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무력침범자들을 소탕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명령을 받들고 인민군대는 적들의 불의의 공격을 좌절시키고 즉시 전전선에 걸쳐 결정적인 반공격에로 넘어갔다.

이러한 즉시적인 반공격전은 세계전쟁사에서 전례가 없는 군사작전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만 놓고보더라도 1939년 9월 1일, 파쑈도이췰란드의 불의적인 무력침공을 받은 뽈스까군은 당시 57개의 사(려)단을 가지고있었으나 종시 전선을 수습하지 못한채 한달도 못되여 나라를 빼앗기고말았으며 네데를란드, 벨지끄, 프랑스, 그리스, 이전 유고슬라비아 등 유럽의 11개 나라들도 파쑈도이췰란드군의 첫 공격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수주일, 지어 수일만에 손을 들고말았다. 이전 쏘련도 파쑈도이췰란드의 불의적인 침공을 받고 3주일만에는 라뜨비야, 리뜨바, 벨라루씨를 내주었으며 이어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도 포기하고 국경으로부터 900㎞의 종심인 모스크바 서쪽 30㎞ 떨어진 이스트라까지 후퇴하여 93만㎢에 달하는 령토를 내주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지만 즉시적인 반공격에로 넘어갈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아안은 인민군련합부대들은 금천-구화리, 련천-철원, 화천-양구일대에 강력한 반공격집단을 조성하여 완강한 방어전투로써 도발자들의 공격을 좌절시키고 일제히 반공격으로 넘어갔다.

인민군장병들은 공화국북반부지역을 침입한 도발자들을 순식간에 격퇴하고 전쟁이 일어난 하루사이에 벌써 38°선이남지역의 10∼15㎞까지 전진하였으며 옹진, 연안, 개성, 배천 등 여러 도시들과 많은 부락들을 해방하였다.

이것은 해방후 그 어려운 속에서도 혁명무력건설을 제일국사로 내세우시고 이 사업에 선차적인 힘을 넣으시여 인민군대를 항일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상의 강군으로, 모든 군종과 병종을 다 갖춘 무적의 강군으로 튼튼히 꾸려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에 의하여서만 마련될수 있은 자랑찬 성과였다.

노도와 같은 인민군대의 진격앞에 미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었다. 《토착군대》니, 《농민군》이니 하면서 과소평가해온 인민군대가 이렇듯 호되게 미국의 면상을 후려갈기며 질풍처럼 공격해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것이다.

결국 《아침은 해주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먹으며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장담하던 적들은 침입하였던 공화국북반부지역에서 쫓겨나 전전선에 걸쳐 패주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정황에서 중요한 문제로 나선것은 타격방향, 특히 주타격방향을 어디로 정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이것은 전쟁에서 작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로서 작전지휘에서 기본을 이루는 문제였다. 전쟁력사를 보면 타격방향을 옳게 정하지 못하여 막대한 유생력량과 무기, 전투기술기재들을 투입하고서도 응당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거나 작전에서 실패를 면치 못한 일들이 수없이 많다.

인민군대가 적들의 공격을 좌절시키고 즉시적인 반공격에로 넘어갔을 때 작전일군들속에서는 주타격방향문제를 놓고 작전토의가 거듭되고있었다.

지난 시기의 전쟁경험을 보면 적의 가장 약한 고리가 주타격방향으로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주타격을 전선동부로 지향시켜야 하는가, 전선서부로 지향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전선중부에 지향시켜야 하는가?

이러한 때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서울지역에 집중된 적의 기본력량을 소멸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의 전략적방침을 실현하는데서 중심고리는 38도선계선과 서울일대에 배치된 적들을 일격에 소탕하는것입니다.》

일군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예상외로 그이께서 정해주신 주타격방향이 가장 약한 고리가 아니라 반대로 적의 력량이 밀집되여있는 가장 강한 고리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선서부인 의정부-서울방향을 주타격방향으로 정하신데는 깊은 의도가 담겨져있었다.

서울로 말하면 적의 소굴로서 정치, 경제, 군사적중심지였으며 의정부는 그 북쪽관문이였고 수원은 서울 남쪽을 받쳐주고있는 전략적지탱점이였다. 서울에는 적통치기관들이 둥지를 틀고있었으며 군사지휘기관들과 여러개 사단의 병력이 집중되여있었다. 그리고 서울은 중요도로와 철길이 남반부전역으로 뻗어나간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의 적을 먼저 타격하면 적의 기본집단을 전면적으로 와해시키고 적들의 전반적통치체계와 지휘체계를 일대 혼란에 빠뜨릴수 있었으며 차후 인민군대의 공격성과를 확대하고 전쟁승리를 위한 전략적방침을 성과적으로 실현할수 있는 유리한 국면을 열어놓을수 있었다.

일군들은 기성관례와 상식으로써는 도저히 상상할수도 없는 명철한 작전적방안을 내놓으시여 전쟁승리의 획기적국면을 마련해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천리혜안의 예지와 탁월한 군사적지략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주타격방향을 정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그 방향에 가장 우수한 련합부대들을 배치하시고 포와 땅크, 비행대들을 집중시키시였다. 그리고 첫 작전이 개시되는 날 저녁에는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군에게 친히 임무를 주시면서 련합부대들간의 긴밀한 협동작전을 보장하고 그 지휘를 잘하며 주타격방향에서 행동하는 집단에 기본주의를 돌려 그의 신속한 진출을 보장하고 보조타격방향부대들의 행동을 주타격방향부대의 전투행동에 일치시키며 련속적인 타격으로 적을 철저히 소멸할데 대하여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의 작전적구상에 따라 주타격방향의 련합부대들과 보조타격방향의 부대들은 각기 분담된 지역에서 적들을 무찌르며 남으로 진격하였다.

급해맞은 적들은 패주하는 부대들을 문산, 의정부계선에 집결시켜 주타격방향의 인민군부대들을 여기에서 막아보려고 하였다. 적들은 이 계선을 지켜내야 서울을 견지하고 시간을 얻어 예비대를 끌어들일수 있으며 전전선에 걸쳐 붕괴상태에 빠진 저들의 처지를 수습할수 있으리라고 타산하였다.

적들의 기도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미 예견하신 그대로였다.

그이께서는 전선형편과 적의 기도를 명철하게 분석하시고 인민군련합부대들이 의정부를 포천-의정부, 동두천-의정부방향으로 공격하여 적들을 일격에 포위소멸하도록 하시였다.

인민군보병부대들은 포병들의 맹렬한 준비사격에 이어 땅크련합부대와 긴밀히 협동하면서 의정부를 완전히 포위하고 드센 공격을 들이댔다. 의정부시내로 몰려들어간 적들은 한동안 시내의 토목화점들에 의거하여 저항을 시도하였으나 퇴로가 막힌것을 알게 되자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하여 인민군련합부대들은 적들이 크게 기대를 걸고있던 의정부방어선을 단 하루동안에 허물어버리고 6월 26일 밤에는 이곳을 완전히 해방하였다.

의정부가 장악됨으로써 서울해방에 유리한 국면이 열리게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지체없이 서울을 해방할데 대한 명령을 내리시였다.

그이의 명령을 높뛰는 심장으로 받아안은 인민군장병들은 맞다드는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눕히며 서울로 육박하였다.

6월 27일 저녁, 적의 주력을 서울지역에 몰아넣은 인민군련합부대들은 적들의 최종방어선인 미아리계선을 일거에 돌파하여 서울을 공격하는데 유리한 진지들을 차지하였다.

적들은 혼란과 공포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얼마나 급해맞았던지 놈들은 패잔병들에게 입김을 불어넣어 기울어진 형세를 얼마간이라도 돌려세워보려고 저들이 전선에서 《승리를 거두고있다.》느니 의정부를 도로 《빼앗아냈다.》느니 하면서 거짓보도를 내보내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도 우두머리놈들은 살구멍을 찾아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국《대사》였던 무쵸는 이미 6월 27일 아침에 부랴부랴 수원비행장으로 빠져나가 일본으로 내뺐으며 리승만도 몰래 남으로 도망쳤다. 련이어 군부우두머리들 역시 줄행랑을 놓았다.

미아리계선에서 호되게 얻어맞은 패잔병들과 부상병들이 밀려든 서울시내는 말그대로 수라장이 되였다.

시간이 갈수록 인민군부대들의 포위환은 점점 더 조여들었다. 서울해방의 시각이 바야흐로 다가오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해방을 위한 총공격을 앞두고 인민군련합부대들의 전투조직과 준비에 빈틈이 없는가를 다시금 깊이 료해하시고 공격개시시간을 6월 28일 새벽 5시로 정하시였다.

새벽 5시면 인민군대의 공격에 온밤 신경을 쓰며 안절부절 못하고있던 적들이 피곤에 몰려 긴장성이 늦추어지게 될 때였다. 반면에 아군은 날이 이미 밝아 적의 움직임과 타격대상물들을 정확히 가려볼수 있어 타격의 효과성을 높일수 있었다.

그이께서 공격개시시간을 새벽 5시로 정하신 의도는 여기에만 있지 않았다.

그때 서울에는 많은 인구가 집중되여있었고 경복궁을 비롯하여 덕수궁, 창경원, 남대문 등 문화유적들이 적지 않았다. 만일 밤에 공격을 개시하여 시가전을 벌린다면 시민들의 생명재산과 문화유적들에 막대한 피해를 줄수 있었다.

《이민위천》의 숭고한 리념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극력 보호하며 민족의 귀중한 재부인 문화유적들에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하여 총공격을 날이 밝은 다음에 개시하도록 명령하신것이였다. 이것은 언제나 조국과 인민의 리익을 최고의 원칙으로 내세우시는 위대한 인민의 장군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명령이였다.

그이의 전술적방침에 따라 인민군련합부대들은 서울턱밑의 유리한 출발진지를 차지하고 모든 공격준비를 끝내였다. 이무렵 그이께서 서울에 대한 총공격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먼저 시내에 들여보내신 인민군소부대들은 적들의 화력기재들과 수송수단들을 짓부시고 발악하는 놈들을 소멸하면서 혼란을 조성하고있었다.

주체39(1950)년 6월 28일 새벽 5시, 인민군련합부대들은 서울에 대한 총공격에로 넘어갔다.

강력한 포사격에 뒤이어 제105땅크려단 땅크들이 지축을 울리며 보병들의 돌격로를 열어제꼈다. 보병련합부대들은 적들을 정면과 량익측으로부터 타격하면서 서울시가에로 육박하였다.

온밤 공포와 불안속에서 떨며 갈팡질팡하던 적들은 완전히 수세에 빠졌으며 적들의 서울방어진은 물먹은 흙담 무너지듯 허물어졌다.

동대문구에 돌입한 용감한 인민군땅크병들은 먼저 시내에 들어간 인민군소부대와 협동하여 저항하는 적들을 소멸하고 《중앙청》꼭대기에 오각별 빛나는 람홍색공화국기를 휘날렸다. 때를 같이하여 다른 땅크병들은 서대문형무소와 마포형무소를 점령하고 수많은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구원하였다. 북쪽과 동북쪽으로부터 진격한 인민군 한 련합부대는 단숨에 동대문거리와 종로거리를 차지했고 다른 한 련합부대는 동쪽과 동남쪽으로부터 시내에 돌입하였다.

오전 11시 30분, 드디여 서울은 완전히 해방되였다.

오랜 세월 무겁게 드리웠던 억압과 치욕의 검은구름이 가셔지고 애타게 기다리던 해방의 날을 맞이한 서울시는 환희와 감격으로 끓어번졌다. 시민들은 앞을 다투어 거리로 달려나와 인민군전투원들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아이들도 모두가 만세를 부르며 떨쳐나왔다.

거리는 군중들로 물결치고 《김일성장군 만세!》의 환호성으로 떠나갈듯 하였다.

서울시를 진감하는 만세의 환호성, 그것은 식민지적착취와 압박밑에 시달려온 인민들이 민족의 태양이시며 해방의 은인이신 김일성장군님께 드리는 다함없는 감사와 뜨거운 경모의 웨침이였으며 그이를 높이 모시고 광명한 새세상에서 살수 있게 된 끝없는 감격과 기쁨의 웨침이였다.

서울시를 완전히 해방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국인민들과 인민군대와 서울시민들에게 축하문을 보내시여 그들을 열렬히 축하하시고 전쟁의 최후승리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서울해방작전에서 혁혁한 위훈을 세운 련합부대들에 부대칭호를 수여하시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7호 《부대칭호를 수여함에 대하여》에 따라 서울시에 제일먼저 돌입한 조선인민군 제3사단과 제4사단은 조선인민군 서울제3사단과 조선인민군 서울제4사단으로, 제105땅크려단은 사단으로 승격되는 동시에 조선인민군 서울제105땅크사단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서울해방작전의 빛나는 승리는 전설적영웅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주체적군사사상과 전략전술적방침의 불패의 위력, 비범한 령군술에 의하여 마련된 고귀한 결실이였다.

서울해방작전을 승리적으로 결속한 인민군대는 계속 남으로, 남으로 진격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