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군사교육을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틀어쥐고 시작할것인가.

이것이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군사교육앞에 제기된 문제였다.

이와 관련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군사교육사업에서 주체를 세우고 모든 교육방법과 내용을 철저히 우리 식으로 진행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그것을 실천해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군사간부양성을 위한 교육기간부터 우리 식으로 정해주시였다.

주체35(1946)년 6월 중순 어느날 중앙보안간부학교의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와 자리를 같이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올린 중앙보안간부학교 조직과 관련한 문건초안을 받으시고 첫장부터 주의깊게 읽어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여러 대목에 밑줄을 긋기도 하시고 어떤 부분에는 새로운 내용을 써넣기도 하시였다.

이윽고 문건초안을 마지막장까지 다 보신 수령님께서는 문건을 잘 만들었다고 하시며 학생중대를 더 합리적으로 편성할데 대하여서와 학교를 운영하는데 쓸 자금예산을 잘 세울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잠시 생각에 잠기신 수령님께서는 중앙보안간부학교의 학제를 잘 규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문건초안에는 학제에 대하여서만은 반영되여있지 못하였다.

그때 일군들이 중앙보안간부학교의 학제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당시 학교의 일부 일군들속에서는 학제를 설정하는 문제를 놓고 서로 주장들이 엇갈리고있었다. 사대주의, 교조주의에 물젖은 일부 사람들은 덮어놓고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3∼4년으로 하자고 들고나왔다. 이런 관계로 학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학제를 규정하지 못한 문건을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게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실태를 다 알고계신듯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중앙보안간부학교의 학제를 다른 나라 군사학교들처럼 3년이나 4년으로는 할수 없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중앙보안간부학교의 학제를 3∼4년으로 하여서는 짧은 기간내에 정규적인민무력건설에 필요한 군사간부문제를 해결할수 없습니다.

내 생각에는 중앙보안간부학교의 학제를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맞게 1년으로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1년동안 교육을 잘 주면 그들이 정규군대 군사지휘관으로서의 자질과 풍모를 갖출수 있을것입니다.》

일군들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군사지휘관들을 육성하는 교육기관의 학제를 3∼4년으로 하는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거의 공통된 하나의 관례로 되고있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래동안 굳어진 그 기성관례를 대담하게 마스고 교육기간을 단 1년으로 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커다란 흥분속에 휩싸여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있는 일군들에게 지난날 우리가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하던 식으로 하면 얼마든지 훌륭한 군사지휘관들을 키워낼수 있다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그자리에 참석하고있는 일군들은 대다수 항일혁명투사들이여서 그들의 머리속에는 항일무장투쟁시기 백석탄과 마당거우밀영 등에서 군정학습을 하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적의 포위속에서 진행한 군정학습은 그야말로 하나의 전투와 같았다. 하지만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내며 훈련을 다그쳐 한달 남짓한 기간에 신입대원들은 구대원의 수준으로, 구대원들은 더 높은 직무를 맡아수행할수 있도록 정치군사적으로 더욱 철저히 준비되였던것이다.

일군들은 그때의 그 정신, 그 기백으로 하면 얼마든지 짧은 기간에 많은 군사지휘관들을 키워낼수 있다는 신심이 생겼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앙보안간부학교의 교육기간을 1년으로 정해주시였을뿐아니라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해방전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하고 겨우 문맹퇴치나 한 청년들인것을 고려하여 그들에게 일반기초지식과 군사기초지식을 배워주기 위한 3개월간의 예비학기기간을 두도록 하는 문제, 보병, 포병, 통신병지휘관들을 1년동안에 양성할수 있는 교육강령을 주체적립장에서 작성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조치들도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하여주신 이러한 조치들의 정당성은 실천을 통하여 확증되였다.

드디여 중앙보안간부학교 제1기생들이 1년간의 과정안을 마치게 되던 주체36(1947)년 10월 중순 어느날 학교의 전술훈련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졸업생들의 수준을 종합적으로 판정하는 보병소대전술훈련을 친히 보아주시였다.

현대전의 요구와 작전전술적원칙에 맞게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진행된 훈련은 졸업생들의 전투행동과 지휘능력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한시간나마 진행된 훈련을 다 보시고 못내 만족을 금치 못해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훈련이 참 잘되였다고, 모든 학생들이 그렇게만 준비되면 대단하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오늘 훈련을 통하여 우리 당의 군사교육방침의 정당성을 다시한번 확신하게 되였습니다.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세울 때 일부 사람들은 교육기간을 다른 나라에서처럼 3년으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앙보안간부학교의 교육기간을 그렇게 길게 할수 없었습니다. 교육기간을 3년으로 하여가지고서는 혁명적정규무력을 제때에 건설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항일무장투쟁시기 마당거우와 백석탄밀영에서 군정학습을 긴장하게 조직한 경험에 기초하여 대담하게 교육기간을 1년으로 하였습니다. 동무들도 오늘 훈련을 보고 느꼈겠지만 교육사업을 짜고들면 1년동안에 능히 학생들을 훌륭한 지휘관으로 키워낼수 있습니다.》

확신에 넘친 어버이수령님의 말씀은 학교일군들과 교원들에게 1년간학제의 독창성과 정당성을 다시금 깊이 깨우쳐주었다.

참으로 군사간부들을 단 1년동안에 키워낼데 대한 방침은 일찌기 항일무장투쟁의 간고한 나날 몸소 군사교육의 풍부한 경험을 쌓으시였으며 날로 긴장해지는 정세에 대처하여 짧은 기간에 더 많은 군사지휘관들을 질적으로 키워내야 할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맞게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독창적이며 과학적인 군사간부양성방침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군사간부육성을 위한 교육방법과 내용도 우리 식으로 진행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초기 중앙보안간부학교실태는 말이 아니였다. 학교의 일부 책임적인 위치에 있던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들이 내놓은 식으로 군사교육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군사술어 하나만 놓고보아도 다른 나라의것을 그대로 모방하여 《기척》, 《우향우》, 《좌향좌》라는 말을 쓰자고 하였다. 이뿐아니라 대렬, 사격, 전술, 공병, 체육을 비롯한 각종 군사과목들에서의 교육도 《쏘련식》, 《연안식》, 《일본식》으로 뒤엉킨 범벅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실태를 바로잡고 정규적인 민족군대의 간부들을 우리 식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당, 정권기관과 지방에 파견되여 일하던 여러명의 항일혁명투사들을 중앙보안간부학교에 파견하는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8월 중순 어느날 항일혁명투사들을 중앙보안간부학교에 파견하시는 자리에서 군사교육을 우리 식으로 하기 위한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동무들은 과거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군사교육경험을 잘 살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때 적들과 싸우면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유격전법을 하나하나 완성하였으며 그것으로 대원들을 교육하였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유격대는 항상 전투에서 적들보다 전술적으로 우세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군사지식을 주는것, 이것이 군사교육에서 기본입니다.》

그이께서는 그러시면서 군사술어를 옳게 제정하며 외국의것을 그대로 도입할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이 쉽게 리해할수 있도록 간단명료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군사교육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하여 무엇을 중심고리로 틀어쥐고나가야 하는가를 환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 따라 학교에서는 교육에서 쓰이고있는 군사술어들을 모조리 조사장악한 다음 그것을 우리 식으로 다듬기 위한 협의를 거듭 진행하고 그 초안을 수령님께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그것을 하나하나 보아주시였을뿐아니라 손수 수정가필까지 하여 내려보내주시였다.

오늘 인민군대에서 쓰이고있는 《차렷》, 《우로 돌앗》, 《좌로 돌앗》 하는 술어들은 이렇게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구체적인 지도밑에 제정완성되였다.

군사술어들을 우리 식으로 제정하는 일로부터 군사교육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디게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학교에 나오시여 군사교육을 우리 식으로 하기 위한 원칙적문제와 교육방법을 우리 나라 실정에 맞게 할데 대한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12월말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찾으시여 군사교육을 우리 식으로 하기 위하여서는 항일무장투쟁경험을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모든 훈련에 철저히 구현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에게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적은 인원과 뒤떨어진 무기를 가지고 현대적인 무기로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침략군을 타승한 고귀한 경험이 있다,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밑천이다, 동무들은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에서 이룩된 고귀한 경험들을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빛나게 계승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하시며 군사교육을 우리 식으로 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을 다시금 밝혀주시였다. 주체36(1947)년 5월 2일에도 학교를 찾으시여 우리는 지금 우리 나라에 새형의 정규군대를 건설하자는것이다, 그러므로 학교교육은 그 어느 나라 식도 아닌 조선식으로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교시를 심장으로 새겨안은 학교의 교원들은 어떻게 하면 군사교육을 우리 식으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하겠는가 하는 문제에 머리를 쓰게 되였다.

그러나 원래 낡은 사상관점이란 집요하기 그지없는것이여서 학교의 일부 교원들은 의연히 다른 나라의 군사교범을 떠나서는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는것으로 여기였다.

하여 학교에 파견된 인민혁명군출신 교직원들은 그들과의 의견충돌을 피할수 없었다.

이러한 때인 주체36(1947)년 7월 6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앙보안간부학교에 나오시였다. 그날 그간 교육사업정형과 훈련정형을 료해하시던 수령님께서는 우리 학생들에게는 우리 식으로 선진적인 군사기술을 배워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인민혁명군출신 교직원들을 미더운 눈길로 보시며 동무들은 여기에서 골간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 군관학교때부터 똑바로 교육을 주어 내보내야 그들이 나가서 동요없이 우리 군대를 자기식대로 훈련시킬수 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정규무력의 골간육성교육은 사대주의, 교조주의의 가시덤불길을 헤치며 우리 식의 첫걸음을 내디디여 항일의 혁명전통을 이어받은 군관들, 주체의 군사사상과 싸움법으로 무장한 혁명무력의 첫 지휘관들을 배출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