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 통일일화』 중에서 

 

 

주체87(1998)년 10월말경이였다.

지방에 가계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느날 갑자기 일군들에게 평양으로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이르시였다.

일군들은 의아해졌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돌아가시겠다고 한 사연을 알고는 그이의 한없는 덕망에 머리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무렵 남조선《현대그룹》의 정주영명예회장일행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잠간만이라도 만나뵈오려는 소망을 안고 평양에 머무르고있었다.

공화국북반부에 고향을 둔 그에게 있어서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는것은 그의 간절한 소원이였다.

정주영명예회장의 이러한 심중을 헤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의 바쁘신 속에서도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그를 만나주시려고 평양으로 급히 떠나자고 하신것이였다.

행여나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뵈올수 있지 않을가 하여 마음을 조이던 정주영명예회장은 뜻밖에 그이께서 숙소로 찾아오신다는 소식에 접하자 너무도 황송하여 밖으로 황급히 달려나갔다.

그의 숙소에 도착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불편한 다리로 정문까지 마중나온 그에게 인자하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고령에 있는분이 나를 찾아오게 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가서 만나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현지지도도중에 평양에 오다나니 이렇게 밤이 늦어서 정주영선생을 만나게 되였는데 이에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순간 정주영명예회장은 어쩔바를 몰라했다.

깊은 밤 숙소를 찾아주신것만도 과분하기 그지없는데 사례의 말씀까지 해주시니 그는 황송스러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주영명예회장에게 선생이 다리를 불편하게 쓰는것 같은데 어떻게 되여 그렇게 되였는가고 걱정어린 안색으로 다정히 물으시고나서 남조선대기업체 창업주들가운데서 지금까지 앉아계시는분은 정주영선생뿐인것으로 알고있다고, 정주영선생이 배짱이 세고 한번 하자고 마음먹으면 끝까지 내미는 성미를 가지고있는분으로 알고있다고 믿음을 주기도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받아안게 된 정주영명예회장은 《장군님을 만나뵈왔으니 이젠 100살을 더 살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주 오겠습니다.》라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찌나 다정하게 말씀하시는지 그와 가족일행은 그이의 인품에 끌리여 속에 품고있던 문제들에 대해서까지 다 말씀드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무랍없이 올리는 그들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시며 긍정도 하시고 때로는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주기도 하시며 일일이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뜻한 말씀에 정주영명예회장은 시종 크나큰 감격과 기쁨, 환희에 넘쳐있었다. 담화가 깊어갈수록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매한 인품에 더욱더 끌려든 일행은 황홀경에 잠겨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과 남, 해외의 공동의 관심사로 되고있는 금강산관광개발문제를 비롯하여 정주영명예회장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다 풀어주시고 영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는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만난것을 기념하여 기념사진이나 찍읍시다. … 나이많은 정주영선생이 가운데 서야 합니다.》라고 하시며 그의 손을 꼭 잡으신채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그리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가족 전체 성원들과도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어주시고 밤늦게야 그들이 든 숙소를 떠나시였다.

이렇게 되여 정주영명예회장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던 자기의 소원을 성사시킬수 있게 되였다.

그후 판문점을 거쳐 남쪽으로 나간 그는 평양방문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장군님께서 자기가 든 숙소까지 찾아오시여 만나주시던 일, 그이로부터 북남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한 가르치심을 받던 일들을 긍지에 넘쳐 말하면서 《장군님께서 언제든지 다시 오라고 하시였으니 언제든지 또 갈 생각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