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정의의 수호자』중에서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은 언제나 전선길에 계신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꽃피는 정원이나 잠풍한 호수가, 안온한 서재가 아니라 찬바람, 눈보라 몰아치고 검은구름 밀려오는 천리방선 조국의 고지에, 우리의 최고사령부는 후방이 아니라 원쑤의 숨통을 눈앞에 겨눈 최전방에 있다.

돌이켜보면 경애하는 장군님의 40여성상의 선군혁명령도사는 전선행 야전차, 《인민행렬차》를 타시고 온 나라 방방곡곡을 쉬임없이 찾으시여 군대와 인민을 주체혁명위업완성의 한길로 이끄신 불멸의 력사였다. 선군정치를 더욱 전면적으로 펼쳐나가신 1990년대 중엽, 다박솔초소로부터 끊임없이 이어가신 전선시찰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혁명력사에서 특출한 자리를 차지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앞으로도 전사들과 같이 흙냄새를 맡고 포연이 자욱한 전투초소들에서 전사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최고사령관이 될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며 험준한 령길과 파도사나운 배길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전선동부에서 중부와 서부, 적아쌍방이 총구를 맞대고있는 최전연초소로부터 후방구분대에 이르기까지 인민군부대들을 찾아 빨찌산야전식으로 끊임없는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주체85(1996)년 2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선동부의 최전방초소 351고지를 찾으시였다.

일군들은 다른데와는 달리 351고지는 위험하다고, 적들이 무반동포로 이 고지를 겨누고있기때문에 나가시면 안된다고 경애하는 장군님께 간절히 말씀올리며 그이의 앞길을 막아나섰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351고지가 아무리 위험하여도 전사들이 있는 곳이기에 가야 한다시며 눈보라 휘몰아치는 바람세찬 고지우에 오르시였다.

351고지로부터 적초소까지의 거리는 불과 1,200m,

언제 적들의 총포탄이 날아와 터질지 예측할수 없는 곳이였다. 그 전날만 하여도 적초소에서는 351고지를 향해 수십발의 총포사격을 가하며 도발을 걸어왔었다.

그래서 부대지휘관들과 일군들이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여기에 오래 서계시는것은 위험하다고 안절부절 못하며 장군님을 우러르고있을 때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태연하게 웃으시며 일당백초병들이 초소를 튼튼히 지키고있기때문에 무서울것이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백두령장의 무비의 담력과 배짱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력사의 순간이였다.

비범한 군사적예지로 적들의 력량배치와 움직임을 손금보듯 꿰뚫어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적들의 음흉한 기도를 파탄시키고 아군의 전략전술적의도들을 완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으며 경계근무를 서고있는 두 병사들을 만나시여 솜동복과 솜신발의 두터이도 가늠해보시고 그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까지도 세워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351고지에 대한 전선시찰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 군대와 인민은 그이의 안녕을 바라는 간절한 소원을 아뢰여왔다.

일군들로부터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이 내가 351고지 최전연초소에 나갔다고 걱정한다는데 일없다고, 조국의 안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일인데 위험하다고 안가서야 되겠는가고, 수령님께서는 한평생을 인민을 위해 험한 길을 걸으시였다고 하시면서 《나도 조국과 인민을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험한 길도 다 걸으렵니다.》라고 가슴뜨거운 말씀을 하시였다.

조국을 지키고 인민을 행복하게 할수만 있다면 험한 가시밭이 가로놓이고 위험한 칼벼랑이 막아선대도 무조건 가야 한다는 철의 신념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숭고한 헌신의 뜻이 비낀 말씀이였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요일, 명절날의 휴식도 바쳐가시며 초소와 훈련장, 군항과 비행장을 끊임없이 찾고 또 찾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언제 한번 휴식에 대하여 생각해본적이 없으시였다. 오히려 인민들의 행복한 삶의 요람을 지켜주는것을 더없는 보람과 기쁨으로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군의 부대와 구분대들을 쉼없이 찾으시였다.

그러한 날들가운데 추위가 몹시 심하였던 주체85(1996)년말에 진행하신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은 오늘도 감동적인 혁명일화로 전해지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해의 말에 진행하신 김일성정치대학, 근위 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 강건종합군관학교에 대한 현지시찰은 휴식일도 없이 걸으신 감동적인 선군장정의 대표적실례이다.

그리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해의 12월 24일 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5돐기념일에는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의 공연을 보아주시고 12월 31일에는 조선인민군 한 구분대를 현지시찰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 다음날인 주체86(1997)년 1월 1일과 2일 양력설의 명절휴식도 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로 바치시였다는것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혁명일화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휴식일은 물론 설날과 민족최대의 명절인 태양절과 자신의 탄생일에도 쉬임없이 인민군부대와 구분대를 찾아 전선길을 걸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6(1997)년 양력설에는 만경대혁명학원을, 주체87(1998)년 양력설날에는 조선인민군 한 군부대를 찾으시였으며 주체86(1997)년 4월 15일은 최전연초소인 1211고지, 주체87(1998)년 4월 15일은 조선인민군 한 군부대와 조선인민군 금성친위부대를, 자신의 탄생일인 주체88(1999)년 2월 16일에는 북방의 한 군부대 동기훈련장에서 온 하루를 보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수한 잠바옷차림으로 야전승용차를 《집무실》, 《작전실》로 삼으시고 비바람, 눈보라 휘몰아쳐도 언제나 전선길에 계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최전연의 그 어디든 조국을 지켜선 군인들이 있고 초소가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멀고 위험한 곳이라도 다 찾으시여 사랑하는 병사들에게 무적의 나래를 펼쳐주시였다.

조국의 운명을 위하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전선에서 전선에로 끊임없는 령도의 자욱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러 인민이 격정속에 터치는 심장의 웨침은 무엇인가.

그것은 장군님은 어제도 최전선, 오늘도 최전선, 언제나 최전선에 계신다, 강철의 령장 최고사령관을 혁명의 최전선, 최진두에 모시여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는것이다.

이것은 풍랑 사나운 우리 시대와 력사앞에 류례없이  숭엄하게 부각되는 위대한 령도자, 위대한 장군의 거룩한 위인상을 우러르며 인민이 온넋으로 페부에 새긴 신념이다.

주체93(2004)년 10월 4일 머나먼 천리전선길을 쉬임없이 걸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일군들은 그이께서 잠시라도 편히 쉬실것을 간절히 말씀드리였다.

그때 그이께서는 나는 언제나 조국과 인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전선길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는데서 삶의 보람과 긍지를 느끼군 한다고, 궂은날 마른날 가림이 없이 조국과 인민의 안녕과 행복을 지켜가는 전선길은 나의 삶과 투쟁의 전부라고 하시면서 전선을 끊임없이 찾아가는것은 자신의 중요한 일과의 하나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전선길은 나의 삶과 투쟁의 전부!

조국과 인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헌신의 세계가 이 말씀에 집약되여있다.

세계 그 어느 나라 군건설사에 나라의 령도자, 군대의 최고사령관이 하루이틀, 한두달도 아닌 1년내내 최전방초소들을 비롯한 전군에 대한 현지지도력사를 수놓은적이 있었던가.

그 누가 내 마음 몰라줘도 몰라준대도 희망안고 이길을 가고 가리라는 신념의 노래를 부르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험난한 전선길을 걷고 걸으시였다. 그 력사의 전선길은 격변하는 국제정치정세와 군사정세속에서도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굳건히 지켜낸 위대한 사회주의수호의 길이였고 역경을 순경으로 바꾸어놓은 전환의 길이였으며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해나가시는 신념과 의지의 길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헤쳐가신 신념과 의지의 길이 없었다면 우리 공화국은 벌써 손털고 나앉아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된지 오랬을것이다.

전선바람 넘치는 수수한 잠바옷을 입으시고 조국수호와 번영을 위한 천만리전선길을 걸어오신 경애하는 장군님 계시여 군대와 인민이 더 강해지고 조선이 더 강해졌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의 전선시찰은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서 최고사령부가 언제나 최전방에 있다는것을 보여준다.

오늘도 김정일장군님은 사회주의수호의 전선길에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