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해방된 남반부지역에 진정한 인민민주주의제도를 세우고 남반부인민들에게 새 생활창조의 넓은 길을 열어주기 위한 사업도 적극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남반부해방지역에서 당단체들과 정권기관, 사회단체들을 복구하며 제반 민주개혁을 실시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남반부해방지역에서 당단체와 인민정권기관들을 시급히 복구하고 제반 민주개혁을 실시하여 남반부인민들에게 진정한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주며 그들의 생활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치렬한 전투가 계속되는 준엄한 전시환경에서 남반부인민들에게 새 제도, 새 생활을 마련해주기 위한 사업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환경속에서 진행하여야 하였다. 미제의 폭격만행으로 말미암아 당시 해방지역 인민들의 생활은 극도로 령락되였으며 적들이 내돌린 악랄한 《반공》선전의 후과로 하여 일부 사람들속에는 공화국의 인민민주주의제도에 대한 편견과 의혹이 남아있었다. 적들이 패주하면서 박아놓은 간첩, 파괴암해분자들의 책동도 우심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남반부인민들에게 새 제도, 새 생활을 마련해주기 위한 사업을 조금도 미룰수 없는 긴절한 혁명임무로 내세우시고 당, 정권기관, 사회단체들을 시급히 복구하고 제반 민주개혁을 실시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추진시키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를 위하여 당 및 정권기관, 경제기관 일군들, 대학졸업반학생들과 재학생들을 해방된 남반부의 각곳에 정치공작대로 파견하는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정치공작대의 임무는 해방된 남반부지역 인민들속에 들어가 조선로동당의 정책과 공화국정부의 인민적시책들을 광범히 해설선전하며 당단체들과 정권기관, 사회단체들을 조직하고 제반 민주주의적개혁을 실시하는 사업에 적극 참가하는것이였다.

이렇듯 중요한 조치를 취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보다먼저 당 및 정권기관, 사회단체들을 복구하고 그 역할을 높이도록 하시였다.

남반부인민들에게 새 생활창조의 넓은 길을 열어주기 위한 사업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자면 새 사회건설을 위한 인민들의 투쟁을 조직하고 추동하며 이끌어나가야 할 정치조직이 있어야 하였다.  

그런데 그때 남조선사회의 형편을 보면 미제와 그 주구들의 책동에 의하여 당조직들과 사회단체들은 거의나 파괴되고 인민들자신의 손으로 세운 인민위원회들은 강제로 해산된 상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로부터 로동당단체들을 복구하며 당사업을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도록 하시였다.

이를 위하여 그이께서는 적들의 탄압만행에도 굴하지 않고 지하에서 활동하던 혁명가들을 핵심으로 하여 각급 당단체들을 조직하도록 하시는 한편 로동계급과 농민대중을 각성시키고 그들속에서 당조직을 늘이며 특히 해방지구에서의 민주건설과 전선원호사업 등 실천투쟁을 통하여 검열된 선진분자들을 당에 적극 받아들여 당력량을 확대강화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남반부에서의 혁명은 남반부의 실정을 잘 알고 거기에 누구보다도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진 남반부사람들자신이 해야 더 잘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빠른 시일안에 남반부출신의 간부들을 교양육성하도록 하는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주체39(1950)년 8월 16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 《해방지구들에서 로동당단체의 복구와 당사업의 강화를 위한 당면과업에 대하여》에서 해방지구들에서의 로동당단체들의 복구와 당사업강화에서 나서는 일련의 원칙적문제들에 대한 명확한 방향과 투쟁과업들을 제시해주시였을뿐만아니라 남반부해방지역에서 당의 령도적역할을 높이기 위한 각급 당단체들의 사업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그이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해방지역들에서는 당의 기층조직인 당세포로부터 도당조직에 이르기까지의 로동당 각급 당단체들이 급속히 복구되였으며 도처에 각종 간부학교들과 양성소들이 설치되여 수많은 남반부출신간부들이 새 사회건설의 핵심력량으로 자라났다. 각급 당단체들은 당내부사업을 강화하면서 인민대중속에서 조직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려 그들을 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고 전쟁승리를 위한 투쟁에로 조직동원하였다. 특히 각급 인민위원회선거와 토지개혁을 비롯한 제반 민주개혁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며 파괴된 경제를 복구정비하고 인민군대를 원호하는 사업을 힘있게 이끌어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급 당단체들과 함께 광범한 대중을 직업별, 계층별로 대중단체에 묶어세우고 그에 대한 당적령도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도 적극 밀고나가시였다.

그리하여 해방된 남반부각지에서는 짧은 기간에 직업동맹, 농민련맹, 민주청년동맹, 민주녀성동맹, 문화단체총련맹 등 여러 대중단체들이 조직되였다. 민주주의적인 사회단체들이 조직되고 각계각층 인민들이 자기의 조직들에 망라됨으로써 로동자, 농민, 녀성, 청년학생을 비롯한 광범한 군중을 당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우고 그들을 제반 민주개혁의 성과적수행과 전쟁승리를 위한 투쟁에로 더욱 힘있게 불러일으킬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지역에서 인민정권기관들을 복구하기 위한 사업에도 커다란 힘을 넣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해방된 남반부지역에서 정권문제를 해결할 방도에 대한 가르치심도 주시고 해방지역들에서 낡은 식민지통치기구를 청산하고 지체없이 인민의 정권을 세우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결과 남반부해방지역들에서는 인민의 정권을 세우기 위한 대중적인 투쟁이 힘있게 벌어졌으며 각 도인민위원회를 비롯하여 군, 면, 리인민위원회들이 해방지역 인민들자신의 손에 의하여 련이어 복구되여 자기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주체39(1950)년 6월 26일에 개성시인민위원회가 복구되고 27일에는 남연백군, 28일에는 옹진군에서 인민위원회들이 복구된데 이어 해방된 모든 지역들에서 군중대회가 진행되고 림시인민위원회들이 복구되였다. 서울시 같은 경우에는 서울시가 해방된 날인 6월 28일에 벌써 림시인민위원회가 사업을 시작하고 구, 동에 이르기까지 인민위원회가 전부 복구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위원회들이 복구되는데 따라 남반부해방지역에서 활동하는 지방주권기관들을 법적으로 더욱 공고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시였다.

그러한 조치가 바로 해방지역에서의 군, 면, 리(동)인민위원회 선거를 실시하도록 하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39(1950)년 7월 14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하신 결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남반부해방지역들에서 군, 면, 리(동)인민위원회 선거를 실시하는것은 미제의 식민지통치제도를 철저히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주의제도와 질서를 확립하며 인민들에게 진정한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고 그들을 전쟁승리에로 조직동원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해방된 남반부지역에서 실시하게 되는 군, 면, 리(동)인민위원회 선거는 남반부인민들이 력사상 처음으로 합법적조건에서 참가하는 민주주의적선거입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선거를 성과적으로 진행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남반부해방지역의 군, 면, 리(동)인민위원회 선거실시에 관한 정령을 발표하였다.

남반부해방지역 인민들은 력사상 처음으로 합법적조건에서 정치적자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적선거를 크나큰 경사로 맞이하였으며 무한한 기쁨과 높은 정치적열의를 가지고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선거는 아직 전투가 진행되고있는 락동강 좌안의 경상남북도 일부 지역(경상북도 8개 군과 경상남도 9개 군)과 제주도를 제외한 해방된 9개 도의 108개 군, 1 186개 면, 1만 3 654개 리(동)에서 전체 유권자의 97∼98%의 참가밑에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이것은 남반부인민들이 자기의 주권기관선거에 얼마나 열성적으로 참가하였으며 공화국정부를 얼마나 열광적으로 지지하고있는가를 뚜렷이 보여준 명백한 실례였다.

해방된 남반부지역 인민들에게 새 생활창조의 넓은 길을 열어주시기 위하여 기울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심혈과 로고는 남반부해방지역에서 민주개혁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여 남조선사회의 민주주의적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사업에도 뜨겁게 어리였다.

그이께서는 남반부해방지역들에서 민주개혁을 하루빨리 실시하는것을 남반부인민들을 제국주의적, 봉건적착취와 억압에서 해방하고 그들에게 참다운 민주주의적권리와 자유, 행복한 물질문화생활조건을 보장하여주기 위한 중요한 사업으로 보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그이께서 민주개혁을 실시함에 있어서 선차적인 과업으로 내세우신것은 토지개혁을 실시하는것이였다.

토지개혁을 먼저 실시하여야 농촌에 뿌리박은 봉건적토지소유관계와 착취관계를 청산하고 반동세력의 경제적지반을 없앨수 있으며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있는 농민들을 봉건적착취에서 해방하고 그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줄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농촌의 계급력량관계와 토지소유관계, 땅에 대한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깊이 헤아리시고 공화국북반부에서 실시한 민주개혁의 풍부한 경험에 기초하여 해방된 남반부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지역에서의 토지개혁의 성과적수행을 위하여 남조선농민들이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높이도록 하시는 한편 수많은 당핵심들과 로동계급의 우수한 일군들을 농촌에 파견하시여 그들의 사업을 도와주도록 하시였으며 고농과 빈농민들을 기본으로 하여 농촌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역할을 높이도록 하시였다.

주체39(1950)년 8월 1일, 드디여 해방된 남반부지역에서는 력사적인 토지개혁이 시작되였다.

불과 한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진행된 토지개혁의 결과 해방지역 경지면적의 약 43. 3%에 달하는 토지가 무상으로 몰수되여 126만 7 000여호의 고용농민들과 토지가 없거나 적은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여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은덕으로 제땅에서 마음껏 농사를 지어보려던 평생소원을 이루게 된 농민들은 자기들에게 땅을 주신 어버이수령님께 수만통의 감사편지를 삼가 올리였다.

이에 대하여 당시 서울에서 발간되던 《독립신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인민군대의 진격에 의하여 농민들의 숙망은 실현되였으며 그 숙망실현에 감격한 농민들이 토지개혁에 감사하다는 편지를 김일성수상님께 보낸것이 지난 2일간만 해도 3천여통에 달한다.》

땅을 무상으로 받은 충청북도 보은의 한 농민은 위대한 수령님께 다음과 같은 편지를 삼가 올리였다.

김일성장군님, 옥체만강하시옵나이까. 나라일이 어지럽사와 근무에 바쁘신줄 알면서도 너무 지중한 은덕을 입사와 삼가 이 글을 올리나이다. 저는 아비도 머슴이옵고 제 형도 머슴이옵고 또 두 동생도 머슴이옵니다. 저는 선키가 지게보다 조금 높은 때부터 지주에게 춘하추동 마소처럼 시달렸나이다. 지주는 저를 턱으로 부르고 매질로 부렸고 개와 마주앉아 밥먹게 했나이다.

… 그러한 저에게 장군님이 땅을 주셨나이다.

… 이것이 꿈이오니까, 생시오니까.… 살아생전에 이 은혜를 안 갚으면 너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하오며 저의 늙은 어머니는 노래처럼 장군님은덕을 칭송하고있사옵니다. 나는 너희들을 머슴으로 낳았는데 장군님께서 너희들을 사람으로 만들어주셨구나. 어머니는 이런 푸념을 하면서 벽우에 높이 모신 장군님영상에 조석으로 절을 하옵니다.…》

토지개혁의 성과적실시는 남반부농촌에서의 일대 혁명이였다. 남조선인민들은 토지개혁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를 받아야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누릴수 있다는것을 현실로 체득하게 되였으며 그이의 은덕에 보답할 결의를 굳게 가다듬었다.

토지개혁의 실시로 남녘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로자들의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들도 실시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 취해주신 조치에 따라 해방된 공화국남반부지역에서 로동법령을 실시할데 대한 내각결정 제146호가 채택되였으며 녀성들에게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며 교육과 사회문화, 보건 및 사법, 검찰부문 등을 민주화하기 위한 법령들이 련이어 제정공포되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해방된 남반부지역에서 제반 민주개혁이 성과적으로 수행되고 사회경제, 문화, 사법 등 모든 분야의 민주화가 실현됨으로써 새로운 인민민주주의제도가 수립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과 후방의 크고작은 일들을 다 돌보셔야 하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인민민주주의제도하에서 새 생활창조의 길에 들어선 남녘인민들의 생활을 하루빨리 안정시키시기 위하여 뜨거운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언제나 남녘인민들의 생활에 대하여 마음써오신 그이께서는 전선에서 전선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지지도의 나날에도 해방지역 인민들의 생활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몸소 서울에 나가시여 판자촌을 비롯한 가난한 인민들이 사는 곳을 돌아보시고 서울시민들의 생활을 하루빨리 안정향상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조치를 취해주시기도 하시고 경기도 의정부의 어느 한 농가에 들리시여서는 농민들이 미제의 학정밑에서 짓눌리며 살아온 이야기도 들어주시고 토지개혁실시정형에 대하여 상세히 알아보시였으며 분여받은 땅을 잘 가꾸고 농사를 잘 지을 방도를 의논해주시기도 하시였다.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일분일초는 그야말로 귀중한 시간이였다.

하지만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는 그이께서는 그처럼 귀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내시여 해방지역 인민들의 생활형편도 알아보시고 구체적인 가르치심과 대책들도 세워주시였던것이다.

이런분이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지역 인민들의 식량문제와 옷감공급문제, 의료상봉사와 살림집문제, 김장용남새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까지 일일이 세워주시였으며 지어 땔나무문제에 대하여서까지 세심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주체39(1950)년 8월 어느날이였다.

그때 서울시민들의 생활형편을 료해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 겨울나이땔나무가 확보되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아시고 관계부문 일군들의 협의회를 소집하시였다.

협의회에 참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시민들의 땔나무문제를 중요한 정치적문제로 보고 지금부터 조직사업을 잘하여 꼭 풀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친히 조직사업까지 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산림자원과 수송조건을 고려하여 땔나무생산은 강원도 설악산일대에서 하고 수송은 림진강으로 류벌하며 생산과 운반은 원산림산사업소가 기본이 되여 맡고 부족한 인원은 림업국과 강원도인민위원회에서 보충해주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그이께서는 땔나무를 원만히 공급하기 위한 체계도 세워주시였으며 서울시민들의 생활형편을 고려하여 그 가격을 옳게 정할데 대하여서도 가르치시고나서 이 사업에 요구되는 자금과 물자들은 국가계획위원회와 재정성에서 풀어주며 림업국에서는 부국장이 직접 책임지고 이 사업을 조직진행하도록 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이 사업을 책임지고 해야 할 림업국 부국장에게 최고사령부의 신임장까지 내주도록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강원도 설악산일대에서는 수천명에 달하는 장정로력이 파견되여 서울시민들의 겨울철땔나무를 확보하기 위한 통나무생산전투를 진행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의 무모한 전쟁확대책동으로 말미암아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하게 되는 엄혹한 정세가 조성되자 마련된 통나무들을 토막내여 강물로 띄워보내도록 하시였다. 서울시민들이 떠내려오는 토막나무들을 건져쓰도록 하시려는 다심하신 어버이의 심정에서였다.

하나의 물방울에 우주가 비낀다는 말이 있다. 남녘의 전체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울시민들에게 돌려주시는 뜨거운 사랑을 통하여 숭고한 동포애와 민족애, 고결한 인간애를 지니신 그이의 위인적풍모를 다시금 절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해발아래 해방된 남녘땅인민들의 생활은 가렬한 포화속에서도 급속히 안정되여갔으며 38°선으로부터 남해기슭에 이르는 해방된 남반부지역의 모든 인민들은 그이께서 마련하여주신 참다운 인민민주주의제도하에서 보람찬 새 생활을 누리게 되였다.

남녘인민들은 자기들에게 정치적자유와 권리를 주시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다함없는 감사를 드리였으며 그이의 뜻을 받들어 전쟁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