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 서는 해방후 새 민주조선건설과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장엄한 투쟁의 전초선에 일제와의 결전장에서 용맹을 떨친 항일혁명투사들을 내세워주시였다.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의 사업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좌해드리는것을 첫째가는 의무로 여기시는 김정숙녀사께서는 그때마다 새 혁명초소로 파견되여가는 혁명전우들을 만나주시였다. 녀사께서는 그들에게 어제까지는 조국해방을 위하여 싸워왔지만 이제는 새 조선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간고한 투쟁을 함께 해나가자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빛나게 실현하도록 따뜻이 이끌어주시였다.

주체35(1946)년 7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중국 동북지방에서 사업하고있던 항일혁명투사 강건을 조국으로 불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은 강건은 몹시 기뻤다. 조국이 해방되였어도 다른 임무가 맡겨져 그처럼 오고싶어도 오지 못하던 조국에 와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일할수 있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하늘을 날것 같은 기분이 솟구쳐올랐다.

평양에 도착한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기 위하여 그이의 저택으로 갔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아직 댁으로 들어오시지 않았고 김정숙녀사께서 그를 맞아주시였다.

녀사께서는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먼길을 오기에 얼마나 수고하였는가고, 이렇게 다시 만나니 정말 기쁘다고 하시면서 장군님께서 곧 돌아오실테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고 그를 방으로 안내하시였다.

강건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장 충직한 친위전사이신 김정숙녀사께서 항일의 나날 대원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시며 그들을 위훈에로 불러주시던 만가지 일들이 일시에 떠올라 녀사에 대한 존경심이 가슴가득히 차올랐다.

더우기 나라가 해방된 오늘에도 평범한 옷차림을 하시고 검소하게 생활하시는 녀사의 인민적풍모앞에서 그는 더없이 숙연해지는 마음을 걷잡지 못하였다.

녀사께서는 그와 그간의 회포를 나누시고나서 친히 그에게 음식상을 차려주시였다.

강건은 고마움이 넘쳐나고 하많은 추억을 불러일으켜주는 그 좌석에서 선뜻 수저를 들지 못하였다. 그는 장군님께서 돌아오신 다음에 들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녀사께서는 시장하겠는데 사양말고 어서 들라고 거듭 권하시였다.

그가 식사를 끝냈을 때였다.

녀사께서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 지난날에도 어려운 일을 많이 하였는데 앞으로도 어려운 일을 더 많이 하여야 할것 같습니다.

지금 조국의 정세는 매우 복잡합니다.

미제침략자들이 남조선을 강점하고 우리 나라를 북남으로 갈라놓은 형편에서 우리 혁명은 더욱 간고하고 장기적인 투쟁으로 될것 같습니다. 그런것만큼 우리는 앞으로 더욱 커다란 난관과 시련을 뚫고나갈 각오를 가져야 할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통일의 길이 간고하여도 우리는 민족의 숙원을 꼭 이룩하고야말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손에 무장을 잡을 때 언제면 조국을 해방할것인가고 생각했지만 장군님을 모시고 그 소원을 오늘 이렇게 풀지 않았습니까. 그런것과 같이 나라의 통일독립도 반드시 실현될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새 조국건설로선과 조국통일사상과 로선을 철저히 관철하여 부강번영하는 인민의 락원을 건설하시려는 열렬한 념원과 혁명적의지가 맥박치는 녀사의 그 절절한 음성은 강건의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을 안겨주었다.

고향이 경상북도 상주인 그는 사실 위대한 수령님의 저택으로 달려오면서도 미제침략자들에게 짓밟힌 남조선동포들에 대하여, 고향땅에 대하여 생각하며 원쑤에 대한 저주와 분노로 가슴 불태우기도 하였지만 녀사께서 말씀하시는것처럼 그렇듯 숭고한 높이에서 조국과 민족앞에 지닌 자기의 사명감으로 느끼지 못했던것이다.

그는 녀사께 정중히 말씀드렸다.

《이제 하신 말씀을 듣고보니 정말 장군님을 모시고 항일혁명의 첫걸음을 내디디던 그때와 같은 심정을 느끼게 됩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행군길을 제주도 한나산까지 이어가려면 정말 녀사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지난날보다 더욱 간고한 투쟁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이제는 알만 합니다. 모든것이 명백합니다. 장군님께서 왜 저를 부르셨는지 리해됩니다.》

강건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고는 마음의 흥분을 진정할수 없어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항일의 나날에는 빛나는 모범으로 조국의 해방을 위한 수령님의 령도에 충실하도록 대원들을 이끌어주시고 해방된 오늘은 새 조국건설과 조국의 완전자주독립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변함없이 앞장에 서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는 녀사의 뜨거운 사랑에 목이 메였다.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댁으로 들어오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강건동무가 왔는가고 하시면서 두팔을 벌리시고 다가가시였다.

강건은 수령님의 넓은 품에 와락 안기여 한동안 기쁨과 행복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였다.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고 오늘은 잠시의 휴식도 없이 새 조국건설투쟁의 진두에서 우리 인민을 이끄시는 수령님을 우러를수록 그는 형언할수 없는 경모의 정이 뜨겁게 솟구쳐올랐다.

그날 그는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조성된 내외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나서 새 조국건설과 전조선의 완전자주독립을 실현하기 위하여 반드시 수행해야 할 중요한 혁명임무를 받았다.

그는 항일대전의 혈로를 헤치며 조국해방의 날을 가져온것처럼 김정숙녀사의 빛나는 모범을 따라배워 수령님께서 주신 혁명과업을 반드시 훌륭히 수행할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김정숙녀사의 따뜻한 보살피심이 있어 그는 새 조국건설과 나라의 완전자주독립을 위한 투쟁에 언제나 헌신하였으며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성스러운 격전장에서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주체혁명위업에 충실하였다.

김정숙녀사의 이렇듯 크나큰 은정은 항일의 전우들을 위대한 수령님의 새 조국건설로선관철의 진두에서 헌신하게 한 힘있는 추동력이였다.

주체38(1949)년 4월 29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은정을 받아안은 항일혁명투사 류경수부부는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신 어머님께서는 나는 동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며칠전에 류경수동무가 많은 땅크병들을 훌륭히 키워냈기때문에 땅크부대를 더 늘일수 있게 되였다고 기뻐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이제는 땅크려단을 조직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땅크려단장사업을 류경수동무에게 맡기기로 했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장군님의 높은 신임에 의하여 땅크려단장으로 된 류경수동무의 군복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시고나서 어머님께서는 손수 지으신 군복을 류경수에게 입혀주시였다.

류경수는 끓어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하면서 군복을 영원히 벗지 않고 장군님의 전사로 싸우겠다고 어머님앞에 맹세다지였다.

그의 결의를 들으시고 못내 만족해하시던 어머님께서는 지금 남조선을 강점하고있는 미제국주의자들은 리승만괴뢰도당을 부추겨 38°선일대에서 매일같이 전쟁도발책동을 감행하고있습니다, 인민군대에서는 우리 나라에 조성되고있는 긴장한 정세에 대처하여 부대의 전투준비를 더욱 강화하여야 합니다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류경수동무와 순희동무가 장군님을 받드는 길에서 언제나 변심이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비단 그들뿐이 아닌 모든 항일혁명전우들에 대한 어머님의 믿음이였고 사랑이였다. 선군으로 빛날 조국의 미래를 위한 투쟁에서 항일혁명투사들이 변함없이 위대한 수령님께 충직할것을 바라는 녀사의 간절한 당부였다.

어머님의 그처럼 크나큰 믿음과 은정에 떠받들려 항일의 투사들은 정규적혁명무력, 당과 국가의 창건과 강화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언제나 전렬에 서있었으며 그들의 힘찬 투쟁속에 선군조선의 부강번영을 위한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가 확고히 보장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