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2)중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총대로 당의 로선을 옹호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보위하기 위한 투쟁을 승리적으로 이끌어나가시였다.

온갖 낡은 잔재를 쓸어버리고 나라의 민주주의적발전을 이룩하며 조국의 완전자주독립을 쟁취할데 대한 당의 정치로선을 관철하는 과정은 곧 새 민주조선건설을 말살하려는 제국주의자들과 온갖 반동들의 끊임없는 파괴암해책동을 정의의 총대, 인민의 총대로 짓부셔버리는 나날로 이어졌다.

해방후 전국각지에는 항일유격대의 영향을 받아 조직된 민병대를 비롯하여 적위대, 자위대, 자치대 등 각이한 명칭을 가진 민간무장조직들이 있었다. 이러한 무장조직들에는 대체로 청년들이 망라되여있었는데 그 수는 수천명에 달하였다.

당시 각당, 각파들이 이러한 무장조직들을 제가끔 가지려고 하고 또 가지고있는 조건에서 이것을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큰 후과를 초래하게 될것이였다.

이것을 꿰뚫어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모든 민간군사조직들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당면한 조치로서 군사학교를 조직할것을 발기하시고 그 명칭을 정해주시였다. 그리고 그 본보기를 평양에 꾸리고 그 경험에 기초하여 신의주와 강계, 혜산 등지에 련이어 학교들을 세우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학교에서 당과 정권기관의 경비와 치안유지를 맡아 수행할수 있는 청년들을 키워내야 하며 장차로는 그들이 앞으로 창건될 민족군대에서도 한몫씩 할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 학교는 우리의 민주건국을 수호하고 정규무력을 건설하는데서 큰 몫을 하게 될것이라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 시기 온갖 원쑤들의 준동을 적발숙청하기 위한 무장조직들을 내오시였을뿐아니라 총대가 당과 혁명을 보위해야 하는 계급적사명에 충실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1945년 11월 26일, 신의주에서는 공산당이나 정권기관에 잠입한 일부 나쁜놈들이 인민의 리익을 침범하는 행동을 한것을 악용하여 반동들이 학생들을 부추겨 공산당 도당부와 도인민위원회를 습격하는 폭력행위가 감행되였다.

평양의 어느 한 극장에서 연설하시던 도중 신의주에서 《학생사건》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단에서 내려오시는 길로 즉시 현지에 나가시였다.

신의주에서 소요가 발생하기 전 반혁명분자들은 도처에서 공산당과 인민위원회를 비방공격하는 《공세》를 맹렬히 벌리면서 무장폭동을 선동하고 계획적으로 학생소요를 조작하였으며 보안기관에 잠입한 나쁜놈들은 막뒤에서 이자들과 공모하여 학생소요를 의도적으로 밀어주고 조종하였다. 어떤 곳에서는 반동들이 안일해이된 자위대원들에게 술을 먹인 후 아무런 저항도 받음이 없이 자위대사무실을 점거하고 대낮에 무기를 걷어갔다.

당과 혁명을 보위해야 할 총대가 흔들리면 반당반혁명분자들이 머리를 쳐든다는것이 신의주《학생사건》이 남긴 심각한 교훈의 하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교훈으로부터 총대를 강화하시고 학생소요를 일으키게 한 반당반혁명분자들의 책동을 짓부시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번 학생소요를 계기로 도안의 보안일군들과 자위대들을 똑바로 배치하도록 하시고 각 공장과 농촌들에 자위대를 정연하게 꾸려 반동들의 책동으로부터 혁명의 전취물을 믿음직하게 보위하도록 하시였다.

하여 평안북도에서뿐아니라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보안기관과 민간무장조직들을 정치군사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는 사업과 함께 반동들을 적발숙청하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졌으며 억세게 다져진 계급의 총대앞에 반혁명분자들의 책동은 걸음마다 파탄되게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토지개혁을 비롯한 제반 민주개혁을 실현할데 대한 당의 로선관철사업도 총대의 담보밑에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하시였다.

민주개혁을 실시하는것은 해방후 조선혁명의 합법칙적요구로 제기되였다. 민주개혁을 실시하여야만 일제통치의 잔재와 지주, 예속자본가를 비롯한 반동세력의 경제적기초를 없앨수 있었으며 근로인민대중이 식민지적, 봉건적착취와 압박에서 벗어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누릴수 있게 하고 북반부를 강력한 혁명적민주기지로 전변시킬수 있었다.

하기에 수령님께서는 당창건을 선포하시는 력사적인 보고에서 민주주의개혁을 실시하며 경제를 부흥발전시키고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을 높이는것을 당의 정치로선의 하나로 제시하시였던것이다.

민주개혁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제국주의적, 봉건적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심각한 사회혁명인것으로 하여 그것은 치렬한 계급투쟁을 동반하였으며 이 투쟁은 오직 총대에 의거하여서만 성과적으로 수행될수 있었다.

이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유격근거지-해방지구에서 혁명군대의 무력적담보밑에 몸소 이룩하신 민주개혁의 경험에 토대하여 해방후 북조선에서 토지개혁, 중요산업의 국유화를 비롯한 민주개혁을 총대의 믿음직한 보호속에서 진행되도록 이끌어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보다도 토지개혁의 성과적수행을 위해 주체34(1945)년 10월 16일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1차 확대집행위원회를 열어 토지개혁의 기본방향을 밝힌 《토지문제에 대한 결정》을 발표하시고 주체35(1946)년 3월초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5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는 토지개혁의 실시와 관련한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히신 다음 3월 5일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을 발포하시였다.

그때 혁명의 원쑤들은 《땅을 가졌다고 좋아하지 말고 땅을 빼앗겼다고 슬퍼하지 말라.》, 《림시정부가 준 땅은 통일정부가 서면 무효로 된다.》 등의 반동요언을 퍼뜨리면서 소요를 일으키고 핵심농민들에 대한 폭행을 감행하는 등 갖은 발악을 다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남조선반동들도 간첩테로분자들을 북반부에 들이밀어 파괴암해책동을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쑤들의 이러한 책동을 분쇄하기 위하여 토지개혁을 무장으로 튼튼히 보위하기 위한 여러가지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그 중요한 조치의 하나가 이미 정규군의 정치군사간부로 육성되고있던 평양학원 학생들을 농촌에 파견하는것이였다.

주체35(1946)년 3월 중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에 동원되게 될 평양학원 학생들을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회의실로 불러주시였다.

어깨에 총을 메고 농촌으로 나가게 될 학생들이 대견하신듯 한동안 믿음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당의 토지개혁정책을 무장으로 옹호하기 위하여 동무들을 농촌에 파견하기로 하였다고 말씀하시며 토지개혁의 력사적필연성에 대하여, 토지개혁실시를 위한 투쟁에서 계급적립장을 철저히 지킬데 대하여 등 당의 토지개혁정책관철을 위한 방향과 방도를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맡겨주신 영예롭고도 무거운 임무를 안고 농촌에 파견된 평양학원 학생들은 농민들속에 들어가 해설선전활동을 벌리는 한편 악질지주들과 반동들의 준동을 짓부셔버림으로써 토지개혁의 성과적실현에 적극 이바지하였다.

그해 4월초 어느날 평양학원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에 동원되였던 학생들이 농촌에 나가 일을 잘하였다고, 여러 지방들에서 학원으로 축하문과 축기, 편지들을 보내온것은 학생들이 일을 잘하였기때문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내가 얼마전에 강서에 나가보았는데 그때 그곳 인민들은 평양학원 학생들이 악질지주들과 반동들의 책동을 사전에 짓부셔버리고 자기들을 잘 도와주었기때문에 토지개혁을 앞당겨 끝낼수 있었다고 하면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평양학원 학생들이 확실히 다르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때에 그곳에 나가있는 평양학원 학생들을 만나 마지막까지 일을 잘하라고 고무해주었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군복을 입고 무장을 갖춘 학생들을 농촌에 파견하신 조치는 더욱더 악랄해지고있는 내외원쑤들의 준동을 짓부셔버리고 토지개혁을 성과적으로 실현하는데서 큰 몫을 차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을 무장으로 옹호하기 위하여 농민자위대를 조직할데 대한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주체35(1946)년 2월말까지 전국의 농촌지역들에 농민자위대가 조직되였으며 이러한 농민자위대의 역할에 의해 토지개혁실시는 무장으로 튼튼히 담보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법령의 발포와 함께 《토지개혁실시에 관한 림시조치법》을 공포하여 지주, 반동들의 악랄한 파괴행위를 제압하도록 하시는 한편 인민정권기관들, 특히 보안기관들의 독재기능을 강화하여 반동분자들과 간첩, 암해분자들을 제때에 적발숙청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로 총대의 믿음직한 담보밑에 토지개혁은 20여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큰 편향이 없이 철저히 수행되였다. 결과 100만여정보의 토지가 무상으로 몰수되여 72만여호의 빈고농들에게 무상으로 분배되는 세기적변혁이 이룩되였다.

해방후 북반부에서 중요산업국유화를 비롯한 제반 민주개혁 역시 이러한 총대의 담보밑에 철저히 그리고 빠른 기간에 성과적으로 수행되였다.

이밖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1월 27일에는 국경경비대를, 주체34(1945)년 12월 7일에는 철도경비대를 조직할데 대하여 과업을 주시여 당, 정권기관과 인민의 생명재산, 혁명의 전취물을 총대로 튼튼히 보위하도록 하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로 총대의 믿음직한 담보밑에 해방직후 당의 로선과 정책이 철저히 옹호되고 혁명의 전취물은 굳건히 보위되게 되였다.