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중에서

국방공업의 강화는 군력강화의 필수적요소이다.

무장력의 렬세는 전패를 가져온다는것이 지나온 력사와 오늘의 현실이 보여주는 교훈이다. 총이 없어 국권을 강탈당해야 했고 총이 없어 조국과 향토를 빼앗기고 선혈을 뿌려야 했던 눈물겨운 리왕조멸망의 치욕의 력사는 이것을 력력히 증명해주고있다. 대포로 무장한 강도와 화승총으로 맞섰던 지난날의 력사적교훈과 날이 갈수록 더욱 악랄해지는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책동은 우리 후손들에게 총대강화의 의지를 더욱 굳게 해주고있다.

해방후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 자립적인 국방공업을 창설한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군사중시, 총대중시사상과 항일혁명투쟁시기 자체로 무장을 갖춘 풍부한 경험에 기초하여 해방후 지체없이 자립적인 국방공업을 창설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우리의 정규무력을 현대적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로 장비시킬 원대한 구상을 안으시고 주체34(1945)년 10월 9일 해방후 산업건설의 첫걸음인 강선길에 앞서 10월 2일에 군수공업건설의 출발적의미를 지니는 평천길을 먼저 걸으시여 빈터우에서 첫 병기생산기지를 창설하시였다. 해방후 우리 나라 군수공업의 새 력사는 이 뜻깊은 평천길로부터 시작되였다.

그리하여 해방후 짧은 기간에 우리의 로동계급은 자기의 힘으로 총포탄, 수류탄 등을 만들어냈으며 군대를 현대적으로 무장시킬수 있는 물질기술적토대를 마련해나갔다.

이 력사의 갈피마다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를 받들어 군수공업창설에 공헌하신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의 업적이 깃들어있다.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심혈을 덜어드리기 위해 4차례나 평천병기공장을 찾으시고 이 공장 일군들과 로동자들에게 우리자체의 힘으로 병기생산을 다그쳐 인민군대를 현대적무기로 무장시키며 병기공업을 창설하고 발전시키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심혈을 덜어드리기 위하여 애국적열성을 다 바쳐나갈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받아 안고 떨쳐나선 이 공장 로동계급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기를 만들어내면 우리 나라는 다시는 침략자의 롱락물로 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심장에 자력갱생의 정신을 창조한 항일유격대원들의 백절불굴의 의지를 깊이 심어주시였다.

어느날에는 해종일 나가시여 로동자들과 함께 일하시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만드는것을 조선사람들이라고 왜 못 만들겠는가, 옛날에 리순신이 거북선을 만들고 최무선이 화약을 만들어내여 세상에 없는 병기기술을 창조하였는데 그 후손들인 우리가 이쯤한 총은 얼마든지 만들어낼수 있다고 고무격려하여주시였다.

그리하여 그처럼 고대하고 바라던 우리의 기관단총이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

주체38(1949)년 3월부터 기관단총을 계렬생산하게 됨으로써 우리 나라 병기공업이 새로운 높은 발전단계에 들어서고있던 주체38(1949)년 6월 16일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녀사께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4번째로 병기공장을 찾으시였다.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생산현장을 일일이 돌아보시면서 병기공장 로동계급이 이룩한 성과에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신 다음 이 공장 로동계급이 자체의 힘으로 만든 기관단총과 탄알로 기관단총시험사격을 하시였다. 사격을 마치신 녀사께서는 오늘 공장을 돌아보고 신심을 가졌는데 우리 로동계급이 만든 총까지 쏴보니 더욱 큰 힘이 생긴다고, 이제는 총에 대한 우리 인민의 세기적숙망이 풀리게 되였다고 하시며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러시고 녀사께서는 총이 아주 훌륭하다고,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새 조선을 건설하는데서 이 공장 로동계급이 앞장서나가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렇듯 우리의 기관단총에는 전체 군대와 인민을 자기의 무기로 무장시켜 무장한 인민의 나라로 만드시려는 김정숙녀장군의 크나큰 심혈이 뜨겁게 깃들어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생의 마지막나날까지도 날로 로골화되는 미제와 그 주구들의 침략책동에 대처하여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자신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깡그리 바치시였다.

1949년에 들어서면서 미제와 그 주구들은 《북진》의 나발을 요란스럽게 불어대면서 군비확장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미제는 제놈들의 극동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나라를 무장시키는것보다》 남조선을 무장시키는것이 급선무이며 《세계의 어떤 국민보다도 그들이 더 많은 무기를 요구할 정당한 근거가 있는것》이라고 줴치면서 이 시기 12만여정의 총과 150문의 반땅크포, 79척의 함선과 수십대의 비행기를 포함한 도합 1억 1,000만US$의 군사원조를 남조선에 넘겨주었다.

남조선통치배들은 한해의 세출총액 529억 8,900만원중에서 46%에 해당하는 243억원을 군사비로 충당하고도 모자라 세금징수라는 명목밑에 인민들의 돈주머니를 강제로 털어내였다.

이러한 긴박한 정세는 갓 창건된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개선하고 나라의 방위력을 더욱 강화할것을 절실하게 요구하고있었다.

하지만 나라의 국방력은 현대적무장을 갖춘 적들의 침략을 단매에 물리칠수 있도록 준비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하였다.

인민군대의 매 병사들이 총을 쥐였다고는 하지만 기관단총과 자동무기들을 비롯한 일련의 군수기재들이 모자랐다. 더우기 문제로 되는것은 우리에게 비행기와 함선, 땅크와 포를 비롯한 중무기들이 갖추어지지 못한것이였다. 그렇다고 하여 다른 나라들에 손을 내밀며 무장을 달라고 할수도 없었고 어데 가서 당장 무기를 사올만 한 돈도 부족하였다.

그래서 이 시기 일부 사람들은 쏘련과 같은 큰 나라들에서 무장을 빌려오자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모자라는 현금을 인민들의 세금을 올려서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되지 않겠는가고도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은 우리의 정책이 아니며 인민을 등지는것으로 된다, 우리 인민은 애국심이 높고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무비의 헌신성을 발휘해온 용감한 인민이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놈들이 대군으로 우리 나라에 침입하여왔을 때에도 우리 인민은 남녀로소 할것없이 모두 일어나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용감히 싸웠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도 각계각층 우리 인민은 항일유격대를 물심량면으로 적극 지지성원하고 여러가지 형태의 반일투쟁을 과감히 전개하였다, 이러한 애국정신을 이어받은 우리 인민의 힘과 지혜를 발동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하시면서 군대의 무장장비를 해결하는 문제를 전체 인민을 발동하는 방법으로 해결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발기에 의하여 주체38(1949)년 7월 15일 조국보위사업을 전인민적으로 후원할 목적밑에 대중적인 조국보위후원단체인 조국보위후원회가 조직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보위기금을 헌납할것을 전체 인민들에게 호소하신 그 다음날 저녁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늦어서야 댁으로 들어서신 어버이수령님께 진지상을 올리시고나서 낮에 작성한 댁의 조국보위기금희사명세를 말씀드리시였다.

그 명세에는 쓰띠꼬브대사가 댁에 기증한 2개의 은초대, 치스챠꼬브부인이 료양기념으로 선물한 합금으로 장식한 화장품통 그리고 지방에 파견하였던 한 항일혁명투사가 보내온 귀중한 보약들도 들어있었다.

또한 명세에는 가정의 식사량을 조절하여 모두 기금헌납에 쓴다는것까지 포함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기금명세를 보아주시면서 《잘했소. 조국보위기금희사야 수상네 집이 응당 앞장서야지.》라고 하시며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오늘 집으로 들어오면서 빈 배낭 두개를 놓고 첫 살림을 시작한 우리 집에 조국보위기금으로 희사할것이 무엇이겠는가고 생각했는데 정숙동무가 내 마음을 알고 좋은 안을 만들어왔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이 헌금과 귀금속들을 지체말고 조국보위후원회에 헌납하라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조국보위후원회 중앙본부에는 어버이수령님의 댁에서 마련한 기금이 제일 선참으로 헌납되게 되였다.

그 다음날부터 가정의 진지상우에는 김정숙녀사께서 작성하신대로 잡곡이 전에보다 더 많이 섞인 조밥과 가지수가 줄어든 식찬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때 댁에 와계시던 리보익할머님은 이 광경을 차마 볼수 없어 자신께 차례진 흰쌀밥을 어린 증손녀에게 덜어주시며 《산에서 별의별 고생을 다하던 장군네 집이 광복이 되였어도 여전히 조밥이로구나. 이제 너희 아버지가 나라를 통일시킨 다음에 이런 일을 옛말로 하자.》라고 하시였다.

이무렵 만경대일가분들도 조국보위기금희사에 앞장섰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정과 만경대일가분들속에서 높이 발휘된 애국충정의 마음은 온 나라 인민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그리하여 조국보위기금희사사업이 시작된지 한달도 못되는 사이에 헌납된 기금액수는 수천만원에 달하였다.

그러던 9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그날 저녁 댁으로 들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 김정숙녀사께서는 또다시 장만하신 조국보위기금정형을 보고드리시였다.

거기에는 몇달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받으신 생활비도 들어있었다.

그 생활비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산에서 고생만 시킨 정숙동무에게 내 아직 변변한 옷 한벌 해주지 못했다고 하시며 이번에 내가 준 돈은 어디에 절대 쓰지 말고 모아 두었다가 좋은 옷 한벌 해입으라고 간곡히 당부하신것이였다.

조국과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시는 김정숙녀사의 숭고한 애국지성을 두고 한동안 말이 없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각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언제 가야 변변한 옷 한벌 입어보겠소.》

《장군님, 저를 두고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나라가 있고서야 저도 있는것이 아닙니까. 저는 나라가 통일된 다음에 제일 좋은 천으로 제일 좋은 옷을 해입겠습니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조국방위를 위하여 가정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김정숙녀사의 소행을 높이 평가하여주시면서 가정의 기금희사명세를 기꺼이 찬성하여주시였다.

하여 그 다음날 김정숙녀사께서는 몸소 마련하신 조국보위기금을 또다시 조국보위후원회에 바치시였다.

그날은 조국의 부강번영과 완전통일독립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던 김정숙녀사께서 서거하기 며칠전이였다.

선군으로 빛나는 내 조국의 첫 기슭에서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지시려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나날까지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불태워오신 위대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의 뜨거운 애국적헌신에 떠받들려 나라의 방위력은 나날이 굳건히 다져졌다.

그처럼 위대한분이시였기에, 그처럼 위대한 애국자이시였기에 철벽으로 다져진 선군조선, 불패로 위용떨치는 혁명무력과 강력한 국방공업의 오늘을 보면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그 나날에 기울이신 김정숙녀사의 불멸의 그 업적을 조선혁명의 선군로정과 더불어 잊지 못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