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과 반일민족해방투쟁사』 중에서  

서   장

김일성주석께서 정립하신 근대와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주체적리해

1. 근대의 본질과 민족해방투쟁의 지위에 관한 주체적리해

근대라는 개념은 유럽에서부터 유래되였다.

18세기에 유럽나라들에서 부르죠아혁명이 있은 후 유럽의 력사학계에서는 그 시대를 중세와 구별되는 가까운 력사적시기라는 의미에서 근대라고 범주화하였다. 중세와 구별되는 새로운 시기로서의 근대의 기본특징은 봉건적분산성의 청산과 민족국가들의 출현, 민족국가의 테두리에서의 자본임금로동관계에 기초하는 자본주의의 전개, 공업기술에 의거하는 문물제도의 근대화 등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유럽의 력사학계에서는 근대라고 하면 사회가 자본주의화하고 근대화하는 시대로 리해되여왔다. 맑스는 자신이 생존하고있던 당대사회를 자본주의사회로 파악한 첫 사람이였다. 근대가 자본주의화하는 시대이고 사회라는 인식은 보편화된 인식으로 굳어지게 되였다.

근대에 대한 그러한 인식은 보편화되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적인 개념인것으로 하여 비유럽세계에서는 자본주의화라는 개념이 통용될수 없게 되였다.

비유럽세계에서는 근대의 막이 열려 자본주의가 대두하고 제국주의가 전개되면서부터 비유럽지역에 대한 유럽의 침략과 지배가 강행되여 그 지역 나라들에서는 자본주의화과정이 있을수 없었다.

유럽에서와 같이 민족국가가 출현한것이 아니라 전통국가의 파괴와 식민지화를 초래하고 밖으로부터 강요되는 이식된 자본주의는 침략의 도구가 되여 이 나라들의 발전을 억제하게 되였다.

근대라는 동일한 시기에 유럽세계가 걷는 길과 비유럽세계가 걷는 길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차이를 발견하고 비유럽세계의 립장에 서서 조선을 비롯한 비서방세계에서의 근대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하고 그 본질을 주체적으로 밝히는 문제는 위대한 사상리론가이시며 력사학의 거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에 의하여 비로소 해결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근대라는 시기가 문명개화가 이루어지는 시기가 아니라 가장 암담하고 수난이 중첩되는 시기였다고 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의 생애는 조선의 근대력사에서 민족수난의 비극이 가장 암담하게 중첩되던 1910년대로부터 시작되였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1권, 1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교시하신바와 같이 조선을 포함한 대다수 비유럽나라들에서의 근대는 민족수난이 전개되는 시기였다.

김일성주석께서 보편화된 기성개념에 구애되지 않으시고 근대의 모습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정립하시게 된것은 주체사상이 창시된것과 때를 같이하고있기때문에 이루어질수 있었던것이다.

회고록에서는 주체사상이 창시된 시점에 자세한 설명이 주어지고있다.

회고록에는 주체사상이 김일성주석의 초기혁명활동의 나날에 심어지고 1929-1930년간의 옥중생활에서 무르익힌 조선혁명에 관한 주체적경륜을 카륜회의에 제기할 보고로 작성된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론문에서 전개된것이 곧 세상에 선포된 시초로 된다는것을 밝히고있다.

1930년 6월 카륜에서 진행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회의에 제출된 김일성주석의 보고에는 주체사상에 기초하는 근대사관을 새롭게 정립한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명제가 제시되고있는것을 볼수 있다.

명제에서는 조선근대를 통해서 이루어진 조선사회의 성격을 정식화하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오늘 조선은 일제의 강점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자본주의발전의 길이 억제되고 봉건적 제 관계가 지배적인 식민지반봉건사회입니다.》(《김일성저작집》 1권, 7페지)

종전까지는 근대의 본질문제를 놓고 누구나 다 그것이 자본주의사회화되여가는 사회라고 인식하였지 식민지반봉건사회라는것이 본질로 된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설정된 문제의 력사적의미를 옳게 리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에로의 이행에서의 변칙성이 바로 이식된 자본주의의 본성적 악에 그 원인이 있다는것에 류의하여야 한다.

밖으로부터의 강요에 의해 뒤떨어진 나라들에서의 자본주의는 문명개화를 가져온것이 아니라 문명개화의 명색하에 민족의 자아상실과정을 초래하였던것이다. 이것은 리윤추구를 위해 타민족에 대한 지배와 억압, 침략을 초래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가져온 산물이외의 다른것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식민지화된 조국의 현실을 체험하시면서 문명개화의 일면만 보고 자본주의의 생리를 바로 보지 못한다면 근대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오유를 낳게 된다는것을 중요하게 포착하시였다.

기계문명의 상징적존재라고 할수 있는 철도부설문제 하나를 례로 들어 보아도 사정은 명백하다. 민족자본에 의해 설립된 대한철도회사는 이미 1896년에 경의선부설에 착공한바 있으나 일본측의 방해로 하여 공사는 중단되였었다. 로일전쟁이 일어나자 일제는 《한일의정서》를 강요하여 군용철도라는 명목으로 그 부설권을 강탈하였고 조선인을 희생시켜 세계에서 류례가 없는 헐값으로 철도를 부설하여 그 운영에서 엄청난 리익을 얻게 되였다. 1910년현재 일본이 조선의 주요 간선철도에서 거머쥔 순 리윤은 년간 400만원이라는 거액에 달했다. 그리고 그것을 조선을 상품시장화, 원료기지화, 자본투하지화, 병참기지화하는 동맥으로써 리용하게 되였다.

나라를 종속시키는 과정으로서의 문명개화는 참의미에서의 문명개화일수 없다. 그러므로 문명개화에 대한 환상은 문명개화에 대한 물신숭배인것이다.

자본주의, 제국주의는 뒤떨어진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관계를 전파, 확산시키면서 그것을 외곡시키는 동시에 그 지역의 자주적발전을 억제하고 봉건적 제 관계를 유지, 존속시킨다. 이리하여 조선을 포함한 식민지로 전락되는 나라들에서는 정상적인 자본주의가 성장하지 못하고 식민지반봉건사회로 전락되는것이 합법칙적현상으로 되게 되였다. 즉 자본주의, 제국주의침략이 시작된 이후에는 그 침략에 의해 조선이나 기타 후진지역의 력사적변화과정이 규정되였기때문에 근대화나 자본주의화는 억제되고 외곡된 과정으로 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김일성주석께서 조선사회의 성격을 식민지반봉건사회로 정식화하심으로써 근대일반을 근대화과정, 자본주의화과정으로 례찬하면서 근대에 벌어지는 사변들중에서 그것이 근대화나 자본주의화와 직간접적으로 련결되는 요소만 발견하면 무조건 찬미하던 외곡된 근대사관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되였다. 그것은 맑스가 자기의 한 저서에서 말한 사회구성체발전의 5단계(원시공동체사회, 노예소유자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 사회주의사회)를 경험한 나라는 유럽의 일부 나라들에 국한되고 세계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식민지예속국가들에서는 봉건사회로부터 식민지반봉건사회로 이행하게 되는것이 세계사적보편타당성으로 된다는것이 밝혀지게 되였다. 다시말하여 식민지나라들에서는 식민지반봉건사회구성체를 보편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는것이 립증되게 되였다.

근대의 본질적특성의 하나가 식민지반봉건사회에로의 전락이라는것이 밝혀짐으로써 식민지나라들에서 혁명운동의 방향을 모색하지 못하고 리론적혼란을 경험하고있던 당시의 조건에서 벗어날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였다.

당시 조선의 민족운동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편향들이 나타나고있었는데 주되는 편향은 민족주의자들속에서 나타난 근대화지상주의적편향과 초기공산주의자들속에서 나타난 교조주의적편향이였다.

민족주의자들의 적지 않은 층과 민족개량주의자들은 문명개화과정 그리고 근대적개혁과 련관되거나 그것과 맥락을 같이하는것이라면 그것이 개량주의적인것이거나 제국주의지배자와의 타협을 전제하는것이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긍정하였는데 그것은 근대화지상주의의 단적표현이였다. 근대화지상주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실력양성이나 자치실현과 같은것을 근대를 실현하는 리상적인 대안으로 간주했는데 이것은 식민지의 참다운 근대화과정을 바라지 않는 제국주의자들의 지배책동에 리익을 주는것이였다. 당시 비타협적인 민족주의자라고 불리운 민족주의자들이 근대에 대한 그와 같은 리해를 반대하고 근대화지상주의를 배격한것은 바로 그때문이였다.

맑스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중의 일부는 맑스의 사회구성체발전 5단계설을 세계적인 보편타당성을 가지는것으로 절대화하면서 유럽과 조선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조선도 자본주의사회로 진입하였고 따라서 계급투쟁의 조건도 유럽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없는것이라고 교조주의를 범하고있었다.

또 다른 일부의 사람들은 맑스의 《아시아적생산방식론》을 아시아사회의 정체성을 지적한것이라고 그릇되게 받아들이면서 그 《아시아적정체성》으로 하여 조선에서는 봉건사회도 제대로 성립하지 못하였고 자본주의사회에로의 진입도 정체될수밖에 없다는 교조주의적이고 민족허무주의적주장을 하고있었다.

근대의 본질문제로부터 비롯된 이같은 좌우경적편향은 조선의 근대력사를 옳게 설명할수 없게 할뿐아니라 조선의 현실로부터 출발한 혁명운동의 진로를 제시할수 없는 리론실천적제한성을 가지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정립하신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은 당시(1930년대)에 있어서 혁명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이였을뿐아니라 오늘날에 있어서도 조선근대사학을 과학적토대우에서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지침으로  된다.

우리가 다 아는것처럼 남조선에서는 1980년대에 있은 조선사회성격론쟁에 앞서 1960년대말경부터 사학계, 경제학계를 중심으로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조선사회의 성격문제를 둘러싼 론쟁이 있었고 여기에서는 당시 조선사회성격에 대한 각이한 견해들이 나타났었다.

요약하면 네가지 견해가 나타났었다. 첫째 견해는 식민지반봉건사회로 인식하는 견해이고 둘째는 산업자본에 의한 공업화가 진척되였다는것을 근거로 자본주의사회로 주장하는 견해이고 셋째 견해는 식민지경제의 공업화뿐아니라 사회의 근대화과정이 촉진되였다는것을 근거로 근대사회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되였다는것을 주장하는 견해이고 넷째 견해는 일본의 상인자본이 주로 침입하여 류통부문에 투자하고있던 미숙한 단계에 머물고있었다는것을 근거로 삼아 식민지상업자본주의사회 또는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사회에로 이행하는 과도사회로 보는 견해였다.

첫째 견해를 제외한 나머지 세가지 견해에 공통되는것은 조선근대화과정의 타률성 즉 제국주의의 침략이 조선사회의 성격을 근원적으로 이지러뜨리게 한 결정적변수였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하고있는 그것이다.

론쟁에서는 이 세가지 견해를 비판하는 기초우에서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의 론리가 관철되지만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의 경우에도 반봉건사회라는 개념에서 반자에 대한 의미부여에서는 통일된 견해를 정립하지 못하였었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근대의 본질파악, 사회성격의 옳바른 규정이 학문적연구의 대상이기 전에 개혁운동의 실천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조선의 근대가 식민지반봉건사회로 귀결되는 사실 하나를 가지고 조선근대의 본질이 다 설명되는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만일 식민지반봉건사회로 귀결되였다는 사실 하나만이 근대의 본질로 정리된다면 조선의 근대력사는 제국주의침략의 력사로서밖에는 엮어질수 없게 된다. 조선근대사는 그러한 패배주의의 력사가 아니다. 제국주의의 침략을 반대하고 그 침략으로부터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며 식민지사회로 된 이후에는 식민지반봉건적사회관계를 총체적으로 청산하기 위한 민족주체의 투쟁의 력사이고 승리의 력사였다. 여기에 조선근대의 본질을 특징짓는 보다 핵심적문제설정이 존재하는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식민지반봉건사회에는 그에 따르는 독특한 혁명운동이 수반되는데 그것이 바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되는 투쟁이며 그 혁명은 유럽에서 수행된 부르죠아혁명이나 로씨야에서 수행된 부르죠아민주주의혁명에서 직행하는 사회주의혁명과는 그 성격이 다른 새 류형의 혁명임을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때 당시의 청년들은 근대력사를 변혁시킨 혁명가운데는 부르죠아혁명이나 사회주의혁명밖에 없는것으로 알고있었다. 그런데 사회주의혁명도 아니고 부르죠아혁명도 아닌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내놓았으니 의문을 품을만도 하였다.

우리가 조선혁명의 성격을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라고 규정한것은 우리 나라에 조성된 계급관계와 우리 혁명앞에 제기된 과업으로부터 얻어낸 결론이였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2권, 47페지)

당시 조선민족이 수행해야 할 가장 절박한 과제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인민을 얽어매놓고있는 봉건적관계를 청산하며 조선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것이였던것만큼 새 류형의 혁명은 조선력사발전의 필연적요구를 반영하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새 류형의 혁명은 반제민족해방혁명과 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 병렬적으로 나란히 놓이는 혁명이 아니였다. 제국주의지배를 청산함이 없이는 반봉건민주주의적과제도 해결될수 없었던 그런 관계에 놓여있었으므로 반제민족해방혁명이 규정성을 가지는 혁명이였고 따라서 그것은 반제민족해방혁명이였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 본질에 있어서 민족해방투쟁이였을뿐아니라 19세기 후반기이래 줄기차게 이어져온 반침략투쟁과 반봉건투쟁도 민족해방투쟁으로 범주화되는 운동이였다.

따라서 조선의 근대력사의 전과정에 관통되는 민족주체의 투쟁은 민족해방운동의 력사라고 말할수 있다.

민족해방운동은 식민지에서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근대적형태로 되였고 따라서 조선의 근대사도 민족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력사로 된다.

민족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은 조선의 근대사에 관철되는 력사의 기본흐름이고 조선근대사의 본질적면을 이룬다.

식민지반봉건사회에로의 귀결이 조선근대사의 객관적과정을 보여주는 문제이라면 민족해방투쟁을 통해서 진행되는 자주성을 위한 투쟁은 조선근대의 주관적과정을 보여주는 본질적문제가 된다. 후자에 의해 조선근대사가 엮어진것으로 하여 그 력사는 희생의 언덕을 넘고 넘었다.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 근대사에 반영되는것은 제국주의침략으로부터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려는 민족존립의 근본조건과 관련된다. 민족은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회집단이다.

자주성은 민족이 민족으로 되게 하는 근본성질이며 민족의 존재와 번영을 담보하는 민족의 생명이다. 민족이 독자적인 주체로서 자기의 존엄과 자주권을 지키며 살며 발전하여나갈수 있게 하는 성질이 곧 자주성인것이다.

자주성이야말로 민족의 존재와 발전을 규제하는 기본요인이 되며 자주성의 상실은 곧 민족의 자기 상실을 의미하게 된다.

민족의 생명인 자주성이 있음으로 하여 민족은 민족의 자주권이 유린되였을 때에는 민족해방투쟁으로 나가게 되기 마련이다. 나라잃은 백성의 신세가 개, 돼지만도 못하게 되는 조건에서 민족해방투쟁이 일어나는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라가 망하면 산천도 사람도 결코 편안할수가 없다. 망한 나라의 지붕밑에서는 나라를 판 값으로 호의호식하는 매국노들도 발편잠을 자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은 설사 살아있어도 상가집 개만 못하고 산천은 설사 지경이 남아있어도 제모습을 보존하기 어렵다.

이런 리치를 먼저 깨닫는 사람을 선각자라고 하며 와신상담하면서 나라의 비운을 가시려고 애쓰는 사람을 애국자라고 하며 제 한몸을 불태워 진리를 밝히고 만민을 불러일으켜 불의의 세상을 뒤집어엎는 사람을 혁명가라고 한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1권, 13∼14페지)

민족의 자주권이 침해될 때 인민대중속에서 선각자와 애국자가 나오고 혁명가가 나오게 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들에 의해 인민대중이 이끌리여 민족해방운동은 투쟁의 대하를 이루게 된다.

민족해방투쟁은 민족의 운명을 민족주체의 힘으로 개척해나가기 위한 투쟁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민족해방투쟁으로 표현되는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앙양과정이 민족사의 기본흐름으로 됨으로써 조선의 근대는 침략과 반침략의   가렬처절한 대결속에서 주체적민족사를 엮어나가게 되였으며 이와 같은 과정이 한 나라의 범위를 벗어나 광범한 식민지나라들에 확대됨으로써 세계는 자주성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였다.

제국주의침략과 식민지지배를 반대한 민족해방투쟁과정이 결국 조선근대의 본질을 복합적으로 이루게 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한평생 민족의 존엄을 위하여 싸워왔다. 나의 일생은 민족의 존엄과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력사였다고 말할수 있다.》(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4권, 115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위대한 생애는 력사의 도도한 흐름으로 굽이친 민족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과 불가분리적으로 련결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