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만 있으면 천만대적도 두렵지 않고 천하도 얻을수 있다는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과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나날에 철의 진리로 새기신 좌우명이였다.

이러한 좌우명을 지니셨기에 그이께서는 혁명투쟁도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시작하시였고 간고하고 시련에 찬 투쟁의 길도 동지애를 천하제일무기로 하여 헤쳐오시였으며 그 과정에 위대한 동지애의 력사를 창조하시였다.

그 위대한 동지애의 력사에는 준엄한 전화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과 항일혁명투사 김책사이에 맺어진 사랑과 믿음, 고결한 혁명적의리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책동무는 자기의 전생애를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바친 참된 혁명가, 공산주의자였으며 나의 가장 친근한 혁명동지였습니다.》

조국해방전쟁이 개시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각부수상 겸 산업상으로 일하고있던 김책에게 전선사령관의 중책을 맡겨주시였다. 나라가 해방된 후 평양학원 초대원장, 북조선인민위원회 부위원장 겸 민족보위국장, 공화국 내각부수상 겸 산업상의 중임을 련이어 맡겨오신 그에게 또다시 제일 어렵고 중요한 초소를 맡겨주신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최전선으로 떠나게 될 그를 만나시여 오래동안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우리 이 전쟁을 이겨놓고 잔치를 차리자고, 그 잔치날을 최고사령관과 전선사령관이 힘을 합쳐 앞당겨오자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에 대한 그이의 신임과 기대는 이토록 큰것이였다.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은 김책은 전선으로 떠나기에 앞서 그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장군님, 제가 지난날 부대도 좀 거느려보고 전투도 해보았지만 이렇게 큰 전선과 대련합부대를 지휘해본 일이 있습니까.

그렇지만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이 전쟁을 승리에로 이끌어주시기에 힘이 솟습니다.

제 꼭 장군님의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떠나간 전사가 못내 그리우시여 수차례나 전선사령부를 찾아주시였다.

그때마다 그이께서는 그의 건강에 대하여 일일이 알아보시고 그의 건강한 모습을 보시고서야 마음을 놓군 하시였으며 아무리 바빠도 제시간에 식사도 하고 교대로 눈도 붙이면서 무리하게 일하지 말데 대한 뜨거운 당부의 말씀도 해주시였다. 그리고 그가 전선지휘에서 애로를 느끼고있을 때에는 전선형편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킬수 있는 령활한 작전전술적묘책들도 세워주시였다.

자신께서는 그 멀고 위험한 수백리길을 헤쳐오신 피로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끊임없는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면서도 오히려 사랑하는 전사의 건강을 념려하시는 그이의 뜨거운 사랑은 김책을 숭고한 동지애의 세계로 이끌어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안보에 자리잡은 전선사령부를 찾으셨을 때였다.

이날 전선사령부 참모장으로부터 특별경비조직에 대하여 보고받은 김책은 근무조 성원들의 장구류와 무장상태를 깐깐히 검열하고난 다음 빈틈없이 잘 준비되였다고 하고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오늘 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계시는 혁명의 사령부 문전쌍보초는 이 김책과 김일동무요. 교대는 필요없소.》

그 시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사령관이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자 이상한 생각이 드시였다.

달빛이 흘러드는 창가로 다가가시여 밖을 내다보시던 그이께서는 순간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게 되시였다.

전선사령관 김책이 허리에 권총을 차고 출입문바깥계단에 차렷자세를 하고 서있는것이였다. 그 맞은편에는 군사위원 김일이 그처럼 권총을 차고 같은 자세로 서있었다. 이윽고 참모장이 그들앞에 나타나 순찰중 다른 이상이 없다고 조용히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들도 참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뭉클해오면서 당장 그들을 다 끌어안고 방으로 들어오고싶으신 충동이 북받치시였다. 그렇지만 자신께서 아무리 그러시더라도 그들이 절대로 응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드시자 그들의 눈물겨운 성의를 받아들이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침대에 눕고싶으신 생각은 조금도 없으시였다. 전사들과 함께 이밤을 새고싶으시였으며 이밤과 함께 그들을 지켜주고싶으신 마음이 앞서시였다. 하여 그이께서는 새날이 밝아올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시고 창가에 서시여 그들과 함께 맺어진 지난날의 가지가지의 사연들을 깊은 추억속에 더듬어보시였다.

수령은 전사들을 생각하며 밤을 지새우고 전사들은 수령의 안녕을 지켜 총대가 되고 성새와 방패가 된 이 모습은 수령과 전사들사이에 맺어진 가장 숭고한 동지적관계를 보여주는 불멸의 화폭이였다.

참다운 동지적사랑과 의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 자기희생에서 표현된다.

조국앞에 시련이 닥쳐왔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적들이 사리원을 넘어서자 전선사령관 김책은 중화, 상원, 강동일대에 평양방위선을 구축해놓고 결사전을 준비하였다.

그때 그는 평양을 방위하기 위한 전투에 나선 병사들앞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병사들! 우리모두는 평양성을 지키는 창이 되고 칼이 되여 이 길바닥에 박히자! 원쑤놈들은 그 창, 그 칼 하나하나를 밟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 길에 들어서지 못할것이요.

우리들은 만일 살이 찢겨 뼈만 남더라도 그 뼈에 불을 달아 원쑤들의 무리속으로 날아들자!》

그가 한 이 말은 전사들에게 앞서 자신에게 먼저 한 말이기도 하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최고사령부를 옮기실 때까지 단 한놈의 적도, 단 한대의 적땅크도 평양에 들여놓지 않을것을 전선사령관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의 평범한 《전사》로서 그이께 마음속맹세를 올린것이였다.

전투가 시작되자 그는 중화에서 상원지구로, 상원에서 다시 강동지구로 오가며 평양방어전투를 지휘하여 검질기게 달려드는 적들의 공격을 좌절시키였다. 한편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가 후퇴해들어오는 부대들로 방위력량을 보강하고 끝까지 견지하겠으니 그이께서만은 최고사령부 성원들을 데리고 평양을 떠나주실것을 여러차례 간청하였다.

그러던중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부관으로부터 적들의 공격을 그만큼 지체시켰으면 되였으니 이제는 후퇴할데 대한 그이의 명령을 받게 되였다.

부관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최고사령부의 한 일군에게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도 전달하였다.

《김책동무가 왜 아직도 오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세가 긴박해지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는지 잠시도 마음을 놓을수 없습니다.

김책동무에게 다시 련락을 띄워 빨리 평양에 오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이의 이 말씀에서 전사들의 신상에 대한 걱정으로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는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을 다시금 심장으로 절감한 김책은 후퇴의 길에 오른것이 아니라 자기의 당원증만을 보내여왔다. 최후결사전을 하기로 결심한것이였다.

그의 이 비장한 행동에서 사랑하는 전사의 심중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로 그를 찾으시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김책동무! 동무가 들어오지 않으면 나도 평양을 떠나지 않겠소.》

그때에야 김책은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에 눈물을 머금으며 방어부대들을 데리고 평양으로 들어왔다.

이렇듯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김책을 자신처럼 여기시였으며 김책의 마음은 언제나 수령님곁에 가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처럼 아끼고 사랑하시던 김책을 마지막으로 보신것은 주체40(1951)년 1월 30일이였다.

이 시기 김책은 다시 내각에 소환되여 내각부수상사업을 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저녁 건지리의 골안에 자리잡은 최고사령부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0097호 《조국해방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더욱 용감히 투쟁하라》의 초안을 검토하고계시였는데 불쑥 김책이 들어서더니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생일날에 오지 못한데 대하여 사과의 말씀을 올리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이께 두가지 청을 드리였다. 두가지 청이란 하나는 그이께서 그날 사업을 그만하시고 밖에 나가 산보하시는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그날 저녁식사에 자기도 자리를 함께 하고싶다는것이였다.

그의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내가 김책동무의 그 청이야 못 들어주겠습니까, 먼저 산보부터 합시다라고 말씀하시고나서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밤의 고요가 깃든 밖으로 나가신 그이께서는 김책과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시며 골안을 거니시였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 때 갑자기 사위가 새까매지며 차고 쌀쌀한 바람이 불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불안한 눈길로 하늘을 쳐다보던 김책은 황급히 그이께 이젠 그만 돌아가시자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새 민주조선건설시기에도 그러했지만 전쟁이 일어난 후 김책동무가 안고있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그러니 언제 이런 산보길을 걸어보면서 휴식을 해보았겠는가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팔을 정히 끼시고 다시 걸음을 떼시였다.

그제서야 자기의 청에 쾌히 동의하신 수령님의 깊은 심중을 알게 된 김책은 뜨거운 격정이 어린 눈길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김책과 함께 산보길에서 돌아오신 수령님께서는 추운 밖에 오래 있은 그를 념려하시여 숙소의 온돌방으로 안내하시고는 그에게 더운물을 한고뿌 따라 권하시였다.

그런데 웬 일인지 고뿌를 받으려고 몸을 일으켜세우던 김책이 오른발로 왼발 뒤꿈치를 가리우는것이였다.

이상한 생각이 드시여 그의 발을 주의깊게 살펴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마침내 그 사연을 알게 되시였다. 그가 뒤꿈치가 꿰진 양말을 신고있었던것이다.

마음이 아릿해나신 그이께서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벽장에서 양말 한컬레를 꺼내시여 그앞에 내놓으시였다. 그리고 그가 새 양말을 바꿔신는것을 보시고서야 마음을 놓으시였다.

이날 김책은 작별을 앞두고 위대한 수령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였다.

《장군님, 미국놈들과의 싸움은 저희들이 하겠으니 장군님께서는 너무 과로하지 마시고 건강에 류의하여주십시오.》

이것이 수령님께 올린 김책의 마지막부탁이였다.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받드는 길에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뛰던 그의 심장이 그만 고동을 멈추었던것이다.

뜻밖의 비보를 받으시고 김책이 사업하던 내각《청사》 사무실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저히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시여 나무침대에 조용히 누워있는 그의 가슴에 손을 얹으신채 《김책이!》, 《김책이!》 하고 거듭 불러보시였다. 하건만 그는 여전히 두눈을 감고 대답이 없었다.

그이께서는 이제까지 마음속으로 부인해오시던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절통함을 금치 못하시여 《김책이! 이게 어떻게…》 하시며 말끝을 맺지 못하시였다. 그이의 안광에 뜨거운것이 고이고있었다.

홍명희, 허헌, 최용건을 비롯하여 그의 령구곁에서 호상을 서던 사람들속에서 흐느낌소리가 터져나왔다.

함께 힘을 합쳐 전쟁승리의 잔치날을 앞당겨오자고 하셨던 전사, 불과 몇시간전까지만 하여도 그이의 건강을 념려하며 떠나간 사랑하는 전사를 불시에 잃으셨으니 그 상실의 아픔이 얼마나 크셨으랴.

그무렵 수도의 하늘가로는 내각결정 제201호 《고 김책동지의 빛나는 공적을 영원히 기념할데 대하여》를 알리는 방송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이의 가르치심에 따라 채택된 내각결정에 관한 보도였다.

이 결정에 따라 성진시와 평양공업대학을 각각 김책시, 김책공업대학으로 명명하고 인민군대의 한 군관학교를 김책의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는 등 김책의 공적을 길이 전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취해졌으며 그후 김책시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지게 되였다.

김책을 못 잊어하시고 위하시는 수령님의 마음은 이렇듯 뜨겁고 고결한것이였으며 그것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더해만 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을 때 일군들은 그이께서 생전에 애용하시던 금고를 열어보게 되였는데 그안에는 한장의 사진과 두통의 편지뿐이였다. 그 사진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김책과 함께 찍으신 사진이였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금고라고 하면 돈이나 금붙이, 귀중품 등을 간수하는것으로 여겼지만 그이께서는 여기에 사랑하는 전사의 사진을 근 반세기가까이 보관해오셨던것이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생긴이래 처음 보는 이 사실앞에서 세상사람들은 그이의 고결한 인간상에 대하여, 그이와 전사들사이에 맺어지는 동지적관계의 참모습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절감하였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과 전사들사이의 관계는 명령하고 그에 복종하는 단순한 상하관계가 아니라 사랑과 믿음을 주는 가장 숭고한 동지적관계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은 그 숭고한 사랑의 세계의 중심에 서계시는 은혜로운 태양, 동지애의 위대한 귀감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