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조국의 북변에 자리잡고있는 자강땅 장강군에 가면 향하리라는 고장이 있다. 전쟁개시이래 처음으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린 뜻깊은 곳이다.

그 회의가 바로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였다.  

회의는 인민군대의 총반공격작전에 의하여 미제가 38°선이남으로 쫓겨가게 된 새로운 정세하에서 소집되였다.

당시 전선은 남으로 옮겨갔으나 치렬한 전투는 의연히 계속되고있었다. 자국내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원자탄사용도 고려》한다는 핵공갈성명을 발표한 미제가 새로운 군사적모험에 매달리고있었던것이다. 그리하여 전쟁은 더욱 격렬해지고 장기성을 띠게 되였다.

조성된 정세는 전선과 후방을 더욱 공고히 하여 적들에게 결정적인 공격을 들이대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갖출것을 요구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자면 당, 국가, 군대안에서 혁명적규률을 강화하고 군사분야에서 주체를 세우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인정하시고 이 문제해결을 위하여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소집을 계획하시였다.

회의준비를 기본적으로 끝내신 그이께서 고산진을 떠나시여 향하리에 도착하신것은 주체39(1950)년 12월 19일 밤이였다.

향하리는 랑림산줄기에서 흘러내리는 소마강과 남천이 합치고 앞뒤로 산이 빙 둘러선 오붓한 고장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착하시는 길로 회의참가자들의 잠자리와 식사조직, 회의장의 준비상태부터 료해하시였다.

그런데 이 시기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회의준비를 위해 이곳에 먼저 파견되고서도 회의준비를 제대로 해놓지 않고있었다.

사태가 엄중함을 아시게 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려장을 풀지도 못하신채 미진된 준비사업들을 몸소 처리하시며 회의진행에 빈틈이 없도록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신 뒤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여시여 전원회의 의정문제를 토의하시였다.

소마강변에 있는 자그마한 동기와집에 숙소를 정하신 그이께서는 구름나무삿자리를 깐 방안에 놓인 자그마한 두리반을 마주하시였다. 전원회의에 내놓으실 보고문을 완성하시려는것이였다.

밖에서는 여전히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였고 문틈에는 하얗게 성에가 끼였다. 그이께서 오시기 전에 이곳 인민들이 지성껏 손질한 집이였지만 북방의 모진 추위를 막지는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어깨우에 걸치신 외투를 몇번이나 추슬러올리시였다.

자정도 훨씬 지나 벌써 새벽 4시가 가까와오고있었다.

그런데도 그이께서는 주무실 생각을 아예 잊으신듯 조용히 밖으로 나가시였다. 뜨락을 거니시며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며 우중충한 산발들을 둘러보시던 그이께서는 천천히 샘물터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이를 따라나온 부관이 영문을 몰라하고있는데 그이께서는 손수 물을 뜨시여 세면을 하시면서 《산골샘물이 참 좋소. 겨울에는 뜨스하고 여름에는 손이 시리게 차거던. 그래서 샘물이 좋다는거요.》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이의 말씀에 부관은 뜨거운것이 가슴속에 치밀어 아무 말씀도 올리지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그저 범상하게 샘물에 대하여 말씀하고계시지만 겹쌓인 피로를 쫓으시기 위하여 추운 이 새벽에 샘물터에 나오신줄을 부관은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돌이켜보면 그이께서는 세계를 경탄시킨 총반공격작전을 빛나는 승리에로 조직지휘하시면서 전원회의문헌까지 준비하시느라고 며칠밤을 꼬박 지새우시였다. 때로는 작전대우에서 가물거리는 초불을 마주하시고 긴긴 겨울밤을 보내시기도 하시였고 때로는 마당에 있는 바위돌에 걸터앉으시여 깊은 사색속에 새날을 맞으시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 밤을 새우신 이날도 그 수많은 날들중의 하루였다.

이처럼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문헌은 아늑한 별장이나 고요한 서재에서가 아니라 격전의 포성이 지척에서 들리는 수수한 농가에서, 자그마한 두리반우에서 한자, 한자 마련되였다.

주체39(1950)년 12월 21일 향하리의 회덕골에 마련된 회의장에서는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가 열리였다.

포연을 헤치고 전국각지에서 온 회의참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고 그이의 강령적지침을 받아안게 된다는 기쁨과 감격으로 하여 누구나 흥분되여있었다.

오전 8시,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석단에 나오시였다.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회의장을 뒤흔드는 가운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정세와 당면과업》이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지난 반년동안 우리 군대와 인민이 당의 령도밑에 조국의 통일독립과 자유와 영예를 수호하기 위하여 영용하게 싸워온데 대하여 지적하시면서 전쟁행정에서 일어난 군사정세의 커다란 변화와 그에 따르는 우리 당의 방침,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과학적으로 분석총화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당면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앞에는 많은 난관이 가로놓여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쟁취한 승리에 도취하지 말고 모든 곤난을 극복하면서 계속 용감하게 전진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조성된 새로운 정세에서 당앞에 나선 과업들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며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달성하기 위하여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여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인민군대앞에 나서는 과업을 밝히시면서 군사분야에서 주체를 튼튼히 세울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군사분야에서 주체를 세우는것은 그이께서 일관하게 견지해오신 혁명무력건설의 근본원칙이였다.

그러나 6개월동안의 전쟁행정에 일부 군사지휘관들속에서는 주체가 서지 못한 현상들이 나타나고있었다. 그들은 우리 나라의 지리적특성과 실제적인 전투정황들을 구체적으로 타산함이 없이 다른 나라의 군사규정만 기계적으로 본따고있었다. 그러다보니 군사분야에서는 산악전과 야간전을 소홀히 하거나 곡사포보다도 직사포를 많이 사용하는것과 같은 결함들이 나타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결함들을 극복하고 적의 수적, 기술적우세를 짓부시기 위한 주체적전법들을 능숙하게 적용할데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면서 그 방도들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우리 나라의 지리적특성과 구체적인 전투정황에 맞게 군대의 기술장비들을 개선강화하고 전쟁행정에서 얻은 생동한 경험과 교훈을 살려 전투정치훈련을 진행하며 산악전과 야간전을 능숙하게 벌리고 보병과 포병사이의 협동작전을 잘 조직하는 등 그이께서 주신 가르치심들은 인민군대의 모든 군사활동에서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고귀한 지침이였다.

회의참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받으면서 그이께서 창시하신 주체적인 전법들을 매 작전과 전투들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그이의 군사전략과 작전적의도를 철저히 관철해나갈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날 보고에서 중요한 과업으로 언급하신것은 또한 혁명적규률을 강화하고 당의 통일단결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였다.

그이께서는 당규률을 강화하는것은 지금 우리 당사업에서 나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라고 하시면서 강력한 규률이 전당을 지배하도록 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밖에 해방된 지역들에서 질서를 확립하고 경제를 복구하며 인민생활을 안정시킬데 대한 문제, 적들이 일시적강점기간에 끼쳐놓은 사상정치적후과를 하루빨리 가시기 위한 투쟁원칙과 일시적강점지역에서 반동단체에 가담했던자들의 처리대책에 관한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명확히 밝혀주시였다.

력사적인 보고를 마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에서 승리하자면 반드시 주인다운 립장을 튼튼히 지키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양하여야 한다는것을 강조하시였다.

그이께서 보고를 마치시자 회의참가자들은 모두 일어나 열광적인 박수로 보고를 열렬히 지지찬동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력사적인 보고는 조국해방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인민군대와 인민의 앞길을 밝혀주는 휘황한 등대였으며 그들에게 백배천배의 용기와 필승의 신심을 안겨주는 위대한 고무적기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는 당의 통일단결을 수호하고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의 후과를 빨리 가시고 후방을 튼튼히 다져 전쟁의 승리를 앞당기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였다.

이 회의를 계기로 모든 부문에서 강철같은 규률을 확립하고 군사분야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며 후방을 복구정비하기 위한 투쟁이 더욱 힘차게 벌어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