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공화국이 창건된 후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앞에는 북과 남의 모든 애국력량을 총동원하여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북진통일》야망을 분쇄하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다그쳐야 할 중대한 과업이 나섰다.

당시 미제는 북과 남의 전체 조선인민의 총의에 의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되고 남조선《정권》의 비법성이 여지없이 드러나자 조선에 대한 분렬정책과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한 군사적침공책동을 집요하게 추구하였다.

이로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를 백방으로 강화하시여 평화통일위업실현의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시는 한편 북과 남의 모든 통일애국력량을 총집결하여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추진시켜나가시였다.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북진통일》야망을 분쇄하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하여서는 북과 남의 모든 통일애국력량을 하나의 조직체에 결속하여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을 강화하여야 하였다.

북과 남의 모든 통일애국력량을 하나로 굳게 묶어세우는것은 특히 당시 남조선정세와 관련하여 더욱 절박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1948년말에 남조선에서 《보안법》을 비롯한 각종 파쑈악법들을 조작하고 모든 민주주의적정당, 사회단체들의 활동을 금지시켰으며 인민대중의 투쟁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남조선의 애국적민주력량은 반동들의 책동에 의해서도 큰 손실을 입었다.

이러한 형편에서 북과 남의 통일애국력량을 하나로 굳게 결속하는것은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을 강화하여 자주적평화통일운동을 주동적으로 벌려나가기 위한 선차적인 문제로 나서게 되였다.

조성된 정세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통일애국력량을 강화하기 위하여 우선 그 향도적력량인 북남조선로동당을 합당하는 현명한 조치를 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8(1949)년 6월말 북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련합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북과 남에 각기 존재하고있던 중앙위원회를 하나의 유일한 중앙위원회로 련합하시였다.

북남조선로동당의 합당으로 북과 남의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총집결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갈수 있는 향도적력량이 튼튼히 다져지게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당을 통합하는 사업과 함께 북과 남의 애국력량, 민주주의력량을 하나로 결속하는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8(1949)년 5월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 제37차회의에서 하신 력사적인 연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과 관련하여 각 정당, 사회단체들은 무엇을 할것인가》에서와 6월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차회의에서 하신 보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에 대하여》에서 전민족적애국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우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결성과 관련한 원칙적문제들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차회의에서 하신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을 사랑하고 통일을 념원하는 애국적인민들, 특히 남북조선의 진보적인 정당, 사회단체들을 하나의 민주주의적력량으로 총집결하기 위하여서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하여야 합니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전조선의 애국적인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들이 자원성의 원칙에서 망라되는 조직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을 명백히 밝히시고 조국전선의 사명과 임무는 조국의 통일과 완전독립을 달성하며 나라의 민주주의적발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는데 있다는것을 천명하시였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할데 대한 방침은 북남조선의 모든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 애국인사들의 한결같은 지지와 찬동을 받았다.

각 정당, 사회단체들에서는 각기 중앙위원회를 열고 조국전선결성대회에 파견할 대표들을 선출하였으며 남조선의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이 38°선을 넘어 북으로 들어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전선결성문제가 성숙됨에 따라 결성대회에 제기할 보고와 강령, 선언서를 몸소 여러차례 보아주시고 완성시켜주시였으며 조국전선의 기구에 이르기까지 그 준비사업을 세심히 지도해주시였다.

이리하여 주체38(1949)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의 사이에 평양에서는 전체 조선인민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조국전선결성대회가 열리였다.

대회에는 북과 남의 70여개 정당, 사회단체 대표 704명이 참가하였다.

한해전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가 진행되였던 뜻깊은 회의장에서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북남조선 각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이 자리를 같이하게 된 크나큰 기쁨과 감격으로 하여 장내는 끝없이 설레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남조선의 산업건설협의회의 대표 리종만을 몸소 회의장주석단으로 불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늙으신분이 먼길에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겠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라고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하시였다.

그로 말하면 4월남북련석회의때 초청장을 받았던 사람이였지만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부터 동요하던 나머지 북행길을 단념하였던 사람이였다. 일제때 《농림주식회사》, 《대동광업주식회사》, 《대동공업전문학교》 그리고 출판사들을 차려놓고 일본놈들에게나 도움이 되는 일을 해온 자기를 북의 공산주의자들이 과연 어떻게 대해주겠는가 하는 위구심이 그의 발목을 잡았던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날 그가 많은 재산을 가진 기업가였지만 일제와 담을 쌓고 민족적량심과 애국적지조를 지켜왔고 오늘은 늦게나마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하의 흐름에 합류한 그의 소행을 장하게 여기시여 뜨겁게 맞아주신것이였다.

정녕 온 민족을 동포애가 넘치는 넓은 품에 안으시여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한 성스러운 길에 세워주시고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에는 끝이 없었다.

회의참가자들은 민족적량심을 지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하여 싸우는 남조선인사들에게 돌려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배려가 얼마나 숭고하고 영원한것인가를 회의과정에 더욱 절실히 느낄수 있었다.

대회가 시작되여 보고가 있은 다음 대표들의 토론이 계속되던 6월 27일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날 밤에 김구가 서울에서 놈들의 흉탄에 맞아 희생되였다는 비보를 받으시였다.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민족적량심을 지켜 꿋꿋이 싸우다 쓰러진 한 애국적인사의 희생을 두고 아프신 마음으로 잠시 추억을 더듬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윽하여 대회의 이름으로 고인과 고인의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시하자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제의로 이날 회의의장이 조의문을 읽었다.

조의문랑독이 끝날 때까지 줄곧 흐리신 안색을 짓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아까운분을 잃었습니다.》

체 회의참가자들은 백범의 희생으로 하여 그토록 가슴아파하시며 비분을 금치 못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기어이 미제의 분렬책동을 짓부시고 이 땅우에 무궁번영할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일떠세울 굳은 결의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대회에서는 온 나라의 모든 애국력량이 단합된 힘으로 전쟁의 위험을 막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미 조직되였던 북과 남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통합하고 거기에 조국의 통일독립을 바라는 그밖의 정당, 사회단체들을 새로 망라하여 전국적인 민족통일전선의 상설적조직체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하였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이 결성됨으로써 북과 남의 각계각층 인민들이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투쟁을 전국적판도에서 보다 조직적으로 힘있게 벌려나갈수 있는 넓은 길이 열리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에서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하루빨리 실현하기 위한 방책을 밝힌 선언서를 채택발표하도록 하시였다.

선언서에는 조선인민자신이 조선의 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남조선에서 미군을 즉시 철거시키고 비법적인 《유엔조선위원단》을 해체하며 북남총선거를 실시하여 전 조선최고립법기관을 세우고 중앙정부를 조직할데 대한 평화적조국통일방책이 천명되여있었다.

평화적조국통일방책은 진심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의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접수될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며 공명정대한 통일방안이였다.

북과 남의 애국적민주력량은 평화적조국통일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 일떠섰다.

공화국북반부에서는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기업가, 종교인 등 각계각층 군중이 군중대회, 집회를 열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선언서를 지지환영하며 새로운 투쟁을 결의하는 결정서를 채택하였으며 각계 인사들은 방송과 출판물을 통하여 련이어 담화를 발표하였다.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평화적조국통일방책을 전적으로 지지환영하면서 조국전선의 제의를 실현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여나섰다.

그러나 미제의 비호하에 리승만역도는 남조선에서 미군과 《유엔조선위원단》을 철거시킬 대신 저들의 《정권》을 유지하며 나라의 분렬을 영구화하기 위하여 1950년 5월에  제2차 《국회선거》를 강행하려고 광분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이러한 책동에 대처하여 그해 5월 중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소집하시고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리승만역도가 강행하려는 《국회선거》의 반동성에 대하여 똑똑히 알려주며 남조선의 민주주의정당, 사회단체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이 《국회선거》를 반대하는 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설데 대한 당중앙위원회 호소문을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북과 남의 전체 인민들의 투쟁에 의하여 남조선에서 강행된 《국회선거》에서는 북남협상을 지지하는 반리승만세력이 새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였다.

당시 리승만의 정치적패배상에 대하여 미국도서 《조선전쟁의 력사》에는 이렇게 지적되여있다.

《새 <국회>의 개최는 <한국>의 독재자의 운명이 막판에 이르고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리승만의 정치적생명 그자체가 위기에 처하였다.

그 어떤 계획이 발동되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제와 리승만역도는 남조선에서 평화통일기운이 높아지게 되자 38°선에 침략무력을 급속히 증강하는 한편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침략전쟁준비를 다그쳤다. 미제의 지휘밑에 남조선괴뢰군은 완전한 공격전투서렬을 짓고 공격명령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리하여 조선에서는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일어날수 있는 엄중한 정세가 조성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긴박한 정세속에서도 어떻게 하나 동족상쟁의 류혈을 막고 평화적방법으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6월 7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제6차회의 확대회의에서 《평화적조국통일방책추진에 관한 호소문》을 채택발표하고 그것을 북과 남의 모든 정당, 사회단체들과 인민들에게 보내도록 하시였다.

호소문에서는 8월 5일부터 8일사이에 북과 남의 전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고 통일적최고립법기관을 창설하며 조국해방 5돐이 되는 8월 15일에 최고립법기관회의를 서울에서 소집할데 대한 방안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평화통일의 제 조건과 총선거의 절차, 총선거를 지도할 중앙지도위원회창설문제 등을 토의결정하기 위하여 6월 15일부터 17일사이에 남북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협의회를 해주 또는 개성에서 소집할것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미제와 리승만역도는 공화국의 평화적조국통일방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뿐만아니라 평화통일제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검거투옥하였으며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에서 채택한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하여 나간 3명의 우리측 파견원들까지 불법체포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대의 자제력과 인내성을 발휘하여 평화적조국통일을 추진시키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발기에 따라 주체39(1950)년 6월 1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는 《평화적조국통일추진에 관하여》라는 결정을 채택하였다.

결정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와 남조선《국회》를 단일한 전조선립법기관으로 련합하며 이러한 방법으로 성립된 전조선립법기관은 공화국의 헌법을 채택하고 헌법에 기초하여 앞으로 전조선립법기관을 새로 선거하며 북남조선의 군대를 단일한 군대로 개편하고 《유엔조선위원단》을 조선에서 즉시 철거시킬것이 밝혀져있었다.

새로운 통일제안은 인민들로부터 고립된 리승만역도가 북남총선거를 통한 평화통일방안을 받아들이지 않고있는 조건에서 북과 남의 두 국회의 련합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하려는 획기적인 발기였다.

사상과 리념보다 민족의 운명을 우선시하고 남조선의 정치인들과도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한 길에서 손잡고나가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숭고한 동포애와 넓으신 도량이 담겨져있는 이 제안은 남조선사회정치계의 일치한 환영과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남조선《국회》의 다수를 장악한 남북협상파-평화통일세력은 평화통일결의안을 지지찬동하는 《국회의원》 과반수이상을 확보한 다음 6월 26일에 긴급동의로 《국회》에서 그것을 통과시키며 련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와 남조선《국회》를 단일한 전조선립법기관으로 련합할데 대한 북의 통일제의를 지지한다는것을 역시 긴급동의로 통과시킬데 대하여 합의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평화적통일방안이 남조선《국회》에서 통과될 전망은 확고하였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미제와 리승만역도는 끝끝내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공화국의 성의있는 노력과 아량에 범죄적인 침략전쟁으로 대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