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우리 나라에서 첫 《조국통일상》수상자인 성시백은 조국통일의 성업에 한몸을 바친 견결한 혁명가였다. 조국통일을 위한 그의 영웅적투쟁의 자욱마다에는 위대한 스승이 되시여 이끌어주시고 다심한 어머니가 되시여 보살펴주신 김정숙녀사의 뜨거운 손길이 슴배여있다.

주체37(1948)년 8월 어느날 김정숙녀사의 뜨거운 은정속에 헤여졌던 아들과 상봉한 통일혁명투사 성시백은 만경대를 방문하였다.

만경대에 도착한 성시백과 일행은 위대한 수령님의 생가에 들려 김보현할아버님과 리보익할머님께 인사를 올리였다.

고향집을 나선 그들이 김형직선생님께서 손수 심고 자래우신 백양나무그늘밑에 자리를 잡고 잠시 땀을 들이고있을 때였다.

이날 아드님과 함께 만경대를 찾으셨던 김정숙녀사께서는 웃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시였다.

녀사께서는 성시백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그동안 마음편히 좀 쉬였는가고 물으시였다.

난생처음으로 마음을 푹 놓고 잘 지내고있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신 녀사께서는 남조선에서 들어올 때보다 얼굴색이 퍽 좋아졌다고 하시며 말씀하시였다.

《적구에서 활동하느라니 고생인들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여기에 들어왔을 때 편히 휴식하면서 건강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는 김정숙녀사의 뜨거운 말씀에 고맙다는 인사의 말씀을 올리고나서 아들을 가리키며 당학교에서 공부하고있는 맏아들이라고 소개해드리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더없이 기뻐하시며 아버지와의 상봉을 축하한다고 이르시고나서 아들의 손을 정답게 잡아주시였다.

녀사께서는 지난날 부모의 살뜰한 사랑도 모르고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하며 살아왔으니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시며 이제는 행복하게 살게 되였으니 지난날 고생한 보람도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녀사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시고 먼 하늘가를 바라보시다가 반일성전에 청춘을 바친 혁명선렬들과 그 유자녀들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시였다.

성시백과 그의 아들은 한없이 뜨거운 사랑에 목이 메여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잠시후 성시백은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 녀사께서 지하정치공작을 훌륭히 하셨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고 하면서 그 경험을 들려주었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녀사께서는 나에게 무슨 들을만 한 경험이 있겠는가고 하시며 굳이 사양하시다가 그의 거듭되는 청을 받고서야 이런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시였다.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 마을사람들속에 들어가 지하공작을 해본데 의하면 적구투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인민대중속에 뿌리를 깊이 박는것이였습니다.

군중들속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그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지 못하면 지하투쟁을 성과적으로 해나갈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혁명투쟁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지하투쟁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을 굳게 믿고 대중과 조직에 의거하여 투쟁하는것입니다.

대중속에 깊이 뿌리박자면 자기가 활동하고있는 지역안의 군중의 사상동향과 생활풍습을 손금보듯 알고있어야 하며 매사를 그에 어울리게 처리하고 조금도 어색한감이 나지 않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대원들을 적구에 파견하실 때에는 그 지방주민들의 구성상태와 사상동향, 생활풍습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고 그에 맞게 투쟁하도록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적구투쟁에서 중요한 다른 하나의 문제는 먼저 군중들속에서 핵심을 장악하고 그들을 키우고 핵심을 중심으로 지하혁명조직을 튼튼히 꾸리며 그 주위에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을 굳게 묶어세우는것이였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경험을 이야기하시고나서 가장 중요한것은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수록 덤비거나 당황해하지 말고 오직 장군님만을 믿고 따르겠다는 혁명적신념을 굳게 가지고 침착하고 결단성있게 행동하는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통일애국투사들의 심장속에 백두의 혁명정신과 투쟁의 지침을 새겨주고 어떤 역경에 처해도 혁명가의 립장과 자세를 가다듬게 할 신념의 기둥, 마음의 기둥을 깊숙이 세워주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였다.

성시백은 정말 귀중한 경험담을 들었다고 김정숙녀사께 거듭 사의를 표하며 앞으로의 투쟁에서 그 경험을 지침으로 삼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성시백에게 평양에 들어왔던김에 몸이 완쾌될 때까지 푹 쉬라고 하시며 그를 휴양소에 보내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후 성시백이 휴양소에 가서 몸을 완전히 추세우고 적구로 떠나게 되였을 때 김정숙녀사께서는 그에게 안해의 해산날자가 림박했다는데 평양에 들여보내서 해산하게 하는것이 어떤가고, 적들의 탄압이 심한데다가 나이 들어 하는 해산이니 아무래도 그렇게 결심하는게 좋을것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성시백은 녀사에 대한 뜨거운 감사의 정에 목이 메였다. 금방 평양에 들어와서 만났을 때는 안해에게 힘든 일을 시키지 말라고 이르시던 녀사께서 안해의 해산을 걱정하시여 그리도 마음쓰시니 정녕 친정어머니인들 이토록 다심하실가고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그날 김정숙녀사께서는 깊이 간수해두셨던 인삼, 록용을 비롯한 보약들을 넣은 향나무함을 가져다가 그에게 주시였다.

그 보약은 강원도인민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축원하여 올린 귀중한 약재였다.

녀사께서는 보약에 깃든 사연을 그에게 이야기해주시면서 장군님께서 걱정하시지 않도록 안해를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보약함을 받아든 성시백은 애써 참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김정숙녀사께서 안겨주신 사랑과 은정을 가슴깊이 새기고 남조선으로 돌아간 그는 겹겹이 앞을 막는 적들의 준동을 짓부시며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투쟁을 줄기차게 벌려나갔다.

그의 가슴속에 김정숙녀사께서 세워주신 신념의 기둥이 억척같이 서있었기에 그처럼 엄혹한 정세속에서도 맡겨진 혁명임무를 훌륭히 수행할수 있었다.

성시백이 그토록 통일운동사에 자랑할 력사적인물로 될수 있은것은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숙녀사의 가르치심과 따뜻한 보살피심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준엄하고도 시련에 찬 투쟁을 과감무쌍히 벌려나가던 그는 1950년 5월 중순 불행하게도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적들은 성시백을 전향시키기 위하여 형언할수 없는 악형과 야만적인 고문을 들이대였고 또 참기 어려운 회유와 끈질긴 기만으로 그를 유혹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것이 허사였다.

-장군님께서 우리 혁명을 령도하시는 한 혁명승리는 확정적이다. 장군님을 모시고 혁명하는 길에서는 살아도 영광, 죽어도 영광이다.-

김정숙녀사께서 심어주신 성시백의 이 불굴의 의지와 혁명적신념을 놈들은 꺾지 못했으며 꺾을수도 없었다.

성시백은 최후의 순간순간을 불굴의 이 신념으로 자기의 삶을 빛내였다.

1950년 6월 27일 5시.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성시백은 영웅적최후를 마쳤다. 인민군대에 의하여 서울이 해방되기 24시간전이였다.

전사는 비록 갔으나 김정숙녀사께서 그에게 심어주신 불굴의 신념과 의지, 그에게 베푸신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는 통일애국투사들에 대한 사랑의 전설로 조국청사에 길이 전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