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장군은 백두광명성을 안아올리시여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위업계승의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신 선군의 어머니이시다.

주체30(1941)년 여름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백두산밀영에 계시였는데 소부대의 당소조에서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받은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사업하시는 그이를 위해 소백수가에 귀틀집을 한채 지었다.

귀틀집이 마련된 때로부터 며칠이 지난 6월 중순 어느날 김일성장군님께서 백두산밀영에 도착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국내각지와 장백일대에서 사업하는 소부대, 소조 및 혁명조직들의 사업실태를 보고드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녀장군께서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하신데 대하여 평가하시며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사업보고가 끝났을 때 밀영책임자가 소백수가에 새로 지은 귀틀집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말씀드리였다.

귀틀집은 밀영에 있던 대원들이 김정숙녀장군을 생각하여 성의껏 지었으나 그이께서 들기를 한사코 반대하시여 아직 빈채로 남아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의 소행이 저으기 놀라우신듯 말씀이 없으시다가 모두들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저녁식사나 한 다음에 토론해보자고 하시였다. 식탁에는 기장쌀에 좁쌀을 섞어 지은 밥과 산천어, 산나물반찬이 올랐다.

식사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장군에게 여기 동무들이 성의를 다해 지은 집인데 혁명사업을 더 잘해서 동무들의 사랑에 보답하기로 하고 이왕 마련된 집이니 성의를 받아들이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지휘관들과 대원들모두가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열렬히 찬동하였다. 이리하여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소백수가의 작은 귀틀집에 자리를 잡으시게 되였다.

바로 이 백두산밀영의 소박한 귀틀집에서 주체31(1942)년 2월 16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선군혁명의 위대한 개척자이신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맏아드님으로 탄생하시였다.

그무렵 소백수가 귀틀집을 소중히 품어안고 높이 솟아있는 정일봉마루에는 칠흑같은 어둠발이 드리우고 세찬 눈보라가 일었다. 그러던 날씨가 새벽을 기하여 일변하였다. 어둠을 밀어내며 먹장구름이 사라지고 휘몰아치던 눈보라도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력사의 이 시각 백두에 광명을 불러오듯 장쾌한 고고성이 터쳐올랐다. 백두일출과 더불어 훤히 동터오는 밀영의 새벽은 형언할수 없는 숭고함과 아름다움의 세계를 펼치고있었다.

서리꽃핀 천리수해도 파도처럼 설레이며 2월의 이 아침을 축복하였다.

백두산밀영은 환희에 넘쳤다.

항일빨찌산녀대원들이 앞을 다투어 김정숙녀사께로 달려와 자제분의 탄생을 축복하였다.

항일혁명투사들은 조국해방의 려명이 밝아오는 백두령봉에서 선군혁명의 산아로 탄생하신 자제분께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의 위업을 계승해나가며 장차 조선을 빛내이는 향도성이 되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백두광명성》이라는 별칭을 드리였다.

그들은 민족의 대통운, 대경사를 온 세상에 알리고싶어 《아 조선아 겨레들아 백두광명성 탄생을 알린다》, 《백두산에 김일성장군의 계승인 백두광명성 탄생》, 《백두광명성 빛나는 조선의 미래 찬란하다, 독립조선의 대통운》 등 수많은 글발들을 백두산밀영주변과 국내각지 이르는 곳마다에서 아름드리나무들에 새기였으며 백두광명성을 안아올리신 김정숙녀장군의 업적을 높이 칭송하였다.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녀장군께서 선군혁명의 책원지 백두산에서 시대와 력사앞에 김정일장군님을 안아올리신것은 조국해방의 려명을 알리는 선군봄우뢰였으며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개척하신 선군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해나갈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력사의 장엄한 해돋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탄생은 조선인민혁명군 모든 대원들을 끝없는 환희에 휩싸이게 하였다.

하지만 그때 누구보다 기뻐하셔야 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백두산밀영에 계시지 않았다. 백두산밀영을 멀리 떠나 소부대활동을 지휘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제분이 태여났다는 기별은 받았지만 좀처럼 자리를 뜨실수 없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산밀영에로 돌아오신것은 주체31(1942)년 6월 어느날이였다. 자제분께서 탄생하신지 넉달만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밀영에 도착하시자 밀영의 모든 성원들이 일시에 달려나와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자제분을 안으시고 그들의 뒤에 서계시였다. 한 녀대원이 김정숙녀사에게서 자제분을 받아안아 위대한 수령님께 안겨드리였다. 백두산3대장군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신 력사적인 순간이였다.

백두밀림이 솨솨 설레이며 겨레의 축복을 전해오는 이 력사적인 순간에 자제분을 안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후대들을 잘 키워서 혁명의 대를 잇게 합시다.

조국을 광복한 다음 우리는 새 조선을 건설하고 계속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일떠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제국주의를 영원히 쓸어버릴 때까지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어야 합니다. …

백두산에서 높이 추켜든 혁명의 붉은 기발을 후대들이 대를 이어 들고나가도록 하는것이 우리의 뜻입니다.》

슬하의 혈육을 처음으로 안아보시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가슴뭉클한 기쁨과 함께 한없는 감개에 잠겨드시였다.

만경대가문에 경사이면 이보다 더한 경사가 없을상싶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자제분의 탄생을 두고 김정일의 출생은 우리 일가로 볼 때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대경사였습니다, 나와 김정숙은 총포성이 울부짖는 가렬한 전장에서 조선의 남아로 태여난 김정일의 장래를 뜨거운 마음으로 축복해주었습니다라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백두산밀영의 고향집의 세간이라고는 부엌당반에 얹힌 그릇 몇개와 벽에 걸린 밥상, 싸리바구니 그리고 방안에는 군용모포와 수수한 이불, 배낭이 전부였다. 류다른것이란 쪽무이포단과 전령병이 독수리깃으로 만든 방비뿐이였다.

그때 어리신 장군님께서 덮으시던 포단은 녀대원들이 배낭에서 찾아낸 크고작은 천쪼박들과 자기들의 솜옷에서 한줌두줌씩 뽑아낸 솜으로 만든 쪽무이포단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구실을 똑똑히 못해서 자제분께 변변한 포단 하나 마련해드리지 못해 면목이 없다고 하며 송구스러워하자 지금은 때가 때인것만큼 후대들을 편안하게만 키울수 없으며 또 편안하게 키울수 있는 조건도 마련되여있지 못하다, 우리는 후대들을 항일대전의 포성속에서 억세게 키워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앞으로 해방된 조국땅에서 부럼없이 살 때에도 오늘을 돌이켜보며 혁명을 계속해나갈수 있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설한풍 휘몰아치는 백두의 폭풍속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선군혁명의 위대한 계승자로 억세게 키우시려는것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장군의 숭고한 뜻이고 의지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탄생하신 이듬해인 주체32(1943)년 3월 조국해방의 새로운 구상을 안으시고  백두산밀영에 나와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과 함께 소백수골의 오솔길을 걸으시며 간고하고 시련에 찬 조선혁명의 장래와 관련한 뜻깊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혁명의 길에서 너무도 많은 귀중한 혁명동지들을 잃었소, 그들이 그처럼 바라던 조국광복의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있고 우리들앞에는 먼저 간 혁명동지들의 몫까지 합쳐 강도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광복을 이룩하며 나아가서 우리 인민들이 바라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해야 할 성스러운 과업이 나서고있소, 나는 우리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내가 이 성스러운 과업을 다하지 못하면 대를 이어 아들이 하고 아들이 못다 한다면 손자대에 가서라도 기어이 이 과업을 수행하도록 하고야말것이요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김정숙녀장군에게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아드님을 잘 키워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가슴깊이 새기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아드님을 잘 키워 혁명의 대를 굳건히 이어나가게 하겠다고 말씀드리시였다.

자제분을 선군혁명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민족의 아들로 억세게 키우시려는 마음을 담아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어서 자라 속히 자라 총칼을 메고 조국해방 만세소리 활발한 곳에 너 앞서고 나 뒤에 나가 싸우자라는 뜻깊은 자장가를 불러주시군 하시였다.

자장가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무치는 사랑의 노래이다. 이 세상 어느 어머니도 자장가에 총칼을 들고 조국광복전에 앞장서는 장군이 되라는 요구를 담은적은 없다. 어리신 자제분을 총과 일생을 같이하는 선군의 아들로 키워 가시려는 김정숙녀장군의 지향은 이렇듯 자장가로부터 시작되였다. 어머님의 자장가는 선군혁명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서 앞장서나가는 기수가 되라는 엄숙한 당부로 어리신 장군님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백두산의 정기를 타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슬하에서 백두산의 장엄한 웅자를 처음으로 눈에 익히시였고 《총》, 《칼》, 《독립》, 《혁명》과 같은 말을 먼저 배우시였으며 동요보다 먼저 《유격대행진곡》과 같은 혁명가요를 배우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상정신적성장과 감정정서발전에서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작용을 한분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정의롭고 신념이 강하며 뜨거운 인간애를 지닌 항일빨찌산의 사상정신과 풍모를 최고의 높이에서 체현하고계시는 김정숙어머님이시였다. 어머님의 고결한 감정정서는 풍만한 자양이 되여 어리신 장군님의 넋속에 그대로 흘러들었고  어머님의 억센 투지와 기질은 장군님의 남아다운 성격에 피와 살을 보태주었다. 그리하여 장군님께서는 어린 나이에 비해 훨씬 일찌기 필승의 신념과 철의 의지, 풍부한 인정미와 고결한 도덕의리 등 항일혁명의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것들을 체현하실수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아드님께 빨찌산대원들의 용감한 훈련모습도 보여주시며 굳센 의지와 크나큰 담력을 지닐수 있도록 하여주시였고 투사들속에서 대바르고 씩씩하며 배짱이 센 품성을 키워나가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일제놈들을 때려눕힌 빨찌산대원들의 용감한 전투이야기도 자주 들려주시였으며 대원들의 기대와 성의가 담긴 나무로 만든 총이며 칼, 쌍안경을 지닌 옷차림을 갖추도록 보살펴주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사의 위대한 품이 있어 선군혁명위업계승의 시원이 열려질수 있었고 선군조선의 창창한 미래가 펼쳐질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