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 장군 통일일화』 중에서 

 

   

 주체60(1971)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으로부터 풍랑으로 조난당하여 북으로 들어온 남조선어민들이 들끓는 사회주의대건설현장에 나가 흙 한삽이라도 떴으면 한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그무렵 수도 평양에서는 천리마거리건설공사가 한창 벌어지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천리마거리건설공사에 참가하여 짧은 시간이나마 공화국의 벅찬 현실에 발을 잠그었으면 하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들의 작업모습을 기록영화로 찍어두도록 하시였다.

사실 그때 관계부문 일군들은 기록영화촬영문제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따라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있었다.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조선어민들의 작업모습을 찍어두면 지금 당장은 남조선인민들이 볼수 없다 하더라도 통일이 된 후 본인들은 물론 모든 남녘인민들이 뜻깊게 볼수 있을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고 몸소 기록영화촬영가들을 천리마거리건설장에 보내주시였다.

남조선어민들은 깜짝 놀랐다.

자기들의 소망이 성취된것만도 뜻밖의 일인데 영화촬영까지 한다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한복판에 나선것처럼 자랑스러웠다.

우리를 보라! 평양에서 거리를 일떠세우는 우리 모습이 얼마나 장한가를 온 세계가 보라!

이렇게 큰소리로 웨치고싶은 심정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몸소 보내주신 기록영화촬영가들이 촬영을 시작하자 온 건설장이 설레였다.

수많은 건설자들의 관심이 어민들에게 집중된 속에서 유선방송은 북남형제들의 힘찬 건설작업모습을 흥분된 목소리로 보도하였다.

휴식시간이 되자 남조선어민들과 건설자들이 한데 어울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그들은 너무도 감격하여 그처럼 뜻깊은 상봉의 기회를 마련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러 소리높이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다.

촬영가들은 이 모든 격동적인 모습들을 화면에 담았고 어민들은 억제할수 없는 감격에 목이 메여 울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난생처음 사람다운 대우를 받고 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환영을 받는것만 해도 감개무량한데 기록영화까지 찍으며 친혈육같이 뜨겁게 포옹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에 그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린것이다.

한 어민은 떨리는 목소리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사람값에 가지도 못하는 저희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육친의 사랑을 베풀어주실줄은 정말 몰랐다고, 머리채를 베여 신을 삼은들 이 은혜를 어찌 갚으며 이 몸이 죽어 백골이 된들 이 은덕을 어찌 잊겠는가고 말하였다.

남조선어민들은 한결같이 기록영화필림을 없애지 말아달라고, 통일되면 가족들과 친척들을 데리고 꼭 평양에 와서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이 영화를 꼭 보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덕에 보답할 굳은 각오와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