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과 반일민족해방투쟁사』 중에서  

서   장

김일성주석께서 정립하신 근대와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주체적리해

2. 민족해방투쟁의 력사적과제에  대한 주체적리해

근대력사의 주되는 흐름을 이루는 민족해방투쟁이 어떤 전략에 기초하여 어떤 력사적과제를 해결하여야 하는가 하는 중대한 문제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력사상 처음으로 완벽한 과학적해명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우선 민족해방투쟁이 시작된 력사적조건에서 근대에로의 이행문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처음으로 되는 대답을 주시였다.

근대에로의 이행문제는 근대사관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이룬다.

내외의 력사학계에서 근대에로의 이행방식과 관련해서는 우로부터의 개량의 길과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길이 있다고 하는것이 정설로 되여있다.

여기에서 론의하는 우로부터의 개량의 길이란 봉건사회의 지배계급인 지주층이 피지배계급인 농민, 상품생산자, 수공업자, 상인 등 계급의 사회변혁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이를 외곡시켜 자신들이 근대사회의 지배계급으로서의 자본가계급으로 이행하는 길이며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길이란 봉건사회의 피지배계급인 신흥부르죠아지들이 다른 계급, 계층에 속하는 농민을 비롯하여 상인, 수공업자 등을 이끌어 봉건적사회체제를 일거에 타도하고 근대적사회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부르죠아계급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이행하는 길을 의미한다.

근대에로 이행하는 두 길에 대한 사상을 처음으로 정리해서 내놓은 사람은 레닌이였다. 그는 근대에로 이행하는 두 길은 자본주의발전에서의 앞선 나라들인 서유럽의 근대사에서 실증되였고 또 후진자본주의국가로서 봉건적관계를 다분히 내포하고있던 로씨야근대사를 통해서도 실증되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적관계의 발전이 없거나 맹아적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있던 식민지나라들에서는 그러한 두 이행방식이 있을수 있는 사회력사적조건이 없는것으로 간주하고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력사적현실은 비록 자본주의적관계의 발전이 미약하다 하더라도 근대에로 이행하는 두 가능성이 존재한다는것을 보여주었으며 실지로 1884년 갑신정변과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그것을 뚜렷이 실증하였던것이다.

김일성주석께서는 갑신정변과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조선근대사의 두개의 큰 력사적사변을 분석하시면서 조선에서와 같은 사회력사적조건밑에서도 근대에로 가는 두가지 길이 존재하고있었다는것을 결론하시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김옥균의 개혁운동이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조선의 근대력사가 달라질수도 있었다는것을 지적하시였다. 조선의 근대력사가 달라질수도 있었다는것은 근대조선이 식민지사회로 전락하지 않은 근대적민족국가를 자주적으로 세울수 있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따라서 그 지적은 조선에서도 우로부터 부르죠아혁명을 할수 있는 길이 있었다는것과 또 실지 그러한 실례가 있음을 말해주는것이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1권, 24페지 참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1894년 갑오농민전쟁사를 분석하시면서 농민군이 승리하였더라면 력사는 얼마간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결론하고계시는데 이 역시 밑으로부터의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 말씀하신것이며 갑오농민전쟁이라는 밑으로부터의 혁명이 실패하였다는것을 지적하신것을 의미한다.

김일성주석께서 조선의 근대력사가 우로부터의 개혁의 길과 밑으로부터의 혁명의 길이 다같이 존재하였다고 보시는 분석시각은 당시의 조선에 유럽에서와 같은 부르죠아계급이 형성되여있었다는데 기초한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근대적혁명운동과제의 본질에 대한 주체적리해에 기초하는것이였다.

근대적혁명운동 역시 소여 력사적단계에서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이였다. 사회발전사는 인간이 자주성을 위한 투쟁을 통해서 보다 높은 사회구성체를 창조해나간 력사이며 이로부터 봉건사회의 해체기에 와서 봉건사회보다 상대적으로 자주성이 더 높은 단계에서 실현되는 근대사회를 세우려는 지향은 력사의 막을수 없는 흐름으로, 시대의 지향으로 전환된다.

이 력사의 지향을 남먼저 자각한 세력이 근대적혁명운동을 주도하는 담당세력이 되는것이다. 여기서 부르죠아계급의 형성여하는 근본적의의를 가지는것이 아니다. 갑신정변에는 개명한 관료세력이, 갑오농민전쟁의 경우에는 몰락한 량반세력이 변혁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것은 근대에로의 이행에서 있게 되는 변혁운동을 유럽적인 기준에서가 아니라 조선의 력사적현실로부터 출발하여 고찰해야 한다는것을 말하여주는것이다.

근대에로의 이행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고찰하는데 있어서 문제해결의 열쇠를 주는 분석틀이 구체적으로 정립됨으로써 근대력사연구에서 어렵고 복잡한 이 문제를 바로 해결할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였다. 그간 남조선근대사학계에서는 이 문제가 가장 큰 쟁점으로 되여왔으며 나름대로의 각이한 견해들이 나타났었다.

각이한 론점을 반영한 견해들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지적해야 할것은 조선에서는 근대에로의 이행에서 오직 우로부터의 개혁운동 하나만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립장에서는 부르죠아세력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개혁운동만을 평가대상으로 삼고있고 그외의것은 부르죠아변혁운동의 보조적인것으로 파악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로부터의 개혁운동이야말로 나라를 식민지화의 위기에서 구원하고 근대국가를 이끌어낼수 있는 유일의 방도였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남조선근대학계의 주류를 대표하고있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펴는 견해들에서는 자기 설의 타당성을 내세우고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길을 부인하는 론거에서 동일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농민적변혁운동(농민전쟁)은 농민적민주주의나 농민적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소박한 민중투쟁사관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므로 다시말하여 부르죠아적운동의 이전단계에 머무르고있으므로 근대변혁운동의 주류적투쟁으로 될수 없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시아적정체성》의 재판인 《조선사회의 특수성》을 내세워 사회발전이 뒤떨어진 조선과 같은 나라에서는 개명관료지주들의 개화운동로선외의 다른 근대적운동은 존재할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개화파운동에 진보성을 부여하는것은 주권의 달성을 목적으로 하고있었기때문이며 갑신정변에서 시작된 우로부터의 개혁운동은 군주권을 인정하는 한계내에 머물고 국민적주권이라는 목표에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실패한 운동으로 규정한다.

밑으로부터의 혁명의 길만을 강조하는 류파도 존재한다. 이들은 조선이 제국주의침략을 받게 된 이후에는 력사발전이 제국주의침략에 의해 규정되기때문에 근대적인 민족적과제는 부르죠아적변혁의 흐름이 아니라 민족해방투쟁의 흐름에서 찾아야 한다는 론리를 가지고 밑으로부터의 해방투쟁을 유일한 근대적과제해결의 길이라고 본다.

그러나 조선에서 밑으로부터의 혁명의 길 하나만을 인정하는것은 잘못으로 된다. 왜냐하면 민족해방운동은 제국주의침략에 의해 조성된 식민지문제해결을 과제로 하는것만큼 그리고 민족적문제해결에 민족사회내부의 각계 세력이 참여하는 련속적이고 복합적인 투쟁인만큼 거기에는 밑으로부터의 혁명운동뿐아니라 우로부터의 개혁운동이 아울러 있게 되는것은 합법칙적인것이기때문이다.

제3의 류파도 존재한다. 이 류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봉건적토지소유관계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가에 따라 우로부터의 개혁의 길이 나올수도 있고 밑으로부터의 혁명의 길이 나올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지지자들은 조선에서 근대적변혁의 움직임을 개항이후에 새롭게 나타나는것이 아니라 그 이전시기의 봉건적사회의 내부문제에 근원을 두고 나타난것으로 본다. 그리고 근대에로의 길은 나라의 중세적국가체계를 근대적국가체계로 바꾸는 길인데 거기에서의 핵심문제는 농업국가였던 조선에서는 봉건사회의 기본생산수단인 토지소유관계의 변혁문제로 되며 여기에서 농민적립장에서의 변혁세력이 나오면 밑으로부터의 혁명의 길이 열리게 되고 지주적립장에서의 변혁세력이 나오면 우로부터의 개량의 길이 열리게 된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가지는 견해의 최대의 약점은 당시 조선의 변혁운동에서 토지문제가 규정성을 가지는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침략이 규정성을 가지며 따라서 그런 견해는 불가피하게 민족해방의 과제를 차요시하는 오유를 범하게 된다는데 있다. 조선의 력사적현실에서 토지문제의 해결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민족해방의 과제에 앞세우고 그것과 분리시켜 고찰해서는 안되는것이다.

이상에서 고찰한 여러 견해중에서 어느 하나도 문제의 본질에 맞는 완전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있는것을 볼수 있다.

력사적사실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조선근대사에는 우로부터의 개혁운동과 아래로부터의 혁명운동이 다같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 두 길은 모두 외세의 개입과 간섭이 주되는 원인으로 되는 복합적 제 요인으로 하여 실패의 운명을 면치 못하였다. 그 좌절로 말미암아 조선은 근대적자주국가로 전환되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되는 비운을 겪게 되였다.

조선은 식민지로부터 보다 정확히 말하면 식민지체제속에 보존된 봉건적관계와 함께 밖으로부터 침략의 수단으로 이식된 불구적자본주의를 안은채 새로운 국가적독립을 위한 투쟁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 이같은 조건에서 근대에로의 이행문제를 어떻게 설정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게 되였다. 이 문제는 동서방의 력사가 아직까지 알지 못하고있던 문제였다.

식민지화는 조선의 독립에로의 길에 커다란 난관을 조성하였을뿐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제국주의단계가 시작되면서 민족해방투쟁을 둘러싼 력사적조건에서도 중대한 여러 변화가 일어나게 되였다.

제국주의단계는 다른 새로운 문제들도 몰아왔다.

독립투쟁에서는 새로운 계급력량관계가 조성되게 되였다. 토착부르죠아지의 경리는 그 발전이 몹시 억제되였으나 외래자본주의의 경리는 압도적인 지배적지위를 차지하게 되였는데 후자의 경리에서도 그것이 자본주의적인 이상 자본임금로동관계를 확대재생산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로동계급과 자본가계급간의 력량대비는 로동계급의 힘이 상대적으로 커지는 방향에서 변하게 되였고 이에 토대하여 로동운동이 급속히 발전하게 되였다.

또한 자본주의가 가지는 커다란 부패성은 유럽에서 매우 극명하게 드러났고 식민지조선에서는 참담한 식민지적현실을 통해 그것을 피부로 절감할수 있게 되였다.

자본주의의 부패성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주의가 세계적보편성을 띠고 나타나게 되였고 그것은 새로운 사조로서 조선에도 급속히 파급되게 되였다.

이같은 조건에서 자본주의적근대에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이른바 근대화를 독립투쟁의 목표로, 독립조선의 미래상으로 받아들이는것이 옳은가 그렇지 못한가, 자본주의적근대를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세계적사조에 맞게 새로운 선택을 하는것이 옳으냐 하는 운명적인 문제가 제기되게 되였다. 이것은 조선의 현실에서만 제기되는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국가들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으로 이 문제를 고찰하시고 조선은 자본주의적근대를 실현하는 나라로 될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근대를 초월한 현대적완전자주독립국가로 되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화성의숙시기에 이러한 견해를 가지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조선을 독립시킨 후 조국땅에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이 잘사는 그런 사회를 세워야 한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1권, 154페지)

이 명제는 조성된 력사적정세하에서는 조선이 자본주의적근대화에로 후퇴할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근대현대에로 전진해야 한다는것을 선포하신 력사의 선언이였다. 이것은 민족해방의 과제를 선차적으로 해결한데 뒤이어 계급적해방의 과제를 아울러 해결하여 인간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사회발전의 높은 령마루에 오를수 있는 길의 제시를 의미하였다.

그러면 제국주의의 완전한 지배하에 있는 나라에서 사회주의적근대현대에로의 전진을 실현할수 있는 새로운 길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국내적견지에서 볼 때 부르죠아세력은 로동계급과 정권쟁취를 다툴수 있는 힘을 못 가지고있다는 점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강대한 일본의 제국주의적힘을 타승할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가 풀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것은 독립운동의 방식이나 방법을 새롭게 개척한다는것을 의미했는데 그 문제는 세계적으로도 미개척문제로 되여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세계적으로 볼 때에도 그 당시는 식민지민족해방투쟁문제가 크게 성숙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런 나라들에서의 독립운동의 방식이나 방법은 아직 개척되지 못하고있었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1권, 25페지)

김일성주석께서는 독립운동의 방식이나 방법을 새롭게 개척하는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열쇠는 민족의 총력량을 집결하는 민족적단합에 있다고 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2천만의 총동원으로 이루어지는 거족적인 항전이 없이는 식민지노예의 멍에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순수한 계급혁명이라면 로동자, 농민대중만이 혁명의 동력으로 되겠지만 우리 혁명의 성격자체가 봉건을 반대하고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혁명인것만큼 로동자, 농민은 말할것도 없고 청년학생, 지식인, 애국적인 종교인, 민족자본가들도 다 혁명의 동력이 될수 있다고 우리는 주장하였다. 우리의 원칙은 민족해방에 리해관계를 가지는 반일애국력량은 다 집결하고 다 동원시키자는것이였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2권, 44∼45페지)

제국주의지배하에서도 반제투쟁에서 민족적단합을 이룩할수 있다는것은 김일성주석께서 처음으로 제시하신 대경륜이라고 말할수 있다.

물론 식민지화과정에서나 제국주의지배하에서 침략세력과 맺는 각 계급, 각 계층의 관계는 그 내용과 형식에서 일정한 차이를 가지게 되며 따라서 그들 각계각층이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리해관계에서도 적극성과 소극성, 혁명성과 동요성의 면에서 다소의 차이를 보이는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것은 아니며 본질적인 문제도 아닌것이다.

본질적으로 중요한것은 그들 각 계급, 각 계층이 제국주의의 억압과 수탈을 당하는 처지의 공통성에 있는것이다.

제국주의지배하에서의 자본임금로동관계의 형성과 지주소작인관계의 재편에 의한 일상적이고 가혹한 정책은 무엇보다도 로동자, 농민을 제국주의침략의 주되는 희생자로 만들게 되며 기타의 각계각층도 그러한 희생의 대상에서 례외로 되지 않는다.

거기에다 세계에서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일제의 미증유의 정치적억압과 민족성을 근원적으로 말살하려는 강압적인 민족동화정책은 전체 민족성원들의 리해관계와 근본적으로 대립되게 된다.

이것은 동일한 민족성과 리해관계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각 계급, 각 계층을 포괄하는 민족의 총단합, 총동원을 실현할수 있는 현실적기초로 된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이러한 현실적기초우에서 민족단합을 실현해나가는데서 중요한것은 민족성원들이 간직하고있는 애국심을 민족단합정신으로 묶어세우는것이라고 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민족단합정신은 애국애족의 감정가운데서도 그 정수를 이루는 최고의 넋이라고 말할수 있다.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민족해방을 위해 출범한 그 첫기슭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나 민족단합의 리념을 변함없이 소중하게 간직해오고있으며 그것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있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2권, 399페지)

김일성주석께서 천명하신 민족단합의 리념은 계급혁명이 아닌 민족해방혁명을 자주적으로 발전시킬 힘의 원천과 민족의 진로를 새롭게 밝힌 사상이며 조국해방과 민족독립을 위한 혁명운동의 형식과 방도를 새로운 보다 높은 단계에로 이끌어올릴수 있는 기초적사상으로 되였다.

이 애국애족적사상에로 끊임없이 접근하고 실현해나가며 마침내는 그 사상의 승리에 의한 민족적독립을 이룩하는 과정이 바로 조선근대사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이루게 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