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일화중에서 

주체37(1948)년 4월 25일 남북련석회의를 지지하는 평양시민대회와 군중시위에 남북련석회의대표들을 초대하도록 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이날 오후 북조선인민위원회 회의실에서 련석회의참가자들을 위한 성대한 초대연을 베푸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초대연에서 김구, 김규식선생을 비롯한 남조선의 주요정당, 사회단체지도급인사들을 친히 몸가까이에 앉히시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북형제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한자리에 모여앉으려는것은 우리모두의 절절한 념원이였으며 이 념원은 남북련석회의를 진행함으로써 실현되였다고 하시면서 오늘 남조선에서 온 대표 여러분과 또다시 이렇게 자리를 같이하고보니 더없이 기쁘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이가 많은 김규식선생에게 맨먼저 잔을 부어주시고 《김규식선생, 오늘은 선생의 날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새 몸이 불편해서 회의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축사도 못하셨는데 오늘은 한마디 하셔야 할게 아닙니까.》라고 하시며 그가 연회의 첫 연설을 하도록 내세워주시였다.

그가 련석회의에 늦게 참가한데다가 몸이 불편하여 연단에 나설 기회를 얻지 못해 아쉬워하는 심정을 깊이 헤아려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의 말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대해같은 사랑에 그는 눈물을 머금으며 한동안 그이를 우러렀다.

사실 련석회의에 늦은것은 미제와 그 주구들의 방해책동에도 있었지만 오랜 반공의 타성으로부터 깨여나지 못한 자신의 과오이기도 하였던것이였다.

그는 일찌기 상해림정 외무총장, 중경림정 부주석을 하였으며 해방후에는 《민주의원》의 부의장, 미국이 주도하는 《좌우합작위원회》의 우익측 주석, 《과도립법의원》 의장 등을 력임하면서 반공으로 한생을 살아왔다. 그러했기에 그는 오랜 반공의 타성으로부터 남북련석회의참가와 관련한 이른바 《5개 항의 조건》이란것을 내놓고 련락원까지 파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규식선생이 파견한 련락원들을 친히 만나주시고 즉석에서 민족자주련맹의 《5개항의 조건》을 수락하시면서 그의 북행을 바란다고 말씀하시였다. 하여 그는 회의가 진행중인 4월 21일에야 평양을 향해 떠나게 되였다.

어쩌면 그렇듯 숭고한 민족자주리념과 민족단합의 사상, 넓은 아량과 고결한 인품을 지닐수 있단 말인가!

연회장의 분위기마저도 민족단합을 위한데로 능숙하게 이끌어가시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을 우러르는 70고령의 우익민족주의정객 김규식선생은 뜨거운것을 삼켰다.

그는 연회에서 연설하면서 련석회의연단에서 하고싶었던 자기의 심정을 죄다 쏟아놓았고 김일성장군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자기 인민의 힘을 믿으시고 나라의 통일독립과 민족의 번영을 위한 정치라고 력점을 박았다.

그리고는 남조선대표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하겠습니다. 어제 모란봉극장에서 본 우리 장단에 맞추어 추는 우리 춤이 제일 좋았습니다. <좌우합작>은 미국사람들의 장단에 추는 춤이였습니다.

이제는 남의 장단에 춤출것이 아니라 우리 장단에 춤을 춥시다.》

이것은 바로 지난날 미제의 조작품인 《좌우합작위원회》 주석이였으며 미군정청 남조선《과도립법의원》 의장이였던 김규식선생이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자주정치에 대한 탄복인 동시에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민족자주, 민족대단결의 한길로만 가겠다는 심장의 맹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