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주체37(1948)년 2월 정규무력건설로 조선인민은 자기의 진정한 정권건설을 위한 확고한 군사적담보를 가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정규적혁명무력에 의거하여 혁명의 전취물을 보위하고 인민의 주권을 튼튼히 다져나가시는 한편 전조선적인 통일적중앙정부수립을 위한 사업에 커다란 힘을 넣으시였다.   

당시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반대에 부딪쳐 《유엔림시조선위원단》감시하의 《선거》를 통하여 전조선을 제놈들의 손아귀에 넣어보려던 어리석은 망상을 실현할수 없게 된 미제는 1948년 2월에 이른바 《유엔소총회》를 벌려놓고 남조선에서 《단독선거》를 실시할데 대한 비법적인 결정을 꾸며냈다.

이것은 남조선에서 허수아비정권을 조작하여 나라의 절반땅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군사강점정책이고 민족분렬책동이였다.

어떤 사람들은 우려를 표시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큰 나라들을 쳐다보았다.

바로 이러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에 의하여 조성된 난국을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풀어나갈것을 결심하시고 온 민족의 단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남북련석회의의 소집을 발기하시였다.

그리하여 주체37(1948)년 4월 위대한 수령님의 발기와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평양에서는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가 진행되게 되였다.

민주주의적중앙정부수립을 위한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뜻과 사랑의 손길에 의하여 이 회의에는 북과 남의 1 000여만명의 당원들과 맹원들을 망라한 56개 정당, 사회단체 대표 695명이 참가하였다.

당파와 정견, 신앙의 차이나 과거지사를 따지지 말고 한자리에 모여앉아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의논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애국의 호소에 접한 남조선의 각당, 각파, 각계 인사들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사선을 헤치며 평양으로 들어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하신 력사적인 보고 《북조선정치정세》에서 련석회의가 가지는 커다란 의의와 조성된 정치정세를 상세히 분석하시고 미제의 민족분렬정책과 《5. 10단선》책동을 준렬히 폭로규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남조선에서 준비하고있는 반인민적망국《선거》를 거부하며 파탄시키는것은 오늘 우리 민족앞에 나선 가장 큰 정치적과업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조국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망국적《단독선거》를 단호히 거부하여야 한다, 이 거족적투쟁에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우려하는 모든 사람들은 당파와 종교의 소속, 정치적견해를 가리지 말고 반드시 단결하여야 한다, 단결만이 우리의 승리를 보장할수 있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금 조국분렬의 위기에 처한 이 엄중한 때에 우리가 단결하여 투쟁하지 않으며 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물리칠 일대 구국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민족과 후손들에게 천추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짓는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하여 통일적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며 민주주의적원칙에서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한 거족적투쟁을 벌려야 하겠습니다.》

분렬의 위기를 타개하고 나라와 민족을 구원할 앞길을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인 보고는 회의참가자들의 심정을 완전히 틀어잡았다.

예로부터 하나의 지맥으로 잇닿은 조국이 동강나고 한 피줄을 이어온 민족이 영영 둘로 갈라질수 있는 이 엄중한 시기에 사상과 리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조국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굳게 뭉쳐 통일적자주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싸워야 하는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서 바로 이 진리를 새겨안은 회의참가자들은 《조선정치정세에 대한 결정서》를 채택하여 남조선《단독선거》를 강력히 배격할것을 결정하고 그를 위하여 남조선《단독선거》반대투쟁 전국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전조선동포에게 보내는 격문을 채택하였다.

4월남북련석회의는 조국분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대책을 세운 력사적인 회의로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는 나라의 운명과 민족의 장래를 우려하는 모든 정당, 사회단체인사들이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함께 싸울수 있으며 조선문제는 능히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해결할수 있다는것을 힘있게 과시하였다.

북과 남의 전체 조선인민은 남북련석회의결정을 높이 받들고 거족적인 투쟁을 벌려나갔다.

북반부각지에서는 날마다 남북련석회의결정을 지지하며 남조선《단독선거》를 반대배격하는 군중집회와 시위들이 벌어졌다.

남조선인민들은 미제와 반동들의 온갖 위협과 탄압만행에도 굴하지 않고 《단선》을 반대하여 대중적인 파업과 시위, 폭동을 일으켰다.

미군정당국이 축소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5월 10일 망국적《단독선거》를 전후한 1주일기간에 남조선인민들은 228개의 《선거사무소》를 습격하고 《선거장》과 《선거함》들을 불태우거나 파괴하였으며 악질경관들과 《립후보자》들을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하였다.

사실상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단독선거》놀음은 완전히 파탄되고말았다.  

이른바 《선거위원회》가 발표한데 의하더라도 경상남북도에서는 유권자의 겨우 10∼20%가 《선거》에 참가했을뿐이였다.

하지만 미제는 제놈들의 어용도구인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입을 빌어 《선거》가 《자유의사표시》에 기초하여 진행되였다고 서슴없이 《선거》결과를 날조하고 5월 31일 비법적인 《국회》를 조작하였으며 이것을 《전조선국회》라고 떠벌이면서 7월안으로 《국회》를 소집하여 《정부》를 조작하려고 미쳐날뛰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민족분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결정적인 조치로서 전조선적인 중앙정부를 세우기 위한 사업을 조직령도하시였다.

전조선적인 중앙정부를 세워야 남조선에서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을 짓부시고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수 있었으며 조선인민이 자기의 유일한 합법적정권을 가질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6월 29일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의 지도자협의회를 소집하시고 지체없이 전조선적인 중앙정부를 세울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협의회에서 《남조선단독선거와 관련하여 우리 조국에 조성된 정치정세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대책》이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지체없이 조선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전조선최고립법기관을 세우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실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단독정부를 세울것이 아니라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들로써 전조선정부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이 시기 조선인민에게는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의 결과로 전조선적인 중앙정부를 창건할수 있는 현실적가능성이 충분히 마련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그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정규적인 혁명무력을 건설하시여 조국의 완전독립을 이룩할수 있는 확고한 군사적담보를 마련해놓으시였다. 또한 항일의 불길속에서 총대에 의거하여 유격근거지에 인민혁명정부를 창설하신 경험에 기초하여 해방후 새 조국건설의 유리한 조건이 조성되여있는 북조선에 림시적인 중앙주권기관인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세우시고 그를 북조선인민위원회로 강화발전시키시였으며 그에 의거하여 나라의 경제토대를 강화하시였다.

7월 5일까지 진행된 이 협의회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따라 자유선거를 실시한데 기초하여 진정으로 민주주의적인 전조선립법기관인 조선최고인민회의를 창설하고 북남조선대표들로 전조선중앙정부를 세울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이야말로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을 꾀하는 반동세력에게 결정적타격을 주고 조선민족의 통일발전과 무궁번영을 이룩해나갈수 있는 옳은 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심으로써 전조선정부를 세우기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은 전면적인 실천단계에서 보다 힘있게 벌어지게 되였다.

주체37(1948)년 7월 9일 북조선인민회의 제5차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실시에 관하여》라는 위대한 수령님의 보고를 접수토의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실시할데 대한 력사적인 결정을 채택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주체37(1948)년 7월 10일 첫 국기게양식이 진행되였다.

애국가의 장중한 선률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게양된 오각별 찬란한 람홍색공화국기발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의 실시, 이것은 미제가 유엔에서 조선의 영구분렬을 위한 모략을 꾸미고있던 그때에 이미 공화국창건의 절박성을 깊이 헤아려보신 위대한 수령님의 선견지명있는 령도의 빛나는 결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6(1947)년 가을에 벌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초안작성위원회를 무어주시고 헌법초안을 친히 수정가필하여주시였으며 그것을 주체37(1948)년 2월부터 무려 70여일에 걸쳐 북과 남의 전지역에서 전인민적인 토의에 붙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기와 국장도안사업도 비범한 착상과 세심한 지도로 완성시켜주시였다.

주체37(1948)년 2월 초순 어느날 도안을 담당한 일군들을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무것도 그려넣지 못한 흰 동그라미와 붉은색, 흰색, 푸른색이 조화된 국기도안을 보아주시였다.

이윽토록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싸운 투사들이 흘린 붉은 피와 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우리의 혁명력량을 상징하는 붉은색을 기본바탕으로 하여야 한다고, 수천년의 유구하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가지고있는 단일한 민족이라는것을 상징하는 흰색은 지금의 도안보다 좀 가늘면서도 선명하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의 기백과 공화국의 자주권을 상징하는 푸른색 역시 지금보다 가늘게 하며 흰 동그라미는 중간에 놓지 말고 기발대쪽 옆으로 놓으며 흰 동그라미안에는 미래의 승리를 상징하는 오각별을 그려넣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공화국국장안에는 경복궁이 아니라 전기화가 실현된 부강하고 문명한 우리 나라의 발전전망을 보여주는 발전소를 그려넣도록 하시였다.

바로 이렇게 되여 오각별 찬란한 람홍색공화국기발이 조선인민의 투쟁의 기치마냥 진두에 펄펄 휘날리게 되였고 공화국국장이 존엄높은 자주적국가의 상징으로 빛나게 되였던것이다.

공화국헌법의 실시로 전체 인민의 정치적열의가 비상히 앙양된 가운데 전조선최고립법기관과 중앙정부를 세우기 위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준비사업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지도밑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위한 선거구와 선거분구들이 조직되여 유권자등록사업이 빠른 시일안에 끝나고 대의원립후보자추천사업이 시작되였다.

전체 유권자들의 가슴은 일제식민지통치기반에서 나라와 민족을 해방하시고 새 생활창조의 넓은 길을 열어주시였으며 오로지 조국의 통일독립과 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인민의 첫 대의원으로 높이 추대하려는 뜨거운 열망으로 끓어번졌다.

평안남도 강동군(당시) 흑령탄광의 로동계급은 선참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립후보자추천을 위한 종업원모임을 가지고 위대한 수령님을 두해전 력사적인 첫 민주선거에 이어 또다시 제23호 강동군 승호선거구립후보자로 높이 추대하였다.

이어 각지 공장, 농촌, 가두선거구들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립후보자로 추대하는 모임들이 진행되였다.

그러던 주체37(1948)년 7월 하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편지를 가지고 찾아온 강동군 승호선거구의 유권자대표들을 만나주시고 감사를 표시하시였으며 이곳 선거자들의 한결같은 제의를 수락하시는 서한을 보내시였다.

선거자들의 비등된 열의속에 북조선에서는 유권자들의 진정한 자유의사에 따라 로동자, 농민, 사무원, 지식인, 기업가, 상인, 수공업자, 종교인 등 각계각층의 대표들과 정당, 사회단체 대표 212명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립후보자로 추천하였다.

남조선인민들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립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한 선거에 적극 떨쳐나섰다.

남조선인민들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파쑈적폭압으로 말미암아 선거를 공개적으로 할수 없는 조건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현명한 조치에 따라 먼저 유권자들이 비밀리에 선거의 방법으로 인민대표를 선거한 다음 그들이 북반부에 들어와 대표자대회를 열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립후보자를 선출하는 방법으로 선거에 참가하였다.

영등포의 한 로동자전권위원은 적들의 삼엄한 경계속에서도 공장구내의 지하실에서 800여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인천에서는 감옥에 갇힌 애국적인민들이 간수들의 눈을 피해가며 인민대표들을 찬성하는 서명을 모아 조직에 보냈다.

남조선인민들은 8월 20일현재 673만 2 400명의 서명으로 1 080명의 인민대표를 선거하였으며 인민대표들은 그후 해주에 모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립후보자를 추천하였다.

이리하여 북남조선 전지역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립후보자추천사업이 성과적으로 끝났으며 마침내 주체37(1948)년 8월 25일 아침 6시, 새벽공기를 헤가르는 긴 고동소리와 함께 모든 선거장들에서 일제히 투표가 시작되였다.

이 시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시 사동탄광마을에 자리잡은 제7호선거구 제10호분구선거장에서 선거에 참가하시여 찬성투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와 감사의 열의속에서 조국의 통일독립과 번영을 위한 우리 민족의 투쟁사에서 새로운 단계를 열어놓은 8월 25일 북남조선 총선거는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총선거의 결과로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전조선적인 통일적최고립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가 세워지게 되였다.  

주체37(1948)년 9월 2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심의하고 만장일치로 채택하였으며 전조선최고립법기관의 상설조직으로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선거하였다.

회의에서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와 념원을 반영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수상으로, 국가수반으로 높이 추대하였다.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님을 국가수반으로 높이 모신것은 조선인민의 가장 큰 영예이고 행복이며 자랑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국가수반으로 높이 모심으로써 우리 조국과 인민앞에는 선군으로 전진하고 승리하는 휘황한 앞길이 더욱 활짝 펼쳐지게 되였다.

전체 회의참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오래도록 폭풍같은 환호를 올렸다. 회의장에 끓어넘친 감격과 기쁨, 열광의 환호, 그것은 그대로 승승장구하고 무궁번영할 새 조선, 선군조선의 탄생에 대한 환희였다.

감격도 새로운 주체37(1948)년 9월 9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침내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자랑높이 선포하시고 공화국정부를 조직하시였다.

이것은 조선민족의 반만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민족의 대경사였다.

나라의 명맥이 끊겼던 치욕스러운 그날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온 강산이 몸부림치며 눈물에 젖었던 조선, 유럽의 하늘밑에서 선혈을 뿌리며 부르고 또 불렀건만 대답조차 없던 연약했던 조선이 마침내 자기의 당당한 새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다시 태여난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 그것은 일찌기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투쟁에 나서시여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으신 두자루의 권총을 억세게 틀어잡으시고 독창적인 선군의 길을 개척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낳은 빛나는 결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난날 힘이 없고 총대가 약한탓에 세계지도에서 빛을 잃었던 조선을 선군의 총대로 찾아주시고 강력한 군력에 의거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심으로써 조선인민은 국가와 사회의 참다운 주인으로 되였으며 지난날 약소민족의 슬픔을 영원히 가시고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힘있고 존엄있는 인민으로 되였다.

참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은 제국주의우두머리 미제와의 전면대결전을 당당히 선포한 강력한 국가, 제국주의와의 정치군사적대결에서 자주적총대의 승리를 선언한 력사적사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