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의 보고와 결론에서 제시하신 중요한 과업의 하나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의 후과를 하루빨리 가시고 후방을 튼튼히 다지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셋째로, 해방된 지역들에서 질서를 확립하고 경제를 복구하며 인민생활을 안정시켜야 하겠습니다.

… 해방된 지역들에서는 인민정권기관들과 당조직들을 급속히 복구하며 민주주의적정당, 사회단체들의 정상적활동을 보장하며 파괴된 경제를 복구하는것이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나서고있습니다.》

미제가 공화국북반부지역을 일시적으로 강점했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후과는 매우 컸다.

이 기간에 미제는 수많은 인민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하고 평화적건설시기에 이룩해놓은 모든 재부들을 파괴하였으며 인민들의 재산을 닥치는대로 략탈하였다. 도시와 농촌은 재더미로 되고 수많은 공장과 기업소들이 파괴되였다. 침략자들은 귀여운 어린이들이 아름다운 미래를 키워가던 학교들도 불태웠으며 병원들마저 마사버렸다. 미제의 이러한 만행으로 말미암아 인민들의 생활은 몹시 어려웠다. 숱한 사람들이 집을 잃고 한지에 나앉았으며 먹을것, 입을것들도 모자랐다. 전재민들은 늘어나고 살인귀들에게 부모를 빼앗긴 전재고아들이 더욱 불어났다.

이러한 사태를 시급히 수습하고 후방을 공고화하지 않고서는 전선에서의 승리를 기대할수 없었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에서 해방된 지역들에서 질서를 확립하고 경제를 복구하며 인민생활을 안정시키는것을 중요한 과업의 하나로 제시하시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방을 복구정비함에 있어서 후방을 정치사상적으로 공고히 하기 위한 사업에 선차적인 힘을 넣으시였다.

후방이 전선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한 기지로서의 역할을 다하자면 무엇보다 후방을 정치사상적으로 공고히 하여 전체 인민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튼튼히 결속시켜야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후방의 정치사상적강화는 후방공고화의 선결조건인 동시에 공고한 후방의 기본징표였다.

그이께서 후방을 정치사상적으로 공고히 하기 위한 사업에 선차적의의를 부여하신것은 바로 이때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방을 정치사상적으로 공고히 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중요한 대책들도 세워주시고 간곡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0(1951)년 1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총참모장에게 당 및 정권기관, 사회단체를 복구정비하는데 필요한 간부들을 인민군대에서 풀어주도록 하시였으며 5월초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1차반공격시기 서울과 경기도, 남강원도에 파견되여 당 및 정권기관들과 내무기관들에서 사업하던 일부 일군들을 해방된 지역에 보내주어 당 및 정권기관들을 복구하는 사업과 사회질서를 유지하게 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적들이 일시 강점하였던 지역들에서 당조직들을 정비하며 당대렬안에서 불순이색분자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당원들에 대한 재등록사업을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적들에 의하여 파괴되였던 인민정권기관들과 군중단체들을 빨리 복구정비하고 그 전투적기능과 역할을 높여나가도록 하시였다.

결과 짧은 기간에 당조직체계가 정비되고 당원들의 당생활이 정상화되였으며 당조직들이 모든 부문과 단위들에서 령도적역할을 수행할수 있게 되였다. 인민정권기관들과 민주청년동맹, 직업총동맹, 농민동맹, 녀성동맹을 비롯한 군중단체들이 제때에 복구정비되고 그 활동이 정상화되였으며 주체40(1951)년 1월부터 주체40(1951)년 4월사이에 북과 남의 민주청년동맹과 직업동맹, 농민동맹과 민주녀성동맹이 각각 하나의 단일조직으로 통합되여 조선민주청년동맹, 조선직업총동맹, 조선농민동맹, 조선민주녀성동맹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통일전선사업을 강화하는데도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시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청우당과 민주당안에서는 반동단체에 가담하여 로동당원들과 애국자들을 탄압하고 학살하는 용서치 못할 범죄행위를 감행한자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놓고 일부 일군들은 민주당과 청우당을 반동정당으로 보고 이제는 적아가 명백히 갈라졌기때문에 통일전선이 필요없게 되였다고 하면서 우당들을 적대시하고 배척하는데로 나가고있었다. 이것은 통일전선운동에 대한 편협한 좌경적견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타난 편향을 제때에 포착하시고 각급 당조직들이 미제를 반대하고 조국의 독립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서 전취하고 동원할수 있는 력량을 최대한으로 묶어세울데 대한 당의 통일전선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관철하도록 하시였다. 특히 당조직들과 일군들이 우당에 기여든 반동분자들의 범죄행위와 우당의 기본정책을 혼돈하지 말며 우당의 열성당원들을 방조하여 그들이 숨어있는 반동분자들을 적발숙청하게 하시였다.

그이의 지도밑에 통일전선사업이 더욱 강화됨으로써 민족내부에 불화와 반목을 조성하려던 미제의 음흉한 기도는 분쇄되였으며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바라는 모든 력량이 당의 두리에 튼튼히 결속되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반동들과의 투쟁을 강화하고 반동단체가담자들을 옳게 처리하기 위한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미제는 일시적강점지역에서 여러가지 반동단체들을 조직하고 악질반동분자들로 하여금 조국과 민족을 반역하는 범죄적만행을 감행하게 하였으며 일부러 여기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넣었다. 될수록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도록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악질분자들은 미제가 쫓겨간 다음에도 반동적요언을 퍼뜨리면서 파괴암해책동을 계속 감행하였으며 후퇴시기에 적들에게 추종했던 사람들을 위협공갈하여 또다시 범죄의 길로 끌어들이려고 책동하고있었다.

사태의 엄중성을 간파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동들의 준동을 전군중적인 투쟁으로 짓부셔버리도록 하시였으며 반동단체가담자들을 반드시 주동과 피동을 옳게 가려 처리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시였다.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지니신 그이께서만이 취하실수 있는 조치였다.

그이께서는 반동들과의 투쟁이 인민대중의 혁명적사기를 추켜세우는 과정으로, 우리 내부에 불신을 조성하려는 적들의 흉책을 짓부시는 과정으로 되게 하시였으며 인민대중이 직접 반동단체가담자들을 심판하여 처리하도록 하심으로써 군중을 정치적으로, 계급적으로 더욱 각성시키시였다. 또한 숨어서 준동하는 적대분자들을 적발처단하기 위한 투쟁을 강화하는것과 함께 자수자들에게는 관대정책을 실시하여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 출발을 하려는 사람들을 적극 교양개조하도록 하시였다. 반동들과의 첨예한 투쟁은 그 어떤 편향도 없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게 되였으며 혁명대오는 더욱 굳건히 다져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방을 정치사상적으로 공고히 하는 한편 해방지역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사업에도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이 시기 해방지역 인민들의 생활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기간에 미제가 악랄하게 감행한 파괴와 략탈의 후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었다. 이런 형편에서 인민생활을 하루빨리 안정시키는것은 후방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절박한 요구로, 중요한 국가적문제로 나서고있었다.

그런데 일부 일군들속에서는 전시조건만을 내걸면서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잘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있었다. 그들은 인민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외국에서 수입하여올것이라고 하였을뿐 아무러한 대책도 세우지 않고있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일군들은 전선의 물질적수요만을 보장하려고 해도 어려운데 어떻게 인민들의 생활까지 돌보겠는가고 하면서 인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있었다.

실태를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그릇된 편향을 제때에 바로잡아주시고 인민생활문제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여 해결하려고 할것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워도 자력갱생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에서 하신 보고와 결론, 주체40(1951)년 1월 21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하신 결론 《전시인민생활안정을 위한 몇가지 과업》에서와 주체40(1951)년 1월 28일에 하신 력사적인 연설 《조선로동당의 금후사업방침에 대하여》 등 여러 계기들에 인민생활을 안정시키는데서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들과 방도들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들도 세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중앙경공업공장들을 빨리 복구하고 지방산업공장들을 새로 건설하도록 하시였으며 이르는 곳마다에 생산합작사를 많이 조직하게 하시였다. 그리고 알곡생산을 늘이고 식량공급을 정확히 하며 병원과 진료소들을 빨리 복구하는 동시에 진료소가 없는 곳에 이동치료반을 파견하여 인민들에게 의료상방조를 주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세금을 덜어주고 생활비와 생활필수품공급기준을 높이게 하시였으며 전시환경을 고려하여 생활필수품에 대한 공급제를 실시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특히 전재민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그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중요한 국가적대책들을 세워주시였으며 국가가 유자녀들과 전재고아들을 맡아 책임적으로 키우도록 하는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리하여 전재민구호위원회가 조직되고 전재민들에 대한 국가적인 원호조치가 취해졌으며 총포탄이 아니라 전재민들에게 공급할 식량을 실은 군용자동차들이 달리고 인민군대의 의료성원들이 전재민들의 치료에 동원되는것과 같은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게 되였다. 해빛보다 따사로운 그이의 사랑의 손길이 있어 유자녀들과 전재고아들은 한점의 그늘도 없이 미래의 주인들로 씩씩하게 자라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밖에도 인민생활을 하루빨리 안정시키기 위한 수많은 은정어린 대책들을 세워주시였다.

사실 38°선이남으로 쫓겨간 미제가 《재진격》의 기회를 노리면서 필사적인 발악을 하고있던 시기에 전쟁의 엄혹한 참화를 가시고 인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들을 련이어 강구한다는것은 결코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오로지 《이민위천》의 숭고한 리념을 지니시고 인민을 위한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가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가렬한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이처럼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실수 있으시였다. 인민이 있어야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고 또 전쟁이 끝난 다음 우리 조국을 부강한 나라로 건설할수 있다는것이 그이께서 지니신 확고한 립장이시였다.

바로 이런분이시기에 그이께서는 인민들의 식생활에 필요한 소금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주의를 돌리시였다.

주체40(1951)년 3월 어느날 평안남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당시 강서군 팔청1리의 오서기마을을 찾으시였을 때였다.

그때 이 마을 리위원장은 친어버이심정으로 마을의 형편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는 그이의 소탈하신 품성에 끌리여 위대한 수령님께 소금이 좀 귀하다는 말씀을 올리였다.

그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이 장이나 소금근심을 해서야 되겠는가고 말씀하시면서 곧 부락에 주둔한 인민군부대의 한 지휘관을 부르시였다. 그러시고는 그 지휘관에게 지금 이 마을에 소금이 떨어져 장을 담그지 못하고있다는데 동무들이 좀 수고해주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한주일안으로 마을사람들에게 소금을 실어다줄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때로부터 사흘후 적재함에 짐을 가득 실은 여섯대의 자동차가 마을에 와닿았다. 포탄이나 전략물자들을 실어날라야 할 군용자동차에는 소금이 가득가득 실려있었다. 소금가마니를 받으면서 마을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보살피심에 격정이 북받쳐올라 뜨거운 눈물을 삼키였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적으로 농민들에게 소금을 비롯한 생활필수품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세워졌다는것,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 마을의 소금사정을 풀어주시면서 온 나라 농촌의 소금사정도 헤아리시였다는것은 알지 못하였다.

진정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품은 우리 인민의 운명도 미래도, 생활까지도 다 맡아 지켜주고 보살펴주시는 은혜로운 사랑의 품이였다.

사랑에는 보답이 따르는 법이다.

그처럼 어려운 시기에 끊임없이 돌려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온 나라 전체 인민을 무한히 고무하였으며 그들을 후방의 복구정비를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도시와 농촌, 공장과 마을에서는 낮에 밤을 이어 불꽃튀는 전투들이 벌어졌으며 수많은 공장과 농촌, 학교와 마을들이 련이어 복구되여 생산과 새 생활의 동음이 울려퍼졌다. 적들의 일시적강점시기에 조성되였던 혼란된 사태는 수습되고 모든 질서가 바로잡히였다. 도시와 농촌은 활기에 차넘치였으며 후방은 더욱 튼튼히 다져졌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후방이 빠른 시일에 성과적으로 복구정비됨으로써 전쟁의 최후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튼튼한 토대가 마련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