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 장군 통일일화』 중에서 

 

   

《우리가 펴나가는 광폭정치는 만사람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는 숭고한 인간애의 정치이며 민족의 모든 계급, 계층을 나라와 민족의 공동위업을 위하여 굳게 묶어세우는 가장 폭넓은 애국애족의 정치입니다.》

김 정 일 

 

 

주체49(1960)년 봄 남조선에서 4. 19인민봉기가 일어났을 때에 있은 일이다.

여러 신문, 방송들은 련일 남조선인민들의 4월인민봉기소식을 전하고있었다.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서울한성녀자중학교 진영숙학생의 유서와 희생에 대한 소식을 실은 신문을 보시게 되시였다.

피의 화요일로 불리운 4월 19일, 그 항쟁의 거리에서 자유와 민주의 꽃으로 쓰러진 진영숙학생은 시위에 나가기 전에 자기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줄 압니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님, …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요.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주세요. 저의 마음은 이미 거리로 나가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해서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셔요.…》

진영숙학생은 이 편지를 남기고 시위대오의 선두에서 싸우다가 원쑤들의 총탄에 맞아 붉은 선혈로 항쟁의 마당을 적시며 쓰러졌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내용의 신문기사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으시였다.  

신문을 읽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훌륭하고 기특한 소녀의 모습을 그려보시며 애절한 마음을 금할수 없으시여 식사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시고 밤잠도 주무시지 못하시였다.

살벌한 땅에서 태여난탓에 조국의 하늘을 밝게 비치는 따사로운 해빛 한번 마음껏 받아보지 못하고 민주와 통일을 목이 타도록 웨치다가 너무도 짧은 한생을 마친 소녀를 생각하니 가슴아프시였던것이다.

이튿날 아침이였다.

일찌기 학교로 나가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체 교직원, 학생들에게 진영숙학생의 투쟁소식과 유서내용에 대하여 알려주시였다.

그러자 교직원, 학생 누구라할것없이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한 항쟁의 거리에서 용감히 싸우다 쓰러진 그의 영웅적소행에 감동을 금치 못해하였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나어린 그를 앗아간 원쑤들을 규탄하며 진영숙을 살려내라고 웨치기까지 하였다.  

순식간에 온 학교가 남조선파쑈《정권》을 절규하는 성토장으로 변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체 교직원, 학생들에게 진영숙을 남산고중(당시)의 명예학생으로 학생명단에 등록할것을 호소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매일 아침 학생들의 출석을 호명할 때에는 반드시 그의 이름을 불러주도록 교원들에게 제기하시였다.

피의 광장에 쓰러진 그가 삭막하고 매정한 남녘땅에서 고결한 생의 흔적마저 짓밟히도록 그냥 둘수 없다는 그이의 깊은 뜻이 어린 호소였다.

교직원, 학생들은 크게 감동되여 경애하는 장군님의 호소에 적극 지지찬동하였다.

그때부터 진영숙학생의 이름은 교내의 일상생활과 여러 행사들에서 산 사람처럼 호명되였고 그때마다 남녘겨레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을 지지성원하는 청년학생들의 가슴은 의로운 련대감으로 높이 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의 품이 있어 참다운 애국으로 청춘을 빛내인 남조선청년학생이 어찌 진영숙학생뿐이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청춘을 바친 서울대학교의 박종철, 박혜정, 한양대학교의 한영현, 연세대학교의 리한렬, 명지대학교의 강경대, 성균관대학교의 김귀정, 동국대학교의 남태현, 전남대학교의 박관현, 고려대학교의 김두황 등 수십여명의 청년학생들을 공화국의 각 대학들에 명예학생으로 등록하고 명예졸업증도 수여하도록 하시였다.

하여 그들의 이름과 넋은 오늘도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남아 조국통일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