지 않는다는것, 전면적인 담보적내용의 공정성보장을 포함하여 조선반도의 비핵화,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며 상대방의 자주권을 호상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것, 조선의 평화적통일을 지지한다는것이 밝혀져있다. 또한 공화국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으로부터의 탈퇴효력을 필요하다고 인정되는만큼 일방적으로 림시 정지시키기로 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제1단계 조미회담에서 이룩한 성과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우리는 이번에 반미투쟁에서 력사적인 승리를 이룩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조미공동성명의 채택, 이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활한 반미투쟁전략과 탁월한 정치, 군사, 외교적지략 그리고 무비의 담력이 낳은 위대한 승리이며 민족사에 특기할 또 하나의 력사적사변이였다.

제2단계회담은 7월 14일부터 19일사이에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진행되였다. 40여시간에 걸쳐 공식 및 비공식협상이 벌어졌다.

공화국측은 1차회담후 극도의 적대감을 고취하며 압력소동을 발악적으로 벌리고있는 미국대통령의 발언들을 가지고 회담벽두부터 드센 공격을 들이대여 공식사죄를 받아내였다. 회담에서 미국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수로도입을 지지하고 그를 위한 방도를 탐구할 용의를 표명하였으며 조선측은 국제원자력기구와 협상을 시작할 용의를 표명하였다.

쌍방은 보도문을 통하여 경수로도입과 핵문제해결과 관련한 협상문제를 토의하며 조미사이의 전반적관계개선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하여 2개월안으로 회담을 계속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미국은 경수로제공에 대한 공약을 함으로써 조미관계개선문제에 단단히 발목을 붙잡히게 되였다.

제2단계의 조미회담후 미국은 조선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아들이고 북남대화를 재개하여야 제3단계 조미회담을 할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내걸고 지연전술로 나오면서 부당한 압력과 《제재》소동을 더욱 로골화하였다. 하여 2개월이 몇번 지났지만 조미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조선인민군은 존엄높은 공화국에 불질을 하는자들을 불로 다스릴것이며 무자비하게 징벌할것이라는 주체82(1993)년 11월 3일 인민무력부 부부장의 담화가 발표되였고 11월 12일 외교부 제1부부장은 우리는 그 어떤 제재나 전쟁에도 대처할 준비가 되여있으며 우리에 대한 미국의 고압적인 회담은 원치 않는다는 립장을 표명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11월 11일 일괄타결방식으로 조미사이의 문제를 해결할데 대한 조미회담 공화국측 단장의 담화가 발표되였다.

공화국의 강경한 주장에 굴복한 미국은 12월 29일 뉴욕실무접촉에서 일괄타결안을 받아들이였다. 그러나 뒤로 돌아앉아서는 핵활동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2개의 대상에 대한 《특별사찰》을 또다시 들고나오면서 일본반동들을 비롯한 어중이떠중이들까지 끌어들여 공화국에 대한 집중적인 압력공세를 벌리였다.

이에 대한 공화국의 보다 높은 초강경대응에 궁지에 몰린 미국은 회담개최를 위해 빌리 그라함목사에 이어 전 미국대통령이였던 카터를 조선에 들여보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카터를 만나시여 교착상태에 빠진 조미회담을 다시 열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주심으로써 세계외교사에 절정을 이룬 조미회담을 다시 열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열어놓으시였다.

주체83(1994)년 7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운명문제와 관련한 조미회담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기 위한 방략을 세워주시였다.

그리하여 8월부터 10월사이에 제3단계 조미회담이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2차에 걸쳐 진행되였다.

미국측의 교활한 책동은 최종합의를 결속하는 3단계 2차회담 당시 더욱 로골화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원칙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하며 계속 강경하게 나가 적들을 제압할데 대한 현명한 방침을 제시하여주시였다.

조선측은 장군님께서 밝혀주신 방략을 지침으로 하여 적들을 련속 수세에 몰아넣었다.

이때 얼마나 바빠났던지 미국대표단의 한 성원은 《조선측이 벼랑끝전술에 능하다는것을 알고있다. 그러나 조선측이 들고나온 전술을 보면 벼랑끝전술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고있다. 우리는 벼랑끝에 몰린 정도가 아니라 이미 벼랑에서 떨어져내리는중이다.》라고 비명을 질렀다.

치렬한 공방전끝에 제3단계 조미회담은 미국의 항복으로 결속되였다.

오래동안 계속된 불꽃 튀는 대미핵대결에서 공화국은 승리를 거두었다.

원칙앞에서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혁명적의지와 능동자재, 림기응변의 령활한 외교지략이 있었기에 공화국은 미국의 발악적책동을 단계적으로 제압해나가면서 끝내 주체83(1994)년 10월 조미기본합의문을 우리의 의도대로 채택할수 있게 되였다.

10월 20일 미국대통령 클린톤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로 존칭하면서 그이께 조미기본합의문리행을 위한 담보서한을 보내여왔다.

미국의 대통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담보서한을 낸것은 미국의 200여년의 건국력사에 없는 놀라운 사변이였다.

조미대결에서 승리는 조선의 독점물로 되였다.

세계적판도에서 폭풍같은 반향이 일어났다.

《이번의 승리는 김정일각하께서 제시하신 자주적대외정책의 빛나는 승리》, 《북조선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렬강》, 《미국의 코를 꿰여가지고 이리저리 끌고다니시는분이 바로 친애하는 김정일동지이시다.》, 《세계운명은 친애하는 김정일동지의 구상에 따라 좌우지되고있다.》, 《조선인민의 위대한 김정일각하는 탁월한 정치가이실뿐아니라 세계 진보적인류의 위대한 수령이시다.》라는 찬탄의 목소리가 지구상에 울려퍼졌다.

주체83(1994)년 10월 22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에 젖은 음성으로 일군들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 오늘의 결착점을 보시기 위하여 카터도 만나시고 온갖 로고를 다 바치시였는데 그 승리를 보지 못하시고 서거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시였다면 클린톤이 수령님께 담보서를 올려야 했을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수령님의 영원불멸할 업적을 높이 칭송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조미기본합의문이 채택되였다고 하여 제국주의자들과의 싸움이 끝난것은 아니다, 우리를 압살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은 계속될것이며 우리앞에는 의연히 난관이 가로놓이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도 긴장성을 늦추지 말고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조미기본합의문의 채택은 미제와의 《핵문제》해결에서 첫 전과였을뿐 정세는 더욱 간고하고 준엄한 핵대결전을 예고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