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해방된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 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나라와 민족을 보위하며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할수 있는 자기의 현대적정규무력을 건설하여야 하였다.

만일 현대적정규무력을 건설하지 않는다면 피흘려 쟁취한 혁명의 전취물을 외래제국주의자들의 무력침공으로부터 보위할수 없으며 또다시 망국노의 쓰라린 력사를 되풀이하게 될것이였다.

더우기 오래전부터 조선을 호시탐탐 노려오던 미제의 남조선강점은 정규적혁명무력의 창설을 절박한 과업으로 제기하고있었다.

당시 건국열의로 끓어번지는 북조선과는 달리 남조선에서는 미제가 총칼을 휘둘러 민주력량을 가혹하게 탄압하면서 각종 폭압기구를 조작하고 반인민적인 군정통치의 길로 나가고있었다.

보다 위험한것은 미제가 남조선을 전조선과 아시아를 침략하기 위한 군사침략기지로, 전략적요충지로 만들기 위해 미쳐날뛰는 한편 침략전쟁의 돌격대로 될 군사력을 꾸리려고 책동하고있는것이였다.

미제는 군정통치를 실시하면서 일본군대와 장개석군대, 위만군의 복무자들과 일제의 경찰대에 들었던 악질분자들을 긁어모아 앞으로 남조선괴뢰군의 모체로 될 《국방경비대》를 조작하려고 혈안이 되여 날뛰였다. 그리고 악질적인 장교들을 수많이 길러내기 위해 《군사영어학교》를 설치하려고 서두르면서 남조선의 중요지대들에 군사시설물을 대대적으로 구축하였다.

이러한 사태는 원쑤들의 책동을 단호히 물리치고 나라와 민족을 보위할 강력한 혁명적정규군대를 지체없이 건설할것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갓 해방된 조건에서 강력한 정규군대를 마련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들에서의 혁명군대조직은 대체로 낡은 군대의 력량을 돌려세우고 로동자, 농민의 새 부대들을 편성보충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였다. 로씨야에서 사회주의10월혁명이 승리한 후 짜리군대의 《민주주의화》를 실현하여 그 력량을 리용한것도 그렇고 중국에서 제1차 국내전쟁때 공산주의자들의 영향하에 있던 국민혁명군부대들로 무장폭동을 일으키고 그들을 주력으로 대규모혁명무력을 창건한것도 그러한 실례이다.  

하지만 해방후 우리에게는 남들처럼 돌려세울 군대도 없고 교양하여 리용할 낡은 군대의 지휘관, 군사전문가도 없었으며 정규군건설에 필요한 물질기술적토대도 매우 미약하였다.

거기에 정규무력건설앞에는 안팎으로 커다란 장애가 가로놓여있었다.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북반부에서의 새 사회건설과 정규적혁명무력건설을 파탄시키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당안에 기여든 종파사대주의자들은 북과 남이 통일되기 전에 무슨 군대가 필요한가, 외국의 원조가 없이는 자체의 힘으로 정규군을 건설할수 없다고 훼방을 놀았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대적정규무력건설사업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 꼭 해야 하며 또 능히 할수 있다는것을 확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첫 혁명적인민무력인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시고 이끌어오시는 과정에 몸소 이룩하신 혁명무력건설의 풍부한 경험과 간고한 투쟁의 불길속에서 단련육성된 혁명적골간들을 믿으시였고 나라가 해방이 되자 스스로 공장과 고향땅을 지켜나선 인민들의 열렬한 애국심과 드높은 자위의 혁명정신을 보시였던것이다.

이것은 현대적정규무력을 제때에 건설할수 있는 튼튼한 밑천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튼튼한 밑천에 의거하시여 해방직후부터 현대적정규무력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한걸음한걸음 힘있게 추진시키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미 해방직후에 조선혁명의 절박한 요구를 깊이 헤아리시고 천리혜안의 선견지명으로 주체34(1945)년 8월 20일에 자체의 힘으로 정규화된 혁명군대를 건설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항일무장투쟁의 시련속에서 단련육성된 혁명투사들을 골간으로 하고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의 아들딸로 혁명군대를 창건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규무력을 건설함에 있어서 항일무장투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속에서 발현된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적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 그 어떤 간난신고도 이겨내고 제힘으로 일떠서는 혁명정신, 상하일치, 군민일치의 전통적기풍, 혁명적동지애와 인민적사업작풍, 자각적인 군사규률과 혁명적생활질서 등을 계승하여 그 정신으로 새로 창건될 혁명군대를 교양육성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수령님의 이 가르치심에는 일제를 반대하는 항일전쟁의 불길속에서 단련육성된 항일혁명투사들을 골간으로 하고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로 그 대오를 확대하여 장차 정규적혁명무력을 항일혁명투쟁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계승한 혁명의 군대, 인민의 군대로 강화발전시키시려는 숭고한 뜻이 담겨져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정규무력건설을 새로운 군사정치간부들을 키우는 일부터 시작하시였다.

해방후 정규무력건설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는 군사간부, 지휘성원문제를 빨리 해결하는것이였다.

물론 우리 나라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 예견성있게 키우신 항일혁명투사들이 있었다. 항일혁명투사들은 정규군건설에 요구되는 군사간부문제해결의 큰 밑천으로 되였다. 그러나 그들만으로는 정규군건설에 요구되는 군사간부문제를 다 해결할수 없었다.

이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을 핵심골간으로 하고 로동자, 농민출신의 새로운 군사간부들을 대대적으로 키워 정규군간부문제를 자체의 힘으로 풀기로 결심하시고 여러가지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당을 강화하고 정권을 꾸리는 사업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긴요한 사업들이 많았지만 항일혁명투사들의 대부분을 정규군건설에 돌리시여 그들이 앞으로 건설될 정규군의 골간이 될뿐아니라 군사간부들을 키우는데서도 주도적역할을 수행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을 정규군건설에 집중적으로 파견하시는 한편 정규적인 군사교육기관들을 창설하고 그것을 확대강화하는 조치를 취하시였다.

조국에 개선하신 후 얼마 지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몇몇 항일투사들을 부르시여 정규적혁명무력을 건설하는 사업을 적극 추진시켜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이제는 해방이 되였으니 정규군대를 건설합시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간부들을 키워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정규군대의 간부를 키워내기 위한 교육기관을 곧 세우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단련육성된 항일혁명투사들을 핵심으로 하여 종합적인 군사정치간부육성의 모체기지를 창설하고 앞으로 그를 발전시켜 새로운 여러가지 군종, 병종의 군사학교들을 내올데 대한 구상을 펼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루빨리 정규군의 간부양성기지를 꾸려주시기 위하여 잡초무성한 진펄길과 바다바람 세찬 항만의 언덕길을 걷고걸으시면서 몸소 군사학교들의 터전을 잡아주시고 학교건설을 다그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군사정치간부양성의 모체기지부터 창설할것을 결심하시고 평양학원을 내오도록 하시였다.

여러곳에 일군들을 파견하시여 학원자리를 알아보게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1월 중순 어느날 남포지구에 적합한 자리가 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일군들과 함께 몸소 현지를 찾으시였다.

그곳은 바로 남포에서 동쪽으로 몇십리가량 떨어져있는 지울리라는 마을이였다.

유유히 서해로 흘러드는 대동강을 옆에 끼고있는 지울리는 예로부터 농민들이 대대로 농사를 지어오던 한적한 농촌마을이였다.

대륙침략에 더욱 열을 올리고있던 일제는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외진 고장에도 군수산업을 목적으로 부랴부랴 《소화전공회사》라는 공장과 함께 여러동으로 된 회사의 《기술원양성소》를 들여앉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건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다음 곧 둔덕을 넘어 그쪽으로 가시였다.

건물이 한눈에 안겨오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신 그이께서는 오래동안 건물과 그 주변을 둘러보시였다. 후미진 곳에 자리잡은 그 건물들은 밑천을 덜 들이고 긁어가는데만 눈이 뒤집혀 돌아가던 일제가 날림식으로 지은 집이여서 보기에도 어수선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물을 돌아보시고나서 그앞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으로 오르시였다.

그곳에서는 무연하게 펼쳐진 벌을 끼고 들어앉은 높고낮은 산야들과 대동강하류의 용용한 흐름이며 저 멀리 우뚝 솟은 남포제련소의 굴뚝이 한눈에 안겨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볼수록 조국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그 모든것을 깊은 생각에 잠겨 바라보시다가 마침내 결심을 내리신듯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학원의 위치는 지울리에 잡는것이 좋겠습니다. 지울리에는 일제놈들이 경영하던 공장건물도 있고 이곳은 앞에 대동강하류도 끼고있어 훈련하기도 좋은 지대입니다.》

군사정치간부들을 양성할 학원의 위치를 이렇게 정해주신 수령님께서는 훈련장자리를 잡아주시기 위하여 산등성이로 오르시였다.

잠시의 휴식도 없이 무릎치는 잡관목들을 헤치고 산비탈을 걸으시며 훈련장과 사격장으로 쓸 장소들을 정해주신 수령님께서는 학원건설에서 나서는 과업과 교육사업방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떠나기에 앞서 백양나무들이 줄지어선 대동강의 흐름을 거슬러 평양쪽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학원의 이름은 우리가 조국에 돌아와 처음으로 세우는 학원인것만큼 평양의 이름을 따서 평양학원이라고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평양학원》, 얼마나 뜻이 깊고 숭고한 이름인가!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탄생하시여 조국광복의 큰뜻을 키우신 혁명의 요람 만경대가 자리잡고있는 평양, 준엄한 항일전의 나날 우등불가에서 수령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처럼 그리던 평양, 그 뜻깊은 이름을 새로 세울 학원에 붙여주실 때 이 학원의 사명과 임무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현명한 령도와 세심한 보살피심속에 해방된지 불과 석달만에 새 조국건설과 혁명적정규무력건설에 이바지할 첫 군사정치간부양성기지인 평양학원이 창설되게 되였다.

평양학원의 창설은 군사문제를 혁명의 근본문제로 내세우신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의 혁명무력건설사상과 리론의 결실이였으며 해방후 건군력사의 첫 장을 빛나게 장식한 력사적사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평양학원의 명예원장이 되시여 학원의 교육사업을 세심히 지도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1월초 평양학원에 나가시여 교직원, 학생들앞에서 제1기 첫 강의를 하시였으며 2월 하순 또다시 학원을 찾으시여서는 학원개원을 축하하는 연설을 하시며 학원앞에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세심한 보살피심에 의하여 평양학원은 창설되여 얼마 안되는 기간에 정규화적면모를 갖춘 군사정치간부양성의 모체기지로 튼튼히 꾸려지게 되였다.

그 시기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기관지 《정로》에는 평양학원이 력사적인 첫 수업을 시작한데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전하였다.

《동교(평양학원)는 김일성동지가 명예원장이…되여 그이의 지도하에 북조선각지에서 선발된 우수한 청년학생 600여명은 집단생활을 하며 학습하고있다.》

그후 평양학원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교육방침을 높이 받들고 학생들을 정치와 군사를 겸비한 일군으로, 정규적인 혁명무력의 골간으로 억세게 준비시켜나갔다.

하지만 종합적인 군사정치간부양성기지인 평양학원 하나만으로는 정규군의 창설과 그 강화발전에 따라 수많이 요구될 각 군종, 병종의 군사정치간부들을 원만히 키워낼수 없었다.  

이로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각 병종의 전문적인 군사지휘관을 양성하는 중앙보안간부학교를 내오도록 하시였다.

주체35(1946)년 봄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규무력건설의 골간을 키워낼 구상밑에 중앙보안간부학교의 창설을 발기하시고 몸소 학교터전까지 잡아주시였다.

이날 아침 평양을 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서군 성암면 대안리(당시)에 있는 금속로동조합사무실 앞마당에 도착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동행한 일군들과 함께 낮은 등성이에 오르시여 조합구내를 둘러보시면서 여기에다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설립하고 군사간부들을 양성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정규적인 인민무력을 창건하자면 많은 간부가 필요하다, 지금 정규군의 골간으로 될 간부를 평양학원에서 양성하고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 평양학원에서는 정치간부를 양성하고 여기에 보안간부학교를 따로 설립하여 군사지휘관을 많이 육성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이날 저녁무렵까지 조합구내를 일일이 돌아보시며 병실과 강의실, 식당 그리고 병원으로 쓸 건물을 지정해주시였다.

이렇게 정규무력건설을 위한 각 군종, 병종의 군사간부들을 훌륭히 키워낼수 있는 믿음직한 군사간부양성기지들을 마련하기 위한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주체35(1946)년 7월에 보병, 포병, 공병, 통신병 등 각 병종과 전문병부문의 지휘성원들과 기술일군들을 양성하는 중앙보안간부학교가 창설되였으며 주체35(1946)년 3월에는 평양학원에 새로 항공반이 나오고 주체36(1947)년 7월에는 우리 나라에서 첫 해군간부양성기지인 수상보안간부학교가 창립되게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각 군종, 병종의 군사간부들을 키워내기 위한 군사간부양성기지들을 마련해주시였을뿐아니라 여러차례에 걸쳐 군사학교들을 찾으시여 교직원, 학생들에게 신심도 안겨주시고 그들의 사업과 생활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주체35(1946)년 7월 20일 중앙보안간부학교 개교식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입학생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고향은 어디며 부모들은 다 있는가, 여기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하였으며 집에서 공부는 얼마나 했는가를 일일이 료해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무슨 문제이건 좋으니 생각되는것이 있으면 다 이야기해보라고 말씀하시였다.

단란한 가정적분위기에 휩싸인 학생들은 저마다 자기들의 생각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어떤 학생은 공부하기가 제일 힘들다고 하였고 또 어떤 학생은 빨리 군대가 되였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때 맨 끝자리에 앉아있던 한 학생이 일어나 《저…》 하고 말머리를 떼다말고 주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서 말하라고 재촉하시여서야 그는 용기를 내여 이렇게 말씀드리였다.

《저는 어릴 때 학교문앞에도 못 가보았는데 저같은 사람도 이런 큰 군사학교에서 공부할수 있습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애롭게 웃으시며 왜 배울수 없겠는가, 얼마든지 공부할수 있다, 바로 동무와 같은 사람들을 공부시키려고 우리는 이런 큰 군사학교를 세웠다고 하시면서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지난날 못 배운것을 한탄하지 말고 신심을 가지고 배우면 누구나 다 훌륭한 일군이 될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심장속에 새기며 신심과 투지를 가다듬었다.

학생들을 새 조국의 믿음직한 군사지휘성원으로 키우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심혈과 로고는 이뿐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날에는 중앙보안간부학교에 찾아오시여 얼마전에 자기같은 사람도 이런 큰 군사학교에서 공부할수 있는가고 묻던 그 학생의 학습장도 하나하나 펼쳐보시며 용기를 내여 학습을 잘하라고 거듭 당부도 하시였고 또 어느 일요일에 학교에 나오시여서는 전술훈련장이며 사격훈련장, 체육시설들을 돌아보시였을뿐아니라 강실에 들리시여 흑판에 쓴 글자가 잘 보이는가, 책상이 너무 높지 않은가, 걸상이 지내 낮은감이 없는가를 세세히 헤아려보시였다. 그리고 학교에 전화를 거시여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가, 공부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는가, 앓는 동무들은 없는가도 알아보시였으며 자주 학교를 찾으시여 학생들의 학습조건과 침식조건에 이르기까지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관심속에 모든 군사학교의 학생들은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마음껏 배우고 훈련하여 현대적정규무력의 골간으로 튼튼히 준비되여갔다.

새 조국건설에서 경제부문에 필요한 기술인재양성이 선차라는것은 어느 나라에나 인이 박힌 기성관념이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대가 든든해야 경제건설도 잘할수 있고 부강한 새 조국을 건설할수 있기에 경제부문에 필요한 기술인재양성보다 먼저 정규무력건설의 핵심골간양성에 그토록 커다란 심혈을 바치시였던것이다.

참으로 정규무력건설의 핵심골간육성을 위해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로 군사간부양성기지를 졸업한 학생들은 후날 조선인민군의 핵심골간으로 되였으며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에서 큰 몫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