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전화의 나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가장 어렵고 중요한 과업들을 항일혁명투사들에게 맡기군 하시였다.

항일혁명투사들은 항일전의 나날과 해방후 새 조국건설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온 총대동지들이였다. 그들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작전적방침을 맨 앞장에서 결사관철하군 하였다.

항일혁명투사 강건도 그중의 한사람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6살의 어린 나이에 항일무장대오에 입대하여 총을 잡은 그를 한품에 안으시여 투사로, 유능한 군사지휘관으로 키워주시였으며 민족보위성 부상,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겸 전선사령부 참모장의 중요한 직책을 맡겨주시였다.

이러한 그였기에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구상을 실현하는 길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주체39(1950)년 8월에 들어서면서 인민군 전선련합부대들은 수백리나 되는 전선에서 락동강을 강행도하하는 치렬한 전투를 벌리였다.

8월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날 강건은 어느 한 도하장으로 나갔다. 직접 현지에서 도하전투를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도하경무장에게 도하와 관련한 해당한 지시를 주고 도하공병들과 같이 도하준비를 끝낸 그는 도하가 시작되자 서슴없이 떼목에 올랐다.

이것을 본 공병지휘관이 《총참모장동지, 안됩니다. 어서 내리십시오. 위험합니다. 안됩니다.》라고 웨치며 그의 손에서 장대를 빼앗으려고 하였다. 떼목에 탄 병사들도 이구동성으로 어서 내리라고 안타까이 웨쳤다.

그러나 그는 《총참모장도 장군님의 명령을 받은 전사요. 장군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계시오. 자, 어서 건너가자구.》라고 하면서 장대로 기슭을 힘껏 밀었다.

포를 실은 떼목은 적들의 폭격과 포격으로 죽가마처럼 끓어번지는 강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적들의 조명탄으로 하여 주위는 대낮같이 밝았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적탄은 더욱 우박처럼 쏟아졌다.

이때 《동무들, 우리 노래를 부르자구.》 하는 그의 목소리와 함께 힘찬 노래소리가 울리였다.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였다.

순식간에 그의 선창은 병사들의 합창으로 번져갔다. 불타는 락동강우에 울려퍼진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인민군용사들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이렇게 전사들의 앞장에서 락동강을 도하하던 그가 갑자기 한쪽 팔을 부여잡고 비칠거리였다. 적의 폭탄파편이 그의 한쪽 팔을 베여놓았던것이다. 반나마 찢어진 팔소매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였다.

그러나 그는 웃음어린 눈길로 전사들과 함께 더욱 힘차게 떼목을 밀어가며 노래를 계속 불렀다. 전사들은 그를 따라 더욱 소리높이 노래를 부르며 억세게 떼목을 밀어갔다. 드디여 아군은 8월 11일까지 전반적으로 락동강을 도하하였다. 이처럼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구상을 실현하는 길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은 그이의 충직한 전사였다.

그토록 위대한 수령님께 충직했던 그는 주체39(1950)년 9월 8일 수령님의 작전적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서 너무도 갑자기 전사하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애석해하시며 그의 공적을 길이 전하기 위한 여러가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의 장례식이 끝난 후 집무실에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식사도 잊으신채 온밤을 지새우시며 자신의 한팔이 떨어졌다고 뇌이고 또 뇌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렇듯 그를 자신의 한 부분처럼 여기시였던것이다.

항일혁명투사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시는 과업을 받아안을 때마다 그것을 자신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과 믿음으로 간직하고 한치의 드팀도 없이 결사관철하군 하였다.

주체39(1950)년 10월 중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 최용건을 야전지휘소의 작전실로 부르시였다.

수령님께서 그를 부르신것은 그에게 황초령일대의 방어임무를 맡겨주시기 위해서였다.

당시 적들은 동서 두 공격집단간의 련계를 제2전선부대의 방해가 없는 지대에서 실현해보려고 꾀하면서 황초령을 넘어 장진-강계-만포로 진출할것을 계획하였으므로 황초령일대의 방어는 적의 동서집단간의 협동을 차단하고 최고사령부와 반공격기지의 안전을 보위함에 있어서도 커다란 의의를 가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임무를 항일대전의 오랜 투쟁경험을 가지고있는 항일투사에게 맡기기로 결심하시였던것이다.

방금 최전선에서 돌아온 투사의 얼굴은 피로가 짙게 어려있었고 팔에는 붕대가 감겨져있었다.

심려어린 안색으로 이윽토록 그를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그의 팔을 쓰다듬으시며 아직도 상처에 열이 있다고 못내 걱정하시면서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작전대곁을 오가시기만 하시였다.

치렬한 격전이 계속되는 전장에서 끼니도 번지면서 싸우다가 부상까지 당하고 온 전사를 제대로 쉬우지도 못하시고 또다시 새로운 싸움터로 떠나보내셔야 하는 그이의 가슴은 미여지는듯 아프시였지만 전쟁의 운명, 조국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대사를 두고 다른 길은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형편을 료해하시고나서 그에게 이미 무르익혀오신 반공격구상을 알려주시면서 아군의 반공격기지를 위협하는 적의 기도를 분쇄하기 위하여 황초령계선에서 적을 결정적으로 견제할데 대한 구체적인 과업을 주시고 그길로 떠나보내시였다.

수령님께서 주신 임무를 받아안은 투사는 그것을 크나큰 믿음으로, 더없는 영광으로 간직하고 즉시 새로운 초소로 떠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그가 야전지휘소를 나간 다음 자신께서 드셔야 할 식사까지 그대로 꾸려 그의 부관에게 들려주시며 어서 차에 실으라고 다정히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아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시여 마가을의 찬바람을 맞으시며 야전지휘소의 크지 않은 뜨락에 오래도록 서계시였다.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온몸으로 절감하면서 한달음에 새로운 방어현장에 도착한 투사는 인민군전사들과 함께 결사전을 벌려 황초령과 부전령, 매덕령일대에서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김으로써 그이께서 주신 명령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그때를 회고하시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동무는 며칠씩 굶으면서 고생하였고 게다가 부상까지 당하고 우리를 찾아왔는데 하루밤 재우지도 않고 당장 나가라고 하였지만 아무말없이 그길로 떠나갔습니다. 그때 우리 나라에 와있던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 광경을 보고 당신들, 빨찌산투쟁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강한줄은 몰랐다고 감탄하면서 울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적후제2전선을 펴는데서도 항일혁명투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 수행하도록 하시였다.

주체39(1950)년 11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의 야전지휘소에서 적후천리 머나먼 길을 헤쳐온 항일혁명투사인 제2군단장 최현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련합부대 대원들의 건강상태며 후방공급정형을 세세히 알아보시고나서 그에게 적들의 움직임과 아군의 전투행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서 새로운 작전적방침에 대하여 말씀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제2군단이 황해도와 강원도일대의 넓은 지대를 차지하고 적극적인 적후투쟁을 벌려 적의 뒤통수를 타격할데 대한 임무를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작전지도우에 표시된 도로들을 하나하나 짚으시면서 적들의 차후행동에 대처한 련합부대의 활동지역까지 밝혀주시였으며 적후투쟁을 잘하기 위한 방도들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날 적후로 떠나가는 그를 위해 점심식사자리도 마련하시였다.

군단장은 곧 떠날 차비를 하였다. 그라고 어찌 위대한 수령님의 곁에 다문 얼마라도 더 있고싶은 생각이 없었으랴만 수령님의 작전적방침을 하루빨리 실현하여 그이의 심려를 덜어드리는것이 전사의 의무이며 본분이라고 생각하였기에 더는 지체할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그가 금방 떠나려고 하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기다리라고 하시고는 부관을 부르시더니 자신의 외투를 가져오게 하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영문을 모르고 서있는 그에게 부관이 가져온 털외투를 주시면서 추운데 입고가라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련합부대장인 그에게 외투가 없을가봐 주시는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눈에 묻힌 산발을 헤치며 또다시 적후로 떠나가는 전사에게 주고 또 주고싶으신 한없는 사랑이였으며 말로써는 다할수 없는 크나큰 믿음이였다.

그 사랑과 믿음을 안고 최현은 대오의 선두에서 랑림산줄기의 깊은 수림속을 헤치며 남으로 나갔다.

적후로 들어간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치신대로 든든한 근거지를 마련하고 수천㎞²의 활동지역을 장악하였다. 그의 지휘밑에 련합부대는 강원도와 황해도, 평안남도일대를 종횡무진하며 적배후교란작전과 타격전을 과감히 전개하였다. 제2전선부대들의 활동령역은 새로운 반공격을 위한 제1차작전때에 이르러 2만 2천㎞²로 넓어졌다.

당시 일부 부르죠아군사평론가들은 최현이 이끄는 제2군단을 가리켜 《걷는 공정군단》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군단이 하늘에서가 아니라 땅우에서 항공륙전대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였다는 뜻이다. 적후전선부대들의 눈부신 활동은 적들을 전률케 하였으며 전국의 근본적전환을 열어놓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천출명장 김일성장군님의 작전적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친 항일혁명투사들가운데는 안동해방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사단장 최춘국도 있었다.

적들을 안동지역에서 포위소멸하고 락동강계선으로 진출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방침을 받들고 그가 지휘하는 사단이 안동계선에 이른것은 주체39(1950)년 7월말이였다.

정황을 료해한 그는 곧 참모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전투명령을 관하구분대들에 하달하였다.

공격은 보조타격방향에서 행동하는 련대가 적의 후방을 타격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적을 완전포위하기 위해서였다. 계속하여 한 련대가 적의 익측을 공격함과 동시에 주타격방향의 련대는 적을 정면으로 타격하였다. 위력한 사단포화력이 적진을 들부시며 아군의 공격을 엄호하였다.

이 시각 사단장은 지휘소에서 수시로 변화하는 정황에 따른 전투지휘를 하고있었다.

발악적으로 달려드는 적기편대의 기습으로 하여 지휘소의 곁에서는 폭탄이 작렬하고 폭탄파편이 지휘소안에까지 날아들었다.

사단참모장이 그에게 자기가 작전지휘를 하겠으니 빨리 자리를 옮길것을 거듭 요구하였지만 그는 《아니요. 이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나에게 주신 전투임무요. 명령은 누구도 대신할수 없지 않소?》라고 하면서 지휘소를 뜨지 않았다.

그 순간 요란한 폭음과 콩볶듯 하는 적기의 기관총소리가 들리더니 야전지휘소가 폭연에 잠기였다.

참모장은 그속에서 사단장이 쓰러지는것을 보았다. 중상을 입은것이였다.

군의일군들과 참모부일군들이 달려왔을 때 사단장의 생명은 경각에 이르고있었다.

모두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가까스로 눈을 뜬 그가 군의에게 자기 생명을 5분만 더 연장시켜달라고 간청하는것이였다.

5분, 사람의 한생에서 너무나도 짧은 순간이다.

생의 마지막 5분동안에 남겨야 할 말도 많았건만 그는 이 시간마저도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방침을 관철하는데 깡그리 바치였다.

최후의 5분동안에 사단장은 모지름을 써가며 안동의 적을 완전히 포위소멸할 자기의 작전적의도를 참모장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나서 《내대신 동무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끝까지 완수해줄것을 부탁하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백두의 설한풍속에서 억세게 자라난 항일투사들을 굳게 믿으시고 그들에게 가장 어렵고 중요한 과업을 주시였으며 투사들은 가장 고결하고 숭고한 혁명적의리로 그이의 명령과 지시를 결사관철하였다.

자기 령도자의 구상과 의도를 실현하는 길에서 항일혁명투사들이 발휘한 숭고한 정신세계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있어서 고귀한 귀감으로 되였으며 그들을 영웅적위훈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