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과 반일민족해방투쟁사』 중에서  

 

제   1   장

19세기 후반기-20세기초의 반일민족해방투쟁사에 대한 평가

2. 민족종교로서의 동학

반일민족해방투쟁사는 종교 그중에서도 그리스도교, 천도교와 불가분리적으로 련결되여있다고 말할수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자신께서  만경대에서 보내신 유년시절은 그리스도교의 포위속에 있었고 화성의숙시절에는 천도교의 포위속에 있었다고 회고하실만큼 두 종교는 우리의 력사, 우리의 생활과 밀착되여있었다. 그러므로 종교문제를 떠나서 민족해방투쟁사를 전면적으로 리해하기는 어려운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종교신자가 아니시였다. 그러나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놀랄만큼 해박한 조예를 지니고계시였다. 주석께서는 주체사상에 기초한 세계관을 지니고계시였기에 종교를 무턱대고 배척하는 교조주의와는 인연이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그리스도교가 덮어놓고 배척할 사회적의식이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온 세상 사람들이 평화롭고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는 기독교적정신과 인간의 자주적인 삶을 주장하는 나의 사상은 모순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1권, 104페지)

사해, 평등, 만민박애, 평화존중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는 근로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주장하는 주체사상의 요구와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지향은 결코 배척의 대상이 될수 없고 민족화합의 대상이 되여야 하는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도교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천도교는 그 기본사상과 리념에서 애국적이고 진보적인 종교이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351페지)

김일성주석께서는 천도교와 그 전신인 동학을 매우 중시하시였다. 그것은 동학이 조선부르죠아민족운동사의 주요사건과 련결되여있었고 3.1운동을 폭발시키는데서도 적극적기여를 하였고 전체적으로 조선민족해방운동과 관련되여있었으며 특히 항일무장투쟁시기에는 무장투쟁지역과 린접한 북부조선일대의 천도교세력이 매우 큰것이였기때문이다. 또한 민족종교로서의 교리가 애국애민의 성격을 지니고있기때문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천도교는 기독교와 함께 내가 가장 중시해온 종교의 하나였다. 천도교가 우리의 주시대상이 되고 그 교도들의 활동이 우리의 관심사로 된것은 그것이 조선의 민족종교로서 리념이나 실천활동에서 시종일관 애국애민을 지향해왔다는것과 포교의 범위가 대단히 방대하며 침투력이 매우 강하다는 사정과 관련되여있었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383페지)

동학이 민족교리라고 하는것은 조선민족의 력사적현실과 민족적지향을 교리화한 종교라는것을 뜻한다.

동학이 창시될 당시 조선민족의 력사적현실은 어떠하였는가.

조선에서 19세기는 리씨조선왕조와 더불어 중세사회가 해체되는 시기였고 봉건사회의 해체기에 나타나는 사회적위기, 혼란, 진통이 극도에 이른 시기였다.  봉건적학정을 반대하는 농민폭동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있는데다가 기근과 홍수까지 겹쳐 사회정치적혼란은 문자그대로 절정에 이르고있었다. 세도정치와 당쟁으로 그 피해가 말세에 이르고 국력은 극도로 쇠진해지고있었다. 량반과 상민사이의 신분적, 계급적대립도 극한점에 도달하였다. 수백년을 내려오면서 리씨왕조의 존립을 제도적으로 받들어온 봉건적인 신분관계는 사회발전을 억제하는 질곡으로 되고있었다. 탐관오리들의 학정과 박해로 하여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있었다. 이 시기에 발생하는 이러한 사태들은 중세사회를 규제해왔던 봉건적인 체제가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일대 전환기에 있게 되는 진통이였다.

이 중대한 력사적전환기는 외세가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하여 민족사의 본래적인 전개과정이 외세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부딪쳐 파동을 겪게 되였다.

조선민족의 이러한 특수한 력사현실을 반영하고 그 현실을 타개하려는 지향에 의해 생겨난것으로 하여 동학은 민족종교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였고 민족종교로서의 동학은 애국애민의 교리로 정립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김일성주석께서는 바로 동학 즉 천도교의 애국애민적성격으로 하여 그에 대하여 커다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운동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서는 과거의 리념이나 운동 그자체를 허무주의적으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립장에 서시여 바로 동학에 대해서도 그러한 립장에서 보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내가 동학을 실천과 결부시키면서 주의깊이 연구하기 시작한것은 길림시절부터였다. 조선혁명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은 이미 력사에 의해 부정된 주의주장이나 해석을 대체로 멀리하는것이였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과거의 리념이나 운동 그자체를 허무주의적으로 대하지 않았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382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립장에서 출발하시여 동학교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시였으며 그것에 대한 주체적리해를 세우게 되시였다. 주석께서는 동학의 기본경전이라 할수 있는 난해한 《동경대전》도 독파하시는 로고를 아끼지 않으시였다.

이때를 회상하시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자본론>과 마찬가지로 <동경대전>도 파고들 재미는 있지만 독파하기가 힘든 난해한 글이였다. 우주자연현상과 사물현상을 신비하고 오묘하게 서술한 최제우의 글에는 알듯 하면서도 잘 알수 없거나 보일듯 하면서도 잘 보이지 않는 아리숭한데가 있었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383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이러한 고충을 이겨내시면서 동학의 시대적제한성과 력사적진보성에 대해 명철하게 분석하시고 그 기본사상을 회고록에 정리하시였는데 이것은 반일민족해방투쟁사를 전체적으로, 과학적으로 완성하는데서 커다란 공헌으로 되였다.

주석께서는 먼저 동학의 기본사상인 《인내천》의 사상이 유신론에 기초한 사상이였다는 사상적제한성을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신인일체>, <인내천>, 곧 사람이 <한울님>이라는 이것이 바로 동학의 기본사상이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389페지)

동학에서 내세우는 《인내천》의 사상은 사람을 하늘에 비기며 존중했다는 측면에서는 비교적 진보적이였다고 볼수 있으나 그것은 종교적인 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사람자체를 신적존재로 보는것으로 하여 리론적불합리를 면치 못하는것이다. 동학의 교리를 리론적으로 정립하고 철학적으로 해석한 주요인물인 야뢰 리돈화는 《인내천요의》, 《신인철학》 등 저서에서 《인내천》사상에 대한 해설을 전개했는데 그는 동학에 의해 과거의 모든 종교들의 이러저러한 교리, 례컨대 불교의 적멸설, 선교의 현묘설, 그리스도교의 천당설, 유교의 천명설과 기타 여러가지 미신과 우상적가명이 모두 부인되고 사람이 곧 부처이고 신이고 하늘이다, 따라서 사람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신인일체》, 《인내천》을 설득력있게 해설하였다.

동학에서는 사람들의 그러한 지위가 《지기설》에 의하여 설명된다. 동학에서는 《한울》 즉 우주전체가 《지기》라고 하는 그 어떤 특수한 기운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지만 물질적인것인 동시에 정신적인것으로서 자연도 사람도 신도 모두 《지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기》가 세계의 시원이고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동학의 《지기설》은 모든 물체에 령혼이 있다고 보는 령혼설의 일종으로서 범신론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바로 이 《지기설》에 기초하여 동학에서는 사람은 세상만물중 가장 으뜸가는 령혼을 지닌 특수체라는것이다.

령혼설을 따른다면 인간은 자기의 의식과 의사에 따라 자주적으로 살아가게 되는것이 아니라 령혼의 지배밑에 그 어떤 숙명적인 삶의 궤도를 따라 살아갈수밖에 없게 된다. 령혼설은 불피코 숙명론에 떨어지게 된다.

동학이 제시한 미래사회의 전망도 사회발전법칙에 부합되는 과학적인 목표가 되지 못한다. 동학에서는 비폭력적인 투쟁으로 온 세상에 덕을 펴가느라면 모든 인간이 신선처럼 되는 때가 올것이며 그때가 되면 마침내 지상천국이 이루어지게 되리라고 설교한다.

실천적시각에서 볼 때 동학이 제창하는 동학만능론도 커다란 제한성으로 된다. 동학의 후계자들은 갑오농민전쟁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나라의 반침략반봉건투쟁에서 동학, 천도교가 논 역할을 거의 절대시하면서 민족의 운명개척에서 나서는 크고작은 모든 일이 천도교를 통해서만이 해결될수 있는것처럼 생각하였다. 물론 봉건을 반대하고 침략을 반대하는 투쟁, 나라의 근대화를 실현하고 사회적진보를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서 동학이 쌓은 공로를 무시해서는 안되며 동학의 민족성과 애국애민성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동학에 의해서만 만사를 다 해결할수 있다는 주장은 동학스스로의 사상리론적제한성을 보여주는것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동학, 천도교는 그 계급적제한성과 리론실천적미숙성으로 하여 반일민족해방투쟁에서 주도적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였는데 그 사실자체가 동학만능설의 부당성을 보여주는것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동학의 이러한 제한성을 비판적으로 대하시면서도 동학이 지니는 긍정적측면을 보다 중시하시였으며 이 긍정적측면으로 하여 천도교가 리념상에서나 실천상에서나 조국해방위업에서의 통일전선대상이 된다는 중요한 결론에 이르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동학의 긍부정적면에 대하여 종합분석하시고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물론 나는 우리 혁명의 주체적인 로선을 세워나가면서 기성의 이러저러한 리론과 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가운데 민족종교로서의 천도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도 일정하게 긍정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철저히 우리 나라 력사발전의 특수성과 우리 혁명이 처하여있는 환경, 선행운동에 대한 력사적분석으로부터 출발하여 그리고 우리의 민족적인 전통과 계급력량관계를 충분히 타산한 과학적기초우에서 주체학설을 세우고 우리 혁명의 진로를 탐색하였으며 그에 부합되는 전략전술을 작성하였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5권, 391페지)

동학사상의 긍정적면은 지상천국건설에 대한 경륜에서 표현된다. 동학은 지상천국건설을 최고의 리상으로 삼는다. 과거의 종교가 이 세상을 괴로운것으로 보고 견딜수 없는것으로 생각해왔다면 동학은 이 세상을 개벽하여 천국을 건설할수 있다고 본다. 바로 이 원리로부터 출발하여 동학은 《후천개벽》을 자기의 중요한 사명의 하나로 간주하고 《정신개벽》, 《민족개벽》, 《사회개벽》으로 불리우는   3대개벽의 실천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동학, 천도교는 순수 신앙으로부터 래세의 행복, 사후천국을 목적으로 하는 그리스도교나 륜리적수양과 지식의 섭취를 교화의 기본으로 삼고 현세적실천도덕을 중시하면서 정교일치를 주장하는 유교와도 차이가 있을뿐아니라 사람이 다 부처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자비를 기본종지로 보는 불교와도 구별되게 된다. 천도교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정적인 불교에 비해 그리스도교가 보다 동적이라고 한다면 천도교는 그리스도교보다 훨씬 동적인 종교이며 불교가 리성적경향이 많고 그리스도교가 감성적측면이 많다면 천도교는 이 두 측면을 다 가지고있다고 자부하였다.

동학, 천도교의 교리에서 하늘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것을 반대하고 사람자체를 믿어야 한다는것을 주장하고있는 점, 다른 종교들에서처럼 하늘이나 신의 초자연성과 초인간성을 운운하면서 봉건사회제도나 봉건적신분제도를 하늘이 정한 질서라고 설교하지 않고있는 점 등을 놓고볼 때 천도교는 인간의 존중과 평등을 주장하는 진보적종교로 되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평가하게 되는것이다.

동학이 지니는 이러한 긍정적면과 거기에 관철되는 주의주장의 애국애민성의 강한 저항정신으로 하여 동학은 광범한 천민대중과 몰락량반들의 지지를 받게 되였다. 일체 귀천의 차별을 철페할것을 주장한 동학사상이 전파되고 확산되는것은 귀천의 차별을 절대화한 봉건유교사상의 지배적지위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였고 봉건특권층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였다. 이때문에 동학의 창시자인 1세교조 최제우는 1864년 3월 도를 어기고 정치를 문란케 한 《좌도난정》죄를 쓰고 대구에서 처형되였으며 봉건정부의 탄압과 추적속에서도 비밀리에 동학의 보급과 확대에 전력하였고 갑오농민전쟁 지도자중의 한사람으로 활약했던 2세교조 최시형도 서울에서 사형당했으며 동학창시자의 본의대로 동학을 천도교로 개편한 3세교조 손병희도 일제교형리들로부터 심한 탄압과 박해를 받았다. 력대 교조들의 생애가 잘 말해주는것처럼 동학, 천도교는 시작은 물론 발전과정도 철저히 애국적이며 애민적인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