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정의의 수호자』중에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

15-16세기 이딸리아의 천문학자였던 갈릴레오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원래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종교적박해에 견디지 못하고 자기의 견해를 철회하였었다.

그러나 진실이 거짓으로 타매되고 꼬뻬르니끄나 부르노와 같이 앞서 지동설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그 시각에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주위를 돌고있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였다. 하기에 갈릴레오는 운명의 마지막순간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함으로써 지동설이 진리임을 주장하였다.

그후 천문학이 발전함에 따라 지동설이 옳다는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게 되였고 종교계에서도 더는 천동설을 주장할수가 없게 되였다.

진리는 가리울수도 말살할수도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20세기도 저물어가던 1990년대초에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주장하는것과도 같은 터무니없는 궤변들이 나돌았다.

제국주의자들과 부르죠아복귀주의자들이 들고나온 궤변이 바로 그런것이였다.

제국주의자들과 부르죠아복귀주의자들은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는 사태가 빚어지자 때를 만난듯이 그것을 저들의 반사회주의적악선전을 합리화하는데 교묘하게 리용하였다. 이들은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하면서 사회주의리념이 그릇된것이고 사회주의를 한것자체가 잘못이라고 떠들어대였다.

그가운데는 미국무성 기획실 차장이였던 프란시스 후꾸야마와 같이 동유럽정치의 급격한 변화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이데올로기(사상)의 끝을 의미할뿐아니라 《정치적, 경제적자유주의의 완전한 승리》로서 더이상 사회주의의 개념은 불필요하게 되였다(남조선잡지 《현대와 사상》, 한길사, 173-174페지)고 하는 이른바 자유주의, 개인주의의 《승리》에 대해 떠드는 궤변이 있는가 하면 《자본주의적경제효률》과 《사회주의적인 사회시책》을 결합시켜 《고성장》, 《고복지》를 이룩한다는 《제3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하는 얼빠진 주장들도 있었다.

이러한것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력사발전의 방향이 달라졌다는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궤변들 역시 사회주의리념의 견결한 수호자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철의 론리앞에서 산산이 부서져나갔다.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궤변을 분쇄하는데서 선차적으로 나선 문제는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된 사태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를 내리는것이였다.

그것은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이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된것을 근거로 하여 저들의 궤변을 정당화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모스크바의 크레믈리에서 붉은기가 내리워진 비극적인 그 시각으로부터 불과 며칠이 지난 주체81(1992)년 1월 3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담화를 하시면서 이렇게 지적하시였다.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된것은 력사발전의 기본흐름에서 볼 때에는 부분적이며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복잡한 사회현상의 본질도 순간에 꿰뚫어보는 비범한 통찰력과 분석력, 천재적예지를 지닌 절세의 위인, 정의의 위대한 수호자만이 내릴수 있는 결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내리신 이러한 과학적이고도 명쾌한 결론은 자본주의의 《승리》에 대하여 떠들던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궤변에 대한 단호한 타격이였다.

사물현상의 본질을 옳게 파악하자면 전체와 부분간의 호상관계를 잘 가려보아야 한다.

전체와 부분은 서로 련관되여있지만 부분은 어디까지나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을 전체인것처럼 과장하거나 절대화해서는 안된다는것은 초보적인 상식이다. 지난 세기 80년대말, 90년대초 세계사회주의운동안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태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기 사회주의가 붕괴된 동유럽나라들은 결코 사회주의의 전부가 아니였다. 사회주의는 아시아에도 있었고 저 멀리 라틴아메리카에도 있었으며 여전히 많은 나라들이 사회주의를 인류의 리상으로 삼고 사회주의의 길로 나아가고있었다.

더우기 주체의 우리 식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리념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과시하며 승승장구하고있었다.

사회현상을 옳게 평가하자면 전체와 부분과의 관계뿐아니라 력사발전의 기본흐름의 견지에서 그것이 정상적인 궤도에서 일어난 현상인가 아니면 거기에서 벗어난 일시적인 현상인가를 옳게 가려보아야 한다.

인류력사발전과정은 새것이 승리하고 낡은것이 멸망하는것이 력사발전의 어길수 없는 법칙이며 기본흐름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물론 새것과 낡은것과의 투쟁과정에 낡은것이 득세한적도 있었고 낡은것이 새것의 탈을 썼던적도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결국 승리한것은 새것이였다.

왜냐하면 낡은것은 사멸해가는 존재이므로 생명력이 없고 전도가 없는것이였기때문이였다.

사회주의는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인간의 본성적요구가 철저히 구현된 사회로서 이전의 모든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회이다. 그렇지만 낡은 사회는 저절로 력사무대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착취계급은 새 사회의 출현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로부터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은 그 어느 시기보다 간고성을 띠게 된다.

사회주의는 몇천년동안 쌓이고쌓인 온갖 력사적오물을 청산하기 위한 장기간의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자기 발전의 길을 새롭게 개척해나가지 않으면 안되며 이로부터 예상치 않던 난관에 부닥칠수도 있다. 또한 사회주의에로의 길은 아직까지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인것만큼 우여곡절도 있을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새것이 탄생하고 승리하는 과정에 겪게 되는 진통과 같이 일시적인것으로서 사회주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것은 부정할수 없는 력사발전의 법칙이다.

오늘날 세계적범위에서 사회주의가 자기의 고유한 생명력과 견인력을 가지고 재생확대되고있는 현실은 일부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의 붕괴가 결코 력사발전의 필연적흐름이 아니며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현상에 불과한것이라고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이 얼마나 정당한가를 웅변으로 립증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력사발전의 필연적요구가 무엇인가를 과학리론적으로 해명하심으로써 마치도 력사의 흐름이 달라진듯이 떠드는 궤변의 허황성과 부당성도 힘있게 론증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건설의 력사적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등 이 시기 련이어 발표하신 여러 로작들에서 사회주의가 력사발전의 필연적단계이고 반드시 승리한다는것을 철의 론리로 밝히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83(1994)년 11월 1일 에 발표하신 론문 《사회주의는 과학이다》에서 이렇게 지적하시였다.

《현시대는 인민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으로 등장한 자주성의 시대이다. 이것은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가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로 넘어가는것이 력사발전의 필연적요구로 되고있다는것을 말하여준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가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로 넘어가는것이 력사발전의 필연적요구라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상은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가 사람의 자주적본성에 부합되는 가장 선진적인 사회라는 주체적견해에 기초하고있다.

집단주의는 사람의 본성적요구이다.

사람은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활동하여야 생존하고 발전할수 있으며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사회성원들의 집단적협력에 의해서만 자연과 사회를 개조해나가며 자주적요구를 실현해나갈수 있다.

사람은 발생 첫 시기부터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활동함으로써 원시시대의 횡포한 자연과 무서운 맹수들의 위협속에서도 자기를 지키고 생존할수 있었으며 여러 단계에 걸치는 사회발전을 이룩하면서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력사를 창조해올수 있었다. 또한 사회적진보와 발전을 위한 인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고도로 발전된 오늘의 과학문명도 이룩할수 있었다. 만일 인간이 사회적집단을 이루지 않고 개별적으로 활동하였다면 발전은 고사하고 생존자체도 할수 없었을것이다.

이렇듯 사회적집단을 떠난 인간의 생존과 발전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는것으로 하여 사람은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활동하는것을 생존방식으로 하게 되였으며 사회적집단과 운명을 함께 하면서 서로 협력하며 살려는 집단주의는 사람의 본성적요구로 되게 되였다.

그런데 집단주의가 사람의 본성적요구라고 해서 그것이 어느 사회에서나 같은 수준에서 구현되여온것은 아니였다.

물론 인류력사는 외래침략자들과 착취계급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인민들이 집단적항거의 정신을 발휘한것이라든가 어려운 생활처지를 서로 힘을 합쳐 개선해나간 상부상조의 미풍과 같이 집단의 리익을 귀중히 여기고 그를 위해 헌신하려는 사람의 본성적요구를 보여주는 사실들을 적지 않게 전하고있다.

그리고 사회와 집단의 진보와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의 공적에 대한 기록도 남기고있다. 그들가운데는 민족해방을 위해 한생을 바친 민족의 영웅도 있었고 뛰여난 과학적발견으로 인류의 과학발전에 특출한 기여를 한 과학의 대가도 있으며 많은 재산을 기부한 자선가도 있었다.

그러나 사적소유에 기초한 사회에서는 사람의 본성적요구인 집단주의가 하나의 사회적사상으로 보편화될수 없으며 그것이 생활로 구현될수 없다. 오히려 반동적통치계급은 인민들의 단합을 두려워한데로부터 사람들속에서 집단주의가 발양되는것을 억제하고 개인주의를 고취한다.

사람의 집단주의적요구가 훌륭히 구현되는 사회는 사회주의사회이다.

근로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회주의적근로자로 전환된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온 사회가 하나의 리해관계에 의하여 결합된 대가정을 이룬다.

사회주의사회에서는 국가와 사회의 리익과 개인의 리익이 대치되는것이 아니라 일치되며 사회주의사회에서 국가와 사회를 위한다는것은 곧 그 주인인 인민대중자신을 위한것으로, 매개 사회성원들을 위한것으로 된다.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가 훌륭히 실현되는 사회, 온 나라 인민이 하나의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사회와 집단의 리익을 더 귀중히 여기면서 국가와 사회의 리익속에서 개인의 리익도 원만히 실현해나가는 사회가 바로 사회주의사회이다.

사회주의에로의 이행이 력사발전의 필연적요구라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상은 인류력사발전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에 기초하고있다.

인민대중은 장구한 기간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왔으며 이 과정에 계급사회의 교체가 진행되고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적대계급사회의 교체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억압하는 형태에서의 변화를 가져왔을뿐 인민대중은 사회정치적예속에서 해방되지 못하였다. 그것은 모든 적대계급사회가 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였기때문이였다.

개인주의는 사적소유제도의 산물로서 불피코 사회를 적대되는 계급으로 분렬시키고 계급적대립과 사회적불평등을 가져오며 인민대중에 대한 소수 지배계급의 착취와 압박을 동반하게 된다. 특히 자본주의는 개인주의를 극소수 자본가들의 무제한한 탐욕으로 전환시키고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의 적대적모순을 극도에 이르게 한다.

인류사회발전의 전과정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자면 극단한 개인주의에 기초하고있는 자본주의사회로부터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사회로 넘어가야 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이와 같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에로 나가는것이 력사발전의 필연적요구라는것을 과학리론적으로 론증하시여 인류에게 리상사회건설에 대한 불타는 신념을 다시금 깊이 심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인류는 절망의 심연에서 구원되였다.

제국주의반동들이 제아무리 부정해도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그길로 나가는 인류의 앞길을 막을수 없다.

결코 력사발전의 방향은 달라질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