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주체39(1950)년 10월 하순에 이르러 조국해방전쟁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당시 공화국북반부에 깊이 침입한 미제는 어떻게 하나 조선전쟁을 빨리 결속지으려는 야망을 이루어보기 위해 이른바 《감은절공세》라는것을 벌려놓았다. 《감은절》인 11월 23일안으로 조선전쟁을 끝낸다는것이 이 《공세》의 목표였다. 이해 10월 22일 《감은절공세》에 내몰린 방대한 침략무력은 안주-신의주, 벽동-초산-만포를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으며 전선은 청천강이북과 함흥-장진, 리원-명천방향으로 옮겨지게 되였다.

그러나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적들이 대규모적인 《공세》에로 나오고있던 이 긴박한 때에도 전쟁의 승리를 확고히 믿으시고 여유작작하게 새 작전을 구상하고계시였다.

주체39(1950)년 10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부관들에게 물오리사냥을 가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그이의 깊은 심중을 알지 못한 나어린 부관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날마다 야전지휘소에서 바쁘신 시간을 보내고계시던 그이께서 잠시나마 휴식의 여가를 마련하시였기때문이였다.

그들은 곧 총을 들고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나섰다.

그이께서는 키낮은 가둑나무가 우거진 속을 지나 언덕에 오르시였다. 절벽밑을 감돌아흐르는 맑고 푸른 대동강물에는 단풍이 물든 산들이 비껴있었다. 때마침 한떼의 물오리들이 물우에 내려앉아 잔물결을 일으키며 한가로이 헤염치고있었다. 마치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같았다.

얼마뒤 물오리들이 또다시 날아와 물우에 앉았다.

부관들은 총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렸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물오리들이 노는 모양을 바라보기만 하시면서 종시 총을 쏘지 않으시였다.

퍼그나 시간이 지나서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침묵을 깨뜨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의 산천은 그 어디에 가나 아름답소. 참으로 금수강산이요. …

그런데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지금 미국놈들이 집어삼키겠다고 덤벼들고있소. 그러나 놈들은 아무리 발광을 해도 조선인민을 굴복시킬수 없소.

우리는 원쑤놈들을 용서하지 않을것이요!》

그러시고는 물오리를 쏘시라고 조르는 부관들에게 사냥이란 쏘기만 해야 재미있는것이 아니다, 장기군이 낚시터에서 낚시줄을 드리우고 장기수를 푸는것처럼 사냥터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사색하는 재미도 여간 흥미있는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제서야 부관들은 사냥터에 나오신 그이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반공격기지로 선정해주신 평안북도와 자강도, 함경남북도 등의 북부내륙지대에서는 그이의 현명한 령도밑에 예비부대편성과 주력부대들을 확대강화하는 사업이 힘있게 벌어져 강력한 반공격력량이 마련되고있었으며 적의 배후에서는 제2전선부대들과 인민유격대들에 의한 령활무쌍한 적후투쟁이 활발히 벌어지고있었다. 후퇴의 엄혹한 시련속에서 인민군대는 더욱 단련되였다. 인민군전투원들은 전쟁행정에서 원쑤를 무찔러나가는 공격전을 배웠을뿐아니라 조직적으로 후퇴하여 새로운 반공격을 준비하는 법을 배웠으며 실전속에서 여러가지 주체전법들을 익히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특히 그들은 어려운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 굴하지 않는 혁명정신과 강의한 의지를 더욱 키워나갔다.

한편 우리 인민에 대한 국제적련대성의 기운도 날로 높아가고있었다.

반면에 적들은 공화국북반부지역에 깊이 들어왔지만 전선과 후방, 동부전선과 서부전선, 부대와 부대들사이의 협동이 잘 보장되여있지 않았고 지휘체계도 혼란되여있었으며 제2전선부대들의 드센 타격으로 배후에서 항시적인 위협을 받고있었다.

비범한 군사적예지와 통찰력으로 이 모든 정세발전을 환히 꿰뚫어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무분별하게 날뛰는 적들에게 결정적인 반공격을 가할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시였다.

이날 그이께서 사냥터에 나오신것은 바로 이러한 구상을 무르익히시기 위해서였던것이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새로운 전략적계단으로의 이행을 선포하시고 전국의 근본적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전쟁의 제3계단은 우리 인민군대가 … 적의 공격을 좌절시키고 적의 유생력량을 대량적으로 섬멸하면서 적들을 38선이남까지 구축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력량을 정비강화하며 다른편으로는 적의 력량을 부단히 소멸하는 전투를 진행하여 적을 약화시킴으로써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쟁취할 준비를 하는 계단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국면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고 일시적강점하에 있는 공화국북반부지역을 빠른 시일안에 완전히 해방할수 있게 하는 현명한 방침을 제시하신데 이어 그 실현을 위한 첫 작전을 힘있게 조직령도하시였다.

그이께서 밝히신 제1차작전의 기본방침은 지형상 유리한 청천강, 황초령, 부전령, 매덕령계선들에 견고한 방어를 조직하고 적후제2전선부대들과의 배합작전밑에 적극적인 방어로써 적의 공격을 결정적으로 좌절시키는것이였다. 이와 함께 북부내륙지대를 반공격의 튼튼한 전초기지로 확보하고 시간을 쟁취하여 반공격을 위한 모든 준비를 보다 철저히 완성하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곧 전선서부와 동부, 제2전선련합부대들에 구체적인 전투임무를 하달하시였다.

각 전선부대들에서 반타격을 위한 전투준비가 빈틈없이 갖추어지고있을무렵 전선서부의 적들의 움직임을 손수 작전지도우에 기입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주에 집결되여있던 미제침략군부대들이 북으로 움직이고있는것으로 보아 놈들이 운산을 노리고있는것 같다고 하시면서 재진격의 서막을 여기에서 열자고 하시였다. 운산이 동북쪽으로는 희천, 서남쪽으로는 정주, 박천의 중간에 놓여있을뿐아니라 아군군단들의 중간지대로 되여있으므로 적들의 공격예봉이 여기에 돌려지리라는것을 간파하신것이였다.

이 시각 적들은 운산지구에 미8군가운데서도 가장 강한 주공력량을 들이밀고있었다. 운산을 점령하고 정주로 진공중인 부대와 힘을 합쳐 인민군대의 방어선을 돌파할 심산이였다.

그러므로 운산계선에서 적에게 강한 타격을 가하는것은 기세등등하여 진격하던 놈들의 골통을 면전에서 후려갈기는것으로 될것이며 적을 일대 혼란에 몰아넣고 《속전속결》을 꾀하는 놈들의 어리석은 기도를 여지없이 짓부셔버리는것으로 될것이였다.

이렇게 되여 적들의 공격을 좌절시키기 위한 강력한 반타격전은 운산포위작전으로부터 시작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적들과 대치한 운산군 부흥리와 고성리계선에까지 나가시여 밤을 지새우시며 이 작전을 지휘하시였다.

그이의 작전적구상을 받들고 전선련합부대들은 험준한 산발과 골짜기를 따라 신속히, 은밀히 기동하여 적집단을 포위하는데 성공하였다.

드디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1차작전의 반타격명령을 내리시였다.

용감한 인민군비행기들이 적진을 훑으며 불벼락을 쏟아붓고 아군의 대구경포들이 불을 뿜었다. 때를 같이하여 인민군부대들이 사방으로부터 돌진하여 적들을 운산의 깊은 계곡에 몰아넣고 무자비하게 답새기였다. 땅을 덮은 흰눈은 침략자들의 더러운 피로 얼룩졌으며 운산지구에 기여들었던 적선두부대는 손쓸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격멸당하고말았다.

적들의 공격을 좌절시키기 위한 반타격전은 전선동부에서도 벌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전투적과업을 심장으로 받아안은 동부전선의 인민군용사들은 황초령과 부전령, 매덕령과 백암 등지에서 완강하고 적극적인 방어전을 벌려 도처에서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기였으며 이 일대에서의  적들의 공격을 좌절시키였다.

결국 미제의 《감은절공세》는 완전히 파탄되고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공격을 좌절시키기 위한 강력한 반타격전을 조직지휘하시는 한편 반공격력량을 꾸리는 거창한 사업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반공격기지에서 주력군단들과 예비군단들을 조직하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 꾸리는 전선군단들은 지휘부를 먼저 조직하고 군단지휘부들이 방향별로 나가 후퇴하여온 인민군련합부대들과 전선의 중요방향에서 작전임무를 수행하고있는 일부 련합부대들을 망라하여 부대들을 보충확장하는 방법으로 조직편성하도록 하시였다. 이것은 복잡한 부대기동을 피하면서 당면한 작전전투임무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고 부대조직과 개편사업도 빨리 끝낼수 있게 하는 가장 합리적인 조치였다.

그이께서는 주체39(1950)년 10월에만도 여러차례의 최고사령관명령을 내리시여 새로운 정세의 요구에 맞게 주력군단들을 튼튼히 꾸리고 예비군단들을 편성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으며 새로 조직된 부대들이 급속히 늘어나는데 따라 부대들의 전투력을 끊임없이 높이기 위한 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인민군대의 전투력강화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10월 3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군관, 장령회의에서 하신 연설 《새로운 반공격준비를 철저히 갖추자》와 주체39(1950)년 11월 2일과 3일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하신 결론 《반공격준비를 잘하며 인민군대내 규률을 강화할데 대하여》를 비롯하여 여러 계기들에 인민군대를 정치군사적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시킬데 대한 가르치심을 거듭 주시였으며 그 실천적대책도 일일이 세워주시였다.    

그이의 이렇듯 정력적인 령도와 세심한 지도가 있어 반공격력량을 꾸리는 사업은 빠른 속도로 추진되였으며 인민군대는 짧은 기간에 급속히 확대강화되였다.

이 경이적인 현실앞에서 미국의 기자이며 《비사 조선전쟁》의 저자인 이지도르 스톤이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군사적교예라고도 말할수 있을것이다.》, 과연 《김일성장군은 현대의 카드모스(그리스신화에서 군사신의 하나, 그가 던지는 모든 물건은 다 병사가 되였다고 한다.)와 같은 위력을 가지고있는것인가?》고 경탄과 의문을 련발한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은 그 어떤 신화적인물도 이룰수 없었던 군사적기적을 창조하신 전무후무한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였으며 불세출의 명장이시였다.

희세의 천출명장이신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밑에 만단의 준비를 갖춘 인민군대와 인민앞에는 새로운 반공격의 시각이 다가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