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의 전기간 전시령도의 중심을 철저히 전선에 두시고 비범한 군사적지략과 무비의 담력, 탁월한 령군술로 전 전선에서의 모든 작전과 전투를 현명하게 이끄시여 련전련승을 마련해나가시였다.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도발자들을 쳐물리치던 조국해방전쟁의 첫 시기에만 하여도 그이께서는 여러차례 전선사령부를 찾아주시여 전쟁승리의 획기적국면을 열어놓으시였다.

피어린 격전으로 날이 새고 날이 밝던 주체39(1950)년 7월 어느날, 포연에 불타던 해도 룡악산너머로 머리를 숙이고 어느덧 하늘가에 어둠이 깃들무렵 평양시내를 벗어난 야전승용차가 중화, 황주를 거쳐 남으로 쏜살같이 달리고있었다.  

폭격에 파헤쳐진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는 승용차의 뒤좌석에는 수수한 보위색군복차림을 하신분이 자리를 잡고계시였다.

그이의 곁에 앉아있던 일군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워낙 길이 나빠서 … 차가 너무 들추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그이께서는 《아니 일없소. 전선의 동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소. 빨리 전선사령부로 갑시다.》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적기의 공습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보통야전승용차에 오르시여 전선사령부를 찾아가시는 그이는 바로 조국과 민족의 운명, 전선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울길에 오르시게 된데는 이러한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서울길에 오르시기 하루 전날 그이께서는 전선의 작전진행정형을 두고 오래도록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결정적인 반공격에로 이행한 인민군대는 단 3일동안에 미제식민지통치의 아성인 서울을 해방하였으며 련이어 《상승》사단이라고 하는 미24사단 선견대를 오산땅에서 통쾌하게 포위소멸함으로써 미제로 하여금 력사상 처음으로 비극적인 패전의 쓴맛을 보게 하였다. 그리고 적들을 련속 공격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난지 불과 10일 남짓한 7월 6일까지는 전전선에 걸쳐 적들을 37°선계선으로 완전히 구축하는 빛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한편 련이은 패전에 질겁한 미제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유엔군》을 비법적으로 조작하고 저들의 침략무력과 함께 15개 추종국가군대까지 조선전선에 들이밀려고 책동하고있었다.

이러한 정세는 인민군련합부대들이 공격속도를 더욱 높여 금강계선과 대전지역에서 미제의 기본력량을 포위소멸하고 하루빨리 마산, 부산으로 진격할것을 요구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서울에 자리잡고있는 전선사령부를 찾으실 결심을 한 일군에게 말씀하시였다.

너무도 뜻밖의 말씀에 그 일군은 그이께 이렇게 말씀드리였다.

《장군님, 안됩니다. 이번에 서울에 나가보니 서울시가 아직 안정되지 못하여 반동놈들이 준동하고 놈들의 폭격도 매우 심합니다. 서울로 나가시는것은 위험합니다.》

이미 서울을 다녀온 그 일군은 서울길이 얼마나 위험한 길인가를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일군의 간절한 청을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험한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큰 위험이 닥쳐온다고 하여도 전선사령부에는 꼭 나가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부관장에게 그 준비를 갖추라고 이르시였다.

부관장이 얼른 대답을 못 올리고 망설이기만 하자 그이께서는 그의 심중을 헤아려보신듯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나직이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동무가 나의 신변에 대하여 걱정하는데 일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멀고 험한 길을 간다 하여도 전선에서 피흘리며 싸우고있는 전투원들의 수고에는 비할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여 그이께서는 그 멀고 위험한 서울길에 오르게 되시였던것이다.

일행은 호위성원을 비롯하여 불과 10명, 운수수단은 보통의 수수한 야전승용차.

예로부터 승리한 군대의 사령관이 시찰할 때에는 그 행장부터가 자못 크고 어마어마하다고 하였다.

하건만 전설적영웅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일행은 너무나도 간소하였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폭탄터지는 화광이 번쩍이는 어둠속을 뚫고 야전승용차는 전선을 향하여 험한 밤길을 쉬임없이 달리였다.

자정도 퍼그나 지난 새벽 2시, 그이를 모신 일행이 고려의 옛 수도였던 개성의 남대문앞을 지나 남녘땅 파주가 바라보이는 림진강기슭에 이르렀을 때 림진강에는 다리 하나 성한것이 없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비행기의 폭격에 의하여 림진강다리가 끊어졌으면 근방에 있는 철교로라도 건너갑시다.

전선에서는 이 시각에도 전투원들이 피를 흘리며 적들과 싸우고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주저하겠습니까. 전선에 있는 동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야전승용차로 철교를 건느도록 하시였다.

달도 없는 야밤, 적비행기의 쉬임없는 폭격소리, 듬성듬성 침목이 깔린 고르롭지 못한 철교, 부관이 앞에서 흔드는 흰 천을 표적으로 삼고 손더듬하듯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침목 하나하나를 넘어가는 승용차…

실로 그것은 선군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위해서라면 한몸의 위험도 돌보지 않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의 위인상을 보여주는 거룩한 력사적화폭이였다.

평양에서 서울까지에 이르는 전선길은 줄곧 이런 위험과 난관으로 이어졌다.

전선사령부에 도착하시여 작전회의를 소집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혜안의 예지와 비범한 지략으로 대전해방작전수행에서 난문제로 제기되고있던 대전 동남쪽에 대한 포위형성문제를 명쾌하게 풀어주시였으며 대전해방작전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도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이의 전선사령부시찰소식에 고무된 인민군장병들은 대전해방전투에서 대중적영웅주의와 무비의 용감성을 높이 발휘하여 미24사단을 완전히 괴멸시키는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였으며 상주, 영동, 김천 등 이르는 곳마다에서 적들을 련속 타격하고 7월말경에는 락동강계선에까지 진출하였다.

이처럼 싸우는 전사들을 찾으시여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시고 신묘한 전법과 전술도 가르치시여 전쟁승리의 획기적국면을 열어놓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로부터 얼마후 또다시 전선사령부를 찾아떠나시였다. 그때 전선사령부는 수안보에 자리잡고있었다.

최전선이 지척인 수안보에로의 길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다.

그이를 모신 일행이 충주를 가까이 했을무렵이였다.

불의에 적기들이 나타나더니 달리는 야전승용차를 향하여 곧바로 내리꽂히며 폭탄을 떨구고 기총사격을 해대기 시작하였다. 옆에서 터지는 폭탄의 폭풍에 야전승용차가 뒤집힐듯 기우뚱거리고 기총탄이 귀전을 아츠럽게 스치였다. 참으로 위기일발의 순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빨리 차를 세우고 은페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얼마후 공습이 끝나고 적기들이 사라지자 다시 차에 오르신 그이께서는 운전수에게 자동차의 앞유리를 내리우도록 하시였다. 조명을 끄고 달렸는데도 적기의 목표로 된 원인이 바로 충주시가지쪽에서 타오르는 불빛에 차의 앞유리가 반사된데 있다는것을 예리하게 포착하시였던것이다.

하지만 운전수는 잠시 머뭇거렸다.

날마다 포연탄우를 헤치시는 우리 장군님이신데 앞유리를 내리우면 차에 들씌워지는 그 흙먼지는 어찌한단 말인가.

운전수의 이런 심정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지가 좀 들어오면 뭐라는가고, 전쟁시기인데 어떻게 편안하게만 다니겠는가고, 내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자동차를 최대속도로 몰아야 하겠습니다. 자동차가 지금처럼 달려가지고는 전선사령부가 있는 수안보에 언제 도착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선의 동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사선의 고비들을 수없이 넘으시여 8월 1일 새벽녘에 수안보에 도착하시였다.

그이를 또다시 만나뵙게 된 전선사령부 일군들은 크나큰 격정이 북받쳐올라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절세의 위인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와 경모의 정이 차넘치는 속에 어느덧 날이 밝아왔다.

주체39(1950)년 8월 1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안보에서 조선인민군 전선사령부 일군 및 전선련합부대 지휘관, 문화일군회의를 소집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회의에서 하신 연설 《전선련합부대들의 금후 군사행동방향에 대하여》에서 지난 전쟁행정과정에 대하여 언급하시고나서 전선련합부대들이 련속적인 타격과 대담한 기동작전으로 적방어선을 돌파하고 신속히 락동강을 강행도하하여 마산, 대구, 영천, 포항계선으로 진출할데 대한 전투적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이와 함께 그이께서는 적에 대한 정면타격과 익측, 배후타격을 잘 배합하며 야간전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 군종, 병종간 협동동작을 더욱 강화하며 특히 포병을 옳게 리용할데 대한 문제, 부대내에 강철같은 군사규률을 확립하며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일층 강화할데 대한 문제들을 비롯하여 전선련합부대들이 앞으로 진행하여야 할 사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회의를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몸소 포연이 자욱한 최전방고지에 오르시여 전사들을 고무해주시고나서 전선사령부 책임일군들과 다시 자리를 같이하시고 작전토의를 진행하시였다. 그야말로 순간의 휴식도 없는 긴장한 일정이였다.

7월에 이어 8월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이의 전선시찰소식은 인민군장병들을 새로운 위훈에로 불러일으켰다.

전선련합부대의 인민군장병들은 락동강상류의 안동으로부터 상주, 거창, 합천을 련결하는 수백리 전선에서 락동강을 도하하는 치렬한 전투를 벌려 전반적지점에서 성공함으로써 8월 중순까지 군위를 해방하고 대구방향으로 적을 압축하면서 성과를 확대해나갔다. 그리하여 인민군장병들은 9월에 이르러서는 팔공산지역과 대구 북쪽 5㎞지점까지 육박하게 되였으며 남조선지역의 90%이상, 남조선인구의 92%이상을 해방하는 자랑찬 전과를 거두게 되였다. 바야흐로 침략자들은 부산앞바다에 처박힐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