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에 자리잡고있는 만경대혁명학원은 백두산위인들의 직접적인 발기와 지도에 의하여 창립된 혁명가유자녀들의 은혜로운 삶의 터전이며 배움의 전당이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국에 개선하신 직후의 어느날 항일혁명투사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광복전에 흩어져 행처도 생사여부도 알수없이 된 전우들의 유가족과 유자녀들을 찾아 우리가 잘 돌보고 잘 키워줘야겠소, 희생된 동지들은 조국이 광복되면 자기들의 어린 자식들을 공부시켜 혁명가로 키워달라고 하였소, 나는 어려운 싸움의 나날 어느 한순간에도 그들의 유언을 잊어본적이 없소, 유가족들과  유자녀들을 남김없이 찾아 잘 돌보고 공부를 잘시켜서 그들이 희생된 혁명선렬들의 뜻을 이어 어엿한 혁명가로 자라나도록 합시다라고 말씀하시였다.

혁명가유자녀들을 나라에서 공부시켜 어엿한 혁명가로 키우는것을 새 조국건설의 중요한 사업의 하나로 내세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6(1947)년 3월에는 만경대혁명학원 창립준비위원회를 결성하시고 몸소 위원장의 사업을 맡아안으시였다. 그리고 국내외 각지에 항일투사들을 비롯한 수많은 일군들을 파견하시여 유자녀들을 찾아서 평양에 데려오도록 조치를 취하시였다.

혁명동지들에 대한 숭고한 사랑과 혁명적의리를 지니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깊은 조치를 받아안으시고 희생된 전우들의 유자녀들을 찾는 일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였으며 그들을 나라의 핵심골간으로 키우기 위하여 모든 정력과 심혈을 다 기울이시였다.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을 보시고도 희생된 전우들을 생각하시였고 색다른 음식이 생기여도 풀뿌리를 씹으며 함께 고생하던 투사들 생각에 목이 메여 수저를 들지 못하시는 녀사이시였다.

그럴 때마다 녀사께서는 전우들의 유자녀들을 따뜻이 보살피며 책임지고 잘 키워야 한다고 하신 수령님의 말씀을 가슴뜨거이 되새기시였다.

그러시기에 녀사께서는 부모를 잃고 사방에서 헤매고있을 유자녀들을 하루빨리 데려오시려 연줄을 찾아 밤을 지새우시였고 걸음을 아끼지 않으시였다.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들고 유자녀들을 찾아떠나는 일군들을 일일이 만나시여 한두번 찾다가 없다고 되돌아서지 말고 이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기어이 찾아오라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주체36(1947)년 4월 어느날 얼마동안 회령에 나가 활동하게 된 한 항일투사는 김정숙녀사께 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거기에는 다른 항일투사들도 와있었다.

녀사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한창 유자녀들을 찾는 때인것만큼 지방으로 떠나게 되는 투사들에게 어디에 가든 유자녀들을 다 찾아내야 한다고 하시면서 색이 날은 작은 수첩을 품속에서 꺼내드시였다.

녀사께서 주체25(1936)년 초여름 마안산에서 혁명의 피줄기를 이어갈 후비대를 튼튼히 키울데 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때로부터 가지고 다니시는 그 수첩에는 간고한 혁명의 길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희생된 전우들의 이름과 나이, 그들의 집주소와 가족들의 이름, 지어는 그들의 별명과 얼굴모습의 특징까지 알수 있는껏 하나하나 적혀있었다. 그 수첩은 한갖 글을 쓰는 책이 아니라 혁명동지에 대한 가장 숭고하고 고결한 사랑의 결정체였다.

총검의 숲을 헤치고 준령을 넘던 조국진군의 길에서도, 대부대선회작전의 준엄한 투쟁의 로정에서도, 조국해방의 최후결전의 길에서도 그 수첩은 언제나 김정숙녀사의 품속에 보물처럼 귀중히 간직되여있었다.

녀사께서는 해방후에도 자주 그 수첩을 펼쳐보시며 먼저 간 전우들을 추억하시였고 한지에서 헤매이고있을 유자녀들을 생각하시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그 수첩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주소들에는 붉은색, 삼각표식, 동그라미표식 등 여러가지 표식과 부호들이 씌여있었다.

잠시 수첩을 들여다보시던 녀사께서는 현지에 가면 잊지 말고 이 사람들을 꼭 찾아서 알려달라고 하시며 유가족들의 주소를 알려주시였다.

녀사께서는 한달도 좋고 두달도 좋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꼭 찾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그때로 말하면 녀사께서는 아직 형제분들과 조카의 생사여부조차 알지 못하고계시였다.

투사들은 녀사께 이제는 전우들의 유가족들도 적지 않게 찾았는데 고향땅도 찾아보시고 일가분들의 행처도 알아보셔야 하지 않겠는가고 말씀드렸다.

한 일군도 유자녀들과 유가족들은 자기들이 책임지고 다 찾겠으니 이제는 부디 고향에도 다녀오시고 혈육들도 찾아보시라고 간곡하게 말씀드렸다.

《저를 생각해주는 마음들은 고마와요. 그러나 장군님께서 유자녀들때문에 한시도 마음놓지 못하시는데 제가 어찌 자기 친척부터 먼저 찾겠습니까?

저는 유가족들을 다 찾아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 다음에 고향에도 가보고 일가친척도 찾겠습니다.》

혈육들을 찾고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하시건만 녀사께서는 희생된 전우들의 자식들을 찾는 일을 그앞에 놓으시였다.

주체36(1947)년 여름 한 항일투사가 동만으로 들어가게 되였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떠나기에 앞서 새로운 임무를 주시면서 동만에 들어가면 희생된 혁명렬사들의 유가족들과 유자녀들을 모두 찾아 내보내야 하겠다고 가르치시였다.

이리하여 그는 넓으나넓은 동만땅에 흩어져있고 생사여부도 모르는 유자녀들을 찾아야 할 어려운 과업을 맡고 길을 떠나게 되였다.

녀사께서는 길떠나는 그를 만나시여 장군님께서는 어제저녁에도 희생된 전우들의 유가족과 유자녀들을 생각할 때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간리에 있는 학원림시교사를 하루라도 앞당겨 꾸리고 유자녀들을 모두 찾아다 공부시켜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고, 그들을 하늘땅 끝에라도 가서 찾아내겠다는 각오를 가지면 꼭 성과를 거둘거라고 말씀하시였다.

하늘땅 끝에 가서라도 유자녀들을 찾아 어엿한 혁명가로 키우시려는 위대한 수령님과 녀사의 이렇듯 고결한 혁명적의리에 떠받들려 1947년 여름에 들어서면서 먼 이국땅과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유자녀들이 모여오기 시작하였다.

주체36(1947)년 8월초 어느날이였다.

혁명가유자녀들이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들으신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간리에 있는 학원림시교사를 찾으시였다.

그날 아침 녀사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유자녀들이 모여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잠도 이루시지 못하시였어요.

우리 아이들이 왔다는데 나가봐야겠어요. 몇이나 왔는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이는구만요.》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께서 타신 승용차가 학원마당에 들어서자 뛰놀고있던 원아들이 《김일성장군 만세!》의 환호를 올리며 막 달려왔다.

그런데 그렇게 기뻐 달려오던 아이들이 수령님의 품에 선뜻 안기지 못하고 주춤거리는것이였다. 자기들의 옷차림새가 한심하니 걸음을 멈추었던것이다.

어깨가 드러난 적삼, 무릎정갱이도 채 가리우지 못한 베잠뱅이, 신총이 닳아빠진 짚신… 아이들은 고개를 떨구며 울먹거렸다.

수령님께서는 억이 막히시여 더 걸음을 옮기지 못하시였다.

원아들의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시던 녀사께서는 아이들에게로 다가가시여 한 유자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타이르시듯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애들아, 이리 오너라! 장군님께서는 너희들이 헌옷을 입었다고 나무라지 않으신다. 너희들이 이렇게 못입고 못산것은 너희들의 죄가 아니다.》

녀사의 은정넘치는 말씀에 유자녀들은 하나둘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때 제일 나어린 꼬마가 《장군님!》 하고 웨치며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와락 안기였다. 그러자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다른 아이들도 달려와 수령님의 품에 안기였다.

《장군님! 장군님!》

유자녀들은 수령님과 녀사의 옷섶과 팔소매에 얼굴을 묻고 막 흐느끼였다.

조롱조롱 매달리여 모진 세월에 쌓이고쌓였던 설음을 한시에 터뜨리며 흐느끼는 아이들을 안으시고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는 수령님의 눈가도 축축히 젖어드시였다.

《일없다. 울지들 말아라. 이제 옷도 좋은것으로 해입고 공부도 하고 … 그러면 된다.》

몹시 갈리신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어린것들은 더욱 흐느끼기만 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수령님의 품에 안겨 너무 기뻐 마음껏 흐느끼는 유자녀들의 어깨며 머리를 다정히 쓸어주시며 뜨거운 눈물속에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애들아, 울지 말아. 이 기쁜 날에…

이제는 너희들이 고아가 아니다. 장군님께서 너희들을 보살펴주고계신다. 김일성장군님은 너희들의 아버지이시다.》

녀사께서는 그동안 원아들의 생활에서 있었던 기막힌 사연을 하나하나 알아보시고 같이 싸우다 희생된 그들의 부모들을 생각하시는듯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러시던 녀사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저 아이들이 많은 고생을 하였어요. 먹을것도 못 먹고 입을것도 못 입고… 누구 하나 살뜰하게 돌봐주는 사람도 없었고…

저애들을 보니 희생되면서 자식을 잘 키워달라고 부탁하던 동지들의 생각이 나서 가슴이 막 미여지는것 같군요.…

장군님께서는 먼저 간 동지들의 아들딸들을 찾지 못하시여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셔요. 정말 그애들을 빨리  다 찾아야 하겠는데…》

안타까움이 그대로 가슴에 울려오는 그 말씀에 곁에 섰던 일군들은 녀사의 숭고한 혁명적의리와 높으신 인덕에 모두가 머리를 숙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녀사께서는 이날 학원을 돌아보시며 원아들을 빨리 안착시키고 잘 돌봐줄데 대하여 강조하시고 점심시간이 퍽 지나서야 댁으로 돌아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자녀들의 람루한 옷차림을 보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그들의 제복을 해입히는 일을 김정숙녀사께 맡겨주시였다.

그날 오후 녀사께서는 옷차림이 람루하여 장군님의 품에 선뜻 안기기를 주저하던 어린 원아들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떠오른다고 하시면서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늘 장군님께서 어찌나 가슴아파하시는지… 점심식사도 드시지 않으시고 심려하시였어요.》

그러시며 녀사께서는 빨리 그애들을 잘 입히고 잘 먹일수 있게 되여야 장군님께서 기뻐하시겠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고 하시였다.

녀사께서는 개원식전으로 원아들의 제복을 다 새로 해입히도록 하라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조직진행하시였다.

녀사께서는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군복형식으로 학생들의 제복도안을 밤을 지새우시며 손수 하나하나 그리시고 수령님께 보여드려 완성하시였으며 달포나 되게 피복공장에 나가 살다싶이하시면서 학생제복을 훌륭히 만들도록 공장 일군들과 로동자들을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제복제작은 기한내에 끝나 개원식을 앞두고 학원학생들에게 일제히 새 제복을 입힐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정력적인 지도와 불면불휴의 심혈속에 학원의 림시교사가 짧은 기간에 꾸려지고 입학생들을 받기 위한 준비가 훌륭히 완료되게 되였다.

그리하여 주체36(1947)년 10월 12일 온 나라 인민들의 커다란 관심속에 항일혁명시기의 유자녀교육전통을 이어 만경대혁명학원이 창립되게 되였으며 뜻깊은 개원식이 진행되였다.

이날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혁명가유자녀들의 부모가 되시여 개원식에 참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개원식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여러분의 부모들은 우리와 함께 싸우다가 광복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희생되였습니다. 그들은 희생되면서 자기들은 비록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보지 못하지만 조국이 해방되는 그날 자식들을 공부시켜 인민의 훌륭한 충복이 되도록 잘 키워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국에 개선하자 곧 혁명렬사의 유자녀들을 찾았으며 여러분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이 학원을 세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에 접하여 유가족들과 원아들의 두볼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자주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가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도 희생된 전우들을 생각하시며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시였다.

항일의 그날 일제와의 싸움에서 전우들이 희생될 때마다 너무도 가슴아프고 비통하시여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부르시며 추도문을 쓰시고 밤깊도록 밀림속을 거니시던 수령님이시였고 희생된 전우들의 고향과 가족들의 이름이 기억에서 멀어질세라 수첩에 꼭꼭 적어두시던 김정숙녀사이시였다.

이러한분들이시기에 개원식에 참석하신 수령님과 녀사의 심중은 더없이 뜨거우시였고 그분들을 우러르는 원아들과 유가족들의 격정의 눈물은 바다를 이루었다.

이날 수령님께서와 녀사께서는 개원식이 끝난 후 원아들의 분렬행진도 보아주시고 운동회에도 참석하시여 원아들을 기쁘게 해주시였다.

항일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상징하는 붉은 줄을 두른 새 제복을 입은 원아들의 름름한 모습에는 위대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신 영광과 행복이 한껏 어려있었다. 그들은 부모잃고 모진 세월속에 버림받고 천대받던 어제날의 고아들이 아니였다. 백두산위인들의 품속에서 선군조선의 주인으로 당당히 등장한 귀중한 보배들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만경대혁명학원의 창립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가유자녀교육사상과 혁명적의리의 빛나는 결실이였으며 우리 혁명의 계승자들을 키우는데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사변이였습니다.》

만경대혁명학원이 창립됨으로써 혁명가유자녀들은 당과 수령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마음껏 배울수 있게 되였으며 우리 인민은 선군혁명의 피줄기를 이어나갈 핵심골간들을 키워낼수 있는 믿음직한 기지를 가지게 되였다.

선군조선의 위대한 력사에 길이 빛나는 만경대혁명학원의 력사적인 배움의 장엄한 서곡은 이렇게 시작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