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40(1951)년 1월부터 전쟁이 승리할 때까지 건지리에 자리잡은 최고사령부에 계시면서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와 인민군대의 모든 중하를 한몸에 지니시고 군대와 인민을 전쟁승리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평양교외에 자리잡고있는 건지리는 전쟁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얼마 살지 않던 자그마한 산골마을로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곳이였다. 그러던것이 최고사령부가 자리잡게 되면서부터 사람들의 관심속에 있게 되였다.  

포연에 그을린 군복을 입은 장령들과 군인들, 당과 국가의 책임일군들, 로동자와 농민들, 학자들이 밤낮으로 여기로 찾아왔다. 전선과 후방의 모든 중대사가 여기 최고사령부에서 설계되고 명령과 지시도 여기서 하달되였으며 그에 따라 전당, 전군, 전민이 전쟁승리를 위하여 들끓고 한결같이 떨쳐일어났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건지리에 자리잡은 최고사령부에 계시면서 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조국해방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 집무실에서 여러차례의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조직위원회, 수십차의 군사위원회를 비롯한 중요회의들을 여시였으며 전선형편과 앞으로의 사업을 비롯한 중요문제들을 알아보시고 옳바른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밤을 밝혀가시며 미제침략자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길 군사작전도 계획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인가는 이곳에서 군단, 사단정치부장회의를 여시고 군인들속에서 당정치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한 연설도 하시고 또 언제인가는 승리한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시고 설계가들을 부르시여 전후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를 만들도록 하시였으며 정전담판 우리측 수석대표에게 여러차례의 교시를 주시여 대적투쟁에서 주도권을 틀어쥐고 놈들을 수세에 몰아넣게 하시였다.

휴식도 없이 작전대에서 밤을 밝히시고 새날을 맞으시는 그이의 건강이 념려되여 일군들이 잠시라도 쉬실것을 말씀드리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승리할 날도 멀지 않았는데 우리 미국놈들을 때려엎고 실컷 쉽시다.》라고 말씀하시고는 또다시 작전대에 눈길을 돌리군 하시였다.

백두산에서 싸우실 때에는 이제 빼앗긴 조국을 광복하고 우리 실컷 쉬자고 하시며 밤을 밝히시고 해방된 조국땅에 돌아오시여서는 건당, 건군, 건국으로 어느 하루 편히 쉬지 못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제는 전쟁을 이기고 실컷 쉬겠다고 말씀하시는것이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최고사령부의 집무실에는 어느 하루밤도 불빛이 꺼진적 없었으니 수령님께서 바쳐가신 이 불면불휴의 심혈과 로고는 그대로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로 잇닿아졌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최고사령부는 언제나 전선과 숨결도 맥박도 이어져있었고 수령님께서는 늘 전선에서 싸우는 인민군군인들과 함께 계시였다.

전선에서 아군부대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적방침에 따라 적극적인 진지방어전에로 넘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은 주체40(1951)년 6월 하순 어느날 수령님께서는 공화국영웅들과 모범전투원들을 최고사령부로 부르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 지휘처앞에까지 나오시여 6명의 공화국영웅들과 모범전투원들을 따뜻이 맞아주신 다음 그들을 밤나무밑으로 데리고 가시였다.

그들을 휴식터에 둘러앉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에서 싸우고있는 전투원들의 건강상태와 생활형편에 대하여 일일이 알아보시고 전투담도 들어주시며 그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가 미제와 그 주구들을 완전히 타승하고 조국해방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쟁취하려면 보다 더 간고한 시련을 이겨낼 굳은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미제침략자들을 끝까지 소멸하여야 할 이 중대한 과업이 동무들에게 맡겨져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들 한사람한사람에게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라는 글이 새겨져있는 기관단총을 선물로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총에는 혁명선렬들과 인민들의 고귀한 피땀이 스며있습니다. 또한 이 총에는 원쑤를 격멸하고 조국을 수호하며 미제침략자들의 발굽밑에서 신음하는 남반부인민들을 해방할데 대한 당의 요구와 인민들의 념원이 깃들어있습니다. 동무들은 이 총으로 미제침략자들을 끝까지 소멸하여야 하며 남반부를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기 전에는 손에서 총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총대중시사상을 가슴깊이 새긴 전투원들은 그이의 믿음과 사랑에 보답할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인민군전사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언제인가는 눈보라 세차게 휘몰아치는 밤 보초병의 어깨에 털외투를 다정히 씌워주시고 외투깃까지 여며주시였으며 또 어느날에는 무더운 여름날 집무실앞을 지나가는 전사들을 추리나무밑에 부르시여 손수 따신 열매를 그들의 배낭에 넣어주시였다.

바로 이러한 사랑이 있었기에 인민군전사들은 불타는 고지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그리며 청춘의 더운 피를 뿌리며 결사적으로 싸우고 또 싸웠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최고사령부는 온 나라에 더운 피를 뿜어주는 심장이였고 싸우며 승리하는 영웅조선의 숨결이였다.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산산 짓부셔버리는 백전백승의 전략전술과 위대한 지략이 바로 최고사령부에서 제시되고 승리한 조국땅에 이룩될 찬란한 설계도가 또한 여기에서 그어지고있었다.

하기에 미제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를 없애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오늘도 건지리에 자리잡고있는 조국해방전쟁사적지에는 미제가 최고사령부를 없애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한 흔적들이 력사의 증견물로 남아있다.  

미제는 당시 당안에 기여든 저들의 고용간첩 박헌영, 리승엽도당을 통하여 최고사령부에서 토의된 내용들을 계통적으로 넘겨받으면서 공중비적들로 최고사령부를 정밀폭격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주체41(1952)년 8월초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의실밖을 나서시여 집무실로 가시던 때였다.

갑자기 적비행기들이 하늘을 덮을듯 새까맣게 날아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신변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군인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살피시였다.

적기들은 낮게 선회하며 연방 폭탄을 떨구고 기총사격을 해대고있었다.

호위군관들이 대피호로 모시려고 하였지만 수령님께서는 자리를 뜨지 않으시고 태연히 정황처리를 하시였다.

일군들은 그 위급한 정황속에서 자신의 한몸을 돌보지 않으시고 군인들의 안전대책을 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희생적인 풍모앞에서 북받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불과 몇m밖에 안되는 곳에 불발탄이 떨어지는것과 같은 위험천만한 일을 당하시였다.

주체65(1976)년 4월 어느날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준엄한 전화의 나날들을 감회깊이 회고하시며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전쟁때 적비행기가 떨군 500kg짜리 폭탄이 갱도입구에서 한 20m 되는 곳에 떨어졌습니다. 나는 그때 갱도입구에서 시꺼먼 폭탄이 떨어지는것을 보았습니다. 그 폭탄은 불발탄이였습니다. …

적비행기가 최고사령부를 폭격하게 한것은 다 박헌영의 작간이였습니다. 적들이 초기 얼마동안은 이 골안에 최고사령부가 자리잡고있다는것을 몰랐습니다. 박헌영이 졸개들을 시켜 적비행기가 최고사령부를 폭격하게 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에 위험을 가져온것은 이때뿐이 아니였다.

어느날에는 적기들이 달려들어 폭탄을 떨구고 기총탄을 마구 쏘아댔는데 적비행기가 쏜 기총탄이 수령님께서 계시는 집무실의 벽을 뚫고들어와 출입문을 뚫고나가는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이처럼 미제와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에 의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의 나날 걸음걸음마다 위험을 겪게 되시였다.

혁명의 수뇌부를 해치려는 원쑤들의 책동은 전쟁 전기간 계속되였다.

오늘도 건지리의 최고사령부에 박혀있는 검은 폭탄잔해는 천만군민이 총폭탄, 성새와 방패가 되여 온갖 내외원쑤들의 책동으로부터 혁명의 수뇌부를 굳건히 보위할 수령결사옹위의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더더욱 굳게 심어주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에서 군인들, 인민들과 아무런 간격도 없이 고락을 같이하시며 언제나 검소하고 소박하게 생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사도 검소하게 하시고 건물과 비품 하나까지도 인민들이 흔히 쓰는 보통것을 쓰시였으며 인민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시기 위하여 깊이 심려하시였다.

주체40(1951)년 2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관, 료리사에게 오늘 아침 식당을 돌아보다가 부뚜막우에 놓여있는 밥그릇을 보면서 생각되는바가 많았다, 료리사동무는 밥에 좁쌀을 섞으라고 하였는데 왜 섞지 않았는가고 나무람하시며 《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에는 우리도 조밥을 먹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부관동무는 지난날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때로는 통강냉이마저 떨어져 며칠씩 굶으면서 싸우지 않았는가, 우리는 피어린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때처럼 살아야 한다, 최고사령부 일군들은 생활을 검박하게 조직하고 식생활도 검소하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식생활 하나를 놓고도 인민들과 전사들을 생각하시며 이처럼 마음쓰시는 그이의 한없이 고매한 풍모에 부관은 가슴뜨거워옴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보장해드려야 할 임무를 지닌 일군으로서 어떻게 그이께 매끼 잡곡밥을 대접하랴 하는 생각으로 좁쌀을 빛갈이나 보일 정도로 약간 섞어 밥을 지어드리도록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밥에 좁쌀이 적게 섞인것을 보시고 그를 다시 부르시여 지금 우리 인민들은 자기들이 굶는 한이 있더라도 전선에 나간 아들딸들을 배불리 먹이려고 모든것을 참아가며 어려운 생활을 하고있는데 최고사령관이라고 하여 결코 다르게 생활할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이후시기에도 최고사령관이라고 해서 인민들, 전사들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줄곧 잡곡밥을 짓게 하시였으며 지어 자신의 생신날에마저 색다른 음식을 차리지 못하도록 엄하게 이르시였다. 그리고 몸소 남새밭도 가꾸시고 산나물도 뜯으시며 부식물로 보태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에 계시면서 생활을 검소하게 하시면서 인민들과 꼭같은 집에서 허물없이 사업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기껏해야 예닐곱명밖에 들어앉지 못할 작은 방에서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크지 않은 사무용책상과 나무의자, 자그마한 책상에 앉으시여 집필도 하시고 작전도 구상하시였으며 그 옆간에 평범한 쇠침대 하나를 놓고 지내시였다.

정녕 어버이수령님은 위대한 평민이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건지리에 자리잡은 최고사령부에 깃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전승업적을 길이 빛내이시기 위하여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어느해인가 이곳 사적지를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사업하신 집무실과 서재 등 여러곳을 돌아보시였다.

깊은 추억에 잠기시여 사적지를 돌아보신 그이께서는 이 사적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신 불멸의 업적이 깃들어있는 혁명사적지들가운데서 기본이라고 하시면서 사적건물들을 영구보존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고결한 도덕의리, 세심하고도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이 사적지는 조국해방전쟁시기를 대표하는 력사적인 건물로서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에게 선군조선이 어떻게 고수되였고 오늘의 행복한 생활이 어떻게 마련되였는가를 길이 전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