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병기공장을 건설하는 투쟁은 참으로 간고하였다. 벽체밖에 남은것이 없는 건물들을 복구하는것도 쉬운일이 아니였지만 병기공장운영에 필요한 선반 한대 변변한것이 없었고 병기기술을 배운 기술자 한명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정규무력으로 강화발전될 혁명군대의 군인들에게 자체의 힘으로 만든 무장장비를 갖추어주시려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로 병기공업창설이 나아갈 앞길이 환히 밝혀지고 첫 병기공장이 태여나게 되였다.

당창건위업과 제반 민주개혁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느라 불면불휴의 낮과 밤을 이어오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날 병기공장건설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기 위하여 한 일군을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일군에게 우리 조국의 절반땅을 강점한 미제국주의자들이 남조선을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며 전조선을 먹어보려고 책동하고있는데 대하여서와 리승만역도가 미제의 부추김밑에 우리가 피로써 쟁취한 혁명의 전취물을 말살하려고 로골적으로 책동하고있는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당시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는 북반부에 수립된 인민민주주의제도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이를 전복할 야망밑에 1946년 1월에 《국방경비대사령부》를 조작하고 그해 3월부터 12월말까지 3개 사단분에 해당하는 무기를 남조선주구들에게 넘겨주어 《국방경비대》를 급속히 확대하였다.

미제의 책동에 의하여 조성된 이러한 엄중한 정세는 원쑤들의 침략책동에 대처하여 조국과 인민을 보위할수 있는 인민의 군대를 건설하는것과 함께 자체의 병기공업을 하루속히 창설할것을 절실하게 요구하고있었다.

이러한 시대적요구를 깊이 헤아리시고 병기공업을 빨리 건설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물론 아무것도 없는 빈터우에서 병기공장을 건설하자면 애로와 난관이 많을수 있다고, 그렇다고 하여 병기를 남에게 의존하여 해결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자기 나라와 인민을 보위하기 위한 병기를 자체의 힘으로 만들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면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체의 힘으로 모든 애로와 난관을 극복하고 병기공장을 빨리 건설하여야 합니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경제적밑천과 온갖 잠재력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자체의 병기공업을 창설하고 발전시키며 그 과정에 기계공업도 발전시킬데 대한 독창적인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기계공업을 먼저 발전시킨 다음 그에 기초하여 병기공업을 창설하였지만 우리는 병기공업을 창설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 필요한 경험을 축적하고 기계공업을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기계공업에 앞서 병기공업을 창설하고 그에 기초하여 기계공업을 발전시킬데 대한 방침은 해방후 조성된 정세와 조선혁명발전의 특성으로부터 출발한 새롭고 정당한 로선이였다.

해방후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의 침략위협이 시시각각으로 증대되고있는 현실은 우리가 기계공업의 창설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병기공업을 우선적으로 창설할것을 요구하고있었다.

일반적으로 병기공업은 일정한 공업의 기초와 기술적준비에 의해 창설된다.

그러나 갓 해방되여 병기공업을 뒤받침할 기계공업의 토대가 축성되여있지 못한 형편에서 이미 병기공업을 창설한 다른 나라들과 같이 기계공업의 우선적발전과 그에 기초한 병기공업의 창설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언제 실현될지 모를 막연한 일로 될것이였다.

이런 형편에서 기계공업의 토대가 이룩되는것을 기다렸다가 그에 기초하여 병기공업을 창설할수는 없었다.

병기공업발전은 기계공업의 발전인것만큼 병기공업창설과정은 곧 기계공업창설과정으로 된다.

그러므로 기계공업의 토대가 축성된 다음 기계설비를 받아 병기공장을 건설하고 병기생산을 할것이 아니라 병기공업을 먼저 창설하고 병기들을 수리생산하면서 그 경험에 토대하여 기계공업을 창설하게 되면 시급히 요구되는 군대의 병기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할수 있을뿐아니라 기계공업도 함께 발전시킬수 있을것이였다.

이것은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걸어본적 없는 력사의 초행길이였다.   

하지만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에 의하여 조선에서는 이 세상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총대중시의 공업발전, 병기공업의 첫걸음을 힘있게 내딛게 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병기제조소자리에 있는 파괴된 건물을 복구하고 거기에 필요한 기계설비들을 갖추며 공장을 꾸리는 차례로 무기를 수리하면서 점차 무기생산에로 넘어갈데 대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들도 밝혀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일제가 도망치면서 무참히 파괴해버린 평양병기제조소자리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병기공장을 일떠세우는 보람찬 건설이 시작되였으며 기계설비들이 설치되고 부분적으로 시운전에 들어가는 뜻깊은 시각을 맞이하게 되였다.

주체36(1947)년 5월 중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운전을 진행하고있는 평천리의 병기공장건설장을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처음으로 찾아오시였을 때 파괴된 벽체들만 엉성하게 서있던 병기제조소자리에는 건물이 일떠서고 기대들이 설치되는 차례로 시운전이 진행되고있었다.

이날 공장건설에 떨쳐나선 포병기술훈련소 훈련생들은 그동안 여러곳에서 모아온 기대들을 이미 복구한 공장건물들에 설치하는 작업에 열중하고있었다. 포병기술훈련소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병기부문의 기술간부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친히 내오도록 하신 양성기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포병기술훈련소 훈련생들이 자체의 힘으로 병기공장을 건설하느라고 수고한다고 하시며 체모가 잡히기 시작한 공장구내를 일일이 돌아보시였다.

공장의 전경을 만족한 시선으로 바라보신 그이께서는 오늘 공장에 와보니 훈련생들이 그동안 많은 일을 하였다는것이 알린다고 치하하시면서 그들을 고무해주시였다.

공장안을 다 돌아보시고 밖으로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일군들과 훈련생들을 자애롭게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포병기술훈련소 훈련생들이 건설하고있는 이 공장은 우리 나라의 첫 병기공장입니다. 일반기계공장도 아닌 병기공장을 짧은 기간에 건설하자면 애로되는것이 많을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훈련생들이 해방된 조선의 첫 병기일군이라는 높은 자각을 가지고 병기공장건설에 달라붙으면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해방된 조선의 첫 병기일군이라는 뜨거운 믿음과 높은 칭호를 받아안은 공장일군들과 훈련생들은 병기공장을 하루빨리 완공할 맹세로 불타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떠나시기에 앞서 일군들과 훈련생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면서 포병기술훈련소에서 병기공장건설을 힘있게 다그쳐 훈련생들이 졸업할 때에는 이 공장을 조업할수 있게 하여야 하겠다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떠나가신 후 병기공장건설은 빠른 속도로 추진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새 조선의 첫 병기일군이라는 믿음을 가슴깊이 새기고 포병기술훈련소 훈련생들은 집체적지혜로 부속품을 깎아 고장난 설비들을 수리하였으며 불과 두주일 남짓한 기간에 공장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이러한 때인 주체36(1947)년 6월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병기술훈련소 훈련생들모두가 양성기간에 학습과 공장건설도 끝내고 그 과정을 통하여 리론과 실천을 겸비한 능력있는 병기일군으로 자라난 실태를 료해하시고 제1기 졸업생들을 핵심으로 병기공장을 꾸리도록 현명한 조치를 취하여주시였다.

그리하여 평천리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병기공장이 태여나게 되였다.

참으로 첫 병기공장의 탄생은 평천리의 페허우에 선군의 자욱을 새기시여 조국과 민족의 안전과 번영을 담보하는 자체의 병기공업창설로선을 제시하시고 병기공장건설을 위해 온갖 심혈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가 안아온 빛나는 결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