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미제가 새로운 《총공세》, 《크리스마스총공세》준비를 본격적으로 다그치기 시작한것은 《감은절공세》에서 참패를 당한 그때부터였다. 적들의 작전적기도는 새로운 《총공세》를 통하여 《성탄절》인 12월 25일이전에 압록강, 두만강계선까지 점령하고 《전쟁을 종결한다》는 극히 모험적인것이였다.

《공세》의 기본계획은 3개 군단의 전력을 80㎞정면에서 병진시켜 부채살모양으로 압록강계선의 300㎞전선으로 진격하는것이였다. 이를 위하여 미제는 인민군대의 반타격에 여지없이 얻어맞은 부대들을 새로 보강하는 한편 제2제대와 작전예비대까지 모조리 전선으로 내몰았다. 그야말로 모든 력량을 총동원하였다. 때문에 트루맨을 비롯한 전쟁두목들은 《공세》의 승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살인장군 맥아더는 《미국병사들에게 전하여라! 그들이 압록강까지 다달은 때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리라는것을 …

나는 그들이 크리스마스성찬을 자기 고향에서 먹게 되리라는 나의 성명을 확인한다.》고 고아대면서 《공세》개시를 예언하는 성명까지 발표하였다. 그만큼 미제는 저들의 승리에 대하여 과신하고 오만하게 행동하였다.

수많은 나라 신문, 통신, 방송들의 초점이 조선으로 쏠리였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진보적인류는 우려를 표시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미제의 거만한 코대를 꺾어버리고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줄 대담한 작전을 펼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앞으로 진행할 작전에서 우리는 주타격방향을 전선서부에 두고 전반적전선에서 반공격으로 넘어가며 주력부대들과 적후방에서 활동하고있는 제2전선부대들과의 배합작전을 적극 벌려 적의 기본집단들을 청천강, 장진호반, 함흥, 청진일대에서 포위소멸하고 공화국북반부의 전지역을 적의 강점으로부터 해방할것입니다. 그리고 전투성과를 38도선이남으로 계속 확대하여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촉진시킬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본작전적방침입니다.》

제2전선부대들의 배후타격과 배합한 전전선에서의 총반공격전!

실로 이 작전은 북반부지역에 깊숙이 들어온 침략집단을 일격에 격파분쇄하기 위한 일대 섬멸전이였으며 전쟁사상 보기 드문 대규모적인 반공격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전의 성과적실현을 위하여 주타격방향은 전선서부에, 보조타격방향은 전선동부에 두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 전선서부를 주타격방향으로 선택하신것은 이 지역이 반공격의 전략적목적을 가장 빨리 달성할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있었기때문이였다. 당시 적들은 전선서부에 지상부대의 기본주력을 투입하였으나 가까운 곳에 강력한 예비대를 가지고있지 못했다. 반면에 아군은 전선으로부터 40∼60㎞ 떨어진 곳에서 적후제2전선부대들이 행동하고있어 그들과의 배합작전을 성과적으로 실현할수 있었고 도로망도 전선동부에 비해 발달되여있었으며 38°선까지의 거리도 가까왔다. 한편 전선서부의 미8군이 붕괴될 경우 전선동부의 미10군단은 자동적으로 퇴각하지 않을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어느모로 보나 전선서부는 정규전과 유격전의 능숙한 배합을 실현할수 있고 부대기동의 지대적조건이 보장되여있으며 적의 요진통을 때려 반공격의 전략적목적을 빨리 달성할수 있는 최상의 타격방향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이 총반공격에로 이행함에 있어서 먼저 전선서부에서, 다음 전선동부에서 반공격으로 넘어가도록 하시였으며 주체39(1950)년 11월 하순 인민군부대들에 전전선에서 총반공격으로 넘어갈것을 명령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반공격명령에 따라 반공격을 개시한 전선서부의 인민군련합부대들은 첫 순간에 적의 공격을 좌절시키는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타격앞에 적들의 공격서렬은 물먹은 담벽처럼 무너져버렸다. 미25사는 운산지역에서 포위되여 섬멸적타격을 받았고 희천으로 침공한 미2사는 병력의 절반을 잃었으며 정주 북쪽계선에 기여들었던 영국27려단은 순식간에 격파되여 박천방향으로 쫓겨났다. 덕천, 녕원지역에 들이밀었던 적들 역시 포위되여 또다시 《감은절공세》때와 같은 파멸적위기에 빠졌다. 미제는 괴멸위기에 빠진 부대들의 퇴각을 엄호하기 위해 급히 미1기병사단과 뛰르끼예려단을 끌어냈으나 곧 포위되여 미1기병사단은 병력의 절반을 잃었으며 뛰르끼예군은 5 000명의 인원가운데서 2개 중대정도의 병력만 남고 모두 전멸되였다.

이와 같이 전선주타격방향의 인민군련합부대들은 공격개시 3∼4일사이에 미8군관하의 적들을 청천강과 대동강상류지역에 압축하여 대량적으로 포위소멸하고 전선서부의 적주력집단을 전면적붕괴상태에 빠뜨렸다.

질겁해난 살인장군 맥아더는 어찌할수 없이 《공세》의 참패를 인정하고 평양-원산계선에로의 퇴각을 지시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미8군사령관 워커는 전부대에 숙천-순천-성천-양덕-원산선으로의 퇴각을 명령하였다. 이것은 《크리스마스총공세》의 파탄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되여 전선서부에서는 적들의 무질서한 퇴각이 시작되였다. 남으로 통하는 크고작은 길들은 말그대로 오합지졸의 무리인 적패잔병들로 일대 수라장이 되였다.

조성된 정황을 예리하게 분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천강계선에 진출한 인민군련합부대들로 하여금 적에게 새 방어선을 준비하거나 저항할 틈을 주지 말고 퇴각하는 적들을 맹렬히 추격하여 소멸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적후제2전선부대들과의 협동을 긴밀히 하면서 평양방향으로 공격속도를 높이도록 하시였다.

그이의 작전지휘에 따라 전선서부의 인민군련합부대들은 순천을 해방하고 문덕, 숙천일대에 진출하였으며 계속 적을 추격하면서 평양으로 진격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전선련합부대들의 반공격에 배합하여 강동, 성천지역에서 활동하는 적후련합부대에 지체없이 평양을 해방할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시였다. 그이의 명령에 따라 련합부대는 삼등-평양방향에서 적을 강력하게 타격하여 주체39(1950)년 12월 6일 마침내 평양을 해방하였다.

평양해방, 얼마나 고대하던 시각이였던가.

온 나라에 기쁨과 환희가 차넘치는 가운데 전체 군대와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평양해방과 관련하여 발표하신 호소문을 접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호소문에서 평양시해방을 열렬히 축하하시고나서 패주하는 적들에게 새 방어선을 구축할 기회를 주지 말며 병력을 재정비할 시간적여유를 주지 말데 대한 전투적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그리고 이 전투적과업을 실현하기 위한 방도로서 인민군부대들이 공격속도를 더욱 높이며 적배후에서 유격투쟁을 일층 적극화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전체 조선인민들이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향하여 총진군할것을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그이의 호소문에 고무된 인민군련합부대들은 무비의 용감성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남김없이 발휘하여 퇴각하는 적을 계속 추격소멸하면서 노도와 같이 남으로 진격하였으며 적후제2전선부대들은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적들을 배후로부터 타격하기 위한 전투행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벌리였다.

이무렵 인민군부대들은 전선동부에서도 혁혁한 전과를 거두고있었다.

반공격이 개시되자마자 장진호반일대에서  미1해병사단의 3개 련대를 포위해버린 전선동부의 인민군부대들은 이어 미1해병사단을 비롯한 1만여명의 적들을 소멸하기 위한 포위전을 벌리였다.

사태가 이렇게 번져지자 겁에 질린 적들은 비행대와 포의 엄호를 받으면서 수십대의 땅크들을 앞세우고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침략자들은 순순히 돌아갈수가 없었다. 산과 길옆의 유리한 지형들을 차지한 인민군부대들이 걸음마다 복수의 불벼락을 안기였던것이다. 적들은 시체우에 시체를 덧쌓으면서 흥남쪽으로 쫓겨갔다. 미1해병사단의 경우만 보아도 흥남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사단의 기본력량이 거의 소멸된 상태였다. 이때문에 후날 사단장 스미스는 《무덤장군》이라는 별명을 받게 되였다.

인민군부대들의 강력한 반공격과 섬멸전은 전선동부의 다른 지역들에서도 벌어졌다.

청진방향에서 반공격으로 넘어간 인민군련합부대들은 하루만에 청진을 해방한데 이어 길주, 성진(김책시), 단천, 리원 등 동해안의 여러 지역을 해방하였으며 혜산방향에서 행동하던 련합부대들은 풍산(김형권군)과 북청을 해방하였다.

전선동부에서 저들의 병력이 무리로 녹아나자 트루맨은 조선전선동부의 정황은 《무엇이 어떻게 되여가는지 도무지 알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라고 비명을 지르면서 미10군단의 전방부대를 《고립된 지위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반도의 동북부지역은 … 포기》해도 좋다는 지령을 내렸다. 이리하여 전전선에서 《유엔군》의 이른바 《12월의 총퇴각》이 벌어지게 되였다.

그리하여 인민군대는 미제가 요란스럽게 떠들며 미친듯이 감행한 《크리스마스총공세》를 파탄시키고 공화국북반부지역을 완전히 해방하였으며 적들을 멀리 38°선이남 수원, 원주계선으로 몰아냈다.

이 과정에 인민군대는 미8군사령관 워커를 포함하여 수많은 적을 살상포로하고 숱한 무장장비와 군수물자들을 로획파괴하는 빛나는 전과를 거두었다.

미제가 얼마나 참혹하게 패배하였던지 적들의 출판물들까지도 《그것은 미국이 겪은 패배가운데서도 최악의 패배였다.》, 《성탄절무렵, 저 멀리서 벌어지고있는 전쟁은 자기들이 치른 남북전쟁과는 성질이 다르다는 새로운 불안이 미국국민을 휩쓸었다.》고 맥빠진 보도를 날리였다.

전전선에 걸치는 반공격작전이 성과적으로 진행됨으로써 전국은 우리에게는 유리하게, 적들에게는 불리하게 전환되였다.

단 한차례의 작전으로 전국의 근본적전환을 가져온 이 거대한 승리는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비범한 군사적지략과 탁월한 령군술에 의하여 이루어진 빛나는 결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