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미제는 1949년에 이르러 38°선의 전역에 걸쳐 전면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무력침공을 더욱 본격화하였다.  

작전범위에 있어서나 동원된 병력수와 군사장비에 있어서도 전례없이 방대한 규모로 감행되였다.

구름이 자주 끼면 비가 오기마련이다. 적들의 빈번한 무력침공은 닥쳐올 전쟁의 위험을 예고하고있었다.

적들자신이 인정한바와 같이 이러한 무력침공행위들은 미제침략군의 직접적지휘밑에 남조선괴뢰군의 《림전태세》의 검증과 《실전능력》의 배양을 위하여 감행된 《시험전쟁》이였으며 전술적거점을 확보하고 그를 지탱점으로 하여 전면적인 무력침공에로 넘어가기 위한 전쟁도발책동이였다.

미군사고문단장 로버트가 1949년 7월 남조선괴뢰군 참모총장 채병덕과 1사단장 김석원에게 《금년 단행할 북침은 멀지 않아 일으킬 내전을 위한 좋은 시험대이며 … 적과 직접 접촉함으로써 산지식을 얻을수 있는것이다.》라고 한 사실은 이것을 여실히 반증해주고있다.

미제의 무력침공으로 38°선에서는 매일과 같이 적아간에 치렬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속에 포연속에서 해가 지고 날이 밝았다.

개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송악산에서도 적들의 무력침공을 짓부셔버리기 위한 치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송악산은 서울에서 가까운 지대일뿐아니라 큰 도로를 끼고 중부지방을 련결하는 중요한 고지였다.

적들은 개성일대에서 제일 높고 군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송악산을 장악함으로써 그에 의거하여 토성, 장풍 등 일대까지 쉽게 틀어쥐고 금천과 사리원계선을 위협하며 나아가서는 공화국북반부를 침략하기 위한 전면적인 전쟁도발의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려고 기도하였다.

1949년 5월 적들은 괴뢰군 1사단의 대병력을 번갈아 내몰면서 송악산을 차지하려고 집요하게 공격해왔다.

송악산계선을 지켜선 우리의 영용한 경비대는 적은 력량으로 기동령활하게 싸워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38(1949)년 5월 어느날 가렬처절한 전투가 계속되고있는 송악산을 찾으시였다.

먼저 송악산가까이에 위치한 부대지휘부에 들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가 차지한 계선의 전투정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그리고나신 그이께서는 적진지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언덕우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곳에서 불과 1km밖에 안되는 곳에 38°선이 놓여있었다.

부대장은 위대한 수령님께 언덕우에 오르시여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우리가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에는 이보다 더한 위험도 무릅쓰고 일제와 싸우지 않았는가고 말씀하시면서 그냥 언덕우에 오르시여 쌍안경을 드시고 적정을 직접 살펴보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는 적진지와 대치하고있는 우리 초소들을 바라보시며 부대장에게 진지가 튼튼해야 적들의 불의의 공격을 막아낼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토목화점들을 영구화점으로 만들며 사격호와 참호들에도 엄개를 씌워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전술적으로 중요한 송악산을 빼앗기 위하여 평지로도 공격할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놈들의 그 어떤 공격도 쳐물리칠수 있게 준비하도록 일깨워주시였다.

이처럼 송악산을 튼튼히 지키기 위한 전술적문제들을 일일이 가르쳐주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듯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준동을 더 똑똑히 알아야 하겠다고 하시며 최전방고지로 나가보자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부대지휘성원들이 이이상 더 앞으로 나가시면 안된다고 간절히 말씀드리였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전연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좁고 험한 최전연길로 나가는 지휘성원모두는 그이의 신변안전이 걱정되여 긴장과 초조감으로 온몸이 죄여드는듯 하였다.

일행은 어느덧 송악산기슭에 이르렀다.

잠시 주변지형을 살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고지쪽을 가리키시면서 《고지에서 전선정황을 좀 구체적으로 봅시다.》라고 하시고는 고지를 향하여 다시금 걸음을 옮기시였다.

부대장이 급히 그이의 앞을 막아나섰다. 더이상 주저할수가 없었던것이다.

당시 그 고지는 적들의 주공방향이였다.

지형상특성을 리용하여 이 고지를 먼저 탈취하고 송악산의 주봉을 점령하려고 꾀한 적들은 대부분의 병력을 이 고지전방에 배치하고 끊임없는 공격을 들이대고있었다.

부대장은 이런 위험한 곳으로 절대로 수령님을 모실수 없다고 절절히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시며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가면 마음이 편안하겠는가고 가볍게 타이르시고나서 결연하신 어조로 《어서 고지에 올라갑시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고지로 걸음을 다그치시였다.

전선정황을 통해 적들의 기도를 정확히 판단하고 놈들의 침략책동을 단호히 짓부셔버리시려는 확고부동한 결심으로 생명의 위험도 무릅쓰시고 고지에 오르시려는 그이의 앞을 그 누구도 더는 막아나설수가 없었다.

이윽하여 고지릉선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일대를 한동안 주의깊게 살펴보시고나서 아군의 전방에 배치된 적들의 배치상태에 대하여 세세히 물으시였다.

부대장은 송악산을 점령하기 위하여 전선에 집결되여있는 적들의 무력배치상태를 상세히 보고드리였다.

적들의 무력배치상태와 함께 놈들의 전략전술적기도, 행동성격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전투원들이 아군의 력량에 비하여 수십배나 넘는 적들의 발악적인 공격을 성과적으로 물리치며 3일동안에 이룩한 성과에 대하여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이날 지휘성원들에게 앞으로 계속될 적들의 공격을 좌절시키고 무자비하고 결정적인 타격을 주기 위하여 부대앞에 나서는 전략전술적과업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장으로부터 앞에 있는 적들을 김석원이 지휘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일제의 충실한 주구였던 그놈이 미국놈의 개노릇을 하는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나라를 팔아먹고 민족을 배반한 계급적원쑤들을 무자비하게 소탕해버려야 한다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반드시 놈들이 패배를 면치 못할것이라고 선언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뢰성마냥 송악산에 찌렁찌렁 울려퍼졌다.

송악산을 지켜선 전투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최전연고지에까지 오르시여 가르치심을 주신데서 필승의 신심과 용기를 얻고 원쑤격멸의 의지를 더욱 억세게 벼리였다.

주체38(1949)년 7월 어느날 이른새벽 적들은 또다시  송악산일대를 점령하려고 5 000명의 병력으로 개성이북 488. 2고지를 불의에 침공하였다.

놈들의 집요한 공격은 계속되였으나 견결한 조국수호의 의지와 필승의 신념으로 만장약된 용감한 경비대원들의 공격에 의하여 만회할수 없는 참패를 당하고야말았다.  

주체38(1949)년 9월 하순 어느날 38°선의 최전연초소의 군인들을 찾으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송악산으로 달려드는 적들을 하루에 300명이나 쓸어눕혀 놈들로 하여금 벌벌 떨게 한 사실을 보고받으시고 크게 만족하시여 동무들은 항일유격대의 혁명정신을 이어받았고 또 모두가 송악산호랑이니 38분계선경비임무는 문제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송악산호랑이》, 이 부름은 나라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그 어떤 침략자도 추호도 용서치 않고 무자비한 섬멸적인 타격을 안긴 이 부대군인들에 대한 최상의 평가와 믿음이 담겨진 자랑스러운 칭호였다.

령장의 슬하에 약졸이 없듯이 백두의 선군령장의 손길아래 맹호와 같은 싸움군들로 자라난 38선경비대군인들은 송악산에서뿐만아니라 은파산, 고산봉, 국사봉을 비롯한 넓은 지역에서 적들의 무모한 무력침공을 격퇴하였으며 공화국북반부에 기여들어 갖은 만행을 저지르던 악명높은 적들의 《백골》부대와 《호림》부대를 한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살상포로하였다.

복잡다단했던 1949년도의 군사정치정세는 나라의 평화와 안정, 민족의 자주권은 오직 강력한 총대에 의하여 담보된다는 력사의 진리를 다시금 확증하였다.

거듭되는 좌절과 실패앞에 수많은 유생력량과 전투기술기재를 잃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수 없게 된 미제는 1949년에 계획하였던 전면전쟁을 1950년으로 미루지 않으면 안되였다.

오늘도 송악산은 력사의 증견자인양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적들의 무력침공을 걸음마다 짓부셔버린 38선경비대군인들의 그날의 투쟁위훈을 전하며 솟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